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송눈(松嫩) 대평원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매우 추웠다. 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늘에 기도하며 신들이 민간의 고통을 헤아려 추위를 덜어주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들의 진심 어린 기도에 하늘의 신들이 감동해 한 선녀를 인간 세상에 보냈다. 선녀는 두 움큼의 씨앗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주며 말했다. “이 씨앗들을 심으세요. 모두 자라면 더 이상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여러분의 삶도 기쁨으로 가득 찰 거예요.” 사람들은 감사히 씨앗을 받아 강가에 정성스럽게 뿌렸다. 봄이 되자 사람들의 희망이 담긴 씨앗이 마침내 싹을 틔웠고 꽃을 피웠다. 가지가 무성하고 꽃이 만발하여 생기가 넘쳤다.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이를 ‘장춘화(長春花)’라고 불렀고, 봄이 영원히 그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하늘이 내린 복된 땅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 지내고 복을 기원하는 곳이 됐다. 하늘의 보호 아래 장춘화가 만발한 이곳은 자연의 거대한 변화와 인구 이동, 왕조 교체, 통치 변화를 겪으며 민간에서 부르던 장춘보(長春堡)에서 요금(遼金) 시대의 장춘주(長春州)를 거쳐 청나라와 민국 시기의 장춘청(長春廳), 장춘부(長春府), 장춘현(長春縣)을 거쳐 1947년 창춘시(長春市)로 정해졌다.
복된 땅 창춘의 보물은 먼 역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이 오래되고도 젊은 도시는 지난 세기 말 도심 인구 20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역사는 마침내 오늘에 이르렀다! “천 년의 기다림 만 년의 기대, 신불(神佛)이 인간 세상에 오니 중생들 함께 기뻐하네.”(홍음3-하늘로 돌아감이 피안이라네)
마침내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이 아름답고 복된 도시 창춘에서 전해지기 시작했다.
제1편: 사부님의 법 전수
1) 창춘의 7기 전수반
1992년 5월 13일, 제1기 파룬궁 학습반이 창춘시 제5중학교 계단식 강의실에서 열렸다. 이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사회에 파룬궁을 전수하신 것이다. 이 반부터 첫 번째 파룬궁수련생들이 생겼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오셨군요. 첫 번째 반이라 정말 귀한 기회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준 것은 여러 해를 수련해도 얻기 힘든 것입니다.“
이어서 5월 25일부터 6월 3일까지 이곳에서 사부님께서 두 번째 파룬궁 학습반을 여셨고, 참가 인원은 첫 번째 반의 180여 명에서 2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사부님께서는 기공의 형식으로 법을 전하셨다. 1기와 2기 반에 참가한 수련생들 대부분은 기공 애호가들로,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기 위해 여러 해 연마했던 사람들이었다. 또 불교 거사들도 있었는데, 불교에서 오랫동안 수행했지만 몸이 좋아지지 않고 층차도 올라가지 않았다. 당시 상황에 맞춰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직접 교본 《파룬궁》을 편찬하고 그림을 그려 입장하자마자 모두에게 나눠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다른 기공과 달리 기공의 근본에 대해 말씀하셨다. “낮은 층차에서 말하는 기공은 사람의 신체 상태를 고쳐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고, 고층차에서 말하는 기공은 바로 本體(번티)를 수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우리 중국의 매우 순수한 인체수련법이다.”, “파룬궁은 불가기공수련의 특수한 방법이다.”, “그러나 더욱 많은 연공인들을 제고하게 하고, 본 법문(法門)을 요해(了解)하게 하는 동시에 뜻을 세운 수많은 수련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본 공법을 보급함에 적합한 일련의 수련방법으로 정리해 전수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일반 공법에서 배울 수 있는 것과 그 층차를 훨씬 넘어섰다.”(파룬궁)
이렇게 연공자들에게 매우 높은 ‘덕’을 요구하고, 연공하는 동시에 반드시 ‘심성(心性)’ 수련을 높여야 하며, 우주의 특성인 ‘진(眞)·선(善)·인(忍)’에 동화되고, 탐욕, 이익, 색정, 욕망, 살생, 폭행, 도둑질, 강도, 간사함, 질투 등을 버려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동시에 기공 애호가들에게 오랫동안 공부(功夫)가 늘지 않는 것은 사실 ‘정법’을 얻지 못하고 ‘심성’에 공을 들이지 않아 생긴 결과라고 말씀하셨다.
2기 학습반이 끝난 후, 사부님께서는 자전거를 타고 창춘시를 한 바퀴 돌면서 전체 창춘시를 정화하고 기기(氣機, 치지)를 설치하셨다. 사부님께서 노수련생들에게 말씀하셨다. “창춘시 전체에 다 설치했으니 어디서 연공해도 문제없습니다.”
1992년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승리공원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창춘시 항공클럽에서 리훙쯔 사부님께서 제3기 창춘 파룬궁 학습반을 여셨다. 참가 인원은 이전 두 기의 두 배로 늘어 약 550명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공(功)을 전하는 보고회도 한 차례 여셨는데, 특별히 이 몇 기 반의 수련생들과 친구들을 위해 무료로 병을 조절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처음부터 말씀하셨다.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저는 무조건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당시 현장에 온 사람들은 최소 300여 명이었다. 사부님께서 단상에서 양손을 왼쪽으로 한 번 돌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돌리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큰 파룬(法輪)을 돌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사부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병을 한꺼번에 없애셨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이 매우 감격했다.
1992년 9월 8일부터 17일까지 제4기 반은 승리공원 허우산(猴山) 남쪽, 단 한 길 건너에 있는 성위원회 예술회관에서 열렸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전국 각지에서 공을 전하고 법을 설법하셨고, 1993년 6월 26일에 다시 이곳에서 제5기 반을 여셨는데, 이때 인원은 약 1천 명으로 늘어났다.
앞의 5기 반에서는 사부님께서 먼저 법을 설법하시고, 수련생들이 공법을 가르치며, 그다음 손으로 직접 동작을 교정해주셨다. 동작을 교정하면서 동시에 모두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는데, 한 줌 한 줌 아래로 잡아 밖으로 던지셨다. 6기 반부터는 사부님께서 전체적으로 수련생들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다.
한 수련생이 당시의 경험을 회고했다. “사부님께서 첫 번째 강의를 마치신 후 수련생들의 신체를 정화해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당시 모두 일어서라고 하시고 긴장을 풀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단 하나의 병만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강단 뒤쪽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긴장을 푸세요! 긴장을 푸세요!” 그리고 사부님께서 오른손을 힘차게 휘두르시며 “내려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다음 사부님께서 두 손으로 두 번 탁탁 치셨는데 뭔가를 털어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손을 휘두르시는 순간, 저는 사부님의 오른손에서 옅은 푸른색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녁 수업 때 사부님께서 다시 신체를 정화해주실 때 저는 또다시 오전과 같은 번쩍임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이후에 어떤 사람이 사부님의 오른손에서 번쩍임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직접 신체를 정화해주시는 이 단계를 지나고 나서, 사부님께서는 모두가 스스로 수련을 통해 심성을 높여 신체를 정화하고 높은 층차로 수련하는 목표에 도달하도록 격려하셨다.
창춘 4기, 5기 전수반 기간, 즉 1993년 4월에 《중국 파룬궁》이 군사의문(軍事誼文)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판 발행됐다.
사부님께서는 수련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불법(佛法)’이 무엇인지 인식하도록 하셨다. 자신이 불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근본적으로 속인의, 전통적인, 굳어진 관념을 바꾸고, 편견이 그어놓은 틀에서 벗어나 우주의 특성인 ‘진(眞)·선(善)·인(忍)’에 동화되어 진정한 득도자(得道者)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 시기에 《중국 파룬궁》이라는 책은 초기 파룬궁수련생들의 수련을 지도하는 첫 번째 정식 출판된 대법 서적이었다. 이후에 사부님께서 수정하셨고, 1993년 12월에 《중국 파룬궁(수정본)》이 출판됐다. 1995년 1월 4일, 수련을 지도하는 근본 대법인 《전법륜(轉法輪)》이 출판 발행된 후, 《중국 파룬궁(수정본)》 중문판은 재판 발행이 중단됐고, 《파룬궁》으로 이름이 바뀌어 대법 전파 초기의 읽을거리가 됐다.
창춘 7기 반의 마지막 두 기 반은 모두 지린대학 예술회관 명방궁(鳴放宮)에서 열렸다.
다음은 수련생들의 회고다. “제6기 전수 설법반(1993년 6월 27일~7월 4일)에서 사부님께서는 비교적 높은 법을 설법하셨습니다. 천목(天目)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다른 공간이 존재하며, 모든 물체가 다른 공간에서 그 존재 형식을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강연대 위의 물컵을 오른손에 들고 모두가 주의해서 보도록 하셨습니다. 천목이 열렸든 열리지 않았든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는 왼손의 중지와 엄지로 물컵에서 천천히 작은 물컵을 뽑아내셨는데, 원래 물컵과 똑같지만 크기는 원래 물컵의 4분의 1 정도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두 보았느냐고 물으셨고, 모두가 흥분해서 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다음 사부님께서는 천천히 작은 물컵을 원래 물컵에 다시 넣으셨는데, 이때 작은 물컵이 점점 원래 물컵과 합쳐지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공간의 물체를 실제로 보여주셨는데, 이는 현대과학 연구가 돌파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우주가 얼마나 크냐고 묻는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우주, 그것은 변두리가 있다. 그러나 여래 이런 층차에서는 그것을 모두 가없이 넓고 무한히 큰 것으로 본다. 사람의 신체 내부, 분자에서 미시하의 미립자에 이르기까지는 이 우주와 마찬가지로 크다고 하는데, 듣기에는 아주 허황하다. 한 사람ㆍ한 생명을 만드는 데에 극미시하에서 이미 그의 특정한 생명 성분과 그의 본질이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현대과학이 이것을 연구하기에는 아직 차이가 너무나도 크고, 전체 우주 중에 존재하는 고급지혜성구(高級智慧星球)의 그런 생명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은 상당히 낮다. 바로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도 우리는 돌파하지 못하지만, 다른 별에서 오는 비행접시는 직접 다른 공간 속에서 가며, 그 시공(時空)의 개념마저 변화가 일어나 그것이 오려면 곧 오고, 가려면 곧 가는데, 빠르기가 사람의 관념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전법륜)
1994년 4월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사부님께서는 지린대학 명방궁에서 창춘시 제7기 파룬궁 전수반을 여셨다. 지린성 수련생들 외에도 칭하이, 내몽골, 산둥, 베이징, 헤이룽장 등 10여 개 지역에서 온 700여 명의 수련생들이 참가했다. 천산만수(千山萬水)를 넘어 대법을 찾아온 사람들 중에는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고, 가족들이 들것으로 들고 온 사람도 있었으며, 먼 산촌에서 부부가 짐을 지고 와서 짐 속에 아이를 태우고 온 사람도 있었다.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홍음2-신의 길은 어렵나니) 모든 수련생이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는 동시에 주간반과 야간반 두 개의 반을 열어 3천여 명이 대법을 들을 수 있게 하셨다.
7기 반의 야간반 설법 내용은 초기 기공의 차원을 훨씬 넘어섰고, 직접 우주 대법을 설법하셨다. 이후에 사부님께서는 각지에서 반을 열면서 설법한 내용과 설법 녹음을 수련생들에게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게 하셨는데, 설법 중의 구어와 어조를 포함해서 그 옮겨 적은 문자를 모두가 복사해서 큰 더미가 됐다. 사부님의 창춘 설법 문자를 옮겨 적은 것은 초기 수련생들이었는데, 한 문장 듣고 녹음기를 멈추고 한 문장 쓰고 다시 녹음기를 틀어 다음 문장을 기록했다. 이렇게 옮겨 적은 것들을 사부님께 모아 보내드렸고, 사부님께서 정리하신 후 이 천서(天書)인 우주 대법 《전법륜》이 만들어졌다.
이 기간에 또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명방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창춘에서 가장 큰 절인 반약사(般若寺)가 있었고, 그 옆의 자항사(慈航寺, 비구니 절)의 주지 법호가 정공(淨空)이었는데 당시 80여 세였다. 입이 비뚤어지고 눈이 삐뚤어지고 말이 어눌하고 걷기가 불편했으며 음식도 먹지 못했는데, 중풍 편마비 증상을 보였다. 1년 넘게 링거를 맞고 있었고 몇몇 작은 비구니들이 그녀를 돌보고 있었다. 7기 반에 참가하러 와서 이곳에 머물고 있던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창춘에 파룬궁을 배우러 왔다고 말했다. 파룬궁은 ‘진선인’ 우주 대법을 수련하는 것이며 불법이고 5가지 공법이 있다고 했다. 정공은 제5장 공법인 ‘신통가지법’의 시범을 본 후 즉시 말했다. “진짜 부처님이 오셨다! 산 밖에 산이 있고, 부처 밖에 부처가 있네. 절 안에는 부처가 없고, 내 부처님은 문 밖에 계시네. 내 스승님이 오셨다!” 그리고 말했다. “빨리 리훙쯔 사부님을 뵈러 가자! 제발 저를 도와 스승님께 향을 올리게 해주세요. 제 마음속에 스승님이 계시니 리훙쯔 사부님을 한 번 뵙게 해주세요. 제 소원을 이뤄주세요! 꼭 나가서 제 스승님을 뵈어야 해요!” 다음날 정공은 사부님께서 설법반을 여신 장소로 갔고 사부님께서는 정공을 한 사무실로 데려가셔서 직접 물을 따르고 의자를 가져다주시며 웃으면서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이후에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정공을 자신의 옆에 앉게 하시고 제7기 설법반의 마지막 강의를 듣게 하셨다. 강의를 다 듣고 정공은 매우 기뻐하며 소개해준 수련생을 껴안고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을 이해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았어요!” 그녀는 또 사부님께서 그녀의 병의 원인을 해결해주셨고, 2년 후에 원만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정공이 절로 돌아가자 비구니들은 정공의 입과 눈이 삐뚤어지지 않고 정신이 매우 좋아 큰 그릇의 만두를 먹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게다가 이전에는 좌선하지 못하던 정공이 이때부터 자주 좌선을 했다. 1996년 정공은 좌선 중에 세상을 떠났고, 화장할 때 오색찬란한 사리가 나왔다. 비구니들은 모두 말했다. “사람은 정말로 대법 속에서 수련해 원만에 이를 수 있네요. 이번에 우리도 직접 보고 믿게 됐어요.”
1992년 5월 13일부터 1994년 5월 8일까지 사부님께서는 창춘에서 7기 반을 여셨고, 창춘 한 곳에서만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사람이 7천여 명에 이르렀다. 수련생들은 매번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던 그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마치 당시 사부님 곁으로 돌아간 것처럼 불광(佛光)에 감싸인 듯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내 생각에, 내가 공을 전하고 설법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장래에 당신은 알게 될 텐데, 당신은 이 시간이 매우 보람찼다고 여길 것이다.”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에게 말씀하시고 해주신 이 모든 것을 보면서 모두가 “대가를 논하지 않으며, 보수를 바라지 않고, 명예 또한 바라지 않아 속인 중의 모범인물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인데, 이는 완전히 慈悲心(츠뻬이씬)에서 나온 것”(전법륜)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는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며 사람을 제도하시는 것이었다!
1994년 12월 21일부터 28일까지 사부님께서는 광저우에서 제5기 학습반을 여셨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중국에서 여신 마지막 직접 전수반이었다. 창춘의 많은 수련생이 모두 알고 손에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부님을 따라 광저우에 가서 법을 들었다. 수련생들은 창춘으로 돌아올 때 사부님께서 대수인(大手印)을 하신 사진 한 장을 가져왔다. 사부님의 아랫배 부위에 파룬 하나가 있었는데, 평평하게 서 있었고 연한 녹색이었다. 수련생들은 이 사진을 보고 사부님께서 아랫배 부위에 파룬을 넣어주신 것, 파룬이 다른 공간에서 어떤 상태인지, 파룬의 색깔, 파룬 색깔의 변화, 다른 것을 섞어 넣어 파룬이 변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 사부님께서는 이 법을 현대 사진 기술을 빌려 직접 모두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모두가 서로 돌려보며 신기해하다가 점차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변했고, 대법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과 “진정한 과학으로서 설교와 유심(唯心)이 아님”(정진요지-실증)임을 알게 됐다.
2. 전수반에서의 기적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고 공을 가르치시는 과정에서 나타난 신기한 일들이 매우 많았고,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감탄했다.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들은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체득했다. 이러한 신기한 일들의 전시는 중국공산당 통치하에서, 무신론 주입으로 세뇌된 중국인들이 고정 관념을 깨고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되찾아 불법의 진리를 찾고 반본귀진(返本歸眞)의 길을 걷게 했다.
1, 2기 반의 수련생들 대부분은 승리공원에서 기공을 연마하던 기공 애호가들이었고, 많은 사람이 당시 사부님께서 몸을 조절해주셨다. 매우 심한 곱사등이 두 명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사부님께서 그들의 곱사등을 펴주셨고, 바로 키가 훨씬 커졌다.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3기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년 여성 한 명이 있었는데 양곡 창고에서 일하다가 쌀 포대에 맞아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었다.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좋아지지 않았다. 당시 그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가족들이 그녀를 들것에 싣고 항공클럽으로 데려왔고, 병원의 몇몇 환자 친구들도 따라왔다. 사부님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그녀의 가족들에게 들것을 단상으로 올리라고 하셨고, 불과 몇 초 만에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일어나 앉으라고 하시자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일어서라고 하시자 그녀는 일어섰다. 이어서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한 바퀴 걸어보라고 하시자 그녀는 정말로 단상에서 한 바퀴를 걸었다. 가족들과 따라온 환자 친구들은 감격해 마지않았고, 그때부터 온 가족이 대법에 들어와 수련을 시작했다.
제4기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부님께서 반에 참가한 수강생 몇 명을 단상에 서게 하셨는데 한 사람의 배에 큰 종양이 있었다. 사부님께서 그녀의 몸을 정화해주시자 당시 고름과 피가 바지를 따라 흘러내렸고, 종양이 사라지고 배가 평평해졌으며 바지가 순식간에 줄어들어 아래로 내려올 뻔했다.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행하신 기적과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제7기 반에서는 중풍 환자 두 명이 목발을 버렸다.
5월 6일 낮 반 수업이 끝나고 정오에 가까워질 때, 난후(南湖) 연공장 수련생들이 예술관 문 앞에 와서 사부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 67세의 고급 엔지니어 한 분이 있었는데 리펑밍(李鳳鳴)이라고 했다. 4년 동안 중풍을 앓고 있었고 목발을 짚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사부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목발을 버리고 의자를 치우세요.” 노인은 말씀을 듣고 천천히 일어나 의자를 치우고 목발을 버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왼발을 내딛고 다시 오른발을 내디딘 후 예술관 문 앞에서 몇 바퀴를 걸었다. 그는 기쁘게 웃다가 또 감격해서 울었다. 현장의 사람들이 이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고 모두 “신기하다!”라고 탄성을 질렀다. 노인은 스스로 계단을 올라 예술관으로 들어가 강의를 들었고, 그때부터 목발 없이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다. 그의 아내는 그날 저녁 사부님께 감사 편지를 썼고, 온 가족을 대표해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파룬궁을 잘 수련해 사부님의 은덕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다른 일은 이렇다. 그날 정오에 철도 제복을 입은 50대 남성이 갑자기 군중 속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앞으로 뛰더니 다시 뒤로 뛰었다. 그는 순식간에 사부님의 발 옆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흥분해서 짚고 있던 큰 목발을 들고 예술관 화단의 시멘트 받침대 위에 가서 부러뜨리며 말했다. “목발과 인연을 끊었어요! 제 중풍이 나았어요!”
이러한 광경 앞에서 사부님께서는 그저 평온하게 웃고 계셨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또 한 가지는 창춘(長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수련생의 집 옆에서는 건물을 짓고 있었다. 현재 이런 건물은 모두 꽤 높게 짓는데, 그 비계는 모두 두 치 굵기의 철관으로서, 길이가 4미터다. 이 수련생이 집을 나와서 얼마 가지 않아 철관 하나가 그 높은 건물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와 곧장 그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큰길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멍해졌다. 그는 말했다. “누가 나를 치는가?” 그는 누가 그의 머리를 한번 치는 것으로만 여겼다. 바로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머리 위에서 큰 法輪(파룬) 하나가 거기에서 돌고 있는 것이 보였고, 이 철관이 그의 머리를 스치면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미끄러져 내려온 후 땅에 박힌 채 넘어가지 않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정말로 사람의 몸에 꽂힌다면, 그렇게 무거운 그것이 정말로 탕후루(糖葫蘆)를 꿰듯이 단번에 밑바닥까지 꿸 것인즉, 아주 위험하다!”
이 수련생이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 우리집은 4분국 부근에 있었고, 근처에 큰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그곳을 지나갈 때 갑자기 한 쇠파이프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곧장 제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습니다. 머리에 꽂히고 다시 내려와 땅에 꽂혔는데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제 머리에는 구멍이 났지만 피는 나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누가 날 쳤지?”라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얀 큰 파룬이 한 편으로 돌면서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제가 쇠파이프에 맞고도 아무 일 없다는 소식을 듣고 저를 보러 왔고, 저는 당시 어떻게 맞았는지, 파룬이 어떻게 저를 보호했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가 저번에 지린대학(吉林大學)에서 학습반을 열 때, 한 수련생이 지린대학 정문을 나와서 자전거를 밀고 막 길 가운데까지 갔는데, 승용차 두 대가 단번에 그를 가운데 끼워 넣어 부딪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일들에 부닥쳐도 모두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 순간 차가 멈췄으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수련생이 그때의 상황을 회상했다. “7기 반 점심시간이 끝나고 제가 마지막으로 명방궁에서 나왔을 때였습니다. 지린대학 정문으로 걸어가 보니 사부님께서 정문에 서 계셨습니다. 제가 해방대로의 빠른 차선을 건너 자전거를 밀고 중간에 걸어갈 때, 동서 양쪽에서 승용차 두 대가 갑자기 저를 협공하듯 달려와 부딪힐 것 같았는데 차가 순간 멈췄습니다. 저도 두렵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천히 차도로 걸어갔습니다. 뒤돌아보니 사부님께서 정문 동쪽 인도에 서 계시면서 여전히 저를 보고 계셨습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95년 초에 《전법륜》이 출판되고 책을 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그때 목숨을 빼앗으러 왔던 것이고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또 한 번 목숨의 빚을 갚았습니다.”
또 한 가지 수련생이 목격한 대법의 신기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지린대학 동쪽, 동민주대가(東民主大街)에서 일어났다.
“1994년 6월의 어느 날 오후 4시경, 남편이 자전거 뒤에 방범문을 싣고 저는 방범문 위에 앉아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큰 내리막길에 도착했을 때 앞에 큰 트럭 한 대가 돌을 가득 싣고 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쾅’ 소리와 함께 뭔가가 제 몸에 부딪혔는데 힘이 매우 셌고 순간 저를 쓰러뜨렸습니다. 옆으로 방범문 위에 쓰러졌는데 머리는 여전히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목이 꽉 막혔습니다. 보니 큰 전구, 국솥만한 크기의 것(역주: 전신주의 변압기)이 제 눈앞에서 깨져 있었습니다. 다시 보니 큰 트럭이 길가의 시멘트 전신주를 들이받아 쓰러뜨려 제 몸에 부딪힌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제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제가 그가 겁에 질린 것을 보고 소리쳤습니다. “빨리 사람들을 불러 날 끌어내세요!” 그가 제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죽지는 않았구나.’ 그제야 남편은 사람들을 부르는 것을 생각해냈습니다.
큰 트럭에 타고 있던 8, 9명의 젊은이들이 모두 와서 남편과 함께 전신주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 몇 명의 지나가던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었고, 힘들게 전신주를 들어 올렸습니다. 제가 일어났는데 아무 일도 없었고 어디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옷은 더러워졌지만 몸에는 피부 하나 상하지 않았습니다.
트럭 운전사도 겁에 질려 연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필요 없어요. 전혀 문제없어요. 여러분 가세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에요.” 한 언론사 기자가 마침 이 현장에 도착해 기자증을 보이며 저를 인터뷰하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아무 일 없어요.”
우리는 군중을 헤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보니 방범문에 사람 모양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 일은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우리 수련인들은 각종 위험한 일을 만나도 모두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고, 이런 예는 너무나 많아서 제 일도 특별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후에 사부님의 외지 전수반에 참가했던 창춘 수련생들이 돌아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그날 반에서 말씀하시기를 창춘 수련생이 전신주에 맞아 방범문 위에 쓰러져 사람 모양이 찍혔지만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들어보니 사부님께서 법을 설법하신 시간이 바로 제가 사고를 당한 그날 저녁 6시경이었고, 말씀하신 내용이 똑같았습니다. 이 일을 저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 사부님께서 곧바로 아셨던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이 창춘에서 많이 일어났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언급하신 것도 있고, 더 많은 것은 언급하지 않으신 것들이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기에 우리가 오늘날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3. 사부님께서 보도원들에게 해법(解法)해주시다
1994년 9월 18일, 지린대학 물리화학 강의동 7층에서 사부님께서 창춘 파룬따파 보도원들에게 해법을 해주셨다. 당시 참석한 보도원은 100여 명이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땅히 법(法)을 투철히 이해하고 진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책을 많이 보고 녹음을 많이 들어야 한다.” “내 말은, 이 법에 따라 배우고 오로지 투철하게 이해하기만 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의 고향에서 선두로 나서서 좀 조직하면 좋겠다. 장(章)마다 절(節)마다 여러분이 읽고 토론해 보라. 학습시간의 안배는 단체연공처럼 고정시켜야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더욱 많고 겨냥성이 있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장래에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의지할 법이 있게 된다. 우리가 선두에 선다면 전국 각 보도소에서도 아주 좋은 선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전국 각지에서 본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들의 인식 제고에 많은 좋은 점이 있기에 이러한 건의를 제기하는 바이다.”(파룬따파의해-창춘 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이후 보도원들은 수련생들이 법을 외우고 단체 법공부를 하도록 조직했고, 법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이 비약적으로 변화했으며, 점차 심성 제고를 첫 자리에 두게 됐다. 당시 공부하고 외운 것은 여전히 《중국 파룬궁(수정본)》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또한 대법 수련과 심성 제고가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명확히 하셨다. 사부님께서 이번에 설법과 해법을 해주신 시간은 총 5시간 30분이었다.
1995년 8월, 《파룬따파의해(法輪大法義解)》라는 책이 창춘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판 발행됐다. 이 책에는 리훙쯔 선생님께서 창춘, 베이징, 광저우에서 파룬궁 보도원들을 만나셨을 때의 설법 및 질의응답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995년 1월 4일, 베이징 공안대학 강당에서 《전법륜》 출판기념회와 국내 전법(傳法) 총결 대회가 열렸고, 리훙쯔 사부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파룬궁의 국내에서 법을 전하는 것이 모두 끝났다고 선포하셨다. 창춘시 보도소의 몇몇 책임자들이 참석했고, 창춘 수련생들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을 바쳐 우주 대법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보도소 책임자들은 《전법륜》도 가져왔다. 그때부터 부처의 진경(眞經)을 얻기를 갈망하던 모든 사람들이 불법(佛法) 속에서 열정적으로 법공부에 매진했다.
사부님께서는 해외로 법을 전하러 가셨고, 오랫동안 창춘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기억하고 계셨고, 특히 보도원들과 보도소 건설에 신경 쓰셨다. 이 기간 사부님께서는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일이 아니라 수련이다’, ‘집착을 더 없애자’, ‘수련과 사업’, ‘금강(金剛)’, ‘수련과 책임’, ‘법회’, ‘책임자 역시 수련인이다’, ‘가늠하는 표준을 다시 논함’ 등 경문을 쓰셔서 존재하는 문제들을 적시에 바로잡으셨다.
사부님께서 창춘에 돌아오실 때마다 시간이 매우 짧았지만, 항상 보도원들을 만나셨다. 장소는 달랐고 인원수도 많고 적음이 달랐으며, 겨냥하는 문제도 달랐고, 사부님께서 채택하신 해결 방법도 달랐다. 심지어 한 보도소의 어떤 수련생, 부부가 다투고 화목하지 않은 일까지도 사부님께서는 언급하시며 보도원들에게 수련생들이 인식을 높이고 수련하도록 도와주라고 하셨다. 보도소 내부, 보도원과 보도원 사이에 갈등이 있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어떤 이들은 직접 사부님께 알리기도 했다.
기억나는 한 번은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돌아오셔서 문화광장에서 일부 보도원들을 만나셨다. 그날은 마침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오시자 비가 그쳤다. 비 온 뒤 광장의 젖은 땅에서 모두가 사부님을 둘러싸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시고 모두가 제기한 문제에 답변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마치 모든 것이 한순간에 해결된 듯했고 상대방에 대한 모든 오해, 원망, 불평등 등의 마음의 매듭이 모두 풀렸다. 사부님의 자비로움, 사부님의 에너지, 사부님의 작풍을 보도원들은 모두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늘 말했다. 만약 한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티끌만큼도 자신의 목적과 인식이 없다면, 한 말은 상대방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정진요지-청성) 사부님처럼 하려고 노력한다면 잘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 후 사부님께서는 보도원들과 함께 지질궁(地質宮) 대형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으셨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보도원들을 만나신 것은 1997년 여름이었고, 8월 3일 사부님께서는 경문 ‘취중(取中)’을 발표하셨다.
1998년 7월 26일, 사부님께서 돌아오셔서 샹그릴라 호텔 다목적홀에서 창춘 보도원들에게 설법하고 법을 해석해주셨다. 뒤쪽 수련생들도 모두 사부님을 볼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는 쌓아 올린 의자 위에 앉으셔서 꼬박 5시간 동안 설법하셨다.
이는 중국 내에서의 사부님의 마지막 설법과 해법이었다. 1년 후, 우주의 가장 큰 사악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피비린내 나는 폭풍이 중화 대지를 휩쓸었으며, 정(正)과 사(邪)의 대전(大戰)이 전 우주, 전 인류 사회, 중원 대지에서, 그리고 창춘에서도 놀랍고 가슴 떨리게 전개됐다.
그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수련하고 있으므로 사회와 부동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각 방면의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면, 우리는 모두 부동한 정황에 겨누어 대법을 잘 보호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호법이 아닌가?”, “이 나쁜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나쁜 일을 한 사람, 만약 그가 구제될 수 있도록 우리가 그를 설득하면 그는 또 제도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고집대로 하면서 바로 이렇게 해나가고 히스테릭하게 이렇게 한다면, 일정한 시기에 이르러 우리는 그를 처리할 것이다. 또 아마 수련생을 고험할 때 잠시 그를 이용할 수 있는데, 우리의 수련이 결속되기를 기다려 그가 한 일체를 그 자신이 모두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틀림없다.”(창춘보도원법회 설법)
지금 사부님의 설법을 돌이켜 보면, 이미 박해 전에 제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하신 것이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방방면면으로 애쓰며 타이르신 것을 체득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세밀하고 질서 있게 우주 대법을 전하셨고, 수련의 형식을 남겨주셨는데 이는 천추만대에 금강불파(金剛不破)하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수련생들은 이후 착실하게 법을 배우고 수련했다.
1999년 1월, 사부님의 시집 《홍음(洪吟)》이 청해인민출판사에서 출판 발행됐다. 이 책에는 사부님의 1976년 12월부터 1998년 11월까지의 시 72수가 수록되어 있다. 모두가 이 《홍음》을 받았을 때는 ‘4.25’ 사건 이후였고, 사부님의 법이 수련생들의 수련을 지도했다.
심명(心明)
사부 법 널리 전해 중생제도 하나니
온 천하에서 경(經) 얻어 법선에 오르네
십악독세에서 대법(大法)을 전하고
法輪(파룬)을 돌리니 건곤이 바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