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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에서 나온 수련생은 가족에게 빚졌다는 마음을 갖지 말자”를 다시 논함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23일 ‘밍후이주간’을 보고 나는 인식이 매우 좋았다.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충을 좀 하고 소굴에서 나온 후 또 마난에 빠진 수련생에 대해 교류하려고 한다.

2000년 10월 살던 집을 재건축하는 바람에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살았다. 세 식구는 단지 남편 한 사람이 벌어오는 수입으로만 생활하는데 아들이 중학교에 다니니 생활이 넉넉지 못해 어머니 집에서 살게 되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2002년 5월에 나는 사악에 붙잡혔다. 그러자 남편과 아들은 어머니 집에서 나왔다. 100위안으로 외진 곳의 단층집 세를 얻었다. 아들은 학교가 더 가까워졌다. 내가 잡혀갔으니 밥하고 빨래하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1년 365일 매일 출근했는데 아침 6시에 출근했다가 저녁 7시 반이나 돼야 퇴근을 하게 되니 종일 집에 없고 식사도 아침과 점심은 식당에서 먹는다. 아들은 아침을 거르고 남편이 주는 3위안으로 점심을 사 먹었다. 아들은 배불리 먹지 못해도 감히 불평의 말을 하지 못했다. 다만 부자는 저녁 한 끼만 집에서 함께 먹는다. 저녁 식사라고 해야 8시가 넘어야 먹을 수 있었다. 아들은 한창 성장기인 14세 된 아이라 매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세심하지 않은 남편은 아들이 매일 배고파하는 걸 모른다. 남편의 성격은 그리 세심하지 않은데다가 아들은 성실한 성품이어서 배가 고파도 감히 아버지에게 돈을 더 달라고 하지 못하고 단지 참고 견딜 뿐이었다.

겨울에 동북지역은 몹시 추워서 세를 얻어 사는 단층집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더욱 추웠다. 아들은 불을 지필 줄 몰라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방에서 숙제를 하려고 하면 춥고 손이 시려 공부할 수 없는 지경이다. 특히 겨울방학이 되면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매일 혼자 집에 있게 되니 더욱 고생스럽다. 내가 집에 돌아온 후 아들은 울면서 이 같은 사실을 말했다. 그때 살던 그 집은 집안 실내 온도가 밖의 온도와 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밖에서 활동하면 그다지 춥지 않는데 집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추웠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벌거벗은 엉덩이처럼 차갑고 추워서 도저히 집안에 머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설령 남편이 퇴근하여 불을 지펴 밥을 해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그 식사를 다 하기도 전에 방안의 공기는 다시 냉랭해져 밥은 채 다 먹기도 전에 모두 식어서 차가웠다. 잠을 잘 때는 이불로 머리까지 덮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금은 우리 가족이 난방이 잘 되는 건물에서 거주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습관이 된 아들과 남편은 이불로 머리까지 덮어쓰고 잠을 잔다. 그때 그 추운 집에서 양성된 습관이다. 내가 악인에게 납치되어 잡혀간 후 결국 아들은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중퇴했다. (1년을 다님) 친정어머니와 내 여동생이 좀 돌봐주기는 했지만 집이 너무 멀고 또 각자 살아가야 할 일 때문에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들이 도와줬다고 해야 4년 동안 몇 번을 다녀갔을 뿐이니 손을 꼽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남편은 전에 편지로 이런 내용을 써서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밤이면 자주 눈물을 흘리며 잠들곤 한다 했고, 편지 말미에 너무 춥고 손이 시려 더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이 편지를 집중훈련대대 옥 중의 친구들이 함께 돌려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소리 내어 울었다. 나에게 편지를 전해준 대대장이 뭔가 나에게 의사 표시를 할 듯이 나보고 일어서라고 했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생각을 좀 하고 앉으라고 했다. 나는 그 일이 지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내가 편지를 보고 무슨 반응이 있는가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나를 질책하려고 했다가(나는 발정념을 했다) 말을 삼키고 그냥 나에게 앉으라고 했다. 사악은 바로 모든 기회를 이용하려고 하는데 그때 편지로 나에게 트집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일부 수련생은 편지를 들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사악한 경찰은 ‘가족상봉’을 안배하고 육친의 정을 악용하여 대법제자를 아래로 끌어내리고 전향을 위한 소위 전화 작업을 감행한다. 그는 당연히 내가 눈물을 보이며 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실망했던 것이다. 그들은 뒤에서 내가 인간성이 없다고 뒷공론으로 폄훼했다. 그러나 나는 맘속으로 ‘우리 수련은 승화하여 바로 불성이 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에게 알려 주었다. “설령 당신이 울게 되어도 경찰에게 보이지 않게 하라.”라고 했다. (당연히 정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실로 내려놓지 못하면 남에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을 전향시키는 일을 하는 교도관은 나의 그 편지를 가져다가 다른 수련생들에게 육친의 정을 부추기며 전화 작업을 하는 데 악용했다. 내가 그런 사실을 알고 그들의 눈을 피해 그 편지를 찢어버렸다. 그러자 그 교도관은 나를 향해 욕을 했고 후에는 다른 핑계를 대며 나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 편지는 보는 사람마다 모두 울게 했다. 전화되는 사람도 역시 수감 중에 있기 때문에 그 편지를 보고 가족이 생각나서 모두 운다. 내가 찢어버린 후 그들은 법보를 잃은 것 같았고 무슨 방법이 없어 화가 나 죽을 지경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편지를 보고 정말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나는 ‘내가 수련성취 하면 그들은 나의 덕을 받아 장래 큰 복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들이 하는 고생은 별것 아니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어쨌든 사부님께서 계시니 대법에 정념이 있으면 사부님께선 역시 관여해 주시는데 뭐 그리 걱정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단지 수련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수련하면 많은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그중 정념이 있는 가족도 포함된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감당하는가? 업력이다. 우리 가족은 우리를 위해 몹시 기겁을 한다. (擔驚受怕) 한 대법제자가 붙잡히게 되면 일부 가정에 대해 말하면 사실 무너지는 듯한데 그것도 우리를 위해 업력을 감당하는 것이고 장래에 큰 복을 얻는 것이다. 잃지 않은 자는 얻지 못하는데 본래 다 좋은 일이다. 사부님께서 계시고 우주의 특성이 존재하는데 무엇을 생각해도 다 쓸데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역시 내가 집에 돌아온 후 집은 금방 재건축을 끝내고 이미 내부 인테리어까지 마친 상태였다. 남편은 나에게 당장은 출근하지 말라고 하면서 “비록 돈을 좀 빌려 빚이 조금 있지만 급히 갚으라고 재촉도 하지 않는 상태이니 걱정하지 말고 집에서 쉬다가 나중에 지루해지면 그때 출근하는 문제를 생각해도 괜찮다.”고 했다. 어머니, 아들, 남편은 모두 나에게 원망하는 단 한 마디의 말을 한 적이 없다.

나의 여동생은 남방에 정착해 살게 되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우리 집에 맡기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나의 많은 시간을 점유 당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여동생은 야속하다고 울고 불며 일부 듣기 싫은 말까지 했다. “가족을 돌봐주지 않고 아이를 돌보지 않고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위한다.”는 등등의 많은 불평의 말을 쏟아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이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감옥에 들어간 것이 어때서?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고 그것은 중공의 잘못이니 능력이 있으면 그들을 찾아가야지 좋은 사람만 업신여기지 말라.”라고 말했다. 동생도 대법을 인정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그녀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그녀는 달가워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내가 없을 때 내 아들을 좀 돌봐주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여동생의 이번 처지는 정말로 어려웠다. 아들을 전학시키기 어려워 아들을 데려가기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결국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제안을 했다. “일단 동생의 아이를 학교가 가까워 데려가지 않아도 되는 친정어머니 집에 맡겨 학교를 다니게 하고, 명절과 휴가 때 그리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 머물게 하기로 하고, 스스로 혼자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하거나 아이가 등하교 때 내가 데려가지 않아도 될 나이가 됐을 때 우리 집에 머물게 하겠다.”라고 했다. 여동생과 어머니는 다 동의했다. 후에 아이가 스스로 등하교를 할 줄 알게 되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만약 그때 내가 조금이라도 여동생에게 빚을 졌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이런 결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여동생이 대법제자를 위해 내 아이를 좀 돌봐줬어도 그건 마땅한 일이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여동생은 복을 얻을 수 있었는데 복은 그렇게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오려고 하는데 정으로 나를 교란하면 안 된다. 물론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이 되고 가정 관계를 평형 시키는 것도 역시 마땅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대법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고 많은 시간을 점유하지 않는 정황에서 가능한 한 가족들의 요구에 만족시킨다.

내가 수감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최초의 일이다. 가족은 대법을 존경하지 않고 육친정으로 나에게 빚진 마음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마지막에 나는 떳떳하게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어요. 나는 다만 사부님께 빚을 졌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이해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만은 했다. “만약 당신들이 말할 때 대법을 입에 달고 있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꼬투리를 잡아 듣기 싫은 말을 한다면 나는 이후에 무엇도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 후부터 가족은 다시는 내가 수감됐던 일을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평소 나는 큰소리로 말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정말로 내가 조급했던 것이다.

나는 종래로 ‘가족(親人)’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다. 배우자(家人)를 가족(親人)이라고 말하면 정이 너무 깊어 보인다. 배우자는 관계이고 가족은 멀고 가까운 느낌이 들 수 있다. 세상의 중생 역시 가족이 아닌가? 내 생각에 정말로 배우자를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면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2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26/2644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