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국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6년 6월의 어느 날 밤, 경기도에 살고 있는 대승불교를 했던 한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좋은 수련법을 찾았으니 지금까지 했던 것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며 서점에 가서 전법륜을 사가지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연락을 해 주신 분과 만나 서점에서 전법륜을 사서 경기도로 가보니 스님은 만나자마자 “이제부터는 전법륜을 읽고 연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연공비디오를 틀어 놓고 5가지 연공 동작을 익혔습니다. 스님이 그동안 하던 것을 버리고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니까 저는 스님을 믿고 무조건 열심히 해보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부터 무조건 전법륜을 읽고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전법륜을 읽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온 몸이 몹시 가려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신기해 하셨습니다. 후에 저는 전법륜을 읽어 나가면서 그것이 사부님께서 몸을 청리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밤에 잠을 잘 때에도 법공부 하는 꿈을 꿀 만큼 법공부와 연공에 매진하였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허리가 몹시 아파서 앉아 있는 것이 매우 힘들었는데 처음부터 법공부를 하면서 3시간 이상을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 거뜬히 견딜 수 있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는 가운데 허리는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게 나았고 그렇게 힘들던 관절의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각종 속병도 언제 나았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졌습니다.
수련초기에 전법륜에 나오는 몇 가지 내용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법공부를 하던 중 책 속의 글자들이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글자가 한자로 보이기도 하는가 하면, 글자 하나하나가 밝게 빛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건너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고 바로 그 순간 차 한 대가 내 앞을 휙 지나갔습니다. 하마터면 차에 치일 뻔 한 상황이었지만 무사했던 것은 사부님의 법신께서 저를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불이 나 방안의 옷과 다른 물건들이 모두 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대법 서적과 대법 옷, 법상 등 대법과 관련된 것들은 하나도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저는 참 감사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대법과 관계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소중하여 다른 공간에서도 보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혼자 수련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에야 우리지역에도 단체 연공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 지역의 정체 속으로 들어가 9일 학습을 하고 그 이후부터는 단체 연공,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 즉 법공부와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수련생이 있어서 너무 좋았고, 수련생들과 함께 수련하니 매우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정체수련에 들어가면서 오직 수련을 제1위에 놓고 진상, 발정념, 법공부, 연공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혼자 연공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수련하면서 일어나는 일은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주변 수련생이 말해 주었기 때문에 저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수련했을 때 어느 날 긴 시간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과격한 말과 행동, 아들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하나하나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 나니 마음은 어느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늘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만 했지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내 뜻대로 커주지 않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집착하면서 나의 생각을 강요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잘못했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우러나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남편과 아들은 지금까지 나를 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변해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는데,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수련을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해서 늘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법공부, 발정념, 진상 등을 많이 해서 얼른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심해 집착이 생겼는지, 다른 아들과 같이 살고 계시던 어머님이 병들어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이 아무런 말도 없이 어머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다 놓고 가버렸습니다.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방도 두 개 밖에 없는데 다 큰 아들 방에 어머니를 함께 모셔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욱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지금도 다른 사람에 비해 수련이 뒤떨어지는데 어머니 병간호까지 하면서 언제 부족한 수련을 채울까 하는 마음에 다른 형제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수련자로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내가 잠시 마음을 잘못 먹었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어머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병든 어머니를 모셔야 했고, 진상과 단체 법공부, 연공에도 빠지지 않으려니 내 몸은 더 바빠졌습니다. 그래도 오직 대법이 좋아 수련에만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다른 일은 하나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어머님께는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우시라고 했는데 얼마 안 되어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때 ‘전법륜’의 한 단락 법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업력은 자기가 갚아야 하며, 누구도 감히 이 이치를 파괴하지 못한다.” 어머니께서는 어쩌면 제가 전생에 지은 빚을 받으려 오셨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또 ‘파룬따파하오’를 가슴에 담고 가셨으니 참 복이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련한 지 1년 정도 됐을 때, 수련생의 권유로 천국악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수련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던 저는 같이 수련하고 있던 주변 수련생이 함께 천국악단에 참가하자기에 천국악단이 정확하게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한다고 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악기는 알토 색소폰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당시 악기라는 것을 다뤄 본 적도 없거니와 색소폰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악기였습니다. 더군다나 악보 보는 능력도 없었고, 박자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악기를 받아 들자 저는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때 ‘전법륜’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며,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는 한 단락 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제자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단지 알토 색소폰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한다’는 사(私)를 내려놓고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음악에 대한 아무런 기초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악보를 보고, 박자를 맞추며 악기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레슨을 받으며 피나는 연습을 했지만 악보를 보고 가락을 연주해 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같이 연습을 하고 있는 수련생들도 자기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서로 격려했습니다. 나는 용기를 얻어 또다시 연습을 거듭하면서 드디어 조금씩 음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음도 박자도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색소폰으로 대법 음악이 연주되어 나오자 저는 스스로 감격스러웠습니다. 아득하기만 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 길은 멀기만 했습니다. 연습을 거듭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에 비해 엄지손가락이 유난히 짧았던 저는 음을 누를 때마다 통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은 퉁퉁 부어 아프고 고통은 심했습니다. 그래도 행사에 참여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은 한 달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또 마음에서 ‘그만 하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 때 문득 힘들 때마다 그만 둔다면 어쩌면 이 수련마저도 보장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통도 참아가며 계속 연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달 정도 지속되던 극심한 통증이 어느 날 멈추어서 보니 엄지손가락이 다른 사람들처럼 길어져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주변 수련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사부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시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서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는 사부님의 이 말씀을 실증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기 시작할 때 김해에서 서울까지 연습을 하러 갔습니다. 짧은 거리가 아니었지만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하면서 대법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사부님께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이제 저도 제법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이 들었을 때부터는 홍콩, 대만 등 다른 나라의 천국악단 행사가 있을 때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많은 것을 지불해야 했지만 저는 그것이 전혀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행사에 참여해서 함께 진상을 하고 돌아오면 저는 또 다른 하나의 씬씽제고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지역 수련생과 정체를 이루기 위해 단체 법공부, 단체 연공, 단체 진상활동에 무조건 참여했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지역 탈당 센터, 공항 등에서 중국인에게 진상자료를 건네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구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파룬궁 소개책자를 넣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간단히 홍법하고 자료를 건넸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하면서 받아 가곤 합니다.
저는 션윈이 올 때 처음에는 마음이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말도 제대로 잘 못하고, 마케팅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컴퓨터도 못하니 뭘 할까 망설이다가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션윈 전단지를 돌리기로 했습니다. 션윈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션윈을 알리다 보면 연이 있는 사람들은 표를 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올해에는 드디어 저도 대구 거점에서 홍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지역 수련생과 정체로 홍보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거점에서 표를 많이 팔아야겠다는 우리 지역 수련생들의 집착이 강해서 그런지 표가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교류를 하고, ‘우리 팀이 표를 팔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센터를 통해 표를 사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당장 내 앞에서 표를 사지 않는 것은 나의 마음을 관통해 온다는 것을 알았고 어디서 무엇을 해도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서는 순정한 마음으로 하기만 하면 결국 그 중생은 구도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대구 거점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아들은 목에 구멍이 났다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션윈을 통해 중생을 구도해야하는데 아들이 이 시점에서 수술을 하는 것은 중생구도에 교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발정념하면서 저는 아들에게 션윈공연을 보고 나면 좋아질 수 있으니 션윈공연이 끝날 때 까지만 참으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 참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션윈 공연을 할 때 아들은 대구까지 친구를 데리고 가서 공연을 보았습니다.
션윈이 끝나자 아들이 큰 병원에 가서 목을 수술하겠다고 했으나 나는 작은 병원에서 한 번 더 검사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병원에 갔다 온 아들은, 수술할 필요도 없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엄마 말이 맞다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저는 아들을 보면서 직접 수련은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중생구도에 협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감당하는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직 수련이 좋아 수련에만 마음을 놓고 몇 년을 살다 보니 좁고 지저분하던 집에서 깨끗하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렇게 힘들게 했던 가족들도 이제 모두 안정을 찾아 저를 괴롭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수련이 준 이익이며, 사부님께서 이 제자를 돌봐주신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요즘 처음 수련할 때보다는 많이 느슨하고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괴롭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사부님께 다짐해 봅니다.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정진 실수해서 사부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년 한국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문장발표: 수련마당>정법수련>해외법회 발언고
문장분류: 2012년 9월 24일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24/26315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2/10/7/1357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