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타이완 가오슝 내과의사 정원위
【밍후이왕】나는 34살의 내과의사로 전에 타이완(台灣)의 저명한 타이베이(台北) 룽민(榮民) 종합병원에서 감염과 주치의를 맡고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가오슝(高雄)에 계시기 때문에 가오슝 시의 한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천식이나 심한 감기로 자주 휴가를 신청했다. 체력이 약했고 운동을 잘하지 못했으며 신체가 허약하여 척 보면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는 진학 때문에 운동하지 못하고 또 체력이 너무 약하여 운동으로 말미암은 피로감과 좌절이 더 컸다. 그리하여 운동량이 너무 적어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한 후 건강을 위해 배구팀에 들어갔다. 능력이 부족하여 정식 시합에 나갈 수 없었지만, 신체 건강을 위해 계속 연습했다.
운동과 의료의 발달로 나의 천식도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상한 관절부종이 나타났다. 나는 심신의 스트레스가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수면이 부족하게 되거나 손가락, 손목, 무릎, 발가락 등이 부어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크고 작게 백여 차례나 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염증은 갑자기 좋아지기도 하여 아침에는 지팡이를 짚고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배구 연습을 하기도 했다. 후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해보니 재발성 풍습증이었다. 이는 일종의 면역계통에 의해 관절이 파괴된 현상으로서 치유할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발작할 때 소염하여 잠시 통증을 억제할 뿐이었다. 일부 사람은 저절로 낫기도 하고 일부 사람은 오랫동안 가끔 발작하거나 더 심각한 질병으로 악화하는데, 심지어 관절에서 체내 장기의 심각한 파괴로 이어진다. 나는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는데 심각해지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몸에는 병이 너무 많아 건강에 더 주의해야 했다.
나는 대학에서 의학과 5학년일 때 배구 연습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마라톤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몇몇 동창생과 함께 캠퍼스의 산비탈을 달렸는데 2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 거리였으나, 거리를 점점 늘려나가 마라톤 활동에 참가했다. 처음에는 7.5킬로의 마라톤에 참가했다. 나는 마라톤에 흥미가 있었지만, 오랫동안 지속해서 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히 연습하지 않은 채 건강을 위해 두려움 없이 시합에 나갔다. 나는 30킬로미터 지점에서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 달리다 걷다 하면서 겨우 종점에 도착했으며 4시간 36분이 걸렸다. 나는 의사를 양성하는 3년간의 고달픈 실습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주말에 마라톤을 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나는 병원의 업무가 숙련된 후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내어 마라톤을 했다. 달릴수록 체득이 있었으며 흥미도 느낄 수 있었다. 몇 차례 마라톤시합에서 성적이 계속 좋아졌다. 나에게 달리기는 이미 신체 건강의 수단과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 생명에서 없으면 안 될 요소가 되었다. 내가 가장 빨리 달린 기록은 42킬로미터를 3시간 26분 59초에 주파한 것이다. 나는 이 성적을 내기 위해 시합에 참가하기 전 4개월 동안 매달 250~300킬로미터를 달렸다. 나는 체력이 아주 좋다고 느꼈으며 체력과 관련된 활동에 자신감이 생기거나 실제 표현에서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천식은 거의 치유 되었으며 단지 매우 더러운 공기를 만나면 가슴이 답답한 상황이 발생했을 뿐이었다. 재발성 풍습은 우연히 한번 재발했고 참기만 하면 대부분 사라졌으며 약을 먹어 소염하고 통증을 억제한 적은 몇 번 안 된다.
이에 대해 나는 달리는 과정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자신감이 생겼으며 실제 생활에서 변화가 생겼다.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달리기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때는 80~90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나로 하여금 원래의 달리던 시간에 다른 것을 하도록 했을까? 이것은 내 누나의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나의 누나 정위한(鄭宇涵)은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하고 병이 많았다. 그러나 체력이 왜 약한지는 알 수 없었다. 병이 많기는 하였으나 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맹장염 수술을 한 후 구토가 멎지 않아 거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다. 기본검사에서는 혈액 중 납 이온의 농도가 110 미만으로 나왔으며 의사들은 모두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내가 타이베이 룽민 종합병원에서 진먼(金门)으로 파견되어 갔을 때 전화로 누나의 주치의와 병세를 논의했다. 이 병은 내과 질병으로 내게는 생소하지 않았다. 나는 주치의에게 부신피질 스테로이드와 갑상선 호르몬 두 가지를 검사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었는데 결과는 나의 예상이 적중했다. 누나는 이 두 가지에서 문제가 있었고 이 결과를 단서로 하여 일련의 검사를 진행했다. 끝내 누나의 뇌하수체 수축을 발견했다. 누나는 뇌하수체 기능이 지극히 약하였는데 맹장염 수술을 하여 낙타의 마지막 풀 한 포기를 밟아 죽인 셈이 되었다.
그 후 누나는 스테로이드와 갑상선 내분비를 조절해주는 약을 매일 복용해야 했다. 복용량은 정상 인체와 같이 정확하게 조정해야 했기에 누나의 상황은 계속 불안정했고 정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 번은 기분이 안 좋아 5일간 복용을 멈추었더니 병이 매우 심각하게 악화하였다. 다행히 생명 위험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자신의 몸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고 질책하면서 반드시 약을 잘 복용하라고 했다. 한동안 시간이 흘러서 누나는 스테로이드가 과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달덩이 같은 얼굴에 몸이 붓고 아랫배가 불룩 나오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 당시 누나는 극도로 고생했으며, 병으로 휴가를 자주 신청하였는데 한 번 신청하면 3일 이상이었다.
누나는 2012년 초에 국립 중산대학 인사과의 정보처리 업무를 맡았다. 7월 중순 그녀의 양 종아리에 벌집 모양의 조직 염이 생겼는데 매우 심각해 응급실로 갔다. 나는 감염과 전문이라 이런 질병에 대한 경험이 아주 많았으며 내가 담당한 과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 질병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문의의 각도에서 보면 누나가 발병하여 나아지는 과정은 일반 질환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특별한 원인이 없는 상황에서 두 다리에 병이 생겼다. 그리고 가장 아플 때도 몇 시간 내에 통증이 갑자기 대폭 완화되었다. 이번에 병이 나은 후 누나의 정신도 많이 좋아졌고 몸의 부종도 나아졌으며 달덩이 같은 얼굴도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출근하면 늘 아주 늦게까지 야근했으며 집에 돌아오면 아주 피곤했지만 더는 휴가를 신청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그녀가 이미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누나가 말했다. “동생, 내 말 들어보고 화를 내지 마라. 나는 이미 한 달 반 동안 뇌하수체 수축을 치료하는 약을 먹지 않았어. 전에 두 다리에 벌집 모양의 조직 염이 생겼을 때 응급실에서 침 한 번만 맞았을 뿐 약을 먹지 않았어.” 이때 나는 화가 났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누나의 정신과 체력이 좋아졌고 외관상의 부종도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의사로서 단지 의혹만 있었을 뿐 내가 배운 것으로는 해석할 수 없었다.
누나는 7월 1일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병이 나아져 심적으로도 더 고층차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말한 두 다리의 벌집 모양 조직 염은 수련을 시작할 때 신체가 정화되면서 나타난 반응이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단지 파룬궁이 병을 치료하는 신기한 기공이며 누나의 몸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 너무나 좋다고 느꼈다. 나는 운동을 계속하였으며 누나는 나에게 ‘전법륜(轉法輪)’을 볼 것을 권했다. 나는 한 번 보고 더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누나는 부친의 고등학교 동창생이신 중산대학 경영대학의 양숴잉(楊碩英) 교수님의 인도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으며 건강을 아주 빨리 회복했다. 2012년 9월 말경, 양 교수님은 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나는 누나의 기적 때문에 만나는 데 동의했다. 어느 날 오후 양 교수님은 9년 동안 깊이 연구했던 근육 동역학으로 그 자리에서 내 몸의 어깨 근육 등 생명의 가장 심오한 문제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깊은 감동과 진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나는 사람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늘 알고자 했으며, 인생은 사명 또는 천명(天命)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시종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나는 크게 깨달았으며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파룬궁의 더 높은 층차의 수련을 위한 준비 작업일 뿐이며 가장 기초적인 층차에 속한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기 전에 나는 집 부근 파룬궁 연공장에서 연공동작을 배웠다. 동작은 어렵지 않았으며 할머니 한 분이 주동적으로 가르쳐주셔서 빨리 익힐 수 있었다. 퇴근 후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전법륜(轉法輪)’에서 쓴 신체가 청리되고 정화된다는 상황과 같았다. 누나가 파룬궁 수련을 시작할 때 발생한 상황과 같았다. 온종일 열이 나고 조금 지치는 것 외에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천식이 아주 심하고 가래침도 매우 짙었다. 나는 의사이기에 어떤 때에 약을 먹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이른바 감기약은 감기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기 증세를 누르는 것이기에 기침약만 먹고(심하게 기침하여 진료에 영향 주는 경우 외에) 다른 약은 먹지 않았다. 이어서 여러 해 동안의 관절염, 경부, 허리의 통증이 신기하게 갑자기 사라졌고 여러 해 동안의 치질도 없어졌다.
나는 신체 에너지의 정화와 승화를 느낄 수 있었고 내심도 귀속과 평정을 찾았다. 몸과 마음이 탈바꿈된 층차는 내가 접했던 각종 건강촉진법과 심령의 승화 방법을 월등히 초월했다. 이런 빠른 변화로 말미암아 나는 원래 운동하던 시간을 전부 파룬궁 수련에 쏟았다. 왜냐하면, 신체의 건강과 내심의 평온은 더 높은 층차의 인생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기초를 다진 것이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달리기가 나에게 좋은 점을 이렇게 많이 주었으며 더욱이 마라톤은 각종 심신능력을 갖추어야 순조롭게 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심신능력의 증진은 달리기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십 년 동안 견지해 왔고 내 생명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내 영혼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달리기를 어찌 이렇게 쉽게 포기했단 말인가? 사실 답은 매우 명확하다. 시초에 건강을 위해 달리다가 건강을 찾을 수 있는 더 강대한 방법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원래의 방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더 깊이 말하면 장거리 달리기는 신체를 놓고 말할 때 사실은 소모적이다. 장거리를 달리는 사람은 반드시 정확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하며 휴식 시간 등을 잘 조절해야 오랫동안 달릴 수 있으며 다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중에서 자세가 정확하지 않거나 훈련이 부족하여 거리나 속도에서 과부하가 생기면 다치기 쉽다. 표면상 달리기는 심신을 홀가분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며 즐겁게 친구를 사귀게 하는 것 같지만, 운동능력을 드러내는 데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했기에 나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많은 달리기 친구는 나의 달리기 성적이 계속 좋아지는 것을 보아왔으며, 마라톤에서 3시간 반을 넘기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서 중대한 고비이다. 다시 말하면 체면 문제이기에 나는 이것이 심성을 닦는 것이라고 느꼈다. 결국, 과시심리와 허영심을 제거하고서야 심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날 나의 몸에서 발생한 일체에 감사드린다. 표면상 사람에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오늘날 나의 이 배치를 위한 것이었다. 또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나로 하여금 수련의 길로 나아가게 해준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걸어온 길을 여러분이 참고하기 바라며, 더 많은 사람이 진정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고 유지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2월 0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 초보자마당> 연귀대법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7/2663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