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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를 키워주는 부분에서 기점을 바로 잡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에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하는 사람이 되며 점차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와 마지막에 신으로 수련 성취하라고 했지 사람 중의 좋은 사람으로 그 자리에 멈춰 있으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오늘 한 수련생의 말을 들었다. 그는 꿈을 꾸었는데 길게 늘어선 노년 수련생들이 한손에는 애를 안고 한손에는 채소바구니를 들고 꿈에 나타났다고 한다. 보아하니 이런 문제가 있는 수련생이 상당한 부분일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경고하는 말’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법(大法)을 전한지 이미 4년이 되었다. 일부 수련생은 心性(씬씽)경지를 제고함이 아주 느리며 아직도 감수 상에 머물러 나의 대법(大法)을 인식하고 있으며 늘 신체의 변화와 공능의 체현에서 나에게 감지덕지 하는데 이것은 속인의 인식이다. 당신들이 사람의 상태를 개변하고 이성(理性)적으로 대법(大法)에 대한 진정한 인식으로 승화하려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기회를 잃을 것이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 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마난을 다 겪고 하세하여 사람을 제도하신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 업력을 없애고 대법을 전해 약간씩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또 우리를 점화하고 보호하며 우리를 이끌어 반본귀진하게 하고 신으로 수련성취하는 일체를 갖추게 하셨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련하고 결속일이 다가왔어도 오히려 일부 수련생(특별히 일부 노년 수련생)은 사람 이 층의 껍데기를 벗지 못하며 문제를 사고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늘 좋은 사람의 표준으로, 사람의 기점으로 인식하고 처리한다.

오늘 수련생 집에 가서 교류했는데 이 수련생은 병업 가상으로 20일이 지나도 열이 나고 온몸에 힘이 없으며 밥도 먹지 못했다. 법공부와 연공을 할 수 없고 발정념을 하지 못하며 사람을 구하는 일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말하는 것도 무기력하고 심지어 앉아 있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 했다. 그래도 우리가 간 후 그는 에너지장이 매우 커서 며칠간 처음으로 우리와 함께 약 2시간을 앉아 있었으며 우리가 떠날 때 정신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이 수련생은 90년대에 법을 얻었는데 지금도 결가부좌를 할 수 없다. 그는 법을 얻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는데 이후에 며느리가 해산해 보살피며 한 달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한 이후 결가부좌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화중에서 그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후 일이 바빠서 기본상 아이를 키우지 못해 밤낮 24시간 애를 봐야 했다. 그에게 얼마나 많은 수련시간을 점하겠는가?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가 세 가지 일을 한다고는 하나 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눈에 눈물이 글썽하며 “나는 수련 전에 온몸에 병이었는데 사부님께서 두 번째 생명을 주셨으니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신사신법하여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부님에 대해 감지덕지하지만 그의 기점은 사람을 떠나지 못했으며 목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한 수련생은 96년에 법을 얻어 수련을 정진하고 게다가 작은 부분의 협조인이며 10여 년간 자료를 찍어 매주 수련생 손에 보내주는 것을 견지하고 고생해왔다. 마난 중에서 정념이 강할 뿐만 아니라 검은 마귀굴에서 탈출까지 했는데 이렇게 강인하고 훌륭한 수련생도 어리석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손자를 보는 것은 본분으로 여기고 당연한 일로 여기며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 이 부정확한 일념이 있기에 그의 이 10여 년 간의 수련은 줄곧 아이를 보는 것이 됐다. 큰 아들의 아이를 보고 둘째 아들의 아이, 큰 아들의 둘째를 보았으며 현재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둘째아들의 둘째를 보고 있는데 정법이 끝날 때까지 봐야 되지 않겠는가? 수련생이 여러 차례 그를 찾아 교류하고 선의적으로 환기시켰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 사람의 정력은 제한이 있으며 낮에 아이를 보니 필연코 세 가지 일에 영향을 준다. 어떤 때는 낮에 애를 보고 저녁에 주간과 자료를 찍으며 이렇게 시간을 뒤로 미루니 아침연공에 일어나지 못해 신체는 몇 번이나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다. 어느 한번은 열이 7일 연속 나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 문제에서 그의 출발점은 사람 중에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대법제자-수련하는 사람, 신이 되는 것인가. 이는 본질상 구별이며 기점 문제다. 매 사람은 모두 마땅히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각 방면에서 모두 마땅히 잘해야 하지만 또 한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마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나는 가정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수련이다. 부모형제들 우리가 더욱 친밀하면 된다.’라고. 당신은 또 새로운 집착으로 들어갔고 극단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지만 오히려 지나칠 수 없다. 지나치기만 하면 또 집착이다. 아울러 대법에 대한 태도는 바로 잡아야 하며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겨야 한다. 어떻게 정진하고 어떻게 법을 대하고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는 당신이 책을 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을 포함해서 모두 홀시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당신들의 길이며 당신들이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속인사회 중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당신들은 바로 정법과 함께 있어야 하며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때문에 비로소 이렇게 수련하는 것이다.”[1]

사부님의 이 단락 설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속인 중의 일을 최대한 잘해야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게 되는데 일부 노년 수련생이 틀린 것이 바로 이 ‘지나치다’는 여기에 있다. 당신의 생명은 대법이 당신에게 연장시킨 것인데(많은 수련생들은 스스로 알고 있으며 모두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자신의 생명을 마땅히 대법에 맡겼는가? 대법이 당신 생명을 연장시킨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럼 당신이 지금 수련하는데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성취하는 이런 위대한 일을 잘해야 수련 성취할 수 있고 당신의 정력과 시간도 마땅히 대법수련에 써야 하지 않겠는가? 속인 중의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어떤 수련생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손자를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당신이 생각해 보라, 만약 대법이 당신 생명을 연장하지 않았다면 그럼 당신 손자는 누가 보겠는가? 자식들이 바쁘면 가끔 도와주는 것은 나무랄 바가 없다. 만약 그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그것은 큰 잘못이며 사람 중의 이치에도 맞지 않으며 역시 공산당이 현대 중국사회에서 조성한 부패한 이치다. 사람 중에서 보면 노인의 본분은 손자를 돌보는 것이 아니며 아들딸이 손자손녀를 낳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만년에 즐거움을 보태는 것이야말로 불변의 진리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주의하라, 나는 당신들에게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당신들이 법리(法理)를 알게끔 할 뿐이다.”[2] 오늘 내가 이 문장을 쓴 것은 우리 수련생에게 의식적으로 손자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인식을 개변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 ‘경수의변(境隨意變-경지는 마음에 따라 변한다)’으로 우리 인식이 법리에 부합될 때 주위 일체가 좋은 방향에 따라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점을 꼭 바로 잡아야 하며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야 하며 속인으로부터 걸어 나와 서약을 실행하고 사명을 완수해야 하며 중생의 소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하고 구도중생, 이 위대한 역사적 중임을 짊어져야 한다! 허스.

약간의 개인 인식이니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자비로운 지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리훙쯔 사부님의 ‘각지설법7-2006년 캐나다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정진요지-도법’

문장발표: 2012년 11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5/2650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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