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자소(子甦)
[밍후이왕] 우리를 위해 인터넷 법회, 이 얻기 어려운 정체수련 형식을 안배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전 몇 회 법회와 같이 나는 적극적으로 투고하고 문장을 견지해 읽어 혜택이 아주 많았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사존의 은덕에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의 지불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 법회에 참가하면서 나는 여전히 발표된 전 문장을 차례로 읽을 것을 요구했고 오늘 오후에야 27일 문장을 금방 다 읽었다. 아주 중요한 인식 제고가 있었고 게다가 오늘은 법회 종결을 선포하는 날이므로 우선 이 문장을 써서 사존과 수련생에게 내가 열독한 성과를 보고하려고 한다.
보고하려는 제목은 ‘나는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았다’이다.
장기간 내 수련상태에 줄곧 아주 모순된 표현이 있었다. 신의 일면은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가고 사부님의 일련의 설법 및 정법의 전체 국면의 형세에 대해 아주 이지적으로 포착했으나 사람의 일면은 줄곧 100%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해내지 못했고 줄곧 완전히 법 중에 용해되어 정진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말해 나는 줄곧 진정으로 자신을 대면하지 못했는데, 즉 한 생명으로서 곧 철저히 우주 대법의 최종 선택에 동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면하지 못했다. 나는 자신이 이런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예 상상할 수 없었으므로 줄곧 강력하게 이 문제를 대면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좀 부끄럽지만 고도로 정법 진상을 이해하는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이렇게 낮은 층차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두 가지 부분이 동시에 내 몸에서 발생했다. 나는 자신에게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집착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줄곧 정신을 차리고 안을 향해 자신을 연마하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찾지 못했다’를 ‘찾을 수 없다’로 여기고 이 문제에서 낙심하고 도피했는데 이렇게 줄곧 되는대로 오늘까지 살아왔다.
환경적인 원인으로 나는 다만 3일에 한 번씩 법회 문장을 봤으나 매번 볼 때마다 연속 3일 문장을 다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나는 3일 만에 한 번씩 충격하는 단기 기제가 형성됐으며 이렇게 한번 한번의 충격 하에 나는 점차적으로 수련생의 상황과 대조해 자신을 찾아봤고 점차적으로 대조해 안을 향해 자신에게 있는 같은 문제를 찾기 시작했으며, 점차적으로 내 특수한 표현 중에 숨겨진 고유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돌파점은 모 한편의 문장 중, 모 수련생이 자존과 비굴의 근본 원인을 찾았는데 그 원인이 바로 다른 사람의 존재에 너무 집착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였다. 내 오성은 여기서부터 깨닫게 됐다. 내가 항목 중에서 줄곧 다른 사람의 태도의 정반 표현에 집착하게 된 원인은 스스로 잘 하지 못했고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인데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이 확고하지 못했고 정념정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계속 깊이 파고들자 이 문제의 실질적인 뿌리가 숨어있는 곳이 갈수록 깊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릴 적에 내 본성은 아주 착해서 만약 무의식중에 누구를 다치게 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매번 사당 운동 중에서 괴롭힘을 받았던 이유로 인해 나에게 일부러 누구와도 싸우는 것을 피하라고 요구하셨으며 정당한 권익이라도 포기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내 마음속에는 사람을 믿지 않는 그림자를 심어주셨다. 비록 나의 선량한 본성은 상실되지 않았으나 마음이 점차 왜곡됐다.
나는 93년 겨울에 법을 얻었다. 법을 얻기 반년 전에 나는 장밀(藏密) 황교(黃敎)의 계승자를 만났는데 그와 깊게 사귀었다. 그러나 뜻밖에 이 전세의 인연 있는 사람에 대한 나의 신임으로 인해 그는 이후에 나를 교란하게 됐다. 만약 이 세상에서 내가 누구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오직 사부님뿐이다. 그때 나는 법을 깊게 깨닫지 못해 기어코 이 문제에서 가장 치명적인 방해를 받았다.
1년 넘게 교란을 당하고 나는 다시 대법 중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것이 바로 내 평생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정했다. 비록 나는 선택을 했으나 내심에서 받은 교란을 줄곧 없애지 못했으며 이 무형적인 교란 때문에 나는 마(魔)에게 교란을 받아 구사일생의 상황이 됐다. 매번 큰 수련 과정 중에 그것은 수시로 떠올라와 내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고 넋이 나가거나 마음이 불안해졌다.
내가 ‘전법륜’을 배울 때 상태가 줄곧 좋지 않았지만 계속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의 일련의 설법을 나는 다 ‘이성적’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성’과 연결시킬 수 없었다. 97년 ‘미국법회 설법’을 읽었을 때 내 봉쇄된 사유는 점차적으로 열렸으며 98년 단체적으로 ‘싱가포르법회 설법’ 녹음을 들었을 때부터 사부님께서는 나를 독특한 승화의 길로 이끄셨다. 이 길을 따라, 사부님을 바싹 따라 나는 끊임없이 모든 홍궁창우(洪窮蒼宇)의 층차를 뚫고 삼계까지 들어왔고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 했으며 오늘까지 온 것이었다.
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방식은 다 같지 않은 것이고 이 과정 중에 걸어 내려온 나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법을 실증하는 직책이 있다. 이 직책을 실현하는 과정 중에서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최고의 영광을 주셨으며 나도 사부님의 기대에 어긋나게 하지 않았고 비교적 원만하게 항목을 책임지고 완성했다.
그러나 내 사람 마음속에 숨어있는 문제를 줄곧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사상업이 사부님을 욕하는 현상도 발생한 적이 있었지만 다만 내게 통제됐을 뿐 줄곧 그것을 철저히 뽑아버리지 못했다. 지금은 똑똑히 알아냈다.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자신의 사람 일면이 사부님을 불신한다는 것이었다.
이 불신의 표현은 속인 관념으로 표현되기도 했고 또 불이법문(不二法門) 문제에서도 표현됐다. 기억에 대법수련 중에 한 가지 불가사의한 직선 승화하는 연화(演化) 기제(機制)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이 문제를 때때로 이전의 한 수련 법문으로 가늠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롭고 대법 수련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하게 쉽다고 생각하던 중 그 순간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놀랍게도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불쑥 나왔다. 바로 이 일념이 제때에 나를 경각하게 했다! 신속히 그것을 붙잡고 그것의 맥락을 따라 범위를 확대하고 안을 향해 찾아서야 이 마음의 전반 표현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이 마음을 똑똑히 알아본 후 깊게 숨어있는 이 ‘자아(自我)’가 그야말로 우습기도 했고 가련하기도 했다. 이 마음의 세속 표현은 뜻밖에 생활 중 두 사람 사이에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人心隔肚皮)는 표현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사부님을 자신 생활 중에 보통 사람처럼 여기고 믿지 않으며 방어하는 마음이었다. 비록 그것은 미약하고 은은히 매우 조금 있었지만 나를 파묻어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 ― 설사 내가 이전에 큰 업을 없애는 과정에서 힘들어 울면서 나를 구해달라고 사부님께 빈 이후에 신기하게 완화됐을 지라도 그것은 아직도 무형 중에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이 장면을 다시 보고 나는 깊게 ‘진수(眞修)’의 엄숙성을 이해했다.
기억에 당초 인터넷에서 영향 있던, 이후에 사오(邪悟)한 수련생의 문장을 읽었는데 그는 그가 있는 층차에서 사부님을 보았을 때 모든 기타 신과 같아 보이고 특별한 숭경함과 우러러 보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이 말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됐지만 더 깊게 사고하지 않았다. 지금 봐서 그가 오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일념, 특히 그것을 문장에까지 써 넣었기 때문에 이렇게 엄중한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지금 그의 이 문제를 보면 대개 모든 층차의 중생이 다 범할 수 있는 잘못이며, 모두 자신이 있는 층차에서 사부님을 잘못 대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생명이 이런 잘못을 범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말하면 마땅히 이 생명이 법에서 가늠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결정된다. 온 우주의 법이 바로 잡아지기 전에 중생이 이렇게 볼 수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 대법제자가 이렇게 문제를 보는가 보지 않는가에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에야 생각났는데 속인은 대법이 그렇게 좋다는 것을 믿지 않고 감히 내 앞에서 사부님께서는 외국에서 정치를 한다고 말했는데 바로 나 자신이 이런 비할 바 없이 어리석은 미혹된 속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생긴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면 정말로 두서가 복잡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점에서부터 시작됐는지 찾을 수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니 나는 구세력에 대한 존재 및 그 안배의 표현에 대해 더욱 똑똑한 인식이 있게 됐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로 무서움을 느낀다! 기억엔 당초 연속 2, 3년 동안 연마에 피로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마침내 ‘미국법회 설법’을 얻게 됐다. 나는 사부님께서 “불법에는 끝이 없기(佛法無邊) 때문이다. 불법에 끝이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어서, 얼마든지 매 사람의 상황을 참작하여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1]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읽었을 때, 그때 나는 확고한 일념이 생겼다. 어떻게 되든지 사부님의 이 법은 꼭 나를 제도할 수 있다! 오랫동안 나는 여러 번이나 마음속에서 이 일념을 회상했다. 바로 그 일념이 있었기에 자신이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이 길, 지극히 특수한 정법수련의 길을 얻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 근본적인 큰 누락을 찾자 나의 마음속은 조용해졌다. 이 마음은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 드디어 자신이 태연하게 사부님께 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최후의 시각에 저를 점화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나는 이 비할 바 없이 보귀한 시간을 다그쳐 이 부패한 물질 및 그것에서 파생된 집착심을 닦아버리고 정체로 들어가 단련해 사부님께서 제때에 순리롭게 정법시기를 종결하시게 하겠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설법-뉴욕좌담회설법’
문장발표: 2012년12월 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3/2661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