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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대법에 대한 나의 믿음은 그 무엇도 개변할 수 없다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협조하여 구출하는 일을 수련생 남편과 상의하고 나서 함께 사악의 검은 소굴에 가 사람을 내놓으라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여 마침내 수련생을 구출해 데려왔다. 수련생의 남편은 아주 감동을 받았고 그 후 나를 볼 때마다 아주 열정적이었으며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견해를 철저히 개변했다. 그 후 수련생 구출하는 일에 참가했고 매번 구출에 참여할 때마다 그는 항상 우리 앞에서 일을 이끌어 나갔다. – 본문 중에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펜을 들려하니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이트에서는 중국 대륙 대법제자들의 수련심득교류가 이미 8차례 진행되었지만 나 자신은 수련을 잘 하지 못하고 또한 문장을 쓸 줄 모른다는 구실로 참가한 적이 없었다. 제9회 원고모집 공지가 발표된 후 수련생들의 교류와 격려로 나는 비로소 법회문장을 쓰는 것은 사부님 은혜에 대한 감동이고 심성제고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장이 발표되든 안되든 이번에 나는 반드시 사부님께 자신의 수련체험을 보고드리는 것이다. 만약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의 비평과 시정을 바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내성적이고 신체가 허약하며 병이 많았다. 가정을 이룬 후 신체는 갈수록 더 나빠지고 신경쇠약, 신경성 두통, 경추골절증, 풍습병 및 기관지염 등을 앓았다. 돈도 많이 썼고 약도 많이 먹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하루 종일 늘 혼미하고 30여세 되는 사람이 집안일도 못했다. 자신이 종이로 말려진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생활 속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많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는지 몰랐다. 마음이 극도로 허약해질 때 나는 가족을 위해 생명보험을 들어서 대비하려고 했다.

법을 얻고 법을 단호히 믿다

98년 우연한 기회에 나는 동료의 인도 하에 다행히 대법을 얻었다. 한 달 넘게 연공한 후 나의 모든 질병은 사라졌다. 평생 처음으로 병이 없이 몸이 가벼운 것을 느꼈고 성격도 명랑해졌는데 대법에 대한 신기함에 나는 진감을 느꼈다. 책을 보고 법학습을 하면서 나는 오로지 진심으로 수련하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관할하신다는 것을 인식했다. 속인의 보험에 가입한다 해도 그들이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매번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이익을 더 얻고 돈을 더 벌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인에게 돈과 재물에 집착하지 말고 일체를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라고 하셨다. 이렇게 인식한 후 나는 모든 일에서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생각하고 그 해에 보험을 해지했다. 그리하여 5천 위안(한화 약 90만원)을 손해 보았다. 이는 수련하지 않는 남편으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5천 위안은 우리 직장인들에게 일년 치 저축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부님을 믿겠다고 선택한 후 신체에서 아주 큰 변화가 발생했다.

수련 초기에 결가부좌(정좌)는 나에게 아주 어려운 것이었고 반가부좌할 때는 다리가 아주 높게 들렸는데 6개월 뒤에 다리가 겨우 내려갔고 40분간 견지할 수 있었다. 처음 결가부좌할 때 몇 초만 견지하고 즉시 내려놓았다. 그 당시 아픔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고 신체는 폭발하는 것처럼 아팠는데 매번 연공은 모두 일분일초 ‘견뎌내기’였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한 달도 안 되어 결가부좌를 30분 견지할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 “수련은 자신한테 달렸고 공은 사부한테 달렸다”를 직접 체험하게 했다. 나는 이후 대법을 단호히 믿기 시작했고 사부님을 단호히 믿었다. 어느 날 법학습할 때 사부님의 한마디 가르침을 보았다. “우리가 속인사회의 형세를 개변하여 전반적인 사회여론이 반대로 된 형세 하에서, 누가 여전히 대법(大法)이 좋다고 하는지, 누구의 심태(心態)가 변화하는지를 보기만 하면, 단번에 다 드러날 것이 아닌가?”〔2〕그 당시 나는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지 모두 나의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개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좋으면 좋은 것이고 그것은 내가 직접 겪은 감수이며 나는 진짜로 해내야 한다고 인식했다. 바로 이 단호한 일념은 나로 하여금 사존님을 따라 오늘날까지 걸어오게 했다.

2011년, 사악이 대법을 가장 미친 듯이 박해할 때 세인들로 하여금 진상을 알게 하려고 나와 수련생은 나의 집에서 진상 현수막을 대량으로 제작하고 전자도장을 새겼다. 현수막을 만들 때 방은 군데군데가 빨갛고 노랬다. 전자도장을 새길 때 절반 완성된 제품을 원하는 치수대로 칼로 잘라서 진상 인장(印章)을 만들었다. 자를 때 수련생은 나의 집 바닥에 한 가닥 한 가닥 긴 칼자국을 냈는데 이런 것에 대해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고 오로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자 했다. 다 하고 나서 나는 완성품을 현지 수련생과 경제적 여건이 비교적 좋지 않은 타 지역에 보냈다. 어느 날 밤, 나와 세 명의 수련생은 함께 구름다리에 가서 현수막을 걸었다. 다리는 조명에 아주 밝게 비췄고 차량도 물 흐르듯 오갔기에 수련생들은 조금 두려워했다. 나는 ‘우리가 하는 것이 가장 올바르고 가장 좋은 일인즉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모두 우리 곁에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첫 번째 현수막을 걸었다. 수련생들은 내가 거는 것을 보고 나눠서 현수막을 모두 걸었다.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 하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매 한차례 일을 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것 같았지만 모두 나의 사부님에 대한 믿음과 법을 믿는 정도를 깊이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신도 모르게 나의 머리 속에서는 강대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정념이 형성되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100점’을 주셨다

2001년 10월의 어느 날, 나는 수련생 집에 가다가 망을 보던 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현지 구치소에 갇혔다. 나는 그 곳에서 박해를 반대하고 단식도 130여 일 진행했다. 그 기간에 악한 교도원은 한 무리의 재소자에게 지시하여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했는데 그 괴롭힘으로 입과 코에 늘 피가 흘렀다. 원래 55kg인 체중이 35kg으로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주 정신상태가 좋아 그 곳의 간수들과 수감자들도 불가사의하다고 했다. 구치소의 성(省) 공안처 처장은 나에게 “당신이 기록을 돌파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기적이 나의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에서 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대법이 나의 몸에서 펼쳐준 초상함이었다.

수련을 확고히 하고 포기하지 않아 나는 또 현지의 사악한 당 인원에 의해 불법으로 3년 판결을 받았고 2008년 불법적으로 여자감옥에 수감되었다. 먼저 ‘집결대’에 갇혔다. 이어서 감옥에서는 60여 명의 대법제자를 나누어서 각각 ‘전향’을 진행했다. 나는 제1감옥구역에서 가장 사악한 대대장에게 맡겨졌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왜 ‘보고사’를 외우지 않는가?” (감옥 안의 재소자들은 교도원을 보는 즉시 반드시 ‘보고, 나는 재소자 모모 입니다’라고 한다) 나는 “나는 재소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 그녀는 나에게 꿇어앉으라고 명령했는데, 나는 꿇지 않았다. 그녀는 같은 재소자와 악한 교도원 등 네 다섯 명이 함께 나를 누르게 했다. 나는 바닥에 앉았고 그녀는 나를 스팀 쇠파이프에 수갑으로 채웠다. 내가 앉는 것을 보자 그녀는 또 나를 문손잡이에 수갑을 채워놓아 나로 하여금 일어서게 했다. 그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오면 이곳의 관리에 복종해야 한다. 당신들 파룬궁은 반드시 4서를 써야 한다.” 나는 계속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때 교도원이 걸어와서 손에 수갑을 들고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이 쪽은 어떤가?” 그녀는 잘 안되고 있다고 답했다. 그 뜻은 내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오늘 내가 당번이지만 내일은 남자 교도원이 당번이니 그는 나처럼 이렇게 당신을 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 나는 크게 깨달았다. 네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구나! 나는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그녀의 입을 이용해서 나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임을 생각했는데 역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게 도와주시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을 단호히 하자 사악도 물러갔다. 이 사람은 나가서 점심을 먹고 더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서 ‘3서’를 쓰라고 했다. 조금 있다가는 또 ‘여기서 파룬궁을 선전하지 않겠다’고만 쓰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저녁 10시가 넘어서 나를 집결대에 보냈다. 돌아오자 그 곳의 재소자들이 단번에 모이면서 나에게 교도원이 밥을 주었는가하고 물었다. 나는 먹지 못했다고 답했다. 재소자들이 나에게 밥을 찾아주었다. 그중 한 명은 나에게 소시지 한 개, 계란 두 개를 갖다주며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소시지 한 개와 계란 두 개를 보자 나는 이것이 100점이란 뜻이 아닌가라고 느꼈다. 원래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셨고 나는 사부님께서 모든 제자의 곁에 계시는 것을 깊이 느꼈다.

감옥에서 3년간 박해를 받는 동안 나는 수련생들을 이끌고 노역박해를 제지했고 더욱이 사악의 지령과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기에 악한 교도원에 의해 문틀에 매달린 채 혹독한 폭행을 당해 다쳤다. 얼마나 사악한 박해를 받든 지간에 나는 대법에 대한 단호한 믿음과 사부님에 대한 경앙은 동요된 적 없었다. 그 당시 법리를 똑똑히 알지 못해 전반적인 박해 부정을 잘 몰랐는데 이 사람 가죽을 벗겨내도 절대로 사악한테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겼다. 결국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단호한 신념에 의지하여 어둡고 멀고 먼 처량한 세월을 견뎌냈다!

작은 꽃을 정성 들여 키우는 중에 단련 되다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돌아온 후 나는 집에서 ‘작은 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상황은, 내가 있는 지역의 자료 수련생이 교란을 늘 받았는데 현지 악한 경찰의 공갈과 협박을 늘 받았다. 자료 수련생의 남편은 수련을 하지 않았고 또 수련생이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안위 때문에 자료제작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 이곳은 사부님의 최신 설법과 밍후이주간, 대법진상자료를 얻기 힘들어 가끔 다른 지역에 가서 얻었고 한 동안은 방법이 없어 탄식했다.

협조하는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서 나의 집에서 ‘꽃’ 한 송이를 키워 밍후이주간과 진상자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상의했다. 나는 이 분야를 담당하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남편이 허락할 지가 염려되었다. 그는 법을 늦게 얻었고 내가 몇 년 동안 감옥에서 박해를 받는 동안 아주 큰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진상자료를 만드는 것을 제지할까봐 걱정되었다. 조금 염려되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아주 명확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더러 진상을 알려서 중생을 구도하라고 하셨고 자료점은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또한 지극히 중요한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기에 자료점을 만드는 필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대법제자로서 물론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중임을 맡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일념을 굳혔다. 가정 자료점을 만들자! 내 이 일념이 단호해질 때 남편은 반대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고 나는 또 정(情)에서 오는 교란에 부딪혔다. 한동안 가족과의 심성 마찰에서 나는 법리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나의 이 한평생은 이 법을 위해 온 것으로 사부님 말씀만 듣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행할 것이며 누구도 내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일을 교란하지 못한다! 내가 이 일념을 내자 더 이상 이 방면의 교란이 없었다. 아울러 남편은 자발적으로 내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도와줄 때가 많았다. 스스로 커버지를 인쇄하고 DVD를 만들었다. 많은 시기에 그는 또 혼자 나가서 진상DVD를 배포했다.

그 당시 내가 사용하는 것은 레이저 프린터였다. 그러나 이 방면에 대한 기술은 전혀 몰랐고 기술문제에 부딪치기만 하면 나는 곧 멈춰버렸다. 한번은 프린터가 고장나서 수련생을 찾아 도움을 받았다. 수련생은 기계를 전부 분해해서 필요한 부품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기계를 재조립하고 돌아갈 때 수련생이 출근하는 시간이 되었다. 수련생은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먼저 그더러 출근하라고 했다. 나는 조립해보겠으니 퇴근해서 우리 집 벨을 눌러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조립했다고 대답하면 그가 집에 돌아가고 만약 설치 못하면 그의 도움을 다시 받겠다고 했다. 그 수련생은 출근했다.

수련생이 간 후 온갖 부품을 보면서 생각하지도 않고 손을 움직여 조립하기 시작했다. 부품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또한 내가 조립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마음속은 한 가지 생각만 있었다. 빨리 조립해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알려주실 것이다. 한 개 또 한 개의 부품을 손에 쥐고 무의식적으로 시험해 보았다. 이것이 안 되면 저 것을 바꾸고 결과 얼마 안 가서 기계는 전부 조립되었다. 내가 전원을 넣고 시험해보니 일체가 정상이었다! 프린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조립한 기계도 돌아가다니! 그 시각 나는 정말로 감동했고 대법과 사부님의 보호를 받는 제자들이 얼마나 행복한 지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진상을 알리는 노정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수련생들은 컬러자료가 효과가 좋은 것을 발견했다. 이에 나는 또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추가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컬러프린터를 알아가야 했다. 기계가 고장날 때 나는 얼마나 어려운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그다지 사용이 순조롭지 못했고 수리하는 것도 잘 몰라 기계에서 뿜어내는 부품이 늘 막히는 현상이 나타났다. 가끔 인쇄한 자료의 색깔이 정상적이지 못하여 알록달록하기도 했다. 이때는 뿜어내는 그 부품을 청소해야 했다. 청소하는 법을 몰라서 온 바닥, 벽, 침대커버에도 전부 칼라 물감이고 두 손은 더욱 ‘오색 찬란’했다. 나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었다. 가끔 밖에 나가 장을 보거나 수련생 집에 갈 때 주먹을 꼭 쥐거나 손을 옷 주머니에 꼭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 오색 찬란한 손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고 더욱이 남들에게 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곤란도 나를 넘어뜨리지 못했다. 나는 대법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단호히 믿었고 사부님께서 매 한 명의 진수제자를 보호하고 계심을 단호히 믿었다. 그리하여 보기에는 아주 어려운 기술문제도 결국에는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나온다’[3] 부딪친 모든 기술문제는 모두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장 좋게 해결되었다.

어느 날 수련생이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사왔을 때 기계 안의 낡은 잉크호스를 꺼내야 했다. 그 수련생은 할 줄 몰라서 나를 찾아왔고 나도 할 줄 몰랐다. 나는 대법 사이트에서 기술 관련한 트레이닝 사이트가 있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었고 그 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일이라면 사부님께서 모두 지지해 줄 것임을 믿었고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난이 성스러움을 가로 막을 쏘냐’[4] 나는 이에 대해 흔들림이 없었다. 결과 그 사이트를 클릭하고 아주 순조롭게 이 분야의 기술 트레이닝자료를 찾았다. 나는 수련생에게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었고 수련생은 한걸음 한걸음 시작해 기계를 분해했고 그 호스를 찾아냈다. 그 당시 컬러 프린터를 어떻게 분해하는지도 몰랐고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단호한 믿음만으로 각종 기적을 체험했는데 이는 나에게 확실히 아주 큰 격려였다!

이 한차례의 경험이 있은 후 나는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결심이 더욱 커졌으며 기술적으로도 비교적 큰 제고가 있었다. 일반적인 기술문제에 대해 나도 해결할 수 있었다. 후에 몇몇 지역 수련생들이 잇따라 컬러 프린터를 구매했고 누구한테 크고 작은 기술문제가 생기면 내가 모두 가서 도와주었다. 우연히 기술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체험도 있었는데 수련생들은 내가 사부님과 법을 믿는 진솔한 마음에 모두 아주 감동했다.

어느 한 시기에 전에 자료점을 했던 수련생이 또 자료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컬러 프린터를 사왔다. 그러나 기계가 자주 고장을 일으켜 나는 자연히 자주 그녀의 집에 갔다. 그러나 그 수련생의 남편은 속인이었고 늘 경찰의 교란이 있어 매우 두려워하면서 그 수련생이 지속적으로 자료를 만드는 것에 반대를 했다. 그러나 내가 기술적으로 그 수련생을 지원하였기에 수련생의 남편은 나를 심하게 싫어했다. 아예 내 앞에서 ‘사람을 속여먹는 기술스승’이라고 불렀다. 나는 표면적으로 그에게 싱글벙글 웃으며 입으로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 억울했다. 그 수련생이 나를 대신해서 한 마디 말도 없는 것을 원망했다. 그 후 나는 자신의 이 일에서 반영되어 나온 명(名)을 중하게 여기는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찾아냈고 그것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으며 수련생을 더는 원망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하기만 하면 잘 될 것이고 만나는 모든 좋지 않은 사람들도 대법에 대한 감동으로 바로 잡힐 것이라고 믿었다. 단지 우리에게 강철도 녹일 수 있는 마음이 없을까봐 걱정이다.

사부님과 대법을 단호히 믿으면 위험이 없다

후에 그 수련생은 현지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되어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에서 박해 받았다. 그녀가 거주하는 지역의 수련생들은 그 수련생이 심성을 닦지 않아 박해를 초래했다고 여기고 구출에 대해 그다지 열중하지 않았다. 나는 문제를 이렇게 보지 않았다. 나는 수련생이 박해당하는 것은 현지 정체와 관련이 있고 주변의 매 수련생들과도 모두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번 박해를 승인하지 않고 제자로서 우리는 물론 박해를 승인하지 않는다. 수련생의 심성에 누락이 생긴 것은 법속에서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이고 사악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땅히 적극적으로 수련생을 구출해야 한다고 여겼고 아울러 사악의 검은 소굴에 직접 가서 구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웠다. 그 누가 두려운 마음이 조금도 없는 정도에 도달해 사악의 검은 소굴에 가서 사람을 요구할 수 있는가? 이때 우리가 사부님과 법을 믿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더욱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깨달았다. 만약 정말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백 퍼센트 믿는다면 어떤 위험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생과 함께 직접 노교소에 가서 사람을 요구했다. 비록 처음 갔을 때 사람을 찾아오지 못했지만 그 속에 있는 수련생의 구체적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같이 간 수련생에게 말하기를, 수련생의 가족이 나서서 구출하는 것이 효과가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현재 이 수련생의 남편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수련생의 남편은 이 일에 대해 아주 실망했는데 사람이 이미 갇혔는데 어찌 구해서 나올 수 있는가라고 여긴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일은 법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오로지 우리가 사부님과 법을 믿기만 하면, 우리가 바르게 행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실 겁니다.” 그리하여 수련생도 최초의 생각을 바꾸었고 일체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라야 한다고 인식하고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그 결과 우리가 노교소 대문을 나서자 박해받는 수련생의 남편이 전화를 받았다. 그 당시 우리는 모두 아주 감동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5〕를 체험했다.

우리는 수련생 남편과 구출에 대한 일을 상의했고 사악의 검은 소굴에 같이 가서 사람을 요구했다.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마침내 수련생을 구출해 냈다. 수련생의 남편은 아주 감동했고 그 후 나를 보기만 하면 아주 열정적이었으며 더 이상 나를 ‘사람을 속여먹는 기술스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울러 진솔하게 “기술 스승이 오셨군” 이라고 한 마디 했다.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견해를 철저히 개변했다. 그 후 수련생 구출에 대한 업무에 참가했고 매 번 구출에 참여할 때마다 그는 항상 우리 앞에서 일을 이끌어 나갔다. 이런 일은 나에게도 큰 격려가 되었다. 나는 오로지 사부님만 단호히 믿고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기만 하면 아주 많은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한 것으로 바뀐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다. 이는 모두 대법이 펼쳐 보인 비할 바 없는 위덕이다.

사실 사부님과 법에 대해 믿는 정도에 대해 나는 무슨 고정된 틀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평범한 ‘믿음(信)’ 한 글자가 견정한 하나의 마음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이런 예를 들겠다. 어느 한동안 우리 몇몇 수련생들은 늘 마트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일부는 진상을 말하고 일부는 발정념을 하는데 효과가 정말로 아주 좋았다. 어느 날 나와 수련생은 또 이 마트에 왔고 몇몇이 흩어져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때 내가 고개를 돌려보니 한 무리 사람들이 달려왔고 좋지 않은 기세였다. 그 중 나를 알아본 한 경찰이 나를 한번 보았는데 나는 이 한 무리가 사복경찰임을 단번에 인식했다. 그들이 이곳에 온 것은 분명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어서 그 한 무리는 총망히 한 수련생한테 다가갔고 수련생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수련생한테 알리려고 해도 이미 늦어서 몸을 돌려 층계를 내려갔다. 이때 나는 한 사람이 나의 뒤를 바싹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곁눈으로 보니 마침 그 무리 중의 사복경찰 한명이었다. 나는 계산대까지 걸어가서야 그를 따돌릴 수 있었다. 내가 층계를 내려갈 때 나를 알고 있던 두 경찰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파동이 조금 있었다. 그러나 결국 사부님과 법을 믿는 정념이 우세를 점해 자연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마트 문 앞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타 지역 수련생을 찾았다. 그녀한테 위층에 있는 수련생들에게 암시를 주어 ‘사복경찰’을 대비하도록 부탁했다. 필경 그 경찰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수련생이 가겠다고 대답하면서 나보고 얼른 떠나라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반시간 동안 정념을 내보냈다. 그 후 다시 마트에 가서 수련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았다. 마트 앞에 있던 수련생은 경찰들이 이 몇몇 수련생들을 안에 에워싸고 아직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나보고 수련생들에게 연락하여 단체 발정념을 하라고 했다. 내가 공지를 한 후 일부 수련생은 나보고 나가지 말고 먼저 그녀의 집에 숨어서 피할 것을 건의했다. 우리는 이 상황을 분석해 보았다. 오늘날의 정황으로 보면 그 악한 경찰들은 일찍이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 수련생이 2층 입구에 가자마자 납치되었는데 감시카메라에서 우리가 시작한 것을 보고 손을 쓴 것이었다. 그럼 늘 그 마트로 가는 우리 몇 사람도 감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나를 알아본 그 경찰이 줄곧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렇게 보았을 때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로 아주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의 수련생들이 납치된 것을 생각하면 내가 어찌 숨을 수 있단 말인가, 또 어떻게 숨어서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6〕라고 하셨다.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고 어느 한 수련생이 박해당하든 지간에 모두 우리 정체에 대한 박해인데 내가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즉시 방법을 찾아 그 수련생들의 행방을 알아보고 수련생들과 함께 근거리 발정념을 했다. 조금 뒤에 알게 되었는데, 그날 4명의 수련생들은 납치된 동시에 집까지 불법으로 수색당했다고 한다. 수련생들은 그들 가족들과 협조하고 노력하여 그 중 한 명은 그 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외 3명은 다음날 성(省) 노교소에 납치되었다가 한 명은 정념으로 뛰쳐나오고 다른 한명은 가족들의 도움으로 마귀굴에서 벗어났다.

후에 회사 상사는 나에게 경찰들이 회사에 찾아와, 내가 누구누구와 같이 다녔기에 나를 어떻게 할 것이라고 말할 때 상사가 막아 나섰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고 계심을 알았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그는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수련하면 끝까지 돕는다.”〔1〕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매 한마디가 모두 진실임을 단호히 믿는다. 오로지 우리가 심성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라 행한다면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신다.

14년간의 수련 역정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수련생들과 같이 나는 비록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받아 신체적, 정신적으로 거대한 고통을 받았지만 나는 오히려 사악한테 굴복하지 않았고 대법에 대해 한번도 동요한 적이 없었다. 법을 얻은 첫 날부터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렇게도 맞다고 여긴다. 다시 말해서 내심에서 경앙하고 믿고 있다. 사부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모두 믿고 절대로 깎아내리지 않는다. 법을 얻은 첫날부터 어떠한 고통스러운 소업과정을 겪었어도 걱정한 적이 없었다. 아침 연공도 아무리 졸리고 괴로워도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다. 대법과 인연을 맺은 후 대법은 내 생명의 전부인데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나는 표현하는데 능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깊이깊이 알고 있다. 즉 대법을 배운 어떠한 생명도 조그마한 진보와 제고가 있다면 전부 대법이 준 것이며 전부 다 사부님과 대법을 진솔하게 믿음으로서 얻은 것이라고. 나는 깊이깊이 믿고 있다. 오로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백퍼센트 믿는 대법제자들이야 말로 전 우주 중에서 가장가장 행복한 것이다.

나는 비할 바 없이 경앙된 마음으로 우리 위대하신 사존님의 무량한 자비와 고달픈 고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동시에 사존님께 가장 숭고한 경의와 감은(感恩)을 표합니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홍음2- 도중행(道中行)’〔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홍음2-사도은(师徒恩)〔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2-2002년 워싱톤DC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11월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정법수련마당 >대륙사이트법회원고 >제9(2012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6/2645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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