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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분명히 알려야 한다

글/헤이룽쟝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는 “너희는 정말로 대단하다. 장 모모의 이렇게 큰 압력의 박해를 무릅쓰고 지금까지 견지하다니 정말로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그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정말로 너희들은 대단해, 탄복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 중생의 입을 통해 제자를 격려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96년에 법을 얻은 노년 대법제자로서 수련의 길에서 이미 16년을 걸어왔다. 이번의 마난을 겪고 나서 나는 하나의 침통한 교훈을 얻었고 수련의 엄숙함도 깨닫게 되었다. 십몇 년 간을 수련하였지만 관과 난을 넘을 때는 아직도 법으로 가늠하지 못했고 완전하게 신사신법하지 못했다. 정말로 자비로우신 사부님의 고도(苦度)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대면하여 진상을 분명하게 알리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도하는 일, 진상을 알리는 일에서, 많은 사람이 깊이 있게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두어마디 하고는 듣든 말든 안 들으면 그만두고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 어떤 일을 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잘해서 사람을 구도하려면 그를 확실히 구해야 한다.”하고 말씀하셨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사부님의 이 단락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감촉을 주었는데 마치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전에 진상을 알릴 때는 수량만 중시했지 질량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삼퇴를 하고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倫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만 기억하면 구도된 것이라고 여겼다. 얼마 전에 그전에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마음속으로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있지 못하며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지 못함을 발견하였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아주 괴로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4시간 넘게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그러고 나서 그가 진정 분명하게 알게 되어 우리는 함께 기뻐했다.

나는 ‘지금부터 반드시 진상을 똑똑해 알리겠다.’고 결심하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깊이 파고들어 얘기하며, 수량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진상을 확실하게 알리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채소시장 하우스에는 비교적 노인들이 많다. 어느 날 92세 되는 고령의 노인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8, 90세가 되는 노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드러눕게 될지도 모르는데, 진상을 들을 기회도 아주 적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모여서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기 좋아하기 때문에 한 사람씩 만나서 얘기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나는 이들 노인들에게 단체로 진상을 알릴 수 있도록 가지해 주시기를 사부님께 빌었다. 노인들은 대부분 전통문화와 도덕 이념을 지니고 있다는 걸 감안하여 먼저 덕을 쌓고 선을 행하는 것을 얘기하면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쩐싼런(眞善忍)의 원칙에 따라 수련하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며 사회도덕이 제고되게 한다.”고 말하였다. 또한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데 신묘한 효과가 있으며, 국가와 개인에게 백 가지 이로운 점만 있지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 다음 장 마귀가 대법수련자를 박해한 이유에 대해 말했고,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거짓이라는 것도 말해주었으며,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의 말이 적힌 ‘장자석’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얘기하면서 속으로 ‘8, 90세 되는 사람들은 모두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책도 별로 못 읽었을 것이고 또 많은 재난을 넘어온 사람일 것이니 다만 내 말을 이해만 시키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상태는 다르겠지만 내가 진상을 알릴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진상을 듣고 삼퇴를 했는데 그 중에는 나와는 전현 안면이 없는 생소한 사람들도 있었다. 만나게 되면 오래된 친구처럼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좀 모자라는 바보가 나를 보아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기뻐하는 기색으로 인사를 한다. 나는 ‘이것은 그의 명백한 일면이 나보고 그를 구해달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왠선은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쩐싼런하오(眞善忍好),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기억하라고 알려주었는데 다만 이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명백한 일면이 알면 되는 것이다. 이후부터 그는 나만 보면 언제나 기뻐서 싱글벙글 웃는데, 아마 명백한 그 일면이 기쁘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티켓을 샀고, 사돈의 팔촌이나 다름없는 친척도 우리 집을 찾아와 얼른 가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 역시 우리 집에 와서는 눌러 앉아 장시간 동안 가지 않았다. 무릇 스스로 우리 집에 찾아온 사람들은 보통 얘기하기가 쉬운데 몇 마디면 된다. 그리고 돌아가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이것으로 보아 중생들이 구도 받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더 이상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않는다면 정말 중생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찾아와 앉아서 “당신은 나에게 파룬궁(法倫功)이 대체 어떤 건지 좀 알려주세요.”라고 한다. 내가 그에게 확실하게 알려주면 그는 흔쾌히 삼퇴를 한다.

일념의 후과

작년 가을 어느 날 건축 공사장에서 금방 돌아온 후 이젠 좀 휴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 일념이 법에 있지 않았으니(안일을 구하는 마음) 구세력이 틈을 탔다. 언제부터인가 세인의 감기증세 같은 현상이 나타났으나 나는 가상의 상태가 나타난 것이라고 여기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핏 스치는 생각으로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저녁에 땀만 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이 되어 나는 정말로 이불을 덮어쓰고 땀을 냈는데 땀이 아주 많이 났다. 통상적인 도리로 놓고 말하면 땀을 흘렸으니 나아져야 했다. 하지만 땀을 흘리고 나자 즉시 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이런 증상은 며칠이 지나도 전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어느 날에는 법 학습과 연공도 견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열은 높게 올랐지만 체크해보지도 못했다. 주의식이 똑똑하지 못한 것을 느꼈는데 어렴풋이 육신과 주왠선을 나누어 인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괜찮다고 생각했고 또 이 생각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았다. 후에 갈수록 열이 심해지자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육신과 주왠선을 나누어 놓으면 육신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말이 되는가? 자신의 서약을 완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조성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장애를 조성할 것이다. 느슨히 하려는 것이 바로 안일한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아닌가. 땀을 내어 감기를 치료하려는 것도 세인들이 병을 치료하는 일종의 방법인데 연공인이 어찌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비록 병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지만 사용한 방법은 속인이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었으니 그건 병이라고 인정한 것과 같지 않는가? 나는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놓고 마음을 하나씩 찾아서 적었다. 예를 들면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 안일심, 나태함과 수구를 하지 않은 채 너무 제멋대로였음이 드러났는데, 이렇게 많은 속인 마음을 모두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수련생을 만나면 경솔하게 지적하며 자신을 부풀려 얘기하면서 자신은 수련을 잘 했다는 것을 과시했다. 나는 문제를 찾아 법리를 깨닫고 나서 대량으로 법을 학습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법으로 스스로를 바로잡았다. 즉시 신체에 나타났던 감기 증상의 가상은 제거되었다.

늦은 깨달음

우리 살림집은 단층집이고 앞의 건물은 창고로 중간에 긴 받침목을 치고 널빤지를 대어 못을 박아 벽을 막은 2층 건물도 있다. 그런데 중간에 널빤지에 틈이 벌어졌는데 재작년 겨울 이웃집에서 그 널빤지 틈으로 대소변과 더러운 물을 버리는 걸 발견하였다. 자꾸만 그 틈새로 더러운 오물과 오수를 버리다보니 나중에는 창고 안에까지 흘러들어가게 되었으며 한 곳만이 아니라 사방으로 모두 넘쳐흘렀다. 그러다보니 널빤지 틈이 있는 곳은 어디나 오물이 흘러 넘쳐 봄이 되자 그 악취와 더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동쪽 골목을 통해 손수레로 그 더러운 것을 옮겼는데 몇 트럭분이나 되었다. 그때 나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나는 연공하는 사람이니 속인처럼 싸워서는 안 되고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금년에 막 입동이 되었을 때 이웃집에서 또 창고에 더러운 오물을 버리기 시작하는 걸 발견했다. 나는 ‘쏟겠으면 쏟아버려라. 네가 그곳에 또 오물을 버리면 내가 또 치워버리면 그만이지. 그래도 안 되면 내년 봄에 또 한 번 수레로 치우면 되겠지.’하고 생각했다. 후에 아들도 다른 이웃들도 그의 오물 투기행위를 제지시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속으로 ‘70세가 넘은 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 때 그가 긴장하고 놀라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를 협박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버리겠으면 버리라지. 그는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니 나에게 덕을 주지 않겠는가? 그 사람이 참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이 일념이 있은 후부터 나는 그가 더 많이 버린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 흘러넘친 오물이 몇 걸음만 더 오면 바로 우리 집 문 앞이었다. 문만 나서면 대소변의 악취로 구역질나서 견딜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제야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수련의 길에는 우연한 일이란 없는데 내가 분명히 어느 곳을 잘못하여 나의 이 마음을 향해 온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다.(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우주 중에는 비록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는 이치가 있지만 덕을 얻으려 하는 것은 구하는 것이 아닌가? 구하려는 자체가 사심이 아닌가? 또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나쁜 일을 하였을 때 당신이 선의로 그에게 지적해 주는 것은 그가 업을 지어 덕을 잃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아닌가? 세인들을 바로잡아 도와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협박을 두려워하는 것도 위사위아의 두려운 마음이 아닌가? 나는 이웃을 찾아가서 선의로 얘기해 주겠다고 결심했다. 이튿날 새벽 연공을 마친 후 그 집 문 입구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든 그 이웃이 더러운 오물 한 통을 버리는 걸 보았다.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즉시 “왜, 더러운 오물을 그렇게 함부로 여기에 버리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나를 향해 “너의 집 마당에 버린 것도 아닌데 네가 왜, 소리치는가!”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여기는 우리 집 마당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라고 생각했다. 정말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였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의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나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가 물을 버리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 몰라도 눈앞에서 확실하게 이익이 손해를 보는 것을 보았으며 또 그가 그런 태도로 그렇게 말을 하는데 정말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일체 정확하지 않는 상태는 모두 나 자신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또 나를 향해 ‘난 그런 너를 제거하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 나의 마음은 즉시 조용해지고 심태는 온화해졌다. 나는 웃으면서 “우리는 이웃지간인데 저는 서로 등지는 사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제가 무슨 잘못한 점이 있다면 웃어른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후론 그렇게 하지 않도록 고치겠습니다.(그는 집에서 별로 밖으로 나오지 않아 한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나는 정말 어디에서 그를 불쾌하게 했는지 찾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즉시 말했다. “당신의 집 작업장에서 하루 종일 기계가 우르르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데, 내가 야간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니 당신은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구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당신에게 뭐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고 여겨 말 안 하고 있는데, 당신은 지각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아, 원래 그랬었구나!’하고 생각했다. 나는 “어르신, 걱정 놓으세요. 이후에는 계속 기계소리를 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어르신도 이후에는 여기에 오물을 버리지 말았으며 좋겠네요.”라고 말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에 정말 그는 거기에 오물을 버리지 않았다.

2년 동안 지속적으로 버려지던 오물투기사건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나의 이기심이 얼마나 깊게 숨어있었는가를 보게 된 것이다. 매일 안으로 찾는다는 것을 입에 달고는 있었지만 당연히 찾아서 버려야 할 이 이기심은 2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나를 일깨워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안으로 찾는 것은 우선 법의 기점에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일에서 이기적인 쪽에 섰으니 안으로 찾았어도 늘 깨닫지 못한 채 오직 다른 사람이 나에게 손해만 끼친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무슨 피해를 줬는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위사위아 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게 숨어져 있었는가?

층차에 제한이 있으니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2년 11월 1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9/2656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