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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철공(鐵工)과 아내가 대법을 수련한 이야기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내 아내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 공장에서 출근할 때 한 번은 작업실 주임이 말을 잘못했다고 그녀는 그의 옷깃을 쥐고 기어이 그 사람에게 침을 핥으라고 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성을 비교적 잘 지켰다. 한 번은 얼단(二蛋)의 엄마가 솥을 씻은 물을 우리 집 문 앞 하수도 입구에 쏟아 넣었다. 당시는 여름이어서 파리가 매우 많고 냄새도 고약했으나 그녀는 “이후에는 여기에 쏟지 마세요.”라고 한마디만 말했다. 얼단 엄마는 곧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얼단 엄마는 뜻밖에 방안까지 달려와서 아내를 가리키며 욕했다. 아내는 정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예전 같으면 그녀의 성격을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파룬궁을 연마하자 그 성격이 없어졌다.

나와 아내는 수련을 해서 또 많은 공능이 생겼다. 특히 아내는 밥을 할 때 채소를 썰고 싶으면 곧 날아갔다. 요리를 준비하고는 곧 부뚜막 앞으로 절묘하게 날아갔다. – 본문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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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철공으로 몇 년 동안 나와 아내가 수련한 일부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1933년에 출생했다. 황하 빠커우쯔(扒口子)에 있을 때 나는 겨우 4~5세였다. 단지 끝없는 강물만 보였는데 나는 혼자 나무 위에 며칠 동안이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은 모두 흙벽 집이어서 물에 잠기기만 하면 무너졌다. 집 구조는 물을 따라 얼마 멀리 뜨지 못하고 흩어졌다. 우리 가족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후에 여섯 형제에서 5명이 죽고 단지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 나는 혼자 동냥을 하며 곳곳으로 다녔다. 그 후 어른이 됐고 나는 한 철공을 따라 쇠를 두들겼다. 온종일 선배와 함께 번갈아 가면서 쇠를 두들겼다. 그 후 공산당이 왔는데 무슨 공사합영(公私合營)을 한다고 했다. 나는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곧 흐리멍덩하게 공장으로 들어갔다.

공산당이 꾸민 각종 운동을 나는 모두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내가 문맹이고 단지 일할 줄밖에 모른데다가 또 동냥 출신이었기에 무슨 운동도 나에게는 맡기지 않았다. 그 후에 내가 퇴직하고 아들도 실직하자 우리는 우리 집에서 철공소를 차렸다.

나는 1996년에 대법을 얻었다. 당시 연공장에서 녹음을 듣고 사부님께서 아주 잘 말씀하셨음을 깨달았다. 며칠 동안 들은 후 어느 날, 나는 한쪽 다리를 꿇고 땅 위 회전 숫돌 앞에서 한 물품을 갈았는데 회전 숫돌은 어찌된 일인지 떨어졌다. 그 회전 숫돌은 가마만큼 크고 회전 속도도 매분 2천5백 회를 회전한다. 예전에 공장 안에서 여러 번 이런 사건이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이 다쳤다. 대부분은 회전 숫돌이 어떤 물체에 부딪힌 후 다시 지붕에 구멍을 내며 날아갔다. 이번의 회전 숫돌은 먼저 내가 꿇고 있는 무릎 위로 미끄러져 떨어져 다시 회전하며 날아갔다. 그건 정말 칼로 베는 것보다 더 빨라서 나는 큰 상처가 생겨서 뼈마저 다 보였다. 가족은 깜짝 놀라서 모두 허둥지둥하며 속히 나를 병원으로 보내려 했다. 나는 “괜찮아. 나는 사부님께서 관할해 주셔.”라고 말했다. 아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내 고집은 원래 유명해서 아이들마저 두려워했다. 아내는 반대로 명백했다. 그녀는 “가기를 원하지 않는데 그럼 가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당시에 또 무슨 처리도 하지 않았다. 다리를 다칠 때 꿇고 있었던 이유로 내가 다리를 펴자 상처는 한데 몰려 별로 출혈도 하지 않았다. 밤에 깨서 손으로 만져보았는데 상처 부위는 차가왔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심을 깨달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상처는 정말로 완쾌됐다.

내 아내는 성격이 좋지 않았다. 공장에서 출근할 때 한 번은 작업실 주임이 말을 잘못했다고 그녀는 그의 옷깃을 쥐고 기어이 그 사람에게 침을 핥으라고 했다.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성을 비교적 잘 지켰다. 한 번은 얼단(二蛋)의 엄마가 솥을 씻은 물을 우리 집 문 앞 하수도 입구에 쏟아 넣었다. 당시는 여름이어서 파리가 매우 많고 냄새도 고약했으나 그녀는 “이후에는 여기에 쏟지 마세요.”라고 한마디만 말했다. 얼단 엄마는 곧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내는 웃으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얼단 엄마는 뜻밖에 방안까지 달려와서 아내를 가리키며 욕했다. 아내는 정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예전 같으면 그녀의 성격을 누가 감히 건드리겠는가? 파룬궁을 연마하자 그 성격이 없어졌다. 그녀는 손이 가는 데로 또 의자를 하나 움직여 얼단 엄마에게 “큰이모, 화를 푸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당신이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면 여기에 앉아서 욕을 더 하세요.”라고 말했다. 얼단 엄마는 정말 그곳에 앉아서 욕을 했다. 한참 동안 욕을 하다가 재미가 없자 스스로 가버렸다.

나는 철공으로 성격도 강했고 강자와도 용감히 맞설 수 있었다. 그러나 수련하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해 주고 선의로 남을 도와야 했다. 그러나 악인에 대해 내 성격은 추호도 위축되지 않았다. 어느 한 번 파출소의 몇 명 경찰이 와서 가택수색을 했다. 나는 당시 침대 위에서 비스듬히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일부 ‘이건 뭘 하는 거지? 우리가 연공을 해서 좋은 사람이 됐는데 어쨌단 말인가?’라고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크게 한 번 소리 지르며 일어나 앉았다. “당신들은 물건을 모두 내려놓으시오. 뭘 하려는 거지?” 몇 명 경찰은 놀라 벌벌 떨었다. 그중 한 사람은 “할아버지, 노여움을 가라앉히세요. 상부에서 시켰습니다. 우리를 원망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허튼소리, 물건을 내려놓으시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려 함도 허락하지 않으면 뭐로 되라는 건가?! 진선인(眞ㆍ善ㆍ忍)에 어디 잘못이 있는지를 당신이 좀 말해보라!”라고 말했다. 그 총각은 끙끙거리며 입으로 끊임없이 “할아버지, 우리를 원망하시지 마세요. 이후에 다시는 오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이 방면에서 나보다 더 잘했다. 딸이 파룬궁을 수련해 몇 해 동안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고 돌아왔는데 파출소에서는 호구를 호적에 올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듣자마자 “이것은 우리에 대한 박해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파출소로 가서 소장을 찾았다. 그 소장은 우리가 그를 두려워하는 줄로 여겼던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무엇 때문에 딸의 호구를 호적에 올려주지 않는지 물었다. 그는 상부에서 규정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두말하지 않고 파출소 문을 나가서 곧 “우리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파출소에서 우리를 업신여겨요. 우리 가족이 모두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모두 와서 이치를 따져보세요, 진선인이 좋은지 나쁜지를. 우리 딸은 파룬궁 진상을 알린 것 때문에 몇 해 동안 노동교양을 당했어요. 돌아오자 또 우리에게 호구를 호적에 올려주지 않네요. 이것이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파출소에서 한 일입니다. 장쩌민이 한 일입니다.”라고 외쳤다. 아내의 그 입은 정말 대단했는데 다들 모두 와서 보게 했다.

파출소 소장은 말을 들은 뒤 재빨리 그녀를 파출소 안으로 잡아당기며 마지못해 “큰이모, 큰이모, 당신이 외치지 마세요. 제가 호적을 올려 드리겠어요. 그럼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아내는 “자네가 금방 뭐라고 말했나? 나를 이 정도로 핍박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외칠 수 있나?! 자네 안심하게. 이 호구를 우리는 올리지도 않겠네. 내가 어떻게 온 시내에서 떠들고 돌아다니는지 자네 보게나! 내가 어디 공안국에까지 외치며 가지 않나 자네가 두고 보게.”라고 말했다. 소장은 마지못해 잘못을 사과했는데 단지 아내에게 꿇어앉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그녀에게 호구를 올려주라고 외쳤다.

이 몇 해 동안 우리는 진상을 알림에 드러내 놓고 이야기해야 하면 그렇게 했다. 어떤 때에 우리도 안전에 주의를 기울였다. 자료도 많았는데 붙일 것은 붙이고 배포할 것은 배포했다. 우리 두 노부부는 삼륜차를 밟으면서 한 사람은 발정념을 하고 한 사람이 진상을 알렸는데 안전했다.

몇 해 전에는 이주해 곳곳을 찾아다니며 셋집을 찾았다. 한 친구가 한 팔린 공장 안에서 거주하도록 소개해 주었다. 공장 안에는 원래 몇십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모두 실직한 노동자들이었다. 그곳 화장실은 너무나 지저분했다. 몇 년이나 청소하지 않아 똥이 곳곳에 있어서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밖에서도 모두 대소변을 보았다. 그것도 탓할 수 없었다. 공장 건물마저 헐어서 팔았기에 모두가 밥 먹는 것까지 문제가 됐는데 누가 위생을 신경 쓸 마음이 있겠는가? 정원 안에는 잡초와 마른 나무로 가득 찼다.

나와 아내는 이 화장실을 청소했는데 며칠 동안 시간을 들여서야 깨끗이 청소했다. 모두는 우리가 솔직한 좋은 사람임을 모두 보고 있었다. 나는 또 아내와 황무지에서 채소밭을 개간했다. 우리가 얼마나 먹을 수 있겠는가?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웃은 우리에 대해서 아주 친절했다. 일이 없으면 늘 와서 말을 했다. 이때 다시 진상을 알리니 믿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우리가 좋다고 말하며 우리의 사람됨을 보면 곧 파룬궁이 어떤지 알게 된다고 말했다.

나와 아내는 수련해서 또 많은 공능이 생겼다. 특히 아내는 밥을 할 때 채소를 썰고 싶으면 곧 날아갔다. 요리를 준비하고는 곧 부뚜막 앞으로 절묘하게 날아갔다.

사부님, 우리는 글을 쓸 줄 모릅니다. 수련생이 우리를 도와서 써 준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일을 사부님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사부님, 우리 가족 모두는 당신께 문안을 올립니다!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8/2649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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