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편: 대법홍전(洪傳)
[명혜망](전편에 이어)
1.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전파,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파
대법의 전파는 사회에서 행정관리 방식의 명령 하달과 집행이나 상업적 광고 선전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에서 사람으로의 전파,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전파, 구전심수(口傳心授,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전수한다)의 방식으로 조용히 사회에 전파됐다. 근본적인 이유는 파룬따파가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을 강조하고 인간의 본성과 양심을 일깨웠으며, 생명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인 ‘반본귀진(返本歸眞, 진정한 자신의 본원으로 돌아감)’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심성이 승화된 후의 선량한 행위와 신체의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됐다. 따라서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부터 받아들였다.
가정 내에서의 전파
2010년 12월 14일, 명혜망에는 창춘시 파룬궁수련자의 글 ‘파룬따파는 진실하다’가 게재됐다. 저자는 말했다 “우리 집은 친척이 비교적 많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도 비교적 많다. 1994년부터 수련을 시작한 사람이 많다. 집안에서 원래 수련하지 않던 사람들이 우리 수련자들로부터 파룬따파가 가져온 아름다움을 본 후,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한번은 가족들이 함께 대략 통계를 냈는데, 이 친척들 중에는 약 4대, 80명 정도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고, 연령은 90대부터 몇 살까지 다양했다. 현재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박해가 시작되기 전이나 후나 우리 수련자들이 파룬따파를 실증하는 일을 매우 지지했다. 특히 중공의 악랄함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파룬따파를 지지하는 것은 더욱 귀중한 일이다. 수련하지 않는 친척들이 왜 이럴 수 있을까? 그것은 그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매우 깊은 이해가 있고, 그로부터 많은 이로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수련자는 친척들 중에서 몇 가지 예를 들었다. 1. 병이 낫는 기적적인 효과와 몸과 마음의 건강 2. 사부님의 보호로 재난이 사라지고 어려움이 물러감 3. 심성이 향상되고 사회에 이로움이 됨 4. 세인이 깨달아 대법에 감사함 등, 각각의 측면에서 친족들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예로 들어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이것이 바로 한 가정 한 가정이 모두 대법을 배우게 된 이유이며, 단지 가족 구성원의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이다.
이웃과 직장 환경에서의 보급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은 《전법륜(轉法輪)》에서 예를 들어 말씀하셨다. “한 수련생이 산둥(山東) 모모(某某) 시(市) 편직물공장에 다녔는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연마(煉)하도록 가르쳐 준 결과,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다. 예전에는 편직물공장의 수건을 늘 자기 집으로 하나씩 가져갔는데, 모든 직원이 그랬다. 공을 배운 다음에는 그는 가져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집에 가져갔던 것도 도로 가져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누구도 가져가지 않았으며, 어떤 직원 역시 자신이 이전에 가져갔던 것을 모두 공장으로 도로 가져왔는데, 전 공장에 이런 정황이 나타났다.
모(某) 시(市)의 한 보도소 소장이 한 공장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는 수련생들의 연마가 어떠한지 보러 갔는데, 그 공장의 공장장이 그들을 직접 접견하며 말했다.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으며, 공장의 경제효율도 좋아졌습니다. 당신들의 이 공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당신들의 스승님께서 언제 오시면 나도 참가하겠습니다.””
창춘은 더욱 그러했다. 많은 기관과 공장, 대학교에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심지어 감옥, 노동수용소, 구치소 경찰들 중에도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심지어 감옥의 형사범들도 있었다. 법을 얻은 후의 심성 변화는 어떤 교육이나 관리 방법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법은 본질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이 자각적으로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되게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국내 전수 강의를 마치신 후, 각 보도소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로 9일 학습반을 열어 인연 있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신수련생들은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고, 그다음 보도원이 연공 동작을 가르쳤다. 이런 반이 가정에서, 연공장에서, 직장의 사무실과 회의실, 강당에서 열렸다. 적게는 10~2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이 참가했다. 게다가 이런 9일 법공부와 연공 교육반이 계속 순환적으로 열렸고, 각 직장 부서에서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변화를 보고 모두 매우 지지하며 조건을 제공했다. 수련자들도 각자의 편의에 따라 무상으로 대법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이 법을 얻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당시 지질대학 강당에서는 한 반씩 연속으로 열렸는데, 매번 100명이 넘었다. 교육반은 완전히 자원봉사로 이뤄졌지만 매우 규범적이고 엄숙했다.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 한 사람이 연공하면 한 가정이 연공하고, 한 과나 한 반이 연공하면 사무실 건물, 학교 캠퍼스, 공장 작업장으로 영향이 퍼졌다. 신수련생들은 법을 얻은 후 집 근처의 연공장으로 연공하러 갔다.
2. 각 연공장의 신속한 발전
1992년 겨울, 사부님께서 베이징에서 돌아오시면서 두 개의 파룬 깃발을 가져오셨는데, 하나는 사부님께서 직접 세우신 창춘 제1연공장인 승리공원 연공장에 주셨고, 하나는 지린대학 연공장에 주셨다. 지질궁(地質宮), 아동공원, 동식물원, 조양공원 등의 연공장은 모두 사부님께서 직접 보신 곳이며, 현장을 정화하시고 보호막을 씌워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동식물원에 그렇게 큰 장소를 그려주셨는데 당시에는 몇 명밖에 연공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그들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하시며 곧 사람이 넘칠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로 6~7기 교육반이 끝난 후에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95년 이후에는 많아서 설 자리가 없게 되어 동식물원의 다른 문 앞에도 각각 연공장이 세워졌다.
승리공원에서 연공하던 한 노수련생은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매일 새벽 2~3시에 빗자루나 삽을 들고 집에서 나와 승리공원으로 갔다. 어두운 밤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고 공원은 더 어두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고 손전등도 들지 않았다. 많은 경우 내가 가장 일찍 도착해서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연공을 했고, 날이 밝자마자 빗자루를 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장소를 청소했다. 당시 많은 수련생들이 이렇게 했다. 철북에 사는 한 할머니는 밤 12시에 집에서 걸어와서 연공했고, 금전보에 사는 한 할머니는 새벽 3시에 걸어와서 연공했다(금전보는 창춘시 교외 매우 먼 곳이다). 겨울에 큰 눈이 와도 우리는 눈을 털어내고 바로 앉아서 연공했다. 그때는 조건이 좋지 않아서 무슨 오리털 파카도 없었고 그저 작은 솜옷, 작은 솜바지였다. 그때는 마음이 정말 하나였다! 당시 연공할 때는 사부님께서 허우산(猴山)의 계단 위에 계셨고, 수련생들은 남쪽 숲에서 연공했다.”
영하 30도의 환경에서도 지린대학, 남호공원, 승리공원, 아동공원 등의 연공장에서는 600여 명이 야외에서 연공을 했다. 빈허(濱河) 소구(小區)는 창춘 이퉁허(伊通河) 동쪽 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얼음과 눈이 강바닥을 덮고 있고, 트인 강가에는 서북풍이 불어 창춘 시내에서 가장 추운 곳이었지만, 빈허 연공장의 수련생들은 한 번도 중단하지 않았다. 몸은 건강해졌고 의지는 단련되었다.
1992년 파룬따파가 창춘에서 전파되기 시작하자 인연 있는 사람들이 차례로 찾아왔다. 5년 동안 창춘시의 연공장은 공원, 길가, 지역사회, 직장 및 마을에 분포됐다. 이것은 수련자들이 그린 창춘 파룬따파 연공장 분포도다. 1994년 이 지도가 완성된 후,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보셨나요? 각 연공장의 붉은 원에는 모두 나의 법신이 있고, 지도 중앙에는 큰 법신이 있습니다.” 처음 이 지도를 그릴 때는 창춘시 연공장이 30여 개밖에 없었고 각 장소의 인원도 적었다. 1997년 사부님께서 전수 강의를 하신 지 5주년이 되었을 때, 제2회 서화전의 한 작품으로서 97년 대법이 창춘에서 전파된 형세를 반영했는데, 이미 곳곳에 꽃이 피어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직장과 가정에서의 연공장은 지도에 표시할 수 없었다. 99년 사악한 박해가 시작됐을 때, 공안부서는 창춘시의 파룬따파 수련자가 8만여 명이라고 통계를 냈지만, 사실 조용히 수련하는 사람들은 통계할 수 없었다.
1994년 4월 25일,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파룬궁 제자들의 법 전수와 공법 전수 규정》을 쓰셨는데, 제4조 규정은 “모든 파룬궁 제자들은 법을 전하고 공법을 가르칠 때 절대로 수수료나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위반하는 자는 이미 파룬궁 제자가 아니다”였다. 이것이 수련자들이 각 연공장에서 ‘자원봉사 공법교육[義務敎功]’ 깃발을 만든 이유다.
3. 대규모 연공과 홍법 활동
창춘 문화광장은 원래 지질궁광장이라고 불렸으며, 창춘시 중심에 위치한 창춘시 최대의 광장이다. 1933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 ‘순천(順天)광장’이라고 불렸다. 완공된 이후부터 창춘시의 각종 대형 활동과 집회 장소가 되어 시민생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 80년대 초, 광장의 동쪽 절반이 도시공공녹지로 개조됐다. 1996년 8월에 대규모 보수와 개조를 거쳐 문화광장으로 새로 명명됐다.
문화광장은 파룬따파가 창춘에서 전파된 역사를 증명했다. 사부님의 댁은 문화광장 서쪽 500미터 정도에 있었다. 사부님의 초기 수인(手印) 사진들은 모두 이곳에서 찍은 것이다. 처음에는 창춘시 최대의 연공장인 지질궁 연공장으로서, 매일 아침 연공에 6~700명이 참가했다.
1998년 5월 15일, 리훙쯔 사부님께서 전수 강의를 하신 지 6주년을 맞아, 당시 국가체육총국 국장이 창춘시의 전민건강운동 전개 상황을 시찰하러 창춘에 왔다.
그날 문화광장에서 아침 연공하는 만여 명의 군중 중 파룬따파 수련자가 6~7천 명이었고, 5개의 연공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광장 중앙과 동서남북 빈터에는 모두 ‘파룬따파’, ‘리훙쯔 사부님 전수 강의 6주년 기념’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파룬따파 홍보 사진도 있었다. 파룬따파 연공 음악이 광장 상공에 울려 퍼져 ‘불광이 두루 비추고 예의가 원만한’ 상서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체육총국 국장은 파룬따파의 웅장하고 장관을 이루는 진용과 우아하고 유연한 연공 동작을 보고 매우 흥분하여 수행원들에게 “이것이 파룬궁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지린성 TV방송국의 기자가 현장에서 창춘 보도소의 책임자를 인터뷰했다.
당일 지린성 TV방송국, 16일 창춘 TV방송국, ‘창춘일보’ 6월 1일자 ‘창춘상보’ 등 언론기관이 차례로 보도를 했다. TV 프로그램에는 많은 대법 수련자들의 연공 장면이 있었다. 5월 25일 지린성 TV방송국 ‘오환기하(五環旗下)’ 프로그램에서 다시 특집 보도를 했다. 5월 28일 중앙 1채널과 5채널에서는 국가체육총국 국장이 창춘에서 군중의 아침 연공 활동을 시찰한 것을 주제로 상세히 보도했다.
1999년 1월 10일, 전국 동계체육대회가 창춘에서 개최됐다. 이 체육 축제를 축하하기 위해 1월 11일 문화광장에서 만 명이 아침 연공을 하며 대법을 널리 알렸다. 당시 북방의 날씨가 매우 추워서 다른 방식으로 운동하는 군중은 이미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파룬따파 연공의 웅장하고 순수한 기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번 연공 인원은 더 많았다. 문화광장 중심 장소와 광장 남쪽의 해방대로 및 동서 양쪽 도로에도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당시 지린성 교육TV방송국의 기자가 취재를 왔는데, 인터뷰 대상에는 원로 교수, 원로 간부, 박사생, 군인 등이 있었고, 또 법 안에서 혜택을 본 많은 수련자들이 있어서 심성이 향상된 수련 체험을 이야기했다. 수련자들이 보여준 고요하고 상서롭고, 평화롭고 선량하며, 세상과 다투지 않는 수련자의 풍모는 인터뷰하는 여기자도 매우 존경하고 감탄하게 했다.
전국 동계체육대회가 창춘에서 개최되어 전국 각지의 선수들이 왔다. 그들이 창춘 방문을 헛되이 하지 않고 파룬따파를 듣고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춘시 일부 수련자들이 창춘시 난링 체육장에서 대규모 단체 연공 활동을 열었다.
한겨울 혹한에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온 인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수련자들은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사방에서 모여들었고, 근교의 수련자들도 왔다. 수천 명의 대열이 정연하고 상서롭고 태연했다. 이때 모두가 이미 먹구름이 도시를 덮치는 듯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해 전 창춘시의 마지막 대규모 홍법 연공이었으며, 박해 후에는 사악이 박해의 구실로 삼아 언론에 방송된 첫 번째 대규모 창춘 대법제자들의 연공 장면이었다.
연공이 끝난 후, 일부 수련자들이 외지에서 온 체육인들과 교류하면서 대법의 아름다움과 복음을 그들에게 전했고, 동시에 대법이 중국 대륙 변방 지역에서 전파되는 상황도 들었다. 선수들은 성빈관에 묵었는데, 인민광장의 연공과 홍법은 계속 중단 없이 이어졌고, 선수들이 차를 타고 오갈 때마다 ‘파룬따파’라는 큰 글자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연공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저녁에 선수들이 성빈관으로 돌아온 후, 일부 수련자들이 대법의 정보가 담긴 작은 신문과 사진을 그들의 숙소로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이것이 그들이 박해 전에 마지막으로 받은 대법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 천년의 기다림, 만년의 갈망이 창춘에 온 순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4. 외지로의 전파
한 수련자의 고향은 네이멍구 다싱안링 깊은 곳에 있었는데 교통이 불편했다. 1994년 9월, 갑자기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전보를 받고 그는 귀향길에 올랐다. 의사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가족들은 관과 수의도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돌아온 이후 어머니는 하루하루 좋아졌다. 어느 날 밤, 어머니가 그를 깨워서 말했다. “내 이불 위에 도처에 바퀴가 돌고 있어. 색깔이 매우 예쁜데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너도 땅에 서서 바퀴를 밀고 있던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파룬(法輪)이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족들이 노인의 변화를 보고 모두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싶어 했고, 마을마다 한 명씩 대표가 와서 배워 가족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이 마을에서는 30여 명이 배웠다. 그는 또 둘째 형이 사는 마을에 가서 40여 명을 가르쳤다. 이 사람들은 연공을 매우 성실하게 했고, 연공 중에 많은 신기한 상태가 나타났으며, 신체도 변화가 생겼고 일부 질병도 나았다.
그는 이 과정을 ‘불광이 다싱안링을 비추다’라는 글로 썼다.
프랑스 수련자 토마스는 99년 박해가 발생하기 전에 중국어를 배우러 창춘에 왔는데 당시 겨우 22살이었다. 그의 생각은 매우 단순했다. 영어판 《전법륜》이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중국어로 된 파룬궁 서적을 읽을 수 없고, 많은 법회의 설법과 경문 등을 볼 수 없어서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토마스는 말했다. “내가 창춘에 왔을 때, 흥미로웠던 것은 도시 전체에서 거의 모든 집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집에 최소한 한 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있었는데, 할머니가 아니면 어머니, 아니면 할아버지나 아버지였다. 어디를 가든 약 10분 정도만 걸으면 연공장에 도착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연공장에는 새벽 5시쯤에 약 200명이 연공을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7시에 시작하는 늦은 조가 있었는데 역시 200여 명이 함께 연공했다. 그리고 각 지역에는 모두 법공부 팀이 있었다. 그 광경은 정말 믿기 어려웠다. 도시 전체가 ‘진선인’에 따라 행동하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있었다. 당시의 이 모든 것이 내 개인의 수련과 향상에 매우 강렬한 촉진 작용을 했다. 오랫동안 내가 찾아온 이 모든 것이 여기, 바로 이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창춘에서 그가 만난 모든 동북사범대학과 지린대학의 (파룬궁을 수련하는) 교수와 학생들, 이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었고 인내심을 갖고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순박한 좋은 사람들, ‘진선인’에 따라 사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외국 수련자의 눈을 통해 당시 창춘의 대법 전파 형세를 보고, 수련자들이 사회에서 일으킨 긍정적인 작용을 본 것은 역사적 증거다.
토마스는 대법을 배우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하러 창춘에 왔고, 창춘 수련자들 중에는 이곳의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며, 많은 고등학생, 대학 학부생, 대학원생 수련자들이 《전법륜》에서 지린대학이 언급된 것 때문에 지린대학에 지원했다. 입학 등록하러 온 그날, 학생처에 등록하는 동시에 바로 연공장과 법공부팀에 와서 등록했다. 그들은 모두 매우 영특한 학생들이었고 칭화대나 베이징대에도 갈 수 있는 실력이었으며, 일부 학생들은 《전법륜》 전체를 암송할 수 있었고, 법공부할 때는 암송하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지린대학에 온 것은 이곳의 법공부와 수련 환경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5. 두 차례의 서화전
첫 번째 서화전
리훙쯔 사부님의 전수 강의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5월 10일부터 14일까지 창춘시 하이테크 빌딩[高科技大廈] 전시장에서 첫 번째 서화전이 열렸다.
서예, 국화, 유화, 판화, 목각, 수채화, 천 붙이기, 자수, 전지공예, 깃발, 사진 및 각종 수공예품, 그리고 손으로 베낀 《중국파룬궁》(수정본)과 《전법륜》 등 655점이 전시됐다. 작품은 모두 파룬궁수련자들의 손에서 나온 것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은 84세, 가장 어린 사람은 6세였다. 5일 동안 참관자가 6천여 명이었고, 전국 각지에서 왔으며 미국인들도 있었다.
첫 번째 서화전은 창춘 파룬따파 총보도소가 주최했다. 전시 기간에 성, 시 기공인체과학연구회 지도자들이 전시회를 방문하여 모든 전시품을 자세히 관람했고, 이번 전시회와 파룬궁에 대해 충분한 긍정을 해주었으며, 각각 이번 전시와 파룬궁을 위해 글을 써주었다. 글의 내용은 리훙쯔 사부님께서 사람들에게 심성을 강조하고 덕을 중시하도록 가르치신 것을 찬양하고, 파룬궁이 인민에게 복을 주는 좋은 공법이라는 것, 인민 대중의 심신 건강에 유익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이미 더욱 많은 인민 대중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하며 파룬궁을 널리 알리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참관, 지도, 대화, 휘호 사진들은 모두 《창춘의 파룬따파》(내부자료 전문지) 95년 7월 18일 제6기 4면에 실렸다.
제1회 서화전에는 또 한 작품이 있었는데 수련생이 천목(天目)으로 본 것을 그린 ‘조회가원도(早回家園圖)’였다. 이 그림에는 신묘하고 기이한 선경(仙境)이 묘사돼 있었다. 험준한 산이 연이어 멀리 이어져 있고 누각은 금벽(金碧)으로 빛나며 금빛 다리와 연꽃, 옥 같은 나무와 흰 구름이 있었다. 따뜻한 에너지가 천국 세계를 이루고 있었고 부처님과 보살이 연화대에 발을 딛고 유유자적하게 있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그곳이 우리의 진정한 집이며 그렇게 아름답고 신묘하니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알려주고 있다.
제2회 서화전
1997년 5월 10일부터 18일까지, 리훙쯔 사부님의 전수 강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창춘시 난링 체육장에서 ‘창춘 제2회 파룬따파 서화사진전’이 열렸다.
이번 서화전은 서화계 명사들이 주도하고 창춘 파룬따파 총보도소가 주최했으며, 파룬따파를 널리 알리고 인심이 선으로 향하게 하며 도덕이 승화되고 중국의 민족 전통문화예술을 발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작품 형식이 풍부했고, 서예, 회화, 사진, 목각, 전지공예, 자수, 벽걸이 카펫, 깃발 및 각종 수공예품 등이 있었으며, 접수된 작품이 천여 점이 넘었다.
전시회 기간에는 ‘리훙쯔 사부님 전수 강의 5주년 기념 서화 휘호회’도 한 차례 열었다. 30여 명의 서화계 명사, 아마추어 애호가와 동북사범대 예술학부 학생들, 대부분 대법 수련자들이 사존께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각자의 풍채를 보여주었고, 마지막으로 35미터 길이의 긴 두루마리로 합쳐져 웅장하고 장관을 이뤘다.
서화전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 창춘으로 돌아오셔서 대법제자들이 연 서화전을 칭찬하셨다. “공덕이 무량합니다, 공덕이 무량합니다!”
서화전이 대법 전파에 미친 영향은 정말 가늠할 수 없었다. 참관한 일반인들 중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대법에 들어왔고, 어떤 이는 차례로 인연을 맺었다. 과거에 정진하지 않던 수련생들이 감동해 용맹정진했고, 전시회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정도의 격려를 받았다.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 〈사부를 모시다〉 중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6. 신문잡지의 발행
《창춘의 파룬따파》 작은 신문
창춘 파룬궁수련자들이 신문을 하나 만들어 모두에게 수련 정보를 제공했다. 초기에는 8절지 2면이었고, 후기에는 4면으로 확대됐다. 수련자들에게 무료로 배부했고, 모두가 친근하게 ‘작은 신문(小報)’이라고 불렀다.
1994년 4월 제1기가 발행됐고, 《발간사》에서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창춘에서 여섯 기의 학습반을 열었고, 수련생이 4천여 명에 이르렀으며, 실천을 통해 파룬궁이 인민의 심신 건강을 향상시키고 두 가지 문명 건설을 촉진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으며, 매우 좋은 사회적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셨다. 발간 취지에서는 또한 “인체과학과 우주의 오묘함을 탐구하는 것”을 제시하셨고, 본지에 실린 것은 모두 수련자들의 직접적인 실천 체험이었다.
제1기에서는 리훙쯔 사부님과 파룬궁을 간단히 소개했다. 머리기사로 ‘파룬궁이 베이징을 뒤흔들다’, ‘파룬궁이 ’92년과 93년 동방건강박람회를 뒤흔들다’를 제목으로, 많은 실례를 통해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를 보여주었다. 리훙쯔 사부님은 대회에서 ‘대회 스타’로 평가받으셨고, 파룬궁은 ‘스타 공파’로 평가받았다. 동시에 리훙쯔 사부님은 또한 ‘특별 금상’과 ‘대중이 환영하는 기공사’ 상과 영예 칭호를 받으셨다. 93년 동방건강박람회에서는 대회 유일의 최고상인 ‘변연(邊緣)과학진보상’을 받았다.
머리기사 정중앙에는 ‘파룬궁 기장(氣場) 측정에서 감마선과 열중성자 발견’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중국과학원 고에너지연구소가 LiF(Mg,Ti) 열방출광 탐지기로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 회장을 측정한 결과, 감마선 외에도 열중성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높은 에너지를 발출할 수 있다는 것은 왜 순식간에 악성 종양을 제거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했다. 과학적인 각도에서 병을 제거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원인을 설명했다.
1994년 7월 제2기가 발행됐고, ‘창춘에서의 파룬궁’으로 제호가 바뀌었다. 머리기사에서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전국 각지에서 전수 강의를 하시고 돌아오셔서 명방궁에서 낮반과 저녁반 두 개 반을 열어 대법을 전수하셨고, 3,000여 명이 참가했다고 소개했다.
기공보(氣功報) 기자가 리훙쯔 사부님을 인터뷰했는데, 그중에서 파룬궁은 어떤 사람이 수련하기에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다. “제 학습반에는 90대의 노인도 있고, 6세의 어린이도 있습니다. 고급 지식인도 있고, 보통의 노동자, 농민도 있으며, 기공을 연마해본 사람도 있고, 기공을 연마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두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할 수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또한 일부 수련자들의 수련 체험담이 실렸다. 어떤 이는 다른 기공에서 파룬궁으로 바꿔 연마하게 됐는데, 파룬궁의 리훙쯔 사부님은 “공이 높고 덕이 무거우며, 불법이 무변하다”고 칭찬하며, 자신이 대법을 배우는 목적이 ‘반본귀진’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는 막 배우자마자 천목(天目)이 열려 리훙쯔 사부님이 바로 부처이며, 온몸이 금빛으로 반짝이고 한 면이 황금색임을 보았다. 어떤 이는 파룬궁을 연마하면서 담배와 술을 끊었고, 신체에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했다.
1995년 7월 제6기 신문이 발행됐고 ‘창춘에서의 파룬따파’로 제호가 바뀌었으며, 주최 단위도 창춘시 기공인체과학연구회 중국파룬궁위원회에서 창춘시 파룬따파 총보도소 주최로 바뀌었다.
반년이 지나 1996년 초, 중앙 ‘기공과 인체과학’ 9인 소조는 국무원의 정신에 따라 기공을 국가체육위원회 관할로 이관했다.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첫 번째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중국기공협회’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셨고, 더 이상 그곳의 ‘직속 기공사’도 하지 않으셨다.
이후에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북경 노수련생에게〉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국가체육총국에 한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 내가 기공과학연구회에서 탈퇴한 목적은 그런 소위 기공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 소위 기공들은 바로 돈과 재물을 사취하기 위한 것으로, 소위 말하는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기공 역시 돈을 위한 것이다. 무슨 기공사 평가를 한다는데 그것은 몇십 년간 수련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평가하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며 사회에 대해 해로운 것으로 사람의 각종 좋지 않은 마음을 조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사람의 이런 집착심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단호하게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다.” 파룬따파는 사회에서 전해져 나가면서 대법이 정확하고 순수하며 변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형식을 따라 발전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했다.
이번 호부터 작은 신문은 2면에서 4면으로 늘어났다. 이번 작은 신문에는 모두 리훙쯔 사부님의 전수 강의 3주년을 기념하는 ‘창춘 첫 번째 파룬따파 서화사진전’의 소개와 작품 사진이 실렸다.
1996년 1월 10일, 사부님께서는 흔쾌히 제호 ‘창춘에서의 파룬따파(法輪大法在長春)’를 써주셨다. 신문은 리훙쯔 사부님께서 직접 쓰신 글씨로 바뀌었는데, 바르고 두텁고 엄숙한 예서체가 뚜렷이 눈에 띄었고, 오른쪽 위에는 파룬따파의 표시인 파룬 도형이 있었다. 머리면 위쪽에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직접 쓰신 ‘창춘에서의 파룬따파’의 사진이 실렸다.
창춘은 사부님의 고향이고, 대법이 여기서부터 전해졌으며, 사부님께서는 창춘에서 일곱 기의 학습반을 여셨고, 은택이 널리 퍼져 법을 배우고 공을 연마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의 수련을 지도하셨고 작은 신문도 순수하게 대법 수련의 귀중한 역사를 기록했다.
이번 호의 작은 신문 전체 주제는 법공부와 수련 체험을 교류하는 것이었다. 창춘 보도소가 어떻게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모두를 진수하고 착실한 수련으로 인도하는가’, 단체 법공부와 자습, 법 공부와 연공, 《전법륜》 학습과 사부님의 다른 설법 학습, 법공부와 토론 등의 관계 바로잡기, 보도원은 어떻게 자아를 내려놓고 ‘일심으로 수련을 위하고 일심으로 대법을 위하는가’, 개인 수련에서 어떻게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고 명리(名利-명예와 이익)의 장(場)을 벗어나는가’, 해외 수련생이 창춘에 와서 교류하며 어떻게 대법을 널리 알리고 자신을 향상시켜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법을 얻게 하는가 등이 실렸다.
수련자들은 교류 중에 이미 점차 사부님에 대한 감사에서 대법에 대한 이성적 인식으로 승화됐다.
출판발행부문의 지지
출판부문의 출판발행
1995년 8월,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가 창춘출판사에서 발행됐다. 책에는 리훙쯔 사부님께서 창춘, 베이징, 광저우에서 파룬궁 보도원을 접견하실 때의 설법 및 문답 내용이 수록됐다.
1996년, 《전법륜》이 베이징시에서 ‘최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창춘 신화서점에서 리훙쯔 사부님의 대법서적 《전법륜》과 《파룬궁(수정본)》을 판매했는데 당시 서점 판매량이 매우 높았고 베스트셀러였다. 창춘 신화서점의 판매 담당자들은 매우 놀라워했다. “중고등학교 계절성 교과서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빨리 팔리는 책은 없었습니다.”
지린성 교육TV방송국의 방송
1999년, 지린성 교육TV방송국 ‘건강ABC’ 프로그램은 동계체전이 창춘에서 열리는 것을 계기로 파룬궁의 각 방면에 대해 취재하고 연속적으로 추적 보도했다. 1월 11일, 기자들은 문화광장에서 1만 명이 연공하는 장면을 촬영하고 연공하는 수련자들을 인터뷰했다. 그 후 수련자들의 직장 환경과 가정을 방문해 대법 수련 후의 변화 체험을 취재했고, 리훙쯔 사부님의 전수 강의 영상도 방영했다. 또한 고등교육기관 연구원들이 작성한 논문 ‘파룬궁이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건강 효과가 뚜렷하다 – 창춘시 500명의 파룬궁수련자 심신건강 상태에 대한 연구’를 방영했다. 이 논문은 1998년 지린성 기공과학논문보고회에서 1등상을 받았다. 두 명의 고등교육기관 연구원이 심리건강 각도에서 파룬궁의 질병 제거와 건강 유지의 기적적 효과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전에 창춘시에서 대규모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중에서 여러 연령, 여러 질병, 발병 시간의 길고 짧음, 병세의 경중 등을 분류 분석해 과학적으로 파룬궁수련자들이 수련 후 신체 변화의 지표를 반영했고, 파룬궁이 ‘진정한 과학’임을 실증했다.
‘난타이내외(蘭台內外)’ 잡지의 보도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자신이 법 속에서 이익을 얻었고, 모든 기회와 각자의 능력을 이용해 대법을 널리 알렸다.
‘난타이내외’ 잡지는 지린성위원회 문서국의 간행물(국내외 공개 발행, 성급 2급 간행물)이다. 1998년 3월부터 1999년 7월 20일 이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파룬궁이 창춘에서 전파되는 상황을 보도했다. 파룬궁에 관한 소식과 거리에서 연공하는 사진을 포함해, 그중에는 제9회 동계체전을 맞이해 창춘에서 열린 1만 명의 문화광장 홍법 연공의 소식과 사진, 당시 국가체육위원회 주임이 지린성과 창춘시 일부 관리들의 수행 하에 현장을 참관하고 인터뷰에 응한 소식과 사진이 있었다.
1998년 ‘난타이내외’ 잡지 ‘건강을 기원합니다’ 난에 게재된 ‘질병 제거와 건강 유지에는 파룬궁이 최선’이라는 글과 창춘 파룬궁수련자들이 리훙쯔 사부님의 전수 강의 6주년을 경축하는 단체 연공 사진이 실렸다.
7. 창춘에 온 국가체육총국 조사연구팀
1998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국가체육총국 기공심사조사연구팀 3명이 창춘에 와서 파룬궁의 상황을 조사했다. 창춘 보도소 책임자가 보고를 했고, 조사팀은 수련자들의 아침 연공을 참관하고 일부 수련자들을 인터뷰했으며, 20일에는 각계 수련자 52명과 좌담회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조사팀장 추위차이(邱玉才)는 이렇게 말했다. “조사를 통해 알게 된 바로는, 창춘에는 10여 만 명이 파룬궁을 연마하고 있으며, 게다가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10여 개의 대학교 교수, 박사과정 지도교수, 고위 간부가 있고, 또 노동자에서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각 계층에 모두 있으며, 확실히 공효(공법의 효과)가 매우 뚜렷하다. 이 방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파룬궁의 공법과 공효가 모두 좋고, 사회의 안정과 정신문명 건설에 대해 효과가 매우 뚜렷하다고 생각하며, 이점은 충분히 긍정해야 한다. 만약 이 공법이 근본적으로 인민의 심신 건강에 유익하고, 국민의 근본 이익에 유익하다면, 우리는 마땅히 크게 지지해야 한다. 국민이 옹호하고 국민의 심신 건강에 좋은 것이라면 우리는 지지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조사의 영상 기록은 당시 사회에서 널리 유포됐고 파룬궁수련자들의 신기한 질병 제거 이야기와 도덕 향상의 생생한 사례는 매우 감동적이어서 미담이 됐고,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게 했다.
국가체육총국에 등록 신청을 하고 파룬따파의 태도를 반영하기 위해, 1998년 3월, 연구회는 두 권의 책을 편찬했다. 하나는 ‘파룬궁 건강 효과 부분 조사’로, 그중에는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됐다. 첫째는 ‘창춘 파룬따파 수련자 심신건강 100례’, 둘째와 셋째는 다롄 지역과 베이징의 어느 구의 대법 수련자 질병 제거와 건강 조사 보고서였다. 이 책을 모두가 간단히 ‘부록2’라고 불렀다. 그중 ‘창춘 파룬따파 수련자 심신건강 100례’는 지린성 각 지역의 대법 수련자들의 심득 체험 중에서 신체 회복과 도덕성 회복 각 50례를 선별한 것이다. 그중 병세의 상황은 각기 달랐다. 불치병, 만성병, 오래 치료해도 낫지 않던 질환, 갑자기 발병한 질환 등이 연공 후 모두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치유됐고, 어떤 질환은 심지어 순간적으로 치유됐다. 허약한 사람이 건강해지고, 허리가 굽은 사람이 허리를 폈으며, 노화가 회춘하고 흰 머리가 검어지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하나하나가 기적이었다. 수련 후 도덕성이 회복된 예도 다양했다. 가정이 화목해지고, 주운 돈을 돌려주고, 뇌물을 거절하고, 관대하게 남을 돕고, 탕자가 새 사람이 되고, 사람을 구하고 불을 끄고, 굴욕을 참고 압력을 견디며, 익명으로 기부하는 등, 하나하나의 수심중덕(修心重德, 마음을 닦고 덕을 중시함)의 사례가 마음을 울렸다. 게다가 모두 실명을 제시했고, 각 대법제자의 수기에는 모두 가정 주소, 직장, 성별, 연령을 포함한 전화번호까지 표시되어 있었으며, 편찬 과정에서 상세한 대조를 거쳐 진실하고 오류가 없었다.
부록3 ‘파룬궁수련자 개인 체험자료 편집’은 전국 각지 80여 명의 대법제자가 자신의 수련 이야기를 들려준 것을 선별했고, 창춘 보도소도 네 편의 원고를 선별해 그중에 편입됐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사람을 감동케 했다. 바로 책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사부님께서는 전통적인 습관을 바꾸어 대법 수련의 문을 속인 중에 열어 놓으셨고, 수련이라는 이 현묘하고 초범적인 과학을 천하에 널리 알리게 하셨다. 그리하여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마침내 고통과 미혹 중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곳을 보게 됐다. 그들은 파룬불법(法輪佛法)의 감화 아래 깨달았고, 그들은 더 이상 금전과 개인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게 됐으며, 그들은 더 이상 굴욕과 고통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게 됐고, 그들은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았으며,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왜냐하면 파룬불법이 그들에게 하나의 광명대도(光明大道), 우주특성 ‘진선인’에 동화하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인 중에 있으면서도 속인을 초월했으니, 어떤 이가 그들을 오늘날의 ‘신인류’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계속)
(명혜망 파룬따파 전파 20주년 응모작품)
원문발표: 2012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2/6/6/258467.html
简体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6/2584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