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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대만 설법 15주년 은혜를 기리며

[명혜망](탕언 기자 종합보도) 매년 열리는 대만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심득교류회가 2012년 11월 18일 타이베이시에서 개최된다. 이 법회는 대만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의의가 깊다. 1997년 11월 파룬궁 창시자인 리훙쯔(李洪志) 선생님께서 대만에서 설법하셨고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이 설법은 대법이 대만에서 널리 전해지는 데 견고한 토대를 다졌다.

二零一二年四月二十九日,七千四百名法轮功学员在台北自由广场,排出李洪志师父法像,宏伟壮观。2012년 4월 29일, 7천 4백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모여 타이베이 자유 광장에서 리훙쯔 사부님의 법상을 만들었는데 웅장한 장관이었다.

파룬궁수련자들은 리훙쯔 선생님을 사부님이라고 부른다. 그분은 중국 지린성 창춘(長春)시 출신이며 1992년 5월 13일 창춘시에서 처음으로 학습반을 개최해 사회에 파룬궁을 전수하셨다. 현재 파룬궁은 이미 백여 개 나라에 널리 전해졌으며 전 세계 1억이 넘는 사람이 심신의 수혜를 얻었고 각 민족의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은 이미 30여개 언어로 번역됐다.

사존께서 친히 설법하시고 몸으로 가르치다

1997년 11월 리훙쯔 선생님께서 대만에 오셨고 타이베이 싼싱 국립 초등학교와 타이중 우펑 농업공업학교 두 지역에서 2천여 명의 사람에게 설법하셨다. 그때 참여한 수련자의 회상에 따르면 사존께서는 매우 자비롭고 온화하셨고, 친절하고 틀이 없으셨으며, 누구에게나 매우 겸손하셨다고 한다. 수도 회사에 근무하는 천후이칭(陳慧卿)은 그때 파룬궁을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 타이베이와 타이중 두 곳에서 설법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장소는 매우 평온했어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설법을 들어도 힘들지 않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사부님은 매우 높고 크셨으며 사람에게 매우 자비로운 느낌을 주셨어요”라고 말했다.

李洪志师父于一九九七年十一月在台北三兴国小讲法
리훙쯔 사부님께서 1997년 11월 타이베이 싼싱 국립 초등학교에서 설법하시다.

李洪志师父于一九九七年十一月在台中雾峰农工讲法
리훙쯔 사부님께서 1997년 11월 타이중 우펑 농업공업학교에서 설법하시다.

1997년 4월 대만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연공장을 개설한 추톈시(邱添喜)는 대만에서 가장 일찍 파룬궁을 수련한 수련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당시 설법을 들으러 간 절반 이상은 수련생의 친척과 친구였습니다. 아직 법공부나 연공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런 사람 대부분이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고덕대법이고 일언일행이 사람을 탄복케 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설법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타이베이, 이란(宜蘭), 동부, 남부 순으로 대만을 한 바퀴 돌아보셨고 일월담에서 하룻밤 묵으셨다. 도중에 주차비용, 식사와 숙박 비용은 일체 수련자가 계산하지 못하게 하셨다. 사부님께서 대만에 일주일간 머무르시는 동안 오직 몇 명의 수련자만 대동했고 조용히 다니셨으며 다른 수련자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사부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은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이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몸으로 가르치신 것이다!”라고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일월담을 떠나시기 전 시 한수를 지으셨다. ‘맑은 호수에 노을빛 아름답게 비껴드누나 몸은 난세 속에 있나니 홀로 아름답기 참으로 어렵도다.’[일월담(日月潭)을 거닐며] 파룬궁수련자라면 이 시를 거의 누구나 낭랑하게 외운다. 일월담 역시 해외 파룬궁수련자가 대만에 오게 되면 가장 찾고 싶은 장소가 됐다.

추톈시는 이렇게 밝혔다.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시기 전 대만에는 매우 적은 수의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했고 서로 연락도 없었어요. 사부님께서 대만에서 설법하신 후 수련자는 서로 연계했고, 파룬궁은 대만에서 진정으로 널리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 대륙으로 설법을 들으러 간 허 씨, 새로운 인생을 얻다

현재 이란(宜蘭)에 살고 있는 허라이친(何來琴)은 가장 일찍 대만에서 공법을 가르친 파룬궁수련자다. 1994년 6월 허라이친은 중국 대륙 친척의 권유로 산둥성 제남(濟南)으로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러 갔다. ‘파룬궁 지난 제2기 학습반’에서 짧은 며칠 내에 그녀를 20여 년간 괴롭혀온 질병이 신기하게 사라졌다. 환골탈태한 듯 새로운 인생을 얻어 기뻤고 그녀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李洪志师父与参加济南讲法的学员合影(第二排右三,着咖啡色上衣者为何来琴女士)
리훙쯔 사부님과 지난(濟南) 설법 학습반에 참가한 수련자와의 기념촬영(두 번째 줄 오른쪽 3번째, 커피색 상의를 입은 사람이 허라이친)

그해 12월 대륙의 친척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리 대사님이 12월 21일 광저우에서 설법하시는데 마지막 학습반이 될 것입니다. 이곳은 대만과 매우 가까우니 꼭 기회를 잡으세요.” 허라이친은 다행히 또 ‘광저우 제5회 학습반’에 참가했고 다시 한번 사존의 설법을 듣게 됐다.

허라이친은 1995년 4월 대만에서 처음으로 양밍산에 연공장을 개설했다.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 많은 사람이 배우기 시작했다. 허라이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부님께서 대만에서 설법하신 뒤 사람들은 파룬따파의 진귀함과 아름다움을 인식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함을 느꼈고 적극적으로 대법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40여 년간 한약을 먹던 악몽에서 드디어 벗어나다

1997년 5월 양복 재단사로 퇴직한 지 6년이 된 이란현 린푸성(林福生)도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손가락 관절통, 신체의 저림과 통증, 경추 질환 등 병이 모두 사라졌고 얼굴색도 점점 윤기가 났다. 또한 매일 1, 2갑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대머리인 정수리에서 검은 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40여 년간 먹어왔던 한약도 드디어 먹지 않게 됐다.

반년이 지나 리훙쯔 사부님이 대만에 오셨을 때 린푸성은 운 좋게 사존의 설법을 들었다.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부님께서 5, 6시간 내내 휴식하지 않고 설법하신 것이었다. 그때 수련자들은 여러 차례 사부님께 잠시 휴식할 것을 청했으나 사부님께서는 손동작으로 괜찮다고 하셨다.

린푸성은 이렇게 회상했다. “사실 설법하는 그날 날씨가 매우 더웠습니다. 법을 들으러 온 수련자는 물도 준비하지 않았고 모두 목이 말랐습니다. 사부님께서 5시간 넘게 설법하신 후 사람들은 휴식시간에 앞다퉈 물을 마셨습니다.” 린푸성은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후 사부님께서 왜 휴식하지 않고 연속하여 설법하셨는지를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그건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이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설법하려 하심이며 중생이 불법(佛法)을 듣게 하기 위해 1분도 휴식하려 하지 않으신 것임을 깨달았다.

자비와 위엄은 함께 있으며, 눈길은 온화하고 친절하셨다

린푸성은 몸소 사부님의 위엄과 자비를 느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아득한 기억 속에서 들춰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내보낸다고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확실히 신성함과 장엄함을 체험했습니다. 그때 설법 장소에서 저는 진실하게 사부님께서 내보낸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입에서 회전하는 흰색의 것을 보았습니다.”(그날 린푸성은 첫 줄에 앉았으나 나중에 스스로 미안해하며 세 번째 줄로 옮겼다. 그래도 여전히 강단과 매우 가까웠고 매우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쑤아오진(蘇澳鎭)에서 플라스틱 공장을 경영하는 린충치(林崇祺)는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법을 얻어 수련한 지 반년 후 운 좋게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됐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빛나는 사부님의 두 눈입니다. 눈이 매우 밝았고 그때 제 자리는 뒷자리였으나 사부님의 눈이 밝아 마치 전체 장내를 투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눈길은 매우 온화하고 친절하셨습니다.”

중공의 박해는 파룬궁이 대만에서 널리 전해지는 데 도움이 됐다

1999년 4월 25일 1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자가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로 청원 갔다. 이 사건은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며 파룬궁을 세계무대에 등장시켰다. 같은 해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악당 집단은 대규모 박해를 시작했고 파룬궁수련자는 심한 박해를 당했다. 이 사건이 대만 매체에서 밝혀진 후 파룬궁의 지명도는 신속히 전파됐다. 무료로 공을 가르치고 덕을 중히 여기며 선(善)을 닦음을 강조하고, 신체를 건강히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기에 단지 입소문만으로도 널리 전파됐고 환영받는 정도는 중공의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台湾媒体大幅报导四二五与七二零事件
‘4·25’와 ‘7·20’ 사건이 대만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대만은 점차 해외에서 반(反)박해를 성원하는 주력의 하나로 성장했고 대만 매체는 대만을 ‘파룬궁이 부흥하는 기지’로 불렀다. 수련자 훙지훙(洪吉弘)이 이렇게 밝혔다. “파룬궁은 심신건강에 유익하며 많은 사람은 중공의 거짓말과 모함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만에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략 짐작하기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1년 반 동안 대만 파룬궁수련자 숫자는 3배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훙지훙은 이렇게 회상했다. “타이베이시 무자(木栅)에 한 무역상이 있었는데 2000년에 중국에 출장 가서 CCTV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파룬궁을 비방하여 민중을 세뇌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고 한 국가가 어찌 한 공법을 이렇게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호기심이 생겨 대만에 돌아가서 파룬궁의 진면목을 알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무역상은 대만에 돌아와 훙지훙 집에서 운영하는 9일 학습반에 참가했다. 참가해서 7일 만에 17년간 지속된 불면증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전에 많은 중의사와 양의사를 찾아 치료했으나 여태껏 효과가 없었는데 깨끗하게 없어진 것이다. 그 뒤로 이삼일간은 매우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사부님의 설법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치는 것임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이 중공이 선전하는 설법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부님의 은혜를 기리며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자

파룬궁은 대만에서 오늘날까지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1천여 개의 연공장이 설립됐고 대만 전 지역에 분포됐다. 거의 모든 지방마다 연공장이 있다. 외도(外島) 펑후(澎湖), 진먼(金門), 마쭈(馬祖)에도 10여 개 연공장이 있다. 대만은 이미 전 세계에서 중국 대륙 다음으로 가장 많은 화인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곳이 됐다.

사존께서 대만에 오셔서 설법하신 지 15주년이 됐다. 수십만의 파룬궁수련자는 심신에 수혜를 입었고, ‘진선인(眞·善·忍)’의 법광 속에 있게 됐다. 대만 수련자들의 사존에 대한 존경과 감격은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오직 세 가지 일, 법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을 견지하여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사존의 성덕과 넓은 은혜의 만분의 일에라도 보답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원문발표: 2012년 11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2/11/1/2647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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