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편: 제자들이 법을 배우고 법을 얻다
글/ 창춘 대법제자
[명혜망](전편에 이어)
1. 법 읽기, 법 암기, 법 필사
사부님께서 7기 강습반을 마치시고, 특히 9월 18일 사부님께서 보도원들에게 해법을 해주신 후 모두가 단순히 공을 연마하고 건강을 지키는 수준과 상태에서 벗어나 이것이 불법(佛法) 수련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법을 잘 배우고 법을 잘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
수련생들의 정진을 격려하기 위해 1994년 9월 15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창춘 대법제자들에게 “수련의 고달픔 속인은 알기 어려워 싸우고 다툼을 복으로 삼는구나 집착을 남김없이 수련하면 고진감래라 진짜 복이로다”(홍음-미혹 속의 수련)라는 시구를 써주셨다. 1994년 10월 8일에는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라는 시구를 써주셨다.
수련생들은 스스로 법공부를 하면서도 정기적으로 단체 법공부 시간을 정해 안정되고 순수한 법공부와 수련 환경을 만들었다.
많은 수련생들이 법을 베끼고 외우면서 많은 체득을 얻었다. 한 수련생은 법을 외우며 제고된 체험을 이렇게 적었다. “‘진정하게 고층차(高層次)로 사람을 이끌다’를 외울 때, 마치 처음 《전법륜》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는 무궁무진한 내포와 층층의 법리가 고도로 집중되어 있어서, 저는 정말로 제 머리가 너무 작다고 느꼈습니다. 속인의 관념을 깨뜨리지 않으면 이렇게 심오한 ‘불법’을 담아낼 수 없기에, 때로는 정수리가 빙글빙글 돌며 위로 자라나는 것 같았습니다(나중에 법을 외울 때 자주 이랬고 그 후에는 법을 읽을 때도 이랬습니다). 오장육부와 가장 미세한 세포까지 모두 흥분을 멈추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물결치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사부님의 자비와 불법의 박대(博大)함이 모두 법 속에 녹아 있었습니다. 마음의 충격과 사부님에 대한 감사가 모두 눈물로 변했습니다.
제5강 ‘파룬(法輪) 도형’을 외울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주가 가장 중심에, 가장 바깥층에, 가장 표면에 있다는 설법에 대해 승화된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전법륜》 책장에서 연화(演化)되어 나오는 많은 오묘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층층 우주의 구성을 이해한 것 같았고, 우주 천체 등에 대한 이해가 매우 광활하게 느껴졌습니다. 우주 천체의 광대함이 끝이 없는 듯 아득했고, 사유가 빠르고 무한히 확장되는 것 같았으며, 마치 눈앞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은 《전법륜》을 14번 필사했고, 사부님의 다른 경서들도 모두 5번씩 필사했다. 이는 법공부 팀에서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때는 사부님의 어떤 법 구절이라도 출처를 찾을 수 있었고, 심지어 페이지 번호까지 말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새로운 경문을 내실 때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외웠고, 다음날 법공부 장소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외울 수 있었다. 길든 짧든 상관없이 모두 틀리지 않고 외워 좋은 법공부 환경을 형성했다.
한때 중공 선전부에서 《전법륜》 출판을 금지했을 때 수련생들은 책을 정성스럽게 필사해서 필요로 하는 신수련생들에게 전해주었다.
사부님께서 법을 명확히 설명하시고 엄격히 요구하셨지만 여전히 문제들이 발생했다. 사부님께서는 계속해서 경문을 쓰시며 적시에 수정하셨고, 이를 모아놓은 것이 바로 《정진요지》다. 창춘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더욱 관심을 갖고 신경 쓰셨다.
2. 단체 교류
사부님께서 창춘 보도원들에게 설법하시면서 수련생들의 단체 법공부를 제안하신 이후, 수련생들은 단체 법공부 환경에서 빠르게 제고됐고, 수련 중 만난 문제들이 교류를 통해 해결됐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법공부 형식도 형성됐다. 창춘이 이렇게 앞장서자 중국 각 지역에서 창춘으로 배우러 오는 수련생들이 많았다. 소그룹 법공부 때 자주 외지 수련생들이 경험을 배우러 왔는데, 어떤 이는 친구나 친척의 소개로 왔고, 어떤 이는 창춘 보도소에서 안내한 것이었다. 의문과 혼란을 안고 와서 교류 후 경험을 얻어 돌아갔다. 처음에는 주변 지역에서 왔다가 나중에는 각 성과 시에서 오더니, 그 후에는 해외 수련생들도 왔다.
1997년 12월 29일부터 1998년 1월 3일까지, 대만 지역과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인도네시아 등 국가의 83명 파룬궁수련생들이 관광단을 구성해 창춘에 와서 법공부와 수련 체험을 교류했다.
해외 수련생들은 창춘에서 5일 반 동안 머물면서 창춘 수련생들과 어떻게 법을 배우고 착실히 수련할지, 어떻게 법공부를 조직할지, 어떻게 법을 스승 삼아 교란을 배제할지, 어떻게 법을 널리 알릴지 등의 문제에 대해 교류했고, 밤에는 법공부 소그룹에 참가해 법공부를 했다. 새해 기간에는 혹한과 눈보라를 무릅쓰고 문화광장과 인민광장의 새벽 연공 및 대규모 단체 홍법 활동에 참가했다. 해외 관광단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사실이 창춘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창춘의 홍법에도 도움이 됐다.
해외 수련생들은 국제 호텔에 묵었고, 5일 반 동안의 일정은 매우 빽빽했다. 객실과 소회의실, 대회의장에서 대규모, 소규모, 개별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교류를 했다. 창춘 수련생들은 또한 대만 수련생들로부터 1997년 11월 사부님께서 대만에 가셨던 상황을 들었고, 대만에 이미 17개 시·현에 2천여 명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다는 것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대법이 발전하는 성황을 알게 되어 크게 고무되었다.
한겨울이라 창춘의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였는데, 특히 대만 수련생들은 홑옷만 입고 왔기에 창춘 수련생들은 자신과 가족의 솜옷을 그들에게 입혀주었다. 대만에서는 눈을 볼 수 없어서 그들은 특별히 눈 오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결국 꽤 두껍게 눈이 내렸다.
해외 수련생들은 또 창춘시 승리공원 허우산 앞과 지린대학 명방궁 광장에서 노수련생들이 들려주는 사부님의 초기 연공과 전법(傳法) 상황을 들었다. 1월 3일, 해외 수련생들이 창춘을 떠나 귀국할 때 모두가 공항에 나가 환송했고 서로 아쉬워했다. 그들은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일화와 사부님 고향 제자들의 법공부 수련 경험을 세계 각지로 가져갔다.
이후 각지에서 창춘으로 교류하러 오는 수련생들이 점점 많아졌고, 해외의 일부 책임자들도 와서 대법을 널리 알리는 경험을 교류했다. 1998년 여름, 창춘 수련생들은 싱가포르 책임자 부부를 맞이했고, 명문 호텔에서 법회도 열어 어떻게 보도원 역할을 잘 할지, 어떻게 자신을 잘 수련할지, 어떻게 수련생들을 잘 이끌지,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도록 인도할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류했다.
3. 창춘 대법제자의 심득교류회
첫 집결
1994년 11월 20일, 창춘 대법제자 제1회 심득체험 교류회가 지린대학 강당 명방궁에서 열렸다. 1,700여 명이 참가했고 17명이 발언했으며, 5시간 넘게 진행됐다.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명방궁 안은 빈자리가 없었고 수련생들의 수련 심득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한 퇴역 장교는 건강상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퇴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불치병을 앓고 있어서 병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건강하고 얼굴에 홍조가 가득하다고 했다.
한 할아버지는 자신과 아내가 어떻게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으며 서로 격려하면서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 대법의 기적과 신기함을 목격했는지 이야기했다.
한 여성 대학원생은 파룬궁 수련을 통해 어떻게 허영심을 버리고 결벽증과 사치품에 대한 집착을 없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번 법회는 모든 참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으며, 동시에 한마음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끝까지 수련하겠다는 결심을 굳건히 했다.
이번 교류회의 일부 심득 체험은 파룬궁 연구회가 주편하고 중국 라디오TV출판사에서 정식 출판한 ‘파룬불법 수련 이야기(法輪佛法修煉故事)’에 수록됐다.
이 일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의해-전국 일부 보도소 소장들을 위한 광저우(廣州)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창춘(長春)에서 녹화를 했는데 수련생들의 이야기가 몹시 생동감이 있어 듣는 수련생도 아주 감동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눈물까지 흘렸다. 회의가 아주 생기발랄하였고 분위기 역시 아주 좋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매우 기뻐하였다. 마치 당신이 방금 말한 것처럼 그 장(場)에 나 본인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모자라는 것이 없었으며, 마치 내가 학습반을 연 것과 같이 그 장(場)은 대단히 강했다. 그것은 法輪功(파룬궁)이 집결하여 법회를 연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효과가 아주 좋았다. 장래에 수련생이 많아지면 수련생들은 이런 형식으로 심득체험을 말할 수 있다. 법 공부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교육이 된다. 수련생 자신이 공(功)을 배운 이후 어떤 수확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어떤 방면에서 본다면 이는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도 더욱 생동적이다.”
이번은 창춘시, 전 중국, 전 세계의 첫 번째 대법 법회였으며, 우주의 신불(神佛)들께서 우리와 함께 법 속에서의 깨달음을 나누며 사부님의 제자들이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법 속에서 승화한 것을 찬탄하셨다.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지 2년 반 만에 수련인들은 방방면면에서 본질적으로 승화하고 변화했다.
이번 법회는 정말 신성하고 특별했다. 동북의 초겨울이었지만 드물게 맑고 온화했으며, 태양이 내리쬐는 한 줄기 한 줄기 빛까지도 뚜렷한 입체감이 있었고, 주변의 앙상한 나무 가지까지도 빛을 발했으며, 회색 빛 검은 기와도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문 앞에는 하얗고 밝은 두 개의 빛기둥이 서 있었고, 사람들이 질서 있게 입장함에 따라 한 무리 한 무리의 빛구름, 한 줄 한 줄의 빛덩어리, 특히 모자 모양의 비행접시 같은 빛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통해 법회장에 들어갔다. 천목(天目)이 열린 일부 수련생들은 우주의 신불들이 모두 오셨으며 나뭇잎 위에도 계신 것을 보았다. 이 신기하고 신성한 장면은 당시 녹화되어 창춘의 각 법 공부 소그룹에서 비디오로 상영됐으며, 이는 초기 수련생들이 모두 직접 경험한 역사적 증거였다.
이후 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셀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창춘에도 이렇게 많은 수련생을 수용할 만한 장소가 없어서 법회는 각 연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조직하게 됐다. 그 기간에 아동공원 보도소에서 노동자문화궁 5층 영화관과 1층 가장 큰 영화관에서 두 차례 법회를 개최했는데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다. 그중 97년 1월 26일 법회에서는 13명이 발언했고, 이후에 창춘 보도소의 심사를 거쳐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되어 창춘시에 널리 유포됐으며, 수련생들의 수련 제고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법을 얻는 데 큰 촉진 작용을 했다. 98년에는 각 연공장에서 법회를 여는 것이 매우 보편적이었고, 동성 영화관, 재정세무전문대학 강당, 트랙터공장 클럽에서 모두 대형 법회를 열었다. 99년 ‘4.25’ 당일에는 창춘에서 두 차례 대형 법회가 열렸는데 녹원 연공장은 포병여단의 부대 강당에서 개최했다.
한 건 한 건의 죽음에서 살아난 놀라운 기적, 한 건 한 건의 심성 수련 과정에서의 승화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현장의 모든 사람을 진동시켰다. 수련생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들, 학계 동료, 정부 기관 관리, 군부대 병사와 지휘관들까지도 포함됐다. 그곳은 인간 세상에서는 이미 찾아볼 수 없는 정토(淨土)였으며, 자비롭고 순수한 에너지가 속세의 오염을 씻어내고 참석자들의 마음을 정화시켰다. 고요 속에서 묵묵히 변화하고 승화하며 우주의 대법에 동화되어 갔다.
법회라는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수련 형식이 이렇게 점점 더 성숙해져 갔다.
보도원 양성
1995년 10월, 지린대학 외국어대학 소강당에서 첫 보도원 단체 법공부 교류가 진행됐는데 당시 300명 가까이 참가했다.
이번 보도원 교육반은 보도원들이 ‘진수(眞修)’에서부터 ‘무엇이 공인가(何爲空)’까지 9편의 경문을 잘 배우도록 돕는 것이었다. 각 연공장의 보도원들이 이 경문들을 배우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했고, 한 어린 제자는 ‘깨달음(悟)’을 외웠으며 거기에다 ‘명지(明智)’에서 말씀하신 비교적 약한 사상업력과 자신의 좋지 않은 사상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진정으로 우주 대법의 법리에서 인식을 승화시켰다. 단체 법공부 교류를 통해 사부님의 설법에 대한 이해가 더욱 명확해지고 깊어졌으며, 자신의 수련을 더 잘 파악하고 안정되게 할 수 있게 됐고, 연공장 수련생들을 더 잘 이끌 수 있게 됐다.
대법의 홍세(洪勢)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법을 얻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많은 수련생들이 막 법을 얻자마자 그 지역의 보도원이 됐기에 보도원들의 자질 향상이 관건이 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도원이라면 그의 책임은 절의 그 주지(住持)만 못하지 않다고 나는 말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진정하게 고층차로 공을 전수함은 바로 사람을 제도하는 문제이다. 진정하게 전업으로 수련하는 사람 그 역시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는 종교 중에서 수련할 뿐이고 우리 대다수는 사회라는 이 형식 중에서 수련할 뿐이다. 그렇다면 기왕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인바, 여러분이 함께 연공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함께 제고한다면, 그럼 이 담당자[主持人], 다시 말해서 이 보도원은 절의 그 주지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내가 말하는데 말법시기에 우리 파룬따파 수련생의 心性(씬씽)은 화상보다 더욱 높다. 나는 나의 수련생의 심성이 화상보다 높다고 말했는데 그럼 우리 보도원은 절의 그 주지, 방장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일부 보도원은 이 요구에 도달했는가 도달하지 못하였는가?”[파룬따파의해-베이징 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에 관한 의견] “여러분은 꼭 이 선두 역할을 잘하여 수련생을 잘 조직해야 하며 이 파룬따파를 더욱 잘 발양(發揚)되고 빛나게 하여 인류에게 복을 주게끔 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낮은 층차에서 말한 것이다. 실제적으로 역시 이러하다.”(파룬따파의해-베이징 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하신 건의)
1998년 1월 하순부터 2월 하순까지, 설 연휴 기간을 이용해 파룬따파 창춘 보도소 보도원과 법공부 조장들이 단체 법공부 교육을 진행했다. 이번 교육은 분산 법공부와 집중 토론 교류를 결합하는 방식을 채택해 매우 좋은 효과를 거뒀다. 모두들 보도원은 우선 착실히 수련하는 사람이며 착실하게 수련하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잘 알게 됐고, 보도원으로서의 책임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과 보도원을 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수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모두 조를 나누어 교류를 진행했고 일부 교류 원고는 ‘창춘의 파룬따파’ 제8기 소식지에 실렸다.
(계속)
(명혜망 파룬따파 전파 20주년 응모작품)
원문발표: 2012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正體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2/6/6/258466.html
简体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6/2584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