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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당문화(黨文化)와 근본적인 집착 중에서 걸어 나오다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시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합니까!

오늘 나는 사당문화(邪黨文化)와 근본적인 집착 중에서 어떻게 걸어 나올 수 있었는지, 그 수련의 과정을 말해보려고 한다.

내가 16살 되던 해 외지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설을 쇠기 위해서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그걸 배우라고 했다. 농촌이기 때문에 당시 우리 집에는 TV가 없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아주 어두웠으며 나는 아직 파룬궁이 뭔지를 몰랐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기 때문에 배우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1.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조류’에 휩쓸리지 않았다

파룬(法輪)도형을 한번 봤는데 마치 어디에서 본 것과 같았다. 후에 생각났는데, 95년 경에 우리 학교 앞 길가에서 4, 5명의 사람들이 공을 전하고 있어서 내가 호기심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수업이 끝난 후라 모두들 줄을 지어 가던 중이었으며 마침 뒤에 있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제지했다.“보지 말아, 다 봉건 미신이다!”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다시 대오로 돌아왔다. 지금 회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당문화의 독해는 나를 이지적이지 못하게 만들어 맹목적으로 듣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만들었다.

처음‘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난 후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맨 먼저 어머니와 함께 1시간 동안 정공을 연마했다. 나는 학교로 돌아온 후 언제나 ‘전법륜(轉法輪)’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읽었다. 아침에는 다른 동급생들 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가부좌를 했다. 그때 동급생들은 함께 돈을 모아서 쇼핑도하고 외식도 했다. 그러나 나는‘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들과 휩쓸려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자 기숙사 한 방에서 생활하는 9명의 다른 학생들이 모두 나와는 어울리지 않으면서 나를 향해“여러 사람들의 분위기에 동조하지 않고 독단으로 행동한다.”고 비난을 하기도 했다. 나는 외로웠으며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사부님께서‘전법륜(轉法輪)’에서“사람으로서 우주의 眞(쩐)・善(싼)・忍(런),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고, 이 특성에 어긋나게 행하는 사람은 진정 나쁜 사람이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하면 당신은 곧 도(道)를 얻은 사람인데,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다.”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견디어 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잘 듣기만 하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비난하는 그녀들과 따지지 않았고 다투지 않았다. 다만 누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든지 나는 모두 열성적으로 도와주었으며, 어떤 때는 멸시를 당해도 참고 견디었다.

그녀들이 숙소에 없을 때 나는 혼자 연공하고‘보도(普度)’음악을 들었고, 도서관에 가서 배우기도 했다. 매번 시험을 보면 성적은 전체 학년에서 2위 안에 들었으며 지식퀴즈대회나 토론회에 참가하면 언제나 좋은 성적을 얻었다. 내가 책임성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학교 측에서는 크고 작은 일이 있게 되면 모두 나를 찾았다. 그러자 동급생들의 태도는 천천히 변했으며 나중에 완전히 전변됐는데 그들은 전부 나에 대해 감탄과 칭찬을 했다. 반장 선거에서 98%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되기도 했다.

2. 당

법을 얻은 지 1년도 안 됐는데 99년‘7.20’이 닥쳤다. 마을에서 오직 우리 집만 대법을 배웠지만 나와 어머니는 처음부터 대법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나는 좀 조급해서 어머니에게“어머니, 어떡하죠? 만약 국제 경찰이 사부님을 봤다면?”라고 물었다. 어머니는“괜찮다. 그들은 사부님께서 정면에서 걸어오셔도 사부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을 해서,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세월은 흘러 잠깐 사이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나의 성적은 언제나 1등이었고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겸해 맡기도 했다. 나는 또 새로운 동아리를 구성했는데 학습 성적이 좋지 않는 학생들에게 학습의 경험과 방법을 알려주어 성적이 향상되도록 도움을 주는 동아리를 만든 것이다. 동급생은 물론 선배 후배들도 모두 감탄의 찬사를 했다. 바로 이 기간 중에 입당하라는 추천을 받고 입당했다. 당시 입당한 목적은 다만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똑똑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오직 대법이야말로 옳은 것이고, 공산당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입당선서를 할 때 나는“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나는 대법제자다.”라고 했다

2005년 고향 집에 돌아와 설을 쇨 때 사부님께서‘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문을 발표하셨다.“사실 세인들이 권력을 위하여, 세간의 이익을 위하여 생존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니지만, 왜 기어코 우리 인류를 독해하는 사악과 한 패가 되려고 하는가? 사람이여, 청성(淸醒)하라! 만약 당신들이 사람이 된 목적을 정말로 잃어버렸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가장 두려운 것이다! 만약 세인들이 정말로 회귀할 길을 기다리고 찾고 있다면, 그럼 이지(理智)적이 되도록 하라!”라고 말씀 하신 것을 보고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그렇다. 99년‘7·20’부터 사악은 잔혹하게 대법을 박해했고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조작해서 만들어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세인들은 물론 나 역시 진정으로 사당을 멀리하지 못했다. 나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겠다는 욕심으로 입당까지 했으니 말이다! 대법제자가 이러한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만 생활을 위해 그것의 정권하에서 스스로 하고 싶지 않는 일들을 하고 있겠는가?

‘설령 이런 저런 이유를 부연해 설명하더라도 결국 사당에게 비위를 맞추는 짓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크게 울고 말았다. 어머니는“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사부님께 너무 죄송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우리는 사당과 이미 똑똑하게 갈라놓은 두 갈래 길의 다른 사람인데… 나는 입당한 지 2개월도 안 됐는데 어떻게 학교에 가서 다시 탈당하겠다고 말하겠어요? 졸업할 때도 됐고 사당의 사회에서 생활해야하는데 이후의 나의 진로는 어떻게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주 확고하게“우리는 사부님이 계셔서 아무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절대로 사당과 한 패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계속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일에 대해서는 소리 없는 항쟁을 했다. 후에 사부님께서‘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와 탈단, 탈대의 성명을 발표하는 것과 관련한 경문을 발표하셨다. 어떤 수련생은 가명으로 탈당했지만 나는 실명으로 탈당했다

3. 수련

(1) 졸업과 학교 취업 유교(留校)

법을 배운 후 나는 딴 사람으로 변한 것처럼 됐다. 이전에는 온 몸에 힘이 없고 병도 있고 해서 자주 약을 먹었지만, 법을 배우고 난 후 다시는 약 한알 먹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할 때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했고, 단체 노동할 때도 다른 사람들 보다 지치지 않고 일을 더 잘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나를 보고“건강해서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변했다!”라고 했다.

나는 학교에서 조금 이름을 날렸기 때문에 졸업할 무렵에 본교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물론 심지어 몇 분의 교수들도 나에게 “빨리 손을 써야한다. 어서 사람을 찾아봐라. 그리고 돈을 좀 쓴다면 확실할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큰일이니 서둘러야한다!”라고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사람을 찾아다니며 뒷거래를 하는 것은 사당의 짓이다. 자고로 올바른 사람은 무슨 일에서든지 정정당당해야 하거늘 어찌 수련인인 내가 뒷거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옛날의 도연명(陶淵明)도 권세 있는 자를 무시하며 약간의 봉록 때문에 굽실거리지 않았는데, 하물며 나는 수련인이 아닌가! 더구나 교수들은 물론 많은 동창들도 모두 내가 대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나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내 능력으로 당당정정하게 학교에 남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틀어지고 말았다. 1차 시험에서 나는 여지없이 낙방하고 말았다. 동창생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약 단 한명을 선발한다고 해도 나를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나의 낙방 소식을 듣고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최종 선발된 사람은 세상 물정에 밝아서 아는 사람을 찾아 연줄을 대고 또 몇 만 위안의 뇌물도 썼다고 했다. 그때 나는 분함을 참지 못해 총장을 찾아가서“나의 시험성적이 좋지 않았나요? 제가 어디가 부족했습니까? 이 후에 보충한다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총장은“당신의 성적은 아주 좋다. 나도 당신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신청한 부서의 책임자가 성별 문제를 이유로 들어 당신을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그대로 돌아왔지만 불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매번 고비를 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전법륜(轉法輪)’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날‘전법륜(轉法輪)’을 펼쳤을 때“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중시한다. 때로는 당신이 보기에 그 물건이 당신의 것이며 남도 당신에게 이 물건은 당신의 것이라고 알려주지만, 사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당신은 바로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후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이 이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바로 집착심으로서, 곧 이런 방법으로 당신에게 이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바로 이 문제다. 속인은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익 앞에서 모두 다투고 싸운다.”라는 한 단락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갑자기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이익에 대한 집착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또 아주 강한 쟁투심이 있었고, 다른 사람을 깔보는 마음이 있었으며 질투심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졸업한 후 나는 다른 학교에 가서 일을 했다. 한 번은 돈을 써서 나를 제치고 본교에 남았던 동창을 만났는데, 그는 그 때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고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갑자기 그 동창생이 가련해 보였다. 조그마한 생활과 이익을 위해 상사에게 알랑거려야하는 그 처지가 딱해 보였고, 더구나 사당에게 이용당하고 독해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니 더욱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파도에 떠밀려 표류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오히려 학교에 남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라고’생각됐다. 이 일을 통해 나는 또 많은 나의 집착심을 찾았다. 진정한 제고는 포기하는 것이고 얻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진심으로 이 동창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라고 권했다.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다.

(2) 정념이 신위神威)를 떨치다

졸업할 무렵 우리 반 학생들이 교수 몇 사람을 초청하여 식사대접을 했다. 그 때 한 교수가 나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했다. 그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 교수는 술을 권하며“꼭 60년대 사람 같다. 그러면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먼저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하면 차차 술을 잘 마실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거절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견디다 못한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빨리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술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라고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게 집요하게 술을 먹으라고 권했던 그 교수가 탁자위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더니 급기야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동창생들이 그를 끌어당기며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혼미상태가 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몇 명의 남자 동창생들이 그를 부축하여 데리고 가게 되어 모두들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그때 모두 아직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은 상태로 누구도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가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할 수 있었겠는가? 모두들 그 교수의 주량을 잘 알고 있는 터라“그의 주량은 이정도가 아닌데?”라고 하며 모두들 의아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교수는 학교 사당의 위원장으로서 사당의 일에는 아주 적극적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술 먹기를 강요한 것은 바로 나를 박해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나에게 술 먹기를 강요하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그 배후의 사악을 해체시켜주신 것이었다.

(3) 교사직에 채용되다

동창들이 모두 일자리를 찾고 있을 때 나 역시 찾고 있었다. 이력서를 쓸 때 소속 정당란에 무어라고 써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빈칸으로 남겼다.‘나는 이미 탈당했기 때문에 어떻든 이것을 이용하여 좋은 직장을 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갖고 있던 당원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모두 찢어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만약 이 후 반드시 그 난을 쓰라고 한다면 나는 무당파민주인사라고 쓸 것이다.’그 결과 나는 아주 빨리 한 학교를 찾게 되었다. 교사의 직업은 아주 신성한 직업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나는 아주 기뻐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학교에서 진상CD를 동료교사들에게 보여주었다. 며칠 지나자 교장은 동료교사를 통해 나에게 교장실로 오라고 했다. 대략적으로 무슨 일 때문에 교정이 날 호출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파출소는 학교에서 멀지 않고 학교와는 우호적 관계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다소 두려운 맘이 생겼다. 그러나 즉시‘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나는 대법제자다.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교장실에서 오후 내내 이야기를 했는데 교장은 말재간이 있다는 것과 군에서 제대하고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교장이 내개 한 말의 요점은“사당이 한 일 중에 일부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자신의 전도를 위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는가? 팔로 허벅다리를 비틀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는“교장선생님, 이 공은 매우 좋은 것이어서 나는 꼭 배울 것입니다. 교장선생님이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나는 줄곧 진선인(眞善忍)의 이 도리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진선인은 틀림없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모두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고 권력이 없어도 나는 건강했고 사는 것이 아주 떳떳하고 아주 즐겁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성적도 모두 대단히 우수합니다. 만약 이렇게 하는 게 제가 학교에 무슨 불편함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저는 사직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9평공산당’을 보시고 사당이 사람을 얼마나 많이 해쳤는가를 더욱 명백하게 아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교장은 “지금 당신 같이 이렇게 수준 높게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 됐다. 이제 그만 돌아가라. 앞으로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된다.”라고 했다. 이후로 나는 매번 교장을 만날 기회가 되면‘파룬따파하오(大法好)’를 알려주고 또 탈당하라고 권했는데, 그는 정말로 그로부터 3개월 후에 탈당했다!

나는 법을 얻은 후 계속 외지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직장인 학교로 출근 하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는 데 바쁘다보니‘밍후이왕’과‘명혜주간’등을 접할 수 없었으며 수련생도 찾지 못했다. 나는 문구점에서 작은 종이 딱지를 구입해서 나 혼자 직접 표어를 써서 학교 복도에 붙였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가장 정확한 일인데 뭐 두려울 것이 있는가? 매번 열 몇 장을 가지고 나가면 즉시 전부 붙였다. 학교에 단체숙소가 있는데 동료들이 늦잠자기를 좋아해서 나는 MP3를 들고 조용한 빈 교실을 찾아서 동공(動功)을 연마했다. 보통 1시간 연마한 후에야 동료들은 잠에서 깨었다. 정공은 저녁에 다른 사람이 잠들면 침대에서 했다. 나에게 가장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코를 심하게 고는 친구였다. 그때 나의 가장 큰 소원은 그녀가 들어와 자지 않기를 바랐다. 한동안 지나자 학교에서는 정말로 그녀를 다른 방으로 이동시켜 주었다. 내가 있는 방에는 단지 3사람만 남았다. 한번은 학교와 집주인간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겨 계속 반달동안 수도와 전기가 끊겼다. 그러자 동료들이 모두 이사해 다른 숙소로 갔다. 그러나 나는 이사하지 않았다. 수업이 없을 때는 혼자서 법 공부를 하고 또 잘못된 글자를 수개했다. 내 책의 모든 글은 다 그때 고친 것이었다. 저녁이 되면 촛불을 켜고 책을 봤는데 혼자 살면서도 처음부터 무서워한 적이 없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지켜주시니 아무런 일도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몇 명의 동료를 권하여 탈퇴하게 했다. 그런데 대단히 현실적인 교장선생님이 있었는데 계속 여러 방면으로 수단을 동원하여 명리를 다투는 데 몰두했다. 사람을 찾아 연줄을 대며 온갖 부정행위를 구사하여 모 대학 연구원으로 발탁됐는데, 나에게 자신을 도와 연구생의 수업을 하라고 했다. 여러 교사들은 그런 수완을 갖고 있는 그녀에 대해 아주 탄복해 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 번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히려 나에게“당신이나 단념해라. 나의 인생관은 돈이 있고 권력이 있어야만 내가 바라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돈이 없고 권력이 없다면 뭣으로 어떻게 돕겠는가? 날 봐라. 나는 최근 누구누구를 도와 모 대학교에 취직을 시켰다. 당신이 할 수 있는가?”라고 했다. 그녀의 행위는 나로 하여금 마음속의 좋은 직장과 대학이라는 최고 학부의 신성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했다. 지식인들은 사당문화의 독해를 받아 대다수가 흐리멍덩하게 됐다. 사당문화 중 어떤 사람이든 다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고 권력으로 명을 사고 직위를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당을 미워했고 그것을 멀리하고 싶었다.

(4) 상인이 되다

나의 운은 좋았다. 국영기업이 아닌 아주 좋은 한 민간 기업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나는 이 직장에서 최후에 조금 남아 있을 공정성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면서 이번을 계기로 정말 사당과는 멀리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사직을 사직했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 맡은 업무는 생산부에서 개발을 책임지는 파트의 직책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었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며 사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시시각각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일을 하여 많은 고객들은 모두 나와 함께 일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해 설 연휴 전 나는 제품 공장에 큰 수량의 물품 주문을 했다. 그러자 공장 책임자는 감격해 하면서 내게 금품으로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받지 않자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소비수준이 매우 높은 이 도시에서 세인의 관점으로 볼 때 이 산업은 바로 상품 주문을 많이 받아야 사업이 번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문을 하게 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몇 번만 그런 수수료를 받으면 집을 살 수 있고 차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만을 의지한다면 반평생을 산다고 해도 그런 큰돈은 만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사람이라 이런 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만약 억지로 내게 금품을 주려고 하다면 이후로 당신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나 때문에 해마다 많은 돈을 벌었는데 사례도 받지 않고 식사라도 제공하려고 해도 거절하니 어쩔 수 없다. 그럼 이건 내 마음이니 조금만 놓고 가겠다.”라고 말하면서 얼마의 돈을 놓고 가버렸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돈을 대법의 일을 하는 곳에 기탁했다. 그러나 후에 생각해보니 이 돈은 그래도 순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 돈을 다시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나는 처음부터 고객을 기만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때는 선의로 좋은 건의와 조언을 해 주었다. 한번은 개발한 샘플이 필요했는데 아주 다급하고 매우 중요한 일이였다. 그러나 설 연휴를 앞둔 시기여서 모든 공장들이 전부 바쁘다보니 내가 요구하는 샘플을 생산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지배인도 별 수가 없다며 포기하려고 했다. 당시 나는 두 곳의 생산 공장과 거래를 트고 있었는데 그 공장 책임자에게 선의로 도와달라고 청하면서“앞으로 당신이 무슨 곤란이 있을 때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함께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교외에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편이 매우 불편했다. 나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귀가 했다. 공장의 책임자는 감동되어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우리 회사는 아주 순리롭게 고객이 원하던 물품을 기한 내에 보낼 수 있었다. 고객이 아주 만족해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도 나에게 감탄의 치하를 했다. 지배인은 심지어 그녀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다만 성심으로 맡은 일을 잘 하겠다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사람이 무엇을 하려하는 마음을 품고서, 무엇을 얻으려고 할 때에는 흔히 정반대가 된다. 오직 그 일을 잘 하려고만 할 때는 저절로 된다.”(뉴질랜드법회 설법)

다른 사람들은 사장을 찾아가서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일로 사장을 찾아가 본 적이 없다. 수련인이기 때문에 다투지 않고 순리를 따랐다. 나의 생활은 아주 소박했고 점심식사는 언제나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었다. 동료들은 대부분 몇 가지 채소나 음료를 가지고 와서 먹었고 어떤 사람은 배달음식을 풍성하게 시켜 먹기도 했다. 나는 아깝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적이 없이 혼자서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먹었지만 반찬은 채소 하나뿐이었다. 동료들은 늘 인터넷을 통해 비싼 화장품을 구입했지만 나는 아무런 화장품도 쓰지 않았다. 동료는 하루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 몇 벌의 옷으로 번갈아 입었으며, 다른 사람이 인터넷 게임을 하면 나는‘홍음’을 외웠다. 그러나 나의 실적은 전체 회사에서 가장 뛰어났다. 나는 행동으로 가장 좋게 법을 실증하려고 했다.

회사에서 동료들이 어려움에 부딪혀 감당하지 못하고 나를 찾아오면 나는 그들을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은 신불(神佛)를 믿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관심을 갖는 화제로부터 말을 시작하면 동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후에 나는 진상 화페를 사용할 줄 알았다. 수련생을 접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지폐 위에‘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삼퇴보평안(三退保平安)’등의 내용을 썼는데 1위안, 100위안에 이르기까지 쓴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아주 두려워 그 돈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천천히 전부 사용했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5)기공사를 만나다

그때 경제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아 경제위기론까지 일었던 시기였으나 우리 회사는 오히려 예년보다 큰 흑자를 보게 되었는데 지배인이 나를 보고 말하기를“당신이 회사에 돈을 많이 벌어다 주어 전체 회사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상사들도 나를 칭찬하며“이런 직원은 보기가 쉽지 않으며 그런 직원이 더 있다고 해도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에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거들었다. 나는“내가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진정한 사람이 되는 길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래서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내가 대법을 배운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책 한 권을 억지로 주었다. 원래 그는 모 나라의 기공사이며, 주역을 알고 점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전법륜(轉法輪)’제6강 중에서“물론 당신이 접촉하려 한다면 그의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갖지도 않으며, 다만 일반적인 친구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크지 않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의 몸에 정말로 어떤 것이 있으면 매우 나쁘므로 가장 좋기는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사장이며 또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해도 그의 접수능력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나는 우선 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책을 갖고 돌아와서 나는 그 책에“법정건곤 사악전멸(法正乾坤 邪惡全滅)”이라고 썼다. 이틀 후 나는 그 책을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는 내가 그의 공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화를 냈다. 내가 다시 그에게“따파하오(大法好)”하고 알려주자, 그는 반농담조로“경찰을 불러 잡아가게 해야겠다!”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내가 일을 잘했다고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가 인사부 직원을 시켜 내게 위협적인 말을 전하도록 했다.“당신이 어디서 무슨 일을 했기에 모 파출소장이 전화로 당신의 정황을 조사하는가?”라고 했다. 나는“어떤 위법한 일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매일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며 어떻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이 가장 똑똑히 알 것이다. 그 전화를 나에게 바꿔줘라, 내가 그에게 진짜 파출소의 사람인가 아닌가를 물어보겠다.”라고 대답을 했다. 그 동료가 나에게 전화번호를 주어서 걸어봤는데 잘못 걸린 전화라고 했다. 이 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사장은 언제나 내 앞에서 어느 직원에게 공(功)을 발했다고 우쭐대며 누구에게 병을 치료해주었고 또 누구는 좋아하지 않아 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의 출생 연, 월, 일, 시를 물어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공의 자세를 취하면서 나에게 자신의 공을 발하겠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그가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에 두지 않았다.‘대법제자의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에 갑자기‘그는 바로 사도이고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묵묵히 발정념을 하여 그가 나에게 하려고 하는 방해 작용을 해체시켰다. 한동안 시일이 지난 후 그는 병에 걸려 반 달간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서 그의 사부가 죽었다고 하면서 귀국해 버렸다. 그가 다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서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이“모 공안국 사람 몇 명이 찾아 와서 내가 대법을 배우고 있는지를 조사했는데 그가 나를 도와 잘 넘겼다.”했다. 그는 또“대법을 계속 배움으로 해서 장래가 지체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의 말을 하고 또“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덧 붙였다. 이 일은 그가 감독하고 제작하여 만들어 낸 공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내가 이곳 직장을 떠나 그 사장과 다시는 접촉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는 고참 직원이고 모두 나를 인정해주고 있어 직장 분위기도 어려움이 없이 순조로운데 어머니가 그러니 나는 아주 난처했다.‘나는 지금 이 직장이 모든 면에서 만족한 상태인데 이곳을 그만 둔다면 이곳보다 더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겠는가?’나는 좀처럼 이걸 내려놓기가 싫었다. 그러나 이 후부터 나는 사장과 심리적으로 맞서게 되었는데 그가 언제나 내게 번거로움을 만들어 주었고 그러면 나는 그가 나의 앞길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성격은 점차로 급해지고 있었으며 까맣게 여위어 갔다. 발정념을 할 때도 단수 입장한 손이 자꾸 넘어졌다. 어머니는“그만둬라. 우리는 수련을 위한 것이지 기공사와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나는 지금까지 생각하기를‘국가의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일부 사람들은 비록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위하고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그들은 모두 사당과 같이 양심도 없이 중국민중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남은 공정성과 자유에 대한 희망을 이 회사에 걸었던 것이 지금 파멸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실망이 컸다. 사당을 멀리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아직도 그렇지 못하다는 걸 인식했다. 나는 사직했다.

4. 심성을 제고하고 생사관을 걸어 나오다

(1) 어머니와 다투다

출근을 안 하게 되니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는 이 기간을 이용하여 법 공부를 많이 하라고 했으나, 법 공부할 때 내 머릿속에서는‘어디서 어떤 일자리를 찾아 이후에는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하는 생각만 떠올랐다. 밤 12시(한국은 새벽1시) 발정념을 하는 시간에는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깨워도 너무 피곤해서 대답만 하고 그대로 잠을 잤으며, 연공도 하기 싫어 자주 빼먹고 견지하지 못하니 온 몸에 힘이 없어 정공을 할 때는 잠들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외국의 대작 유명영화를 관람하고 간식을 즐기면서 대법책 읽기를 싫어했다. 이런 나에 대해 어머니는 “좋은 습관이 아니다!”고 나무랐고, 할인판매장에서 내가 물건을 사오면 어머니는 역시“아무 쓸모도 없는 건 살 필요가 없다.”고 핀잔을 주었다. 한 마디로 말해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다 싫어했다. 안을 향해 찾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런 것은 대수롭지도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동창과 동료들과 비교해 봐도 나는 다 좋다. 그들은 매일 인터넷에서 게임하고 음식은 사먹으면서 생활용품도 모두 명품이 아니면 사지를 않고 모두 가장 비싼 것들만 샀으며 친구를 사귀는데도 절제가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나는 어머니를 위해 많은 마음을 쓰는데, 지금 어머니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등등의 생각으로 어머니가 원망스럽고 회사를 그만 둔 것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특히 어머니가 사표를 내라고 해서 사직했으며, 어머니가 대법을 배우라고 해서 배우게 되었다고 까지 어머니를 원망했다. 나의 이런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원인은 모두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비약된 생각이 들면서 어머니와 크게 다투었다.

그 후 사부님의 설법에서 이런 말씀 보게 되었다.“수련이란 곧 어려운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든지, 사악이 미친 듯이 박해하든지, 생사에 관계되든지를 막론하고, 당신이 여전히 수련의 이 한 갈래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면서 인류사회 중의 어떠한 일도 수련의 길에서 행보를 교란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 이 한 단락을 보고 나는 울었다. 어떻게 자신의 감수를 형용해야 할지를 모르겠지만 이 한 단락의 말씀은 정말로 나를 감동시켰다. 십여 년래 대법제자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믿음을 견지하면서 사람마다 모두 외부의 비방, 가족의 몰이해, 친척과 친구들의 질책을 받았고, 사악으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당했다. 또 옛날 사람들은 학문을 탐구하기 위해 스승을 공경하며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웃집의 벽을 뚫어 불빛을 빌어 책을 읽으며 진리를 탐구하는 데 온 몸을 바쳤는데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이익을 건드렸다고 탓하며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는 게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라고 하셨다.(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 나는 이 법을 이렇게 쉽게 얻었는데 오히려 아낄 줄 몰랐다.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한 일을 했다. 나는 다시 법공부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한 가지씩 지난 온 일들을 회상해 보았다. 이전에 나는 무엇이든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아니었다. 나는 아직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앞길의 발전이 없을까 봐 두려워했고, 가족에게 미안할까 봐 두려워했으며, 다른 사람이 깔보여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나는 사람과 관계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집착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스스로 아주 잘 정진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나의 판단표준은 다만 나의 학교 동창들과 직장 동료들과 비교했을 뿐 대법이 요구한 표준과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2) 실수(實修)

나는 이 전의 결함을 보충하고 보완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우리는 생활표준을 가장 낮게 잡고 다만 배불리 먹으면 된다고 했으며, 바깥에 가서 진상을 알릴 때는 여비를 아끼기 위해 가능한 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으며, 부득이 외지에서 유숙하게 될 때는 24시간 영업하는 즉석 음식점을 찾아가서 음식물을 조금 사서 요기를 한 다음 주인에게 양해를 얻어 거기에 앉아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렇게 아낀 돈으로 진상 자료점을 찾아갔다. 이 기간은 가장 잊을 수 없고 가장 기쁘고 위안이 되는 나날들이었다. 나는 아주 많은 법리를 알게 됐고 아주 많은 스스로의 결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휴스턴 법회 설법’에서“방금 나는, 주로 사람이 수련할 때 고생을 좀 겪는 것과 일부 고통을 감당하는 이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므로 나는 마땅히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수련해야 하며, 마땅히 마난(魔難)이 없이 공(功)이 자라야 하고, 그렇게 많은 번거로움이 와서 나를 교란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수련인이 업을 갚지 않고, 경지를 제고하지 않으면 공(功)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가족들이 나를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데, 나에게 조건을 주지 않고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이혼하자고 야단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꼭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 아마 당신의 수련 비중이 얼마나 큰지 고험(考驗)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표현되어 나오는 것은 확실히 아주 격렬하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한 관(關) 한 난(難)이 결코 장난 같지 않을 것이다. 수련 인에게 무슨 번거로움이 나타날 때는 꼭 원인이 있다. 사실 누가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 줄 때는 모두 당신의 제고를 돕는 것이다. 당신의 사상경지를 제고시키는 한편 당신으로 하여금 고통을 감당하는 과정 중에서 소업하게 한다. 그리하여 동시에 또 이 법(法)에 대해 당신이 확고한지 고험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법(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하다면 그럼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 한 단락을 봤을 때 나는 속으로 다시는 그 기공사 사장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가 내게 그런 번거로움을 만들어주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젊은 사람으로 말해 생명보다 더 중한 허영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며, 좋은 직장과 앞날이 보장되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욕망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어떻게 이 생사관에서 걸어 나올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도‘휴스턴 법회 설법’에서“만약 당신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당신이 원만하지 못한다면 나마저도 불평할 것이다. 사람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음은 생명을 내려놓는 것과 같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바로 돈이요, 명예요, 사람의 정 이런 것을 위해서가 아닌가?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데 당신이 여전히 사람일 수 있겠는가? (박수) 사람은 이런 것을 위해 산다. 오로지 신(神)만이 이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3) 사당 문화의 독해 속에서 걸어 나오다

나는‘9평공산당’과‘해체 당 문화’의 문장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지금까지 나의 일부 행위와 생각 중에는 실제적으로 당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젊은 사람들을 놓고 말할 때 자신의 당 문화를 해체시키는 문제는 늘 뼈에 사무치는 일이다. 우리는 중국의 전통 문화와 단절이 생겨서 자신은 아무 것이나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건 아직도 당 문화의 기초 위에서 시비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2007년 뉴욕법회 설법’에서“개조된 중국인들이 사악한 당이 주입한 세계관으로 인류의 시비, 선악을 인식하고, 법을 인식하고 진리를 인식하기란 정말로 아주 어려웠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 노인 세대는 중공 사당의 문화가 아직 출현하기 전에 예전의 인류 문화교육, 훈도(熏陶)를 받았다. 근대에 비록 중공 사당의 수작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래도 사람의 도덕적 최저선이 존재하며 기본적인 선악을 분별할 수 있다. 가장 비참한 것은 바로 현대의 젊은이들이다. 완전히 중공 사당의 현대의식이 주입되었음에도 아직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며 무엇이든 다 안다고 하면서, 중공 사당이 목적 있게 파괴한 인간관계, 가치관념, 인류도덕의 난잡한 현상을 역사 중에서 인류의 일관적인 상태로 잘못 간주하고 있으며 인류의 본능으로 잘못 간주하고 있다. 게다가 진화론(進化論)이란 사악한 설에 따라 그들은 정말로 자신을 동물로 여기면서도 오히려 이는 사악한 당이 목적 있게 한 짓임을 모른다. 사람은 인류가 기다리는 것과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으나 사악한 악당사령(惡黨邪靈)은 오히려 알고 있다. 그러므로 비로소 목적 있게 사람을 부패시켰다. 아무것도 아닌 현대식의 어리석음이 오히려 그들이 우주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한 세대에 대해서는 몹시 두려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사부님께서는‘홍음3-늑대 약(狼藥)을 마시다’에서“사당(邪黨) 문화 천도(天道)를 거슬러/ 어려서부터 당 어미가 품어준다 세뇌 하네/ 기형적인 관념 추하다는 걸 알아야 하거니/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에 효도하는 게 아니라네/ 도둑 사기 색정 투쟁은 공산비적이 하는 짓이라/ 50전(五毛) 인격 팔지 말거라/ 간첩 짓 추태에 국민들 수치스러운데/ 일념일행에 귀신이 웃고 있네”라고 하셨다. 이것은 더욱 똑똑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처음에 나는 중국의 가장 악한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에야 우리 대륙 지금 모든 젊은 사람들은 다 늑대 약을 부어 넣어 마시게 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깊게 독해를 받았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 많은 가정에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를 싫어하고 연령이 같지 않는 사람들 간에는 세대 차이가 난다고 말하는 것이 다 이 원인인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은 현대 사회의 변이된 관념으로 젊은 사람과 부모와 잘못되는 것은 두 가지 문화가 대립되고 격화되기 때문이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 없는 우리, 특히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성질이 흉포하여 자신만을 생각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우리 젊은 사람들. 이런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계속 우리가 제고해야하는 발걸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십여 년 수련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진정으로 그것을 똑똑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5. 조사정법하고 서약을 실현하다

수련 인에 대하여 돈과 재물 그리고 명리는 다 몸 밖의 물건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더욱 잘 수련해야하고 법을 실증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만고의 간난신고를 겪으며 오늘을 기다렸고 지금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은 아직 많다. 밍후이왕의 투고 통지를 보고 나는 내가 할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수련의 체험을 써내어 우리 젊은 사람들이 사당 문화의 독해를 똑똑히 알아볼 것을 바랐고 또한 스스로 처음처럼 수련하고 용맹정진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매일 더욱 많은 세인을 구도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싶어 한다. 대법제자는 무엇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수련인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상도 우선 명백해야한다. 우리가 서약을 손에 받들고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왔을 때 우리는 신의 광환을 내려놓고 고해(苦海)에 두려워하지 않고 생생세세 윤회 중에서 눈부신 성과도 있었고 큰 마의 난도 감당한 적이 있었을 것인바 지금 우리가 내려놓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서약을 실현하는 것은 우리의 본질이고 생명의 의의와 사명이다. 이전에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던지 간에 비애 할 필요는 없다. 최후의 고비에 신사신법(信師信法)하며 진정으로 청성(淸醒)하면 바로 신의 길에서 걷는 대법제자다.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만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0/2649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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