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법 공부와 마음 닦음을 중시해 원연을 해체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 중에는 사람마다 모두 넘겨야 할 어려움이 있고 돌파해야 할 관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넘기 어려운 관은 바로 남편 사이의 원연(遠緣)이다. 속인 때 이 때문에 다투고 원망하며 불편해하고 자신의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수련했으나 또 속인과 다름없었는데 이것은 내가 우주의 바른 법리와 맞서 다투는 것이었다. 대법은 나의 오성을 열어주었고 내 마음속의 미장(迷障)을 타파해 나로 하여금 ‘잘못한 것은 나이고, 옳은 것은 남편’임을 깨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 내포된 초상(超常)적인 이치를 깨닫게 했다. -본문 작자

* * * * * * *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 중에는 사람마다 모두 넘겨야 할 어려움이 있고 돌파해야 할 관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넘기 어려운 관은 바로 남편 사이의 원연(遠緣)이다.

속인일 때, 우리 두 사람은 늘 부딪히면서 사흘도 좋게 보내지 못했다. 나는 그가 큰일은 해내지 못하고 작은 일은 잘 처리하지 못하면서도 또 입만 열면 ‘내 느낌에는’이라고 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 ‘내 느낌에는’ 입버릇은 그가 일 처리 하는 근거가 된 듯했다. 그는 무엇을 말하든지, 또 일이 가볍고 무겁든지, 일이 느리고 급하든지를 막론하고 늘 마음에 두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마치 내가 벽을 마주하고 말하는 듯했다. 그를 쫓아가며 말을 해도 그는 여전히 열 마디에서 반 마디만 들었고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듣는 식이었다. 그런 다음 곧 ‘내 느낌’에 따라 ‘장(張)씨의 것을 이(李)씨가 쓰면서’ 마구 처리했는데 십상팔구는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 번거로움이 얼마나 크던지 막론하고 스스로 만회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에 여전히 그 같이 행사하며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나는 ‘내 느낌에는’을 듣기만 하면 마음이 즉시 큰 돌로 막히는 듯했다. 매번 그와 이치를 따지면 그는 거의 모두 같은 말로 “내 느낌에는 당신이 바로 이렇게 알려준 것 같은데!”라고 교활하게 궤변을 하며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화를 내고 조급하고 지쳐도 그는 일률적으로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우리 둘은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게 청년에서 중년, 노년까지 걸어왔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기분이 언짢고 우울해져 온갖 병에 다 걸렸다. 정말 고해(苦海)가 끝이 없었는데 언제면 끝이 날지 몰랐다! 모든 것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모든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때, 나는 기쁘게 대법을 얻었다. 몸은 하루하루 달라졌으며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했다. 병 없는 가뿐함과 유쾌한 심정은 나에게 무한한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내심으로 대법의 초상(超常)함을 비할 바 없이 경탄하며 늘 사부님의 무한하게 자비하신 은혜에 감사드렸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수련에 들어섰다. 나는 그가 대법 중에서 ‘나쁜 습관’을 고쳐 버릴 것을 기대했다. (이렇게 강대한 집착을 갖고 대법을 학습하는 것은 대법에 대한 불경임을 지금은 깨달았음) 그러나 나는 아주 빨리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느꼈다. 거듭된 실망은 자신으로 하여금 다시 또 어찌할 방도가 없는 고통 속에 떨어져 스스로 빠져나오기 어렵게 했다. 나는 막막한 속에서 세월을 헛되게 보냈다….

그는 또 ‘내 느낌에는’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가 말해 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화가 나서 직접 그 이름을 부르며 “OOO! 당신은 툭하면 ‘내 느낌에는’이라고 말하는데, 당신의 이 ‘내 느낌에는’이란 말이 한 근에 얼마죠? 당신은 온종일 그것을 품고 내려놓지 않네요. 수련해도 고치지 못하고 온종일 ‘아니요’를 갖고 이유로 삼아 말하는데 당신은 사람을 존중해야 해요! 그러기에 어릴 적에 아버지가 전문적으로 당신을 위해 몽둥이를 준비해 놓았지. 왜 당신을 때려서도 깨닫게 못 했는지!”라고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내 말을 피하더니 즉시 화가 나서 “당신은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렀는데 사람을 존중한 건가?!”라고 반문했다. “내가 당신 이름을 한번 불렀다고 견디지 못하나요?! 몇 년 동안 당신은 나에게 줄곧 ‘이봐’라고 했는데 내 이름이 ‘이봐’인가요?! 사람을 너무 업신여기지 마세요!”

과거에 다툰 것은 속인이지만 지금 다투면 옳지 않다. 수련인은 참아야 함을 나도 알고 있으나 참을 수 없었다! 비단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또 ‘10년 전 8년 전 화를 냈던(十年穀子八年糠)’ 것이 복받쳐 올랐다. 모기향에 태워진 책상이랑 유다 (역주-수련을 포기하고 대법 사부님을 배반한 자를 비유)를 도와 증인이 됐다가 내가 무거운 판결을 당한 일, 내가 큰 재난에 죽지 않고 구원을 받은 뒤에 그의 냉담하고 기분을 상하게 한 무정한 말, 수련을 위해 그에게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는 또 남의 호의를 알아주지 않고 늘 마음에 두던 일 등등……다 따지지 못할 과거, 이해되지 않는 새로운 원망은 전부 그의 ‘나쁜 습관’과 연결됐다. 나는 밥을 먹지 못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으며 적잖게 화를 냈고 적잖게 눈물을 흘렸다. 나도 마음이 조급했다! 마음속으로 ‘우리는 결국 함께 수련했기에 다시는 과거처럼 그렇게 열흘이나 반달 동안 서로 모르는 척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그가 발정념을 할 때 손이 넘어졌다고 말하면 그는 “당신도 그러네!”라고 말했다. 그에게 법 공부를 할 때 졸면 안 된다고 일깨워주면 그는 “누가 졸려 해? 당신이 졸려 하는군!”이라고 말했다. 또 그에게 대법 책을 읽을 때 구감(句感)이 있어야 하며 악센트를 읽어내야 한다고 알려주자 그는 노발대발하며 “난 원래 이래! 원래 이래! 날 상관하지 마라!”라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 “이치를 따지지 않아요.”라고 질책하자 그는 화가 나서 “나는 이치를 따지지 않아! 나는 이치를 따지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이 정도까지 되니 나는 정말 더 말할 도리가 없었다. 자신은 한평생 ‘이치 없는 말은 하지 않고, 이치 없는 일은 하지 않으며’, 행위와 처세를 줄곧 스스로 단속했으며 또 주변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정과 존중을 받았다. 어째서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을까? 지난 몇십 년은 따지지 않더라도 수련을 했는데도 그는 왜 아직도 이치를 따지지 않는가?! 나는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에게 규범이 부족하고 가정교양이 없다고 탓했으며 또 몰래 자신이 운이 나쁘다고 원망했다. 나는 이로부터 적극 그와 정면적인 충돌을 피했다.

박해 초기에 그는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마음속에 그림자가 있음을 알았기에 또 그에게 강요하지 않고 혼자 나가서 대법자료를 가져오고 보내주었으며 혼자 배포하고 혼자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동시에 기계를 사 와서 혼자 전단지를 인쇄했다. 안전을 위해 나는 아무것도 그에게 감히 알려주지 못했고 또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도 묻지 않았다. 나는 늘 ‘제각기 수련하는 것도 오히려 근심을 더는데 구태여 번거로움을 스스로 찾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은 표면적으로는 다시는 강하게 부딪히지는 않았으나 각자 속인의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당시 ‘9평공산당’이 이미 출판됐다. 나도 시간이 긴박하고 사람 구함에 조급함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 사이의 간격은 마치 산처럼 수련의 길을 막아서 넘기지 못했다. 어떻게 안으로 찾아도 자신이 옳았다. 어떻게 해야만 함께 협조를 잘할 수 있을지 정말 괴로웠다!

어느 한 번 나는 ‘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排除幹擾)’ 중 사존의 가르침을 보았다. “법(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마음은 즉시 창문이 열린 듯했다. “맞아, 대법은 나를 도울 수 있다! 왜 법 공부를 중시하지 못했을까!” 특히 법 공부를 하는 ‘시간’과 ‘질’ 면에서 자신은 너무 생각대로 하며 엄격하게 요구하지 못했는데 법 공부를 ‘늘’ 하지도 못했고 또 ‘주의력을 집중해’ 하지도 못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법 공부를 하려는 염두가 생겨났다. 이번에 그와 말하자 단번에 일치했는데 전례 없이 순조로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존께서 자비롭게 배치하심에 감사를 드렸다!

우리 둘은 매일 아침 세 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5장 공법을 다 연마하고 또 6시 발정념을 다 발한 다음 열심히 ‘전법륜(轉法輪)’을 한 강의를 읽고 저녁에 또 한 강의를 학습했다. 이렇게 매주에 ‘전법륜’ 한 번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이거나 경문을 한두 편을 볼 수 있었다.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배치했다. 설날 명절에 얼마나 바쁘던지,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참가해 얼마나 지쳤던 지를 막론하고 우리는 모두 엄격하게 계획에 따라 오늘까지 견지했는데 이미 8년에 가깝다. ‘전법륜’만 해도 이미 3백여 번이나 읽었다. 다른 대법 책은 평균 3~4개월이면 한 벌 통독할 수 있었다. 사존의 최근 설법은 더욱 반복적으로 많이 학습했다.

사존께서는 ‘법 공부 태만하지 않으니 변화가 그중에 있도다(學法不怠變在其中)’ [1]라고 가르치셨다. 장시기 해이하지 않은 법 공부 중에서 나는 정말 변하고 제고됐을 뿐만 아니라 법리에서 제고됐다.

나는 마침내 남편과의 모순 중에서 내가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잘못은 내가 줄곧 속인의 이치로 일체를 판단한 것인데 특히 남편을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수련인은 마땅히 속인과 같이 보지 말아야 하며 초상적인 우주의 바른 법리에 따라 행사해야 한다. ‘속인의 이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역시 삼계내의 것으로 우리는 삼계를 벗어나야 한다. 하물며 ‘삼계(三界)와 우주의 일체는 반대’됨에랴[2]. 이렇게 보면 내가 금생에 감당한 일체 고통은 표면에서 보면 남편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것이나 사실은 모두 내가 지난 과거에 그를 업신여기고 상해했을 때 조성한 업이었던 것이었고 감당함은 바로 업을 갚은 것이었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한다.’ 이것은 우주의 바른 법리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맹목적으로 속인의 이치로 그와 다퉜는데 이것은 ‘이 생애에 그 생애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 것과 같으며 빚진 것을 갚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의 주원신은 명백한 것이다. 그가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으며 나에게 좋게 대할 수 있겠는가?

속인 때 이 때문에 다투고 원망하며 불편해하고 자신을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수련했으나 또 속인과 다름없었는데 이것은 내가 우주의 바른 법리와 맞서 다투는 것이었다. 대법은 나의 오성을 열어주었고 내 마음속의 미장(迷障)을 타파해 나로 하여금 ‘잘못한 것은 나이고, 옳은 것은 남편’임을 깨닫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 내포된 초상(超常)적인 이치를 깨닫게 했다.

1. 법 공부를 하여 승화된 후의 인식

그 중의 하나, 나는 사람 마음은 수련의 길에서 가장 큰 장애임을 인식했다.

수련의 길에는 우연이 없다. 나와 남편 사이의 시비은원(是非恩怨)은 인연으로 조성된 것이다. 우매한 윤회 속에서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이 너무 많으며 자신은 전혀 갚을 방법이 없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신 동시에 그것들을 이용해 나에게 그런 약간의 고통을 감당시켜 빨리 업력을 갚고 되도록 빨리 제고하도록 하셨다. 나는 오히려 장시간 사람 속에 깊이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깨닫지 않았으며 또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원인을 따져 속인의 층차에서 본다면 내가 자신의 그 ‘속인의 이치’에 너무 집착했던 것이다. 안으로 깊이 찾으면 자신이 속인 중의 그 ‘이치를 따지’는 허명을 너무 중시했고, 세상 사람의 판단을 지나치게 중시해 명을 구하는 집착 때문에 심지(心智)를 미혹시켜 그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으며 자신이 수련인임을 잊었던 것이다. 너무 중한 사람 마음은 외부 요소에게 빈틈을 주어 외부의 교란을 불러일으켜 하마터면 자신을 끌어내릴 뻔했다.

대법이 미혹을 깨뜨리자 의혹은 바로 사라졌다. 깨달은 그 순간 내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마음속의 그런 개운함과 즐거움은 여태껏 잊을 수 없다!

그중의 두 번째, 나는 무엇이 수련임을 깨달았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자신의 각종 집착, 각종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수련해 버리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늘 남편을 질책하며 늘 그를 개변하려고 했는데 스스로 자신을 그에 비해 좋다고 여겼다. ‘속인의 이치’를 나는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고 어른이 되어서 이 방면의 책도 또 많이 보았다. 친구와 친척은 누가 모순에 부딪히고 번거로운 일에 마주쳐도 모두 나를 찾았다. 나는 몇 마디 말이거나 경전 중의 어구나 고사를 인용하면 그들로 하여금 마음속 불쾌함이 아주 빨리 깨끗이 사라져 버릴 수 있었다. 나는 장시간 그중에 깊이 빠져 즐거움을 누리며 오만하게 다른 사람을 얕보았는데 이어서 다른 사람을 개변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지경까지 발전했다. 과시심, 환희심을 없애지 않자 또 초조한 마음, 쟁투심, 질투심 등이 야기됐으나 여태껏 자신을 개변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집착을 갖고 이유로 삼아 말을 했다.

“수련인은 속인의 일체 마음, 일체 이치를 버려야만 비로소 고층차로 수련할 수 있고 비로소 우주와 반대되는 삼계를 뛰쳐나올 수 있다.”[2] 사존의 가르침은 나를 경계하고 깨닫게 하셨으며 자신으로 하여금 수련의 엄숙성을 보게 하셨다! 깨달은 그 시각부터 나는 모든 큰 관이나 작은 난 중에서 모두 자신을 ‘잘못된 건 나이니(錯的是我)’의 위치에 확정해 놓았다. 이 기점에서, 수련의 길에는 우연한 일이 없고 만사에는 모두 인연이 있음을 깊이 새기며 일념, 일언, 일행에서 열심히 자신을 찾아 철저하게 사람 마음을 찾았다. 이것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시 수련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은 대법 중의 한 입자이기 때문이다.

그 중의 세 번째, 수련인은 매 하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대법 중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함을 체험했다. 사람은 신이 만들어낸 것이며 모든 사람의 생명 성분은 모두 신이 특정한 것으로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 이 때문에 매 사람의 성격, 천성, 특성, 원신(元神)도 각기 같지 않다. 우주는 이 때문에 번창한 데 이것은 천지의 조화이다. 생명의 특징이 같지 않다고 할 지라도 모두 신이 부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신은 매 생명에 대해 모두 자비로운 것이며 모두 매우 소중히 여긴다. 우리의 사존께서는 더욱 이러하시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을 경시하고 다른 사람을 개변하려고 망상하는 이것은 옳지 않으며 역시 근본적으로 개변시킬 수 없다. 수련하려면 자신을 바로 잡아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다른 사람을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 남편에 대해 이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해야 한다! 일체 생명에 대해 모두 이러해야 한다! 법리상에서 제고하자 나로 하여금 자신이 수련 중에서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했다.

과거에 내가 친척과 친구에 대해서도 기꺼이 도와주려 했고 경제적으로도 기꺼이 헌신하려 했기에 그(그녀)들은 나에 대해서도 아주 좋게 대했다. 대부분 사람은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된 후에 또 모두 삼퇴했다. 특히 친정집과 시댁 친척들은 대법에 대해서도 모두 아주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경시’하는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 이런 유형의 학력이 높아 오만함을 형성한 집착은 신불(神佛)의 자비하신 앞에서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

나는 줄곧 생활을 검소하게 하며 함부로 낭비하거나 물건을 파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도 단지 사람의 미덕일 뿐이다. 오늘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각도에서 머리를 돌려 돌이켜서 앞뒤를 대비해 보았는데 그것은 정말 판이하게 같지 않은 서로 다른 두 세상이었다. 다시 사존께서 사람을 대하시고 동물을 대하시며 식물과 밥 한 알을 소중하게 대하심을 회상하고 나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중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수련의 함의를 깨달아냈다!

법 중에서의 이 승화는 자신으로 하여금 수련의 길에서 또 새로운 계단을 내딛게 했다. 이 층의 수련 중에서 나는 매 한 걸음을 내디딤에 모두 하나의 잊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으며, 매 하나의 이야기는 바로 자신이 수련의 길에서의 발자국이었다. 그것들은 연결됐는데, 바로 자신이 이 계단에 걸어온 수련 노정으로 그 속에는 진실하게 일체가 기재되어 있다.

상유심생(相由心生)하고 상황은 마음에 따라 바뀌었다. 나의 오성이 제고되자 남편도 즉시 자신을 단속했으며 다시는 ‘내가 느끼기에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무의식중에 말을 했을지라도 우리 둘은 웃고 지나쳐 버렸다. 그는 법 공부 후 완벽히 딴 사람으로 바뀌었다. 특히 책을 읽는 것을 더욱 열심히 했다. 읽는 소리와 억양, 경중은 절대 이전과 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념을 견지해 두려운 마음을 없애며 자발적으로 나가서 자료를 배포했고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면서 적극 세 가지 일을 했다. 우리 둘은 서로 일깨워주고 서로 격려했으며 서로 너그럽게 참았다. 대법은 우리의 연원(淵怨)을 없앴고 장시간 다툼은 철저히 끝났다. 대신 평화로 바뀌었다. 대법은 우리를 단련시키고 우리를 개변시켜 우리 둘의 사람 마음은 매우 빨리 버려졌고 나쁜 습관도 매우 빨리 개변됐다. (우리는 스스로 모두 느낄 수 있었음) 우리의 환경은 정말 좋게 변했다! 이 일체는 모두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하신 것이며 우리 자신은 ‘잘 수련을 하고 싶은’ 소원밖에 없었을 뿐이다.

2. 대법 중에서 성숙으로 걸어가다

그 중의 하나, 법 공부팀을 성립하다

나와 남편은 단체 법 공부 중에서 적잖게 이로움을 얻었다. 더욱 많은 수련생이 대법 속에서 제고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집에서 차례로 몇 개 법 공부팀을 만들었다. 그녀들이 출근 시간이 같지 않고 가정상황이 제각기 다름을 고려해 나는 적극 시일을 합리적으로 배치해 그녀들이 법 공부를 할 때 우려를 줄였다. 나는 또 최대한 이전의 수련생을 찾아왔으며 조건 있는 사람은 극력 우리의 단체 법 공부에 참가하도록 했다. 잠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즉시 자료를 보내준 동시에 즉시 법에서 그와 소통했다. 대법의 깨우침 하에 우리는 교란을 배제하고 난관을 뛰어넘었다. 사존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이전의 수련생은 아주 빨리 망설이는 마음을 없애 버리고 확고해졌다. 몇 해 동안 우리의 단체 법 공부는 비바람도 막을 수 없었다. 수련생 사이에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사람 마음을 버렸으며 자각적으로 확고하게 대법을 수호했다. 이와 같은 대법 중에서 제고한 후의 승화는 견실했다. 시국이 어떻게 변화하든지 막론하고 우리는 그것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서둘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으며 사존의 요구에 따라 이지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했다.

그중 두 번째, 자각적으로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 책 글자를 고치다

첫 번째로 ‘전법륜’ 글자를 고칠 때 나와 남편은 이미 ‘전법륜’의 글자고치기 원칙에 따라 7.20 이전의 다른 대법 책을 전부 한 번 다 고쳤다. 그 후 시간이 긴박했던 이유로 다시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고쳐야 할 글자는 여전히 이 책들 속에 남아있었다.

작년 10월 말, 나와 남편은 ‘북미순회설법’을 학습했다. 54페이지에서 사부님께서 글자를 고침에 관련된 문답을 보았는데 기록하면 다름과 같다.

“제자: 대법 책은 수정한 것이 있는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합니까?

사부: 오타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수정이 필요하다. 사부가 있기에 법은 함부로 되지 않는다. 중문(中文)은 대만에서 최근에 발행한 것을 기준으로 한다.”

나와 남편은 대법요구에 부합되지 않은 글자를 대법 책에서 제거해야 함을 깨달았다. 이것은 제자의 책임이기에, 우리는 마땅히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주동적으로 해야 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7.20 이전의 모든 대법 책을 전부 요구에 따라 글자를 고쳤다. 사이트의 새로운 판본을 표준으로 하여, 한 수련생이 읽으면 나와 남편이 기록했다. 고쳐야 할 글자 및 모든 페이지 수, 단락, 행을 기록한 동시에 바뀐 글자를 분명히 표기했다. 우리는 한편으로 읽고 한편으로 교정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누락된 것을 보충했는데 전후 모두 세 번을 거쳐서야 틀림없음을 확보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필요한 새 글자를 자료점 수련생에게 인쇄시켜 맨 마지막에 이런 글자를 잘라내어 잘 붙였다. 세 가지 일에 영향 주지 않은 전제로 나와 남편은 마침내 대법 책 글자 고치기를 완수했다.

전체 과정은 아주 수고스러웠다. 전후 세 번을 교정해 시간과 정력을 아주 소모했다. 어느 몇 번 나는 낮에 정말 완수하지 못하자 밤새 이어서 했다. 밤이 깊어 인기척이 없는 이때, 이 완벽하게 보존된 대법 책을 보면서 그 잊을 수 없는 홍법과 13년 동안의 반박해(反迫害), 이 대법 책들을 보존하기 어려웠던 점이 늘 한 장면씩 내 눈앞에 떠올랐다. 매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는 머리를 맴돌며 잊을 수 없었다! 신성하고 장엄한 마음의 경지는 나의 안일한 마음, 조급한 마음, 일하려는 마음을 몰아냈다. 심령이 정화되고 인식이 승화됐다.

그 중 세 번째, 법 공부를 중시하다

내 수련 중의 가장 큰 체험은 바로 대법이 나로 하여금 자신의 집착을 발견하게 했고, 대법이 나로 하여금 어떻게 안으로 찾음을 깨우쳐 주었으며, 대법이 나를 도와 효과적으로 그것들을 없애버렸음이다. 나의 심성이 제고되어 올라오자 대법은 또 더 높은 층차의 법리를 나에게 펼쳐주었다. 나는 다시 찾고 다시 버렸으며 또 다시 이어서 수련했다……나는 이렇게 대법 속에서 섬돌을 주워 올라왔다! 나는 법 공부를 중시해야 함을 느꼈다. 법 공부는 정말 매우 중요했다!

나는 자신의 신변에 여태껏 여전히 적잖은 각종 모순이 몸에 감기거나 혹은 각종 질병 가상의 시달림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수련생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그들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는 마찬가지의 길을 걸어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수련생 여러분이 얼마나 고생스럽든지, 얼마나 어렵든지, 얼마나 어찌할 방도가 없든지를 막론하고 꼭 법 공부를 중시하길 바란다! 법 공부를 중시하라!

사존의 구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홍음3-정진정오(精進正悟)’[2] 리훙쯔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하다’[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誰是誰非)’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9/2639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