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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 집착하는 표현과 그 위해성

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수련에서 많은 일에 봉착하게 된다. 봉착하면 우리는 늘 자신의 견해를 중하게 보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비자각적으로 자아에 집착하게 되는 관념이 형성된다. 자아에 집착하는 표현과 그 위해성에 대하여 나는 자신의 작은 소견을 적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우리는 법에서 모두 명백히 알고 있는데, 수련이 잘된 부분은 사부님께서 격리시켜, 남은 것은 잘 수련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 부분은 마치 성구(星球)와 같이 무릇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모두 부동한 정도의 검은 색으로 나타난다. 정도가 부동함에 따라 금색으로도 나타나는데 모두 순금의 상태는 아니다.

우리가 자아에 집착하기만 하면 공간장은 즉시 한 층의 검고 검은 찐득찐득한 것에 뒤덮이며 만일 자신이 옳다고 계속 고집하게 되면 이것은 마치 수학에서 제곱한 것처럼 확산되고 두터워진다. 이때 자신 세계의 중생은 모두 이런 검고 검은 것에 억눌려 숨쉬기조차 힘들며 어떤 것은 심지어 죽어버린다.

더욱 심한 자는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특별히 강할 때 일부 사악한 생명이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 세계의 중생을 붙잡아 마음대로 학대한다. 그것들은 우리 세계의 중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면서 일종 가상을 연화해내 우리를 속인다. 더 나아가 우리를 법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인도하여 수련생과의 간격을 형성한다. 심지어 원망의 마음이 생기게 한다. 일정한 정도에 이르러 그것들은 직접 일부 요소를 배치하여 우리의 주왠선(主元神)으로 하여금 대법을 잘못 이해하도록 촉성시켜 최후에는 매우 황량하고 더러운 곳에 떨어져 사악한 생명에게 붙잡히게 한다.

만약 이 정도에 이르면 표면에서 볼 때 극히 위험하다. 사오(邪悟)하지 않더라도 정체 수련상태에서 벗어난 것으로 그럼 매우 쉽게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다른 방면에서 사악에게 틈을 주게 된다.

반대로 한 사람이 자신의 인식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관건적 시각에 자신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자비롭게 다른 사람과 협조할 때 나는 이러한 것을 보았다. 이때 공간장은 그 무한한 법광으로 뒤덮이며 원래 순정하지 않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곳도 이 한순간에 모두 극히 순정하게 변했고 중생도 무한히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의 주 혹은 왕을 대했다. 아울러 이 한순간에 수련이 잘된 부분은 곧 격리되었다. 그리고 수련이 잘되지 않은 남은 부분이 나타나며 만일, 이때 우리가 여전히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부분도 매우 빨리 표준에 도달돼 격리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어져 나간다. 또 내가 보았는데 이때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영롱하고 투명한 마음이며 무한한 자비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뭇 신들도 이걸 보고 기뻐하고 안위를 느끼며 중생들은 탄복한다. 법에서 깨달았는데 물질은 순환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자신 생각을 중하게 보지 않을 때 마치 한 큰 생명의 어느 부분에 ‘혈전(血栓)’이 나타나지 않은 것과 같으며 전반 생명은 매우 건강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정말로 어떤 일에서나 자신 생각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엄격히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하며 그래야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할 수 있다.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누를 끼치지 않게 된다.

나의 극히 낮은 층차에서 본 것으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바로잡아 주기 바라며 함께 ‘법을 스승으로 모시자.’

문장발표: 2012년 8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27/2620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