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대법을 얻은 지 16년이 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모순 중에서 여전히 안으로 찾을 줄 모른다. 최근 1년 사이에 법공부를 통해,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나는 안으로 찾은 강대한 위력을 체험했다.
1. 사람을 교육함에 먼저 자신을 닦다
나는 수련생 아들의 태도가 줄곧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법을 읽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사상을 집중하지 않았으며, 노는 것을 좋아하나, 꾸물거리며 노는 것이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때문에 늘 그에 대해 불만족스러워 화를 냈다. 나는 아이를 상관하기만 하면 곧 화를 냈고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 아들은 말을 좀 잘 들었으나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일시적이었다. 내가 상관하지 않으면 곧 통제력을 잃고 전혀 학습하지 않았다. 아이는 단체 법공부를 할 때 공부하다가 한마디 알리지도 않고 책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가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대법을 읽을 때면 때로 이런 동작을 했다가 때로는 저런 동작을 했다. 자신이 공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란이 됐다. 나는 그야말로 궁지에 빠져서 매우 고민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보통 중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이대로 간다면 아이를 교육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말 나의 한 가지 심성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가? 상관해도 안 되고, 상관하지 않아도 안 됐다. 한 동안 마음이 정말 아주 괴로웠다. 어느 날,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듣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아이를 대함에 자비(慈悲)로운 선념(善念)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안으로 수련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 문제에서 마음을 닦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본 것은 모두 아이의 결점뿐이었고, 내 표준으로 가늠하여 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자아(自我)가 충격을 받아 그냥 내버려두지 못했던 것이다. 무엇을 선념이라고 하는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없음이 선념인가? 자신의 결점을 볼 수 없음이 선념인가? 아이의 그 결점들은 바로 나의 바르지 못한 점을 폭로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 자신의 이 장이 바르지 못해 아이를 귀정할 수 없게 하고도 또 밖으로 향해 아이를 질책했는데 이러고도 좋은 결과가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에서 이미 경고하셨다. ‘상대방이 어떠어떠하다고 그들이 본 것으로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정말 이 법리를 깨달았을 때는, 정말 제호관정(醍醐灌頂-역주: 정제한 최상의 음료를 정수리에 붓는다는 뜻으로, 정신이 시원하고 깨끗함을 이르는 말)하는 듯했고 자신의 장이 밝아지고 마음이 명료해 진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자신에게 사람과 함께 지내는 한 가지 절대적인 원칙, 상대방의 장점만 보고 자신의 부족점만 보는 원칙을 정했다. 사상이 이 법규를 벗어나기만 하면 즉시 멈췄다. 내 마음이 바뀐 뒤 사부님께서 나에게 많은 좋지 않은 것들을 없애주심을 느꼈다. 아이와 말할 때도 자연스럽게 자애로움이 흘러넘쳤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학습과 법공부 계획을 짰으며, 계획대로 순조롭게 실천했다. 아이는 중학교에서 반을 나눌 때 제일 좋은 반으로 갔다.
지금 아이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우리와 함께 80분 동안 법공부를 하고, 6시 발정념을 발한 뒤에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공부하러 가고 있다. 그는 스스로 늘 집에서 혼자 앉아서 소묘를 그리지 않으면 또 대법을 외우거나 혹은 밍후이정기간행물(明慧期刊)을 본다. 그리고 가장 싫어하는 문과도 앞당겨 예습하기도 한다. 제고됨이 정말 매우 빨랐으며 또 고생스러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2. 다른 수련생의 장점을 보아야만 협조를 잘할 수 있다
사존께서는 ‘막다른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 중에 ‘사부로서 나는 여태껏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한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았으며 오로지 당신들이 잘한 일과 성과만을 기억할 뿐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실제로는 제자들에게 동화하라고 하신 것이다.
나는 신변의 부부 수련생에 대해 일정한 편견이 있었다. 남편 수련생은 안일심이 좀 심해서 외지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아내 수련생의 퇴직금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 수련생이 세 가지 일을 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있다고 여겼다. 아내 수련생에게는 남이 뭐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 비교적 심하다고 여겼다. 최근 몇 해 수련 과정에서 그들이 가정이나 혹은 다른 일에서 마난에 마주치기만 하면 나는 당연히 그 남편 수련생이 마땅히 외지로 일하러 가야하고 아내 수련생도 남편 동수를 보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그들과의 한 차례 교류 중에 나는 또 한 번 남편 수련생에게 외지로 가서 직업을 찾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제안했다가 그들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모순 중에서 나는 이지적으로 자신을 찾았다. 혹은 나의 태도가 옳지 않았을 것이고 혹은 나의 인식이 대법을 벗어났을 것이다. 그들 부부 수련생도 그 자리에서 바로 안으로 찾아서 구세력이 배치한,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만든 한 차례 마난을 제거했다.
이 일로 나는 법에서 깊이 자신을 찾았는데 자신이 인식상에서 확실히 법을 벗어났음을 느꼈다. 시간이 바로 생명인 정법 중생구도의 관건시각에, 내가 늘 다른 수련생이 일하러 가지 않는다는 약점만 붙잡으며 그의 실제 생활 상황은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어려운 점은 알아주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수련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찾아낸 인식은 자연히 법에 있지 않아 아주 쉽게 구세력에게 이용당했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늘 그 수련생이 일하러 가지 않는 결점을 붙잡고 있는가? 근본적인 원인은 내가 수련생을 눈에 거슬려 했던 것이다. 그가 게으르다고 생각했기에 그가 반드시 나가 일을 해야만 나를 진심으로 탄복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드러내 놓고 다른 수련생을 도와 게으른 마음을 없애준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 자신의 독선적인 마음을 만족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내 수련생의 남이 뭐라고 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나는 늘 마음에 두었다. 그 때문에 인식상에서 법을 벗어나고도 스스로 몰랐던 것이다. 늘 수련생을 관할하고 싶어하는, 수련생을 관할하는 이 마음은 바로 자신을 수련생 위에 놓고, 자신이 수련생에 비해 좋다고 여기며 자신을 실증한 것으로, 다른 수련생의 장점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세력이 모순을 불러일으키게 할 수 근본적인 원인이다.
모순 중에서 안으로 찾음을 경험하고 나는 그 수련생이 아주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쌍방의 자리에 몸져누운 노인을 보살펴 드려야 했고, 또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아이를 보살펴 주어야 하는 동시에 또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했다. 생활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데 자료를 사야 했고, 시간이 많지 못한데 또 자료를 만들고 배포해야 했는데, 정말 대단한 것이다. 일부 안일심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도 마땅히 대법 일을 하는 중에 없애야 하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기어이 그에게 나가서 속인의 직업을 찾으라고 했는가? 내가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수련생도 아주 빨리 자신의 안일심을 의식했다. 쌍방은 모두 착실하게 수련하는 중에서 제고됐고 구세력이 배치한 한 차례의 마난을 해체했다.
3. 첫 일념이 자신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것이다
한자의 ‘비(比)’자는 사실 함의가 아주 깊다. 당문화 중에서 ‘비’자를 투쟁, 경쟁, 약육강식으로 왜곡했다. 이런 당문화의 관념으로, 나는 예전에 사부님께서 ‘배움에 비기고 수련에 비기나니(比學比修)’(홍음-착실한 수련)라는 말씀을 여전히 깨닫지 못했고, ‘수련은 쟁투심을 없애는 것이 아닌가, 왜 또 비교하는가’라고 여겼다. 한 번은 그림에서 한자(漢字)를 말한 것을 보고 문득 크게 깨달았다. ‘비’자는 두 사람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병렬하고 공손하게 몸을 구부리고 서있는 형상이었다. 순간 나는 ‘비’자는 수도하는 사람(修道人)이 단체 법공부를 할 때의 묘사이며 동시에 협조의 의미로 정체가 협조를 잘함에 대한 의미로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길 수 있는가? 반드시 첫 일념이 자신을 생각해야만 될 수 있다. 사존께서는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라는 설법에서 “모순에 부딪히면 내가 맞든 틀리든 자신을 돌아본다. 이 일에서 내가 어떤 잘못한 점이 없는가?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모두 이처럼 생각하는데 첫 일념이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생각한다. 누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정한 대법 수련자가 아니다. 이는 수련의 법보(法寶)이며, 이는 우리 대법제자 수련의 특징이다.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더라도 첫 생각에 우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바, 이것을‘안으로 찾는다’고 한다”고 하셨다.
우리 이곳에는 다른 한 협조인이 있는데 노수련생이다. 나는 그녀를 협조해 일부 항목을 진행했다. 갑자기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는데 항목 중의 두 수련생이 박해를 당해 잠시 항목을 중지하자고 했다. 나는 당시 첫 일념에 사태가 심각한 감을 느껴 약간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이어서 나는 이 협조인과 편지로 교류했는데 일부 안전을 주의함과 법공부를 중시함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을 책임지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언어 속에는 그녀를 질책하는 의미가 있었다. 그녀가 일하려는 마음이 좀 중하며 전체 수련생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해 손실을 조성했다고 여겼다.
마침 내가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있을 때, 한 수련생이 나에게 구세력은 어떻게 수련생의 빈틈을 파고들었는지에 관한 한편의 문장을 보라고 추천했다. 나는 본 뒤 깜짝 놀랐다. 문장 중에 구세력이 힘을 다해 교란하고 박해한 수련생은 바로 모두 나와 같은 이런 사유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한 것이다. 모순이 생기기만 하면 먼저 밖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았다. 때문에 나중에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폭로하고 구조하는 과정 중에서 우리는 협조함에 비교적 말없이 서로 마음이 통했고 정체적으로 비교적 묵묵히 협조했으며, 일에 마주치면 모두 안으로 찾고 첫 일념이 자신을 생각할 수 있었다.
4. 협조인은 송진과 같은 품질을 갖추어야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줄곧 자신은 사람과 사람사이 모순에서 그렇게 심한 집착이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착실하게 수련해 관을 넘김을 경험한 후 자신이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1강 중에 언급하신 ‘일부 사람들은 또 이미 미끄러져 내려온 도덕 수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가늠하는 표준마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에서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발견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긴다’는 관념을 품고 사람을 보고, 사물을 대하며, 일을 처리함에 늘 첫 일념이 습관적으로 밖을 향해 보았다. 본 것은 모두 상대방의 부족함과 결점이기에 일과 모순 중에서 자신의 집착을 보기 어려웠고 일을 처리한 결과는 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련생과 협조하는 과정에서 매우 힘쓴 것 같았으나 결과는 장작을 안고 불을 끈 것과 같았다.
주변의 일부 수련생에게 정체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일부 대책과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추진 과정 중에서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늘 이 때면 나의 원망하는 마음이 쉽게 튀어나와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는다고 원망했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 했다. 더욱 심한 것은 또 큰일에서 원망하기 시작해 베이징 전체 수련생에 대해 원망하기 시작했으며 책임을 회피했다. 어떤 때에 일이 비교적 순조로우면 또 과시심이 쉽게 생겨서 자기만 생각하며 어떠어떠하다고 여겼다. 소소한 교란이 나타났을 때는 또 함부로 이것저것을 의심했으며 큰 교란이 나타나면 또 두려운 마음이 생겨났다. 한 번은 한 수련생과 만나러 갔다가 만나지 못했다. 돌아온 뒤에 차에 또 저절로 불이 붙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 후 스스로 협조하는 과정 중에 각종 사람 마음 과시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 두려운 마음 등이 생겨났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부님께서는 꿈속에서 나에게 협조인의 작용은 송진과 같음을 점화해 주셨다. 송진은 용접을 할 때 도와주는 조용제의 주요 성분으로 용접과정의 순조로움을 보증하는 보조 재료다. 조용제의 주요 작용은 땜질 자료와 용접되는 재료 표면의 산화물을 철저히 제거해, 금속 표면의 청결도를 유지시켜 용접시 표면이 거듭 산화됨을 방지하며 땜질재료 표면장력을 낮춰 용접 성능을 향상시켜준다. 조용제는 용접할 때 사용하는 보조적 재료로 조용제의 성능이 좋고 나쁨은 직접적으로 전자제품 품질에 영향을 준다.
송진은 눈에 띄지 않지만 발휘해 낸 작용은 매우 강대한 것이다. 나는 협조인의 신분으로서, 사실은 바로 자아를 내려놓고 법 중에 용해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수련생 위에 있는 마음이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말로는 다른 사람에게 협조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일하는 과정 중에 대법을 첫 자리에 놓을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고려해 선타후아(先他後我)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착실하게 수련하는 것이다. 일부 항목과 일을 추진함에서 기점을 급히 일하는데 놓지 않고 착실하게 수련함에 놓으며, 충분히 다른 사람의 감수를 고려하고 다른 사람의 상태를 고려했다. 상대방의 상태에 근거해 협조했는데 표면적으로는 속도가 좀 느렸으나 실질적으로 늦지 않았다. 걸음마다 모두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심성을 제고한 위대한 증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마음을 수련해 버려 정체를 형성한 것이다.
이상은 내가 최근 1년 사이에 수련한 일부 체험으로 부당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길 바란다.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2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2/2648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