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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밖에 서서 정체를 담론’ – 과거 한 수련생의 말

– ‘과거 한 수련생’의 말

글/ 대륙수련생

[밍후이왕] ‘정체밖에 서서 정체를 말함’ 이 말은 그다지 합당하지 않지만 나는 어떻게 내 생각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교적 협애한 각도에서 담론한 것이다. 사실 나 자신도 완전히 정체 밖에 있는 것은 아닌데, 나는 아직 밍후이왕에 접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해는 나처럼 멀리 뒤떨어진 사람은 마치 정체 중에 맥이 통하지 않거나 혹은 통해도 소량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원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른 수련생에게 떠맡기어 정체를 방해한다. 자신도 잘 수련하려 하고 일언일행을 완전히 법에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일부 수련을 잘한 수련생처럼 매일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잘 감당하려고 한다. 하지만 수련은 착실하게 제고되어야 하는데 원망만 있다면 안 된다.

어떤 때는 이미 구세력이 우리 가족을 훼멸하는 길로 배치한 것을 본 느낌이 든다. 법을 얻은 사람이 법을 실증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면 반드시 대법에 먹칠하는 작용을 한다. 심지어 우리 가족이 세간에 온 것은 함께 모두 대법을 파괴하러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왜, 법을 얻은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진정으로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모르는가?

수련에 대한 원망을 말한다면 그 점에 대해선 나의 어머니 문제가 가장 강력하다. 어머니는 1995년에 법을 얻었는데 수련은 거의 생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전 5, 6년간을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활했다. 법에서 제고되지 못해 마난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몇 년간을 계속해서 그 온전치 못한 신체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집에 오는 매 수련생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고 나름의 대답을 들었지만 시종 내려놓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정말로 법에서 제고하고 싶어 했고, 수련생과 교류하고 싶어 했으며, 수련생의 도움도 받고 싶어 했다. 후에 많은 수련생이 그를 도와주려고 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의식이 혼미해 졌던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10여 년간을 구세력의 배치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없는 것을 절망하면서 사망하기 전 몇 년간을 고통에 시달리며 점차 정념을 잃게 되었다. 사부님의 정법을 바싹 뒤따른 대법제자는 체험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밍후이왕에 문장을 쓴 수련생들이 법 속에 있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듯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걸 보고 부러워한다!

대법수련생이 정확하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고 결국 최후에 ‘병업’의 방식으로 일찍 사망하면 그 부정적 영향은 꽤 크다. 나의 큰아버지는 ‘7.20’ 이후 두려운 마음에 수련하지 못하고 당뇨병에 걸렸다. 그 후 아버지가 큰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큰 아버지가 수련하려고 생각했지만, 수련생과 접촉할 기회가 없는 등 기타 문제로 진정으로 심성이 제고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고 후에 갑자기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자식이 병원에 입원시켰으나 큰아버지는 사망했다. 자식은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한 것은 당뇨병 약을 복용하지 않고 중단했기 때문에 죽음을 초래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그 원인이 나의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상당히 반감을 갖고 분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 가족과의 왕래를 끊고 있다.

우리 부모가 사는 곳은 그리 크지 않은 지역의 마을이다. 내가 알고 있는데 나의 어머니를 포함한 4명의 대법수련자가 이미 ‘병업’의 형식으로 사망했다. 당연히 속인들의 지역 여론이 분분하지만 이걸 피할 방법이 없다. 또 기타 수련생 중에도 부동한 정도로 신체에 마난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간 무수한 진상자료를 배포한 한 아주머니는 수련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확고한데 ‘대법이 나의 생명을 구했기에 당연히 수련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언니는 남방의 한 도시에서 살고 있는데 그는 비록 밍후이왕에 접촉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주변의 수련생과는 아는 사람이 없다. 그녀가 접촉하는 사람들은 다 속인이고 매일 속인의 사소한 일에 바쁘다. 또 내가 한동안 접촉했던 한 부부수련생 부인은 애들 보살핌 등 집안일에 바쁘고, 남편은 직장 일에 바쁜데 더구나 근래에는 곧 직장마저 잃을 것 같은 분위기라 생활의 기반이 흔들릴 지경이다. 나의 남편 동료 중 한 수련생은 단독 수련하고 있으나 역시 나를 만나기 어렵고 수련 상태가 어떤지 모른다. 그 외 다른 일부 수련생들도 가족에게 큰 마난이 있고, 어떤 수련생은 속인의 아내가 관여하고 차단하며 수련생과의 연결을 막고 있다고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부 수련생의 가족도 마난이 크고 속인의 아내가 관여하여 수련생과 연결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더더욱 어떤 수련생은 수련을 포기하고 불교로 갔다. 그리고 그 외 수련생들도…

사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도 안타깝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일부 수련생들이 모두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해 올라오며,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세간에서 정념정행하고 대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하는 일이 나타나지 않게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정체되어 정체 속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수량은 배로 증가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나의 어머니처럼 진심으로 수련하려 하지만 멀리 뒤떨어진 수련생들이 수련 중에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당문화에서 형성된 경직된 사유방식은 문제에 부딪히면 ‘오직 어떻게 올바르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것만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을 줄 모르며, 어떻게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법에서 제고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비록 오직 법 공부를 잘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내려놓아야 할 사람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늘 마음에 닿게 법 공부를 하지 못하니 법 속의 더욱 깊은 내포를 보지 못하여 제고할 수 없다. 또한, 개인수련 중의 인식, 심지어 속인 사상으로 정법수련을 본다. 그러므로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에서 걸어 나오기가 어렵다.

현재 대다수 단체 법 공부 팀은 지역별로 하거나 혹은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수련생들과 함께한다. 법 공부를 조용히 하고 안을 향해 찾고 실속 있게 수련하는 이 두 방면을 잘하고 있는 수련생은 정말로 그가 누구와 함께 단체법공부를 해도, 심지어 단독 수련을 해도 법에서 계속 제고할 수 있다. 소위 뒤떨어지는 수련생의 원인은 수련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뒤떨어지는 수련생일수록 접촉하는 수련생이 제한되어 있다. 주변의 수련생이 도와줄 작용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 안을 향해 찾고 조용히 법 공부를 하며 자신을 제고시키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므로 최종 사악이 부동한 형식으로 박해를 가할 수 있다.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동한 수련생과의 교류도 효과가 좋지 않다. 이것은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이다. 그때 만약 어머니의 주변에 법리가 명백한 수련생이 있었다면 몇 년간을 마난에서 걸어 나오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수련생은 매우 바쁜 관계로 많은 시간을 내어 우리를 도울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평소 여러 수련생이 함께 법 공부하고 연마하며 3가지 일을 했다면, 한 수련생이 어느 방면에서 뒤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면 곧 효과적인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최종 사악에게 박해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속인 사회에 부정적 영향이 대량으로 나타나는 것을 면하게 할 수 있고 대법제자가 ‘불을 끄는’ 형식으로 대량의 정력으로 수련생을 도와주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 정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많이 뒤처진 수련생의 문제는 장기간 쌓인 문제로 하여 설령 대법제자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금방 문제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단체 법 공부 형식은 가장 좋다고 하셨지만, 그러나 금방 단체 법 공부 팀을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단체 법 공부는 결코 일종 형식뿐이 아니다. 강대한 정념의 마당을 형성해야 단체 법 공부의 작용을 비로소 일으킬 수 있다. 만약 단체 법 공부 팀의 수련생이 어떤 사람 마음에서 공동의 문제가 있다면 돌파하기는 더욱 어렵지 않겠는가?

나 자신도 법에서의 인식과 정법노정에서의 탈선이 특별히 커, 대량으로 밍후이왕 문장을 읽고 매년 특별히 추천하는 문장을 많이 보았다. 밍후이왕 문장을 읽으면서 한 특징을 발견했는데 줄곧 사부님의 노정에 따라 가는 대법제자, 특히 초기 바르게 대법 노정을 걸은 대법제자는 현재 밍후이왕에 발표하는 문장의 수량이 적다. 이런 현상은 정체의 손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내가 생각하건대 한편으로는 어떤 대법제자는 3가지 일을 하다 보니 바쁜데 그들이 이 방면에서 걸어지나 온 것을 다 말한다면 책을 쓸 정도로 많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수련생은 많고 많은 일을 했지만, 현재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작은 범위 내에서 또는 자신의 법 공부 팀에서 교류만 한다. 계속 이렇게 한다면 작은 한 부분은 반석같이 튼튼해지겠으나 일부 큰 지역에서는 대법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동안 나는 밍후이왕에서 과거의 수련생에게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혹시 과거 수련생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겠지만, 그러나 만약 완전히 법을 이탈한 사람이 이런 문장을 본들 그리 큰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된다. 사람의 사상은 좀 복잡하므로 보편성이 없다. 내 기억에 2004년경 어머니가 밍후이왕의 문장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수련의 길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 문장은 아마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대법수련을 포기한 수련생의 무서운 결과를 본 내용이었다. 그때 오히려 아버지의 사람 마음을 건드려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여 반감으로 수련할 수가 없었다. “집착심을 품고 수련을 해도 소용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에 우리 집에서 대법제자 한 사람을 만났는데 서로 인사를 하고는 별로 교류도 하지 않았으며 다만 나를 통해 그 대법제자에 대한 일을 들었을 뿐인데, 대법제자의 자비와 경지에 감동되어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진상 CD를 보려 했고 후에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밍후이 문장에서 수련생이 중생을 구도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가 있다.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 (홍음2-법정건곤)를 인용하며 자신에게 요구한다고 했다. 때로 나는 생각하는데 만약 수련생이 정말 그런 심태로 뒤떨어진 수련생을 생각한다면 얼마나 좋은가! 물론 뒤떨어진 수련생의 사람 마음은 ‘정말로 사람을 귀찮게 하고 심지어 나 자신도 때로 방관자로 되어 그들을 봐 줄 수 없다.’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뒤떨어진 수련생은 자신의 힘만으로 구세력의 배치에서 걸어 나오기란 매우 어렵다. 어떤 사람이 그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결과는 대법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일이 나타나고, 더욱 많은 중생이 대법에 대한 오해를 조성하게 한다. 이런 것은 대법제자가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보완해 줘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떤 것은 보완해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수련을 잘한 일부정체는 수련을 잘하지 못한 일부 정체에 대한 태도도 역시 문제다. 모든 대법제자는 마땅히 하나의 공동체가 아닌가? 도대체 무엇이 “과거의 수련을 찾는다.”일까? 내가 이해하건대 만약 다만 책을 보기 시작했다는 그 자체는 과거의 기점일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법에서 문제를 보고 진정으로 대법제자가 되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찾은 것이다. 하나의 좋은 단체 법 공부 환경에서 수련생은 아마 빨리 제고할 수 있다. 다시 책을 보기 시작해서부터 진정하게 대법수련자로 되는 과정이 빠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방면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해 발언권은 없다.

개인의 인식으로는 과거의 수련생이 돌아와도 좋은 수련의 환경이 없으면 쉽게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비록 책을 보기 시작했고 심지어 3가지 일도 시작했지만 정말로 난관[關難]에 봉착할 때 아마 또다시 속인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여러 번 느꼈다. 법 공부를 하여 정념이 나왔으나 언제부터 정념이 다 사라지고 자신이 완전히 속인 같았다.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경험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자신이 도대체 돌아왔는지를 잘 모른다. 이런 현상은 수련을 잘한 부분이 끊임없이 끊어져 나간 것이 그 연고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단지 사람의 마음이 올라와 정념을 밀치고 나갔는지? 혹은 자신이 속인 중에 빠진 시간이 너무 긴 연고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렇게 정진하는 대법제자는, 그들의 언행과 그들의 정념의 마당이 법에 있지 않은 수련생에게 얼마나 깊고 먼 정면의 역할을 하는지는 모른다. 뒤떨어진 수련생의 사람 마음은 비교적 중하여 대법제자의 주의하지 않는 한마디 말이 그 수련생에게는 얼마나 큰 부면적인 영향을 주는지 모른다. 수련을 잘하는 일부 수련생이, 다른 수련생이 정념이 없고 사람 마음이 심하여 상대하기 싫어할 때 정념이 없는 수련생은 오히려 수련이 잘된 수련생이 가지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문제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의 느낌은 늘 자신이 어디가 법에 있지 않고, 왜 법에 있지 않은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수련생이 사부님의 어떤 설법을 보고 어떻게 안을 향해 찾는가를 알려 준다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럴 때 일에 부딪히면 천천히 수련하면서 늘 사람의 사상으로 문제를 보던 습관을 바꾸고 진정으로‘법을 사부로 모시는’것을 배우고 안으로 찾는 기제를 형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수련생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마침 밍후이왕의 문장을 보면 그 문장이 그 사람 마음을 점화해 준다고 한다. 이런 경험은 나도 여러 번 만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이전 몇 년간의 밍후이왕 문장은 다만 자신이 넘을 수 없는 격차만을 보았고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어디에서 손쓸지 몰랐었다.

자신이 좀 깨닫게 됨에 따라 어떻게 마음을 수련하고 많은 문제는 자신이 법 공부를 하여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많은 문제를 법에서 뚜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정념 정행하는 것과 이지적으로 안전에 주의해야 하는 점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악에 대하여 나는 공개된 것인데 ‘만약 집에서 자료를 만드는 것은 이지적인가? 아니면 심성에 도달하면 문제가 없는가, 심성에 도달하지 않으면 이지적이 아닌가? 부친은 어머니의 사망으로 홀로 사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집은 협소하여 함께 살기를 싫어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이런 사람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기에 부친에게 도움이 안 된다. 이전에 한동안 끊임없이 부친에게 사람을 소개해 주고, 또 내가 권하여 삼퇴를 한 속인을 연결해 주었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대할지를 모른다. ‘제자규(弟子規)와 중의치료’ 문제와 관련된 사람에게 CD주고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불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심태로 대할지를 모르며, 어느 정도로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부정적으로 진상 내용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신을 믿지 않고, 진상을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으나 그래도 속인으로 볼 때 소위 착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등등을 모른다.

내 주변에 진상을 모르는 중생이 많다. ‘천안문 거짓 분실자살 사건’마저도 분명히 모른 채 대법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렇게 대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모는 어떻다, 이렇다.”라고 자신과 가장 친한 사람에게서 들었을 때 더욱 깊은 오해를 하있는 것이다.

내가 쓴 이 글은 밖으로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걸어간 길을 자신이 다시 한 번 걸어야 하고 역시 다만 자신이 법 중에서 있어야 비로소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문장발표: 2012년 9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22/26304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