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윈윈 기자 시드니 보도) 파룬따파(法輪大法) 전파 19주년이라는 특별한 날을 맞이해, 초기에 여러 차례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했던 시드니 파룬궁수련자 타오웨팡(陶月芳)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시 학습반 참가 경험을 회상했다.
법을 얻다
90년대 초, 타오 씨는 건강을 위해 여러 기공을 수련했지만 병은 낫지 않았다. 그녀는 높은 수준의 사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친구의 소개로 베이징 천단(天壇) 공원에서 파룬궁을 접하게 됐다. 파룬궁은 심성 수련을 첫 자리에 두었는데, 이 점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수련을 결심하게 됐다. 그때는 1993년 늦가을이었고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이어서 그녀는 동방건강박람회에서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뵙게 됐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사부님은 무척 친근하셨고, 마치 어디선가 뵌 적이 있는 것 같았어요. 사부님께서 발산하시는 기운은 성스럽고 자비로우며 온화하셨죠. 제가 사부님 바로 옆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사부님을 보자마자 몰려들어 겹겹이 에워싸고 질문을 쏟아냈어요. 사부님은 인내심을 갖고 하나하나 대답해주셨죠.“
“저는 사부님께 제가 가부좌를 할 때면 이상한 소리가 자주 들린다고 말씀드렸어요. 사부님께서는 제 말씀을 듣고 먼 허공을 바라보셨고, 저도 사부님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봤지만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죠. 하지만 그날 저녁 가부좌를 할 때는 그 이상한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어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그것을 청리(淸理)해주셨는데, 그 좋지 않은 것을 제거하셨다고 하셨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사부님께 ‘언제 다시 학습반을 여시나요?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라고 여쭈었죠. 사부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톈진(天津)에서 학습반 개설 공고가 나갈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속으로 ‘톈진은 너무 멀고, 게다가 딸아이가 어제 호주에서 막 돌아왔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신장에서 온 수련생도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순간 저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부님께서 아시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사부님께서 고질병을 없애주시다
“박람회에서는 각 기공사에게 공법 보고를 할 기회를 한 번씩 주었어요. 사부님의 강의실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하지 못했죠. 조직위원회는 대중의 요청으로 사부님 강의를 두 차례나 추가했는데, 다른 기공사들은 이런 성황을 이루지 못했어요. 사부님께서는 보고회에서 다른 기공사들처럼 무슨 공법을 시연하시는 게 아니라, 단지 《전법륜》의 제1강 내용을 일부 강의해주셨죠.”
“강의 중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어서서 마음속으로 한 가지 병을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사부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병을 잡아서 청리해주셨죠.”
“저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어요. 성인이 되어서는 신경쇠약에 걸리고 심한 위장병과 불면증, 두통, 어지럼증이 있었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병으로 가득했어요.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 없어서 옆으로 누워야 했고, 가장 심각한 것은 경추가 어긋난 거였어요.” 그녀는 말했다. “우리 직장에서 제가 가장 유명한 만성질환자였는데, 사부님의 공법 보고회에 참가하고 나오니 이런 만성병들이 다 나았어요. 마치 환골탈태한 것처럼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온몸이 가뿐해졌죠.”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이 자석처럼 날 이끌다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은 자석처럼 타오 씨를 이끌었다. 1994년 설날, 사부님께서 베이징건강박람회 활동을 마치시고 톈진에서 법을 전하실 때, 타오 씨도 ‘따라다니는’ 수련생 대열에 합류했다. 사부님께서 어디로 가시든 그녀도 그곳으로 따라갔다. 그녀는 말했다. “매번 학습반이 끝날 때마다 수련생들은 모두 아쉬워하며 사부님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어요. 사부님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했죠.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몰라요!”
“처음 톈진 학습반이 열릴 때 저는 하루 일찍 도착해서 따뜻한 방을 달라고 요청했어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서였죠. 그들은 저를 가장 따뜻한 방에 배정해줬는데, 제 침대가 문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서 문을 여닫을 때마다 바람이 들어와 오히려 가장 추운 자리가 됐어요. 비록 제가 신수련생이었지만,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빈자리가 많이 있었음에도 자리를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어느 수련생이 이 자리에 와도 똑같이 바람을 맞을 텐데, 애초에 이런 요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했어야 했어요. 어쩌면 제가 이 자리에 배정되는 게 당연했던 걸지도 모르죠.”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사부님께서 톈진 제2기 학습반을 여실 때, 각 지역 수련생들과 따로따로 단체사진을 찍었어요. 제가 키가 좀 컸는데, 어떤 분이 ‘내가 가려지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둘러 모자를 벗어서 겨드랑이에 끼웠죠. 사진을 찍고 나서는 잊어버렸는데, 누군가가 제 모자를 단상 위 사부님의 강의 책상에 올려놓았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가지러 가면서 ‘제 모자예요’라고 말했는데,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았고 아무도 저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마침 사부님께서 들어오시자 저는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죠. 사부님의 강의에 방해가 될까 봐요. 사부님께서는 제 모자를 드시더니 손으로 쓰다듬으시고는 한쪽에 놓으셨어요. 수련생들이 보고는 ‘와, 당신은 정말 좋은 것을 얻으셨네요!’라고 했죠.”
“정말이에요. 사부님께서는 제 머릿속의 좋지 않은 것들을 처리해주시고 제거해주셨어요. 20여 년 전, 제가 막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 병이 들었는데, 우리집이 단층집이라 침대가 창가에 있었고, 제 머리가 벽에 기대어 있어서 바람을 맞았거든요. 그때 생긴 통증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고 어떻게 해도 낫지를 않았어요. 바람이 무섭고 추위가 두려워서 항상 두꺼운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이 두통이 20여 년간 저를 괴롭혔죠.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두통이 완전히 나았어요. 저는 모자를 완전히 벗어던질 수 있게 됐죠.”
사부님께선 늘 제자를 위해 생각하신다
여기까지 말하자 타오 씨는 매우 격동되어, 사부님의 은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며 목이 메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톈진 제2기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는 스자좡(石家莊) 학습반으로 따라갔어요. 강의가 끝나고 모두 사부님과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일이 있어요. 수련생들이 외부 전문 사진사를 불러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한 사람당 적어도 10위안은 들어갈 상황이었죠. 사부님께서 아시고는 수련생들의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찍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한 사람당 사진 한 장씩을 인화해주셨죠. 그래서 한 사람당 1위안만 들었어요.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사부님께서 늘 수련생들을 위해 생각하신다는 걸 알 수 있었죠.”
사부님께서 여신 학습반은 전국에서 가장 저렴했다
“사부님께선 매우 검소하셨어요. 중공이 사부님께서 돈을 긁어모으셨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체험했죠. 사부님께서 학습반을 여실 때, 기존 수련생의 첫 기수 비용은 50위안이었고, 가장 초기에는 40위안에 불과했어요. 다시 학습반에 참가하는 사람은 25위안만 받으셨죠. 당시 파룬궁 학습반 수강료는 전국 기공 각 문파의 수강료 중에서 가장 낮았어요. 게다가 학습반을 따라다닌 기존 수련생들은 반값만 받으셨죠. 파룬궁의 수강료가 너무 낮아서 다른 문파들이 불만을 표시했고, 기공협회에서도 사부님께 수강료를 올리라고 요구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끝까지 움직이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톈진에서 10위안짜리 여관에 묵을 때 사부님도 우리와 같은 여관에 머무셨어요. 사부님은 이렇게 검소하셨고, 다른 기공사들처럼 돈을 긁어모으고 고급 호텔이나 고급 식당을 찾지 않으셨죠.”
사부님께서 마(魔)를 퇴치하신 신기한 일을 회상하며
1994년 6월, 타오 씨는 또다시 정저우(鄭州) 학습반을 따라갔다. 그곳은 간이 철골 지붕으로 된 체육관에서 학습반이 열렸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마를 퇴치하신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사부님께서 강의하실 때,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광풍이 불기 시작했고 우박이 쏟아졌어요. 전기가 나가서 등이 다 꺼지고 폭우가 쏟아졌죠. 이때 사부님께서는 강의를 멈추시고 탁자 위에 가부좌를 하신 후 수인(手印)을 하셨어요. 그리고 다시 강의하시던 자리로 돌아가 앉으셔서 옆에 있던 생수를 단숨에 다 마시시고는, 손에 잡고 계시던 것을 병 안에 넣으셨어요. 그러자 비가 그치고 태양이 나와 빛이 체육관을 비추었고 전체 조명이 다시 켜졌죠.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어요. 사부님께서는 웃으시며 ‘보기에는 그것이 대단해 보여도, 사실 나는 손으로 잡고 싶지도 않아서 병에 가둬버렸습니다’고 말씀하셨어요.”
타오 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부님께서 전국을 다니시며 공을 가르치실 때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제자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업력을 감당하셨는지요.”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늘 그녀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일들을 회상했다. 한편으로는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가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끝까지 견지하며,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실제 행동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보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원문발표: 2011년 5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나의 사부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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