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동안 수련생 사이의 정에 관한 문제를 보아 왔고, 일부 수련생들이 현재 부딪힌 마난이 정과 관계있는 것임을 보았다. 이 며칠 동안 느껴지는 바도 있고 해서 자신의 인식을 써내 제때에 수련생들이 교류하는데 참고로 드리고자 하는데 수련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개인 인식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대법제자는 어떤 때 마난 중에 있으면서 마난의 원인을 모른다. 많은 때에 표면적인 원인은 가상이고, 진정으로 외적인 마난을 초래하는 원인은 오히려 분별하기 어려운 내적 마난이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장기적으로 홀시한 일사일념 중에 존재하며, 우리가 귀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변이와 부패된 관념 중에 있다. 어떤 때 그것은 매우 발견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그가 ‘아름다움’, ‘즐거움’, ‘편함’, ‘만족함’ 등등의 감수로 허울을 씌우고 위장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어지러운 속세에서 수련하면서 어렵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표면 육신이 분초마다 정속에 잠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이라는 것은 오히려 각종 세간 집착의 근원으로서 구세력은 정을 이용해 대법제자에게 무수한 마난을 만들어 준다. 얼마만한 고난, 얼마만한 훼멸이든 모두 정으로 생기는데 사악한 정마(情魔)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과분하지 않다.
정의 표현은 너무 많아 백 가지 천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대법제자가 참으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하여 법에서 지혜를 얻어 그것을 간파하고 그것을 내려놓고, 그것을 버린다면 마음에 자비가 생길 수 있다. 정의 장애와 유혹을 돌파하면 사람마음에 따라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외적인 사악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은 간파하지 못하고 정에 묶여 있을 때면 그것은 구세력에게 이용되어 우리에게 각종 마난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각종 정의 표현에서 남녀 사이의 정은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엄청나게 큰 구실이다. 여기에서의 남녀지정의 중점은 정상적인 부부간의 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물론 부부간의 정 역시 우리가 담담히 볼 것이 필요하다) 부부가 아닌 이성 사이의 정을 가리킨다. 꼭 실질적인 행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각종 미묘한 ‘정’, ‘호감’, ‘흠모’, ‘기대’, ‘사로잡힘’, ‘환상’, ‘그리움’, ‘기대’, ‘의기투합’, ‘이성친구’, ‘못하는 말이 없다’ 등등이다.
현대사회는 기풍이 나날이 못해가고 일찍이 변이되어 신이 사람에게 준 윤리 도덕, 삼강오륜를 벗어난지 오래됐다. 때문에 각종 비정상적이고 정당하지 못한 남녀관계가 수없이 많으며 ‘제3자’가 보편적인 기풍이 되어 ‘바람피우기’, ‘하룻밤 사이의 정’은 사람들의 재미가 됐다. 가령 한 사람이 이성에게 호감을 끌게 하고 심지어 더 많은 이성들이 추구하고 흠모하게 한다면 이것은 아마 ‘밑천’으로 보이고 ‘행복’으로 보여 즐길 것인즉 곁의 사람들은 모두 부러워하거나 질투할 것이다. 현대의 말겁 사회는 남녀가 서로 만나면 상대방에게 아내나 남편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모두 정당하지 못한 요구를 제출하는데 이런 생각은 숨 쉬고 물마시듯 자연스럽다.
대법제자는 이 십악독세(十惡毒世)한 말겁사회에서 수련하면서 세인들처럼 그렇게 타락하고 부패된 행위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날마다 모두 무수한 정욕의 오염 속에 있고 게다가 세간에서 장기적으로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 관념, 오염되고도 스스로는 모르고 있는 것들로 인해 우리의 사상은 물결치는 대로 표류할 수 있다.
아래에 수련생들과 약간의 구체적인 인식을 교류하고자 한다.
1. 남녀사이의 ‘우정’은 현대사회의 변이된 산물
신전문화(神傳文化)와 역사를 통관하면 남녀지간의 우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상적인 인류 역사에서는 이성 사이의 잦은 왕래는 모두 승인과 정시를 받지 못했다. 우리가 지금의 사회를 보더라도 이성간에(특히는 각자 모두 결혼한 남녀) 선양하는 이른바 ‘순결한 우정’은 모두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이다. 이렇듯 도덕이 나빠진 세간에서 왕래가 잦은 이성간에 정욕에 물들지 않는다는 건 더구나 불가능한 일이다.
2. 남녀 수련생의 왕래는 제한이 있어야
대법제자는 상호 협력하여 법을 실증하는 중, 어떤 때는 불가피적으로 이성 수련생과 함께 협력하게 되는데 어떤 때는 심지어 장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이 방면에서 우리는 확실히 준엄하고 엄숙한 고험에 직면하게 되며 또한 가장 쉽사리 정마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성이라고 해서 곧 법 실증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도피하는 것도 맞지 않다.
수련인이 최후 원만하기 전까지 조금의 정과 사람마음이 없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 못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함께 협력해 법 실증의 일도 잘하고 또 정의 교란 앞에서 잘 파악할 수 있겠는가? 개인적으로 여기건대, 이성 수련생 간의 왕래 정도의 문제를 잘 파악하는 것이다. 이성이란 망념에 토양과 온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세간에 이르는 말이 있는데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 -군자의 사귐은 물을 마시는 것처럼 담박하기 때문에 영구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왕래 중에 유익한 참고를 제공해 준다.
(계속)
문장발표: 2012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1/2652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