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나는 안을 향해 찾는 달콤함을 맛보았다

글/ 랴오닝성 다롄 대법제자 청련(靑蓮)

[밍후이왕] 얼마 전에 현지의 한 자료점이 사악에게 파괴됐는데 내가 파악한 상황이라면 이 자료점의 수련생이 안전을 홀시했다는 것이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을 통해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자료점에도 이 방면의 문제가 존재하는지 보았다.

나는 내 생각을 함께 협력하고 있는 갑, 을 두 아주머니 수련생과 서로 교류했는데 과정에 우리는 모두 회상하게 됐다. 몇 년 전 우리는 모두 단선 연계라 누가 무엇을 하는지 서로 간에 모두 몰랐으며 모두들 자료점의 안전 문제를 비교적 중시했다. 하지만 최근 한 시기 자신의 이 자료점은 주변 수련생들 속에서 이미 반 공개된 상태가 됐다. 다른 자료점이 파괴당했다는 것은 안전 방면에 소홀했음을 설명한다. 자신의 이 자료점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마 문제가 돌출하지 않아서일 수 있지만 결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깨닫게 되자 나는 두 수련생과 토론하고 자료점을 갑 아주머니 집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당시 갑 아주머니가 동의하기에 나는 곧 을 아주머니와 함께 관련 설비들을 옮겨갔다. 당시 복사 설비를 옮겨가는 곳에 대해 갑 아주머니를 속이려는 생각은 없었고 다만 안정되기를 며칠간 기다렸다가 필요하다면 갑 아주머니를 불러다 함께 자료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며칠 안 되어 다른 수련생이 알려 주었는데 갑 아주머니가 스스로 자료점을 세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갑 아주머니에게로 가서 무슨 의견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없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갑 아주머니 집에 갔더니 마침 다른 한 병의 아주머니 수련생이 와 있었다. 병 아주머니는 나에게 갑 아주머니가 프린터 설비를 사려 하는데 나에게 기계 보수를 맡길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갑 아주머니에 대해 의견이 있었다. “당시 무슨 의견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고 하고선 이제 와서 프린터 설비를 사서 나에게 또 보수해 달라고 하다니, 이렇게 된다면 내가 이사를 가서는 뭘 하죠? 차라리 옮겨오는 게 낫겠어요.” 나는 불만을 품고 갑 아주머니에게 자료점을 세우는데 동의하지 않으며 설비를 산다면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시 분위기는 아주 조화롭지 못했다. 나는 자신의 심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갑 아주머니에 대한 견해를 내려놓을 수 없었고, 갑 아주머니가 진상자료 만드는 일을 사업으로 여기면서 강렬한 일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안을 향해 찾아보라는 법리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니 마치 베개를 잘못 베서 목이 뻣뻣해진 것처럼 아파서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사부님 법리를 생각했다. 문제에 봉착해 자신이 곧 법리와 틀어졌던 것이다. 나는 서서히 갑 아주머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목이 아픈 증상도 저도 모르게 나았고 자신이 맞게 깨달았음을 알게 됐다. 4, 5일이 지나 갑 아주머니 집에 가보니 바닥에 새 프린터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당시에는 불만이 없었고 단지 갑 아주머니는 이렇게 많은 연세에, 또 컴퓨터와 프린터에 익숙하지 못해 원래 그날 내가 도와주기를 바랐으나 나는 그날 그렇게 많은 이지적이 못한 말을 했으니 그녀는 얼마나 큰 압력을 감당한 후 프린터 설비를 사왔을까, 생각하니 자신은 속이 괴로웠다.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아직도 자책이 조금 남아 있다.

수련 중에서 어떤 때는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꼭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직도 자신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다른 수련생이 갑 아주머니에게 복사 소모품을 보내는 것을 보았을 때 속이 불편했다. 그것은 내가 줄곧 복사 소모품을 사는 것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왜 마음이 불편했는지 안에서 자신을 찾아보았다. 이는 자신의 어느 마음을 건드렸는가, 남들이 너보고 소모품을 사 달라 하면 너는 기뻐하고 그렇지 않으면 괴로워하는데 이건 분명히 일하는 마음이 아닌가? 갑 아주머니에게만 일하는 마음이 있다고 보면서도 왜 되돌아 자신은 보지 않는가?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비록 나중에야 이 일체가 모두 자신의 심성(心性) 제고를 위한 것임을 알긴 했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자신이 수련 중의 착실하지 못함을 볼 수 있었고, 마음을 건드려서야 겨우 깨달았던 것이다.

며칠이 안 되어 을 아주머니가 나에게 어느 수련생이 나에게 의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번만 말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 나는 심성을 지키고 안에서 자신을 찾아보았다. 그 수련생이 나에게 무슨 의견이 있었을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와 만나지 못했는데 내가 어디에 문제가 있게 했을까? 내가 그에게 의견이 있는 게 아닐까? 이번엔 과연 그랬다. 이 몇 년 간 나는 내내 그 수련생이 수구하지 않고 늘 예언 따위에 집착한다고 여겼다. 수련생은 법에서 제고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원래의 관점으로 수련생을 대하고 있었으니 이것은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자신이 줄곧 그 수련생에 대해 견해가 있었으므로 비로소 그 수련생으로 하여금 나에게 의견이 있게 만든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이해하건대, 수련 과정에 부딪힌 일이 당신을 건드렸다면 정말이지 밖으로 찾아서는 안 된다. 수련생이 한 말이 정말이든 잘못 전해진 것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내가 이런 것을 찾았을 때 나의 가슴은 감격의 심정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자신의 공을 제고해 주시는 것임을 알게 됐다. 여기에서 사부님의 고심함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심성 제고의 기회를 제공해 준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2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9/5/262398.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