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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나는 어떻게 대법제자가 되었는가?”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09년 하반기에 대법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와 은혜에 감사드리기 위해, 법을 더욱 잘 실증하고 세인을 도와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세인을 도와 파룬따파(法輪大法)와 대법제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곳에 글을 발표하는 것으로, 특히 중공(중국공산당)에 박해당하는 기간에 내가 대법수련의 길을 걷게 된 이유와 실제로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을 적은 것이다.

나는 의사인데, 남편이 97년에 법을 얻은 후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온 것을 실제로 목격했다. 남편은 법을 얻기 전 폐병, 흉막염, 인두염 등의 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자주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었다. 그랬던 남편이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고부터 약을 단 한 알도 먹지 않았다. 비록 몇 번은 비교적 중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 스스로 나았다. 나는 이런 남편을 보고 ‘남편의 몸에는 일종 초상적인 힘이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적인 보통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남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으며, 기름을 막 솥에 넣는 중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침대를 옮기려고 하니 빨리 도와 달라고 했다. 남편이 침대 한 쪽을 들고 옮기던 중 “몸이 갑자기 왜 이렇게 뜨겁지, 당신을 도와 줄 수가 없을 것 같네.”하고는 그대로 나갔다. 남편이 주방문을 열자 기름 솥에 불이 붙어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황급히 불을 끄고 난 남편은 조금 전 방에서 침대를 옮길 때 그렇게 뜨거웠던 몸이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남편은 “사부님의 보호에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집은 화재를 당했을 겁니다.”고 했다. 그 때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참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데 내 몸에는 왜 아무런 반응도 없었을까?’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한 번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승용차와 부딪쳤다. 그런데 나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남편은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이익을 본다고 했어요. 당신은 빨리 사부님께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드려요.”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사부님 법상에 향을 올렸다. ‘그때 혹시, 나와 대법과의 인연이 결정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99년 7.20, 강 씨 집단의 박해는 시작되었다. 남편은 수련을 위하여, 대법을 지키기 위하여, 대법이 초상적인 과학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고급 직장을 잃었으며, 또한 억울하게 두 번이나 노동교양처분을 받기도 했다. 원래 가난했던 가정형편에 남편이 그렇게 되니 설상가상으로 생활의 곤란을 당하게 되어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친척들마저도 연루될 것을 우려하여 감히 우리와는 상종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홀로 어린 아이를 키우면서 돈을 벌어 겨우 생계를 이어가며 틈이 나는 대로 노동교양소로 남편의 면회를 가야했다. 다행인 것은 남편의 몇몇 동료 수련생들이 우리 집을 자주 찾아주었는데 남편이 납치되기 전 그들에게 우리를 부탁한 것이었다. 나도 그들의 방문을 좋아했다. 그들은 믿을 수 있었고, 그들과 만나게 되면 신체가 편안했다. 일반인들을 만나게 되면 타락한 사회기풍으로 안전감이 없고 또 왠지 심신도 불편했다. 그러나 나 자신도 이미 물욕범람(物欲横流)하는 사회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남편은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말없이 집에서 일만했다.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며 동시에 충동적인 나를 감당했다. 나는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지만 남편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이혼을 하자면 해도 되는데, 당신은 내가 대법을 배우기 때문에 이혼 하자고 하면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사실 남편은 몇 번이나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 나는 알고 있는데 만약 남편이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잘못을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번은 밤에 내가 자다 일어나 환자에게 링거 주사를 놓았는데 얼마 있다가 환자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물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사바늘을 얼른 뺐다. 그런데 환자의 상태는 여전했고 시간이 지나자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더니 환자는 계속 몸을 떨면서 말을 했다. “당신의 딸은 사는 것이 괴로워요. 내가 그녀를 데려갈게요.” 옆에서 지켜보던 환자의 엄마는 놀라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당신이 어떻게 해도 다 좋아요. 나는 딸 하나밖에 없어요. 그를 데려가지 마세요.”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반시간이 지났는데도 환자의 엄마는 여전히 꿇어앉은 자세로 빌었고 환자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환자의 엄마에게 다가가 “당신은 그에게 빌지 마세요. 내가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드릴게요. 보증하고 당신의 딸을 구할 수 있어요.” 노인은 행동을 멈추고 반신반의하는 자새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당신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소리 내서 계속 말하세요.” 환자의 어머니는 남편의 말에 따라 한 마디 한 마디씩 천천히 읽었다. 그러자 즉시 환자가 자신의 머리를 끌어안고 “읽지 마세요. 나의 머리가 아파요!”하고 소리쳤다. 노인은 더욱 크게 계속해서 읽었다. 환자가 순식간에 청성해져 정상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일을 물어보자 자신도 모른다고 했고, 병은 나아졌다. 현장에 있었던 몇몇 사람들도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위력을 실제로 목격했다. 나는 이것으로 무엇이 부체인가를 알게 되었다.

한 번은 칼로 사람을 살인한 강도가 우리 집에 침입하여 돈을 요구했다. 나는 온 몸이 피투성이고 손에 칼을 든 것을 보고 놀라서 재빨리 뒷방으로 숨었다. 강도는 밖에서 “당신들 빨리 문 열어. 열어주지 않으면 문을 부셔버릴 거야!”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방에는 남편 혼자만 있었는데, 남편은 “당신이 칼을 들고 있는데 아내가 두렵지 않겠는가?”하고 말했다. 강도는 남편에게 다가가 남편의 가슴에 칼을 대고 “돈을 내놔!”라고 말했다. 남편은 “당신에게 줄 돈이 없어요.”하고 말했다. 남편은 말없이 조용히 서있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대치하여 몇 분 있었고, 최후에 강도는 협박하던 칼을 치우고 나쁜 생각을 포기한 후 뒤돌아 도망갔다. 남편은 나에게 “나와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내가 남편에게 상황을 물어보아 방금 일어났던 일체를 알게 되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았어요?”하고 묻자, 남편은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두려울 것이 뭐있나.”하고 말했다. ‘남편은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는데…….’ 나는 정말로 부러웠다.

2005년부터 남편은 나에게 몇 번이나 중공의 조직인 단원과 소선대에서 탈퇴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때로는 남편이 환자에게 삼퇴를 권하는 일로 다투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은 계속해서 환자들에게 은밀하게 삼퇴를 권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이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 “사실 나는 이미 당신을 모모 이름으로 단원과 소선대에서 탈퇴시켰어요. 그러니 이제는 방식을 바꿔서 당신 스스로 탈퇴하도록 해 봐요.”라고 권했다. 나는 “퇴출 했으면 퇴출된 거지 뭐.”라며 얼버무리는 식으로 남편의 권유를 듣지 않았다. 이튼 날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이 전에는 이렇게 머리 가 아픈 적이 없었다. 남편은 “어제 내가 당신을 도와 단원과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하라고 했을 때 당신은 진심이 부족했어요. 종이 한 장을 줄테니 내가 부르는 대로 써요.” 나는 남편이 부르는 대로 적었다. “나는 진심으로 전에 가입했던 공청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고 사령의 수기(獸跡)를 지워버리겠다.”고 쓴 후 서명을 했다. 그 걸 쓴 후 참으로 신기하게도 머리의 통증은 없어졌다. 공산사령의 사람에 대한 위해성을 몸소 체험했다. 이후부터 나는 남편을 도와 환자에게 삼퇴를 권했다.

나는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양생을 소개하는 걸 보고 매우 흥미로워 따라서 배웠다. 배우다 생각해보니 ‘양생은 바로 병에 적게 걸리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사람은 신체에 병이 없고, 연공은 양생 보다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 그럼 파룬궁수련이야말로 가장 좋은 양생이 아닌가!’ 그래서 연공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법 책을 몇 번 읽었지만 지속적으로 보지 못하고 견지하지 못했다. 더구나 10여 년, 20여 년간 만나지 못했던 동창들이 모두 찾아오는 바람에 오늘은 이 모임을 갖고, 또 몇 개월 후 일처리를 하고 나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후에는 단체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동창 간의 정을 나누면서 변이된 남녀 간의 정까지 끼어들게 되니 나로 하여금 수련의 일을 잊게 하였다. 이렇게 2, 3년의 시간을 낭비하다가 마지막에는 남편과 이혼까지 할 뻔했다. 남편은 또 한 번 다시 나를 용서하고 선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 주었고, 현실 사회의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바로 금전과 기만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였다.

후에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언니(수련인)가 집에 찾아와서 “요즘 몸이 좋지 않아서 그래요.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면 좋아질 것인데….”라고 말하며 사부님의 설법 테이프를 구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며칠 후 남편이 사부님의 ‘광주설법’ 테이프를 가져왔다. 나에게 먼저 보겠느냐고 물었다. 속으로 ‘정말로 그 언니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신기할까?’ 호기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보기로 했다. 남편은 “테이프를 보되 언니가 보는데 방해가 되면 안 돼요. 그러니 당신이 빠지지 말고 매일 한 강의를 보고나서 다음 날 당신이 본 그 한 강을 언니에게 보여주도록 해요.”하고 말했다. 이렇게 그 언니의 시간을 지체하지 않게 하면서 처음으로 사부님의 강의를 다 보았다. 사실 보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한 편으로는 졸면서 또 한편으로는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끝까지 견지했다. 다 본 후 머리가 전보다 맑게 되었다. 머리의 빈혈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 정말로 기뻤다. 대법을 늦게 얻은 것이 후회막급이다. 수련의 길에 들어선 후 비로소 한 사람이 법을 얻기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여 년간 대법을 접촉했으면서 하마터면 그냥 스쳐지나갈 뻔했다. 법을 얻은 후 신체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전에 눈에 차지 않던 시부모가 마음에 들게 되고 자신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만나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전과 달라져 보여요. 그전보다 젊어진 것 같아요. 무슨 신약을 먹었어요?”하고 묻는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 나는 홍법을 하고 자신이 몸소 체험한 것들을 알려 주고 그들도 구원받기를 바랐다.

내가 법을 얻은 후 어머니, 여동생, 작은 동서, 아이, 시아버지(시어머니는 이미 수련자) 및 나와 친한 10여명이 수련을 하기 시작했고, 100여 명이 구원되었으며 박해 후 수련을 포기했던 사람들도 나와 만난 후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친척들은 이전에 남편이 수련할 때는 이해를 하지 못했었는데 현재 내가 수련을 하자 모두 인정을 하게 되었다.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는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는 정말로 실체적인 체험이다.

남편은 박해 후 직장을 잃어 30만 위안을 적게 벌고, 게다가 집이 부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박해로 노동교양처분까지 받으면서 10여만 위안을 강탈당하기도 했으니 속인이 보기에 이런 상태에서 10여 년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고생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온 식구가 모두 병이 없고 날이 갈수록 경제적 형편도 좋아지고 있으며 아이의 성적도 상류학교에서 10등 이내에 든다. “인생의 타고난 복은 자연히 있는 법이니, 빨리 올 것인가 늦게 올 것인가를 강요하지 말라.”

문장발표: 2012년 9월 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16/2627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