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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들이 교류하는 중에 흔히 이런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오늘 법공부를 했나요?” “했어요” “몇 강을 봤나요?” “한 강을 보았어요.(어떤 때 두 강 혹은 더욱 많음)”이런 대화 내용을 들었을 때는 얼핏 아주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지만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대화는 마치 법공부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정진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나도 10년을 수련했지만 줄곧 이렇게 인식했다. 오늘 몇 강을 읽었는지에 따라 수련의 정진 여부가 정해진다는 관념이 형성된 이후에 매일 몇 강을 봤는지가 아주 중요한 척도가 됐다.

만약 오늘 다만 한 강 혹은 한 강도 보지 못했다면 그 수련생은 부끄러워 앞에서 말도 하지 못하고 만약 두 강을 학습했다면 속으로 아주 만족해하며, 당신이 두세 강을 학습했다면 그것은 수련생들로부터 괄목할 만한 사람으로 지목돼 부러운 눈길을 받는 대상이 되며 자신도 그런 분위기를 대단하게 여기며 즐기는 경향이 있게 된다.

수련시간이 오래되면 대개 매일 법공부를 하기 전에 자신에게 오늘 몇 강을 읽겠다고 스스로 읽을 책의 분량을 정해놓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법공부하는 중에서 시간을 다그쳐 미리 정해 놓은 책임량을 완성하려는 조바심이 생기고 심지어 임무를 초과 달성하려는 마음이 든다. 그러므로 법공부의 질보다는 양만을 추구하게 되어 결국 법공부는 형식에 치우치게 된다.

나는 혼자서 이런 현상을 개변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효과가 아주 적었다. 금년 9월 다시 한 번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는 신경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그 중 한 단락에서 “여러분 알다시피 법공부를 함에 많은 지역에서 일부 정황이 나타났다. 어떤 정황인가? 어떤 지역은 형식에 치우친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轉法輪)’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일을 다 잘 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전에 이 한 단락 설법을 배운 적이 있었지만 깨우치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번에 다시 읽었을 때는 깨닫는 것이 아주 많았다. 사부님께서 이 한 단락 설법에서 우리에게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중요성을 말씀해주셨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데 우리는 왜 그것을 중점으로 하지 않는가?’ 이런 염이 나오자 마음이 확 트였다. 관념, 바로 그 관념이 내가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을 방해했다. 언제나 법공부를 얼마나 했는지로 자신의 수련 상황을 가늠했을 뿐,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했는지 여부로 가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관념이 개변되자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하는 상태가 아주 빨리 개변됐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고 오늘 몇 강 배우겠다는 심리적 압력이 없는 상황에서 조용히 법공부하고 천천히 읽었으며 무엇을 깨닫겠다고 추구하지 않고 다만 문자의 표면적인 뜻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렇게 하니 법공부하는 분량은 평소보다 적어졌지만 법공부하는 시간은 많아지고 법공부하는 효과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매일 새로운 수확이 있었으며 아주 충실해진 것을 느꼈다. 당연히 여기에서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법공부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되 절대로 법공부를 얼마나 했는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수련생이 당신에게 “오늘 몇 강을 읽었어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그에게 “나는 몇 시간 법공부를 했어요”고 말할 수 있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하나의 원인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법공부하기 전, 혹은 하는 과정 중에서 ‘오늘 비가 내릴까? 내리지 않을까? 우리 집 이불을 바깥에 널어 햇볕에 말리고 있는데 오늘 너무 늦게 법공부를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오늘 이미 누구와 약속했다. 법공부한 후 함께 쇼핑하러 가야한다. 법공부를 한 후 나는 또 수련생 집에 가서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위해 그와 교류해야 한다’는 등등 이런 잡다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그것은 당신이 법공부하는 온 과정을 방해하는 것으로 당신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차분하게 할 수 없게 스스로 만든다.

대법제자로서 법공부하기 전이나 법공부를 하는 과정 중에는 당연히 모든 다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법공부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미리 다 해야 하며, 완성할 수 없는 일은 미리 시간을 당겨서 처리해서 법공부의 방해 요소가 되는 것을 없애야한다. 이렇게 해야만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으며 오직 이렇게 해야만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으며 법공부도 마음에 닿게 할 수 있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려면 첫째는 관념을 개변시켜야 하며, 둘째는 방해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이런 관념과 방해는 다 자신의 주관 사상에서 온 것이다. 표면적인 방법도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데 작용을 일으킨다.

또 법공부를 하는 과정을 말한다면 첫째는 읽는 속도다. 만약 법을 읽는 속도를 빠르게 또는 중간정도로 나누어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한다면 가장 좋다고 본다. 우리가 법을 읽는 것은 문자 표면의 뜻을 이해하는 것을 준칙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너무 빨리 읽으면 앞의 단어나 문장의 표면적인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는데 벌써 다음으로 읽어내려 간다면 어찌되겠는가? 이럴 때 읽는 속도를 늦춘다면 시간은 좀 많이 걸리겠지만 법의 표면적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읽는 것의 구절이 문장으로 연결되고 이해가 되게 해야 한다. 만약 혼자서 법공부를 한다면 어느 한 단락의 표면의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으면 다시 한 번 읽어서 여러 번 읽어 그 부분을 알 때 까지 읽으면 된다. 그렇게 하는 법공부는 효과가 다를 것이다. 진도가 느리다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느리다고 두려워하는 것은 관념이다.

둘째는 발음이 또렷하고 정확해야 한다. 단체 법공부할 때는 혼자서 읽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다른 수련생에게도 들려주는 것이므로 잘 읽지 못하면 되겠는가? 자신에게 당신의 발음을 똑똑하고 정확하게 요구할 때 자신의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동시에 다른 수련생을 도와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마음을 분산시켜‘자신이 잘 읽지 못하면 다른 수련생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법공부를 하는 데 엄중한 방해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다만 조용히 읽고 이 표준대로 읽으면서 온 주의력을 오직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것에 집중해야한다. 이렇게 한다면 반드시 생각하지도 못했던 수확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얕은 인식이다. 부적절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0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0/28/2645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