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법공부를 많이 해서 이성적으로 진정하게 대법을 이해하자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천청(天淸)

[밍후이왕] 내가 파룬따파를 배우기 시작한 때는 아직 학생 시절이어서 아주 젊었으며 천성이 순진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단숨에 알아들을 수 있었고 알게 된 부분은 법리의 요구에 따라 했다. 매번 신경문이 나올 때면 연공장의 20여명이 둘러 앉아 한 사람이 한 번씩 읽었는데 나중에는 모두들 외울 수 있었다. 이는 나에게 한 가지 아주 훌륭한 습관을 양성해 주었는데 그 후 신경문이 발표되면 우선 해야 할 일이 바로 외우는 것이었다. 나이가 적고 기억력이 좋았던지라 ‘전법륜’의 많은 부분을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는 사상이 순정하고 그렇게 복잡한 관념이 없었으므로 머리에 집어넣는 대로 기억했다.

법리가 분명하면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다

1999년 7.20 전후에 사부님께서 발표한 경문을 외우는 것은 그 시기 나에게는 아주 큰 격려가 됐다. 그때는 하늘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원래 날마다 수련생들과 함께 연공, 법공부를 하다가 박해가 발생하자 단체 법공부, 연공하는 환경을 잃게 됐다. 나이가 어렸던 탓으로 이번 박해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서 몹시 분노했다. 하루 종일 울적해 날마다 박해가 언제 끝날지를 기다렸다.

1999년 7.20 이전의 경문 ‘진성을 보노라’와 ‘위치’, ‘뿌리를 캐다’, ‘대폭로’, ‘홍음’은 그 당시 날마다 심지어 시시각각 외우는 법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고 수련생들과 연계하는 환경도 잃어 몹시 안타까웠다. 끊임없이 법을 외우니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나의 정념을 깨우쳐 주셨기에 비로소 그런 사악한 시기에 사람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사람에서 걸어 나오니 아주 이지적으로, 아주 청성하게, 아주 명백하게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꼬박 일주일 동안 법공부를 했는데 매일 저녁 법공부를 하는 한편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린 것은 사람의 일체를 내버리기는 어렵고 그렇지만 법에서의 요구는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위스법회 설법’을 꾸준히 학습하니 정념이 부단히 강해졌고 눈물은 거의 일주일 동안 흘렀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도법’ 중에 말씀하신 법리의 한 개 층면을 모두 나에게 펼쳐 주셨는데 세간에서의 일체는 모두 대법을 위해 왔으며, 경찰 및 대법제자를 가로막는 일체 위치와 작용을 모두 진실하게 보게 했는데 현실 중에서보다 더욱 진실했다. 그러므로 사업은 없으면 다시 찾을 수 있고 혈육 정은 버릴 수 있으나 대법은 버릴 수 없으며, 사람 중의 일체는 모두 버릴 수 있어도 대법은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오게 된 홍원(洪願)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실증하게 된 것은 이성적이고 법리로부터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베이징에 이른 후의 일련의 과정에 한 고비 한 고비의 법리는 갈수록 똑똑해 졌다. 왜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해야 하는가? 심문을 받을 때 왜 이름, 주소를 대지 않았는가? 구세력이 설치한 계략을 하나하나 모두 간파할 수 있었던 것도 개인 수련 시기의 기초가 착실하게 닦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날마다 수련생과 함께 있었고 사부님의 질서 있는 배치로 하나하나 집착은 모두 남들과 함께 버렸으므로 관건 시기에 얼떨떨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개인수련 시기, 수련생들과 함께 단체 법공부, 연공하고 비학비수 하던 환경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매번 어떤 고비를 넘길 때면 자신은 마음속으로 사전에 알고 있다. 그것은 법공부 할 때 이미 일찍부터 자신의 현재 집착이 무엇인지를 보아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착심이 있다고 하면 집착심을 버려야 할 사건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 전에 사부님의 질투심에 관한 법리를 잘 이해하고 외운다. 질투심이란 일념이 나오기만 하면 그것을 틀어잡고 분명히 보아내고 버린다. 이후에 또 이 일념을 틀어잡는 것을 배웠는데 이 일념을 내보내는 근원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았다. 물론 찾은 후 그것을 놓쳐 버리지 않고 이 집착심의 내력을 분명히 알았을 때 사부님께서는 이미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셨다. 자신은 명명백백하게 집착심이 오는 곳과 가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법리가 분명하니 정마(情魔)를 격파

한 번은 나는 외지에 가서 통신학과를 공부하게 됐는데 대학시절의 한 언니가 나와 한 반이었고 또 대학생 때 늘 우리와 함께 놀던 남학생도 왔다. 친한 친구들이 졸업 여러 해 만에 서로 만났으니 모두들 무척 기뻤고 정마는 이때 나에게 수수께끼를 주었다. 그 남학생은 우리 둘과 맞은 편 가산(假山)으로 가서 연 놀이를 하자고 약속했다. 이때 나는 기숙사에 앉아 있다가 속으로 갑자기 이상한 느낌을 느꼈다. 일종의 힘이 나를 그 남학생에게로 떠미는 것이었다. 동시에 두 가지 사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나이고 하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마땅히 냉정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아주 침착했다. 나를 발광하게 하고 심지어 통제력을 잃게 하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다. 이때 나는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 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꼼짝 않고 앉아서 그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보았다. 마음은 발광하듯 그 남학생과 함께 나가고 싶었다. 비교적 냉정하고 이지적인 나의 이미 수련이 잘된 부분은 침착했던 것이다. 이렇게 그 발광하는 것이 몸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았다. 십 몇 분 정도 지나자 그 발광하던 물건이 서서히 누그러들더니 없어졌다. 그것은 나를 핍박해 한 가지 잘못을 범하게 하려 했던 것이다. 학교에서 함께 공부할 때 그 남학생은 나를 아주 잘 대해 주었으나 지금은 결혼했으므로 이성 상에서 나는 자신에게 과분한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의 연기를 다 보고나니 무척 감개무량했다. 구세력은 아주 미련하면서도 또 사악했다.

예전에 나는 늘 ‘정’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보았는데 떨어져 나갈 때면 ‘마음’이 몹시 아팠다. 마치 누가 칼로 내 몸에서 살점을 한 점 한 점씩 베어내는 것 같았다. 아픔이 지난 후이면 ‘정’의 속박이 없어졌고 신체는 아주 가볍고도 편안했다. 그건 정이 버려졌기 때문임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정’이 사람을 사람 속에서 미혹되게 하는 것이다. 정이 없어야 비로소 자비가 있는 것이다.

한 단계는 ‘정’을 닦는데 대략 반년이란 사간이 들었다. 그 몇 년은 밍후이왕에 날마다 모두 ‘정’에 관한 문장이 있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정말이지 혜택을 적지 않게 받았다. 매 한 편의 문장마다 나에 대해서는 모두 보배 같아 열독하는 과정에 늘 중지하고는 자신도 작자와 마찬가지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지를 살펴보았고, 따라서 아주 자세하게 안을 향해 찾아보았다. 내가 수련생 문장을 이해하고 자기 일처럼 고맙게 여길 때면 수련생에 의하여 깨달은 법리를 그의 경지로 지니고 갔다. 특히 한 수련생이 문장에서 한 말에 감사를 드리게 된다. “정이란 감수할 수 있는 분홍색 물이다.” 내가 작자가 눈으로 본 ‘정’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됐을 때, 법리상 단번에 정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바로 당신을 속박해 당신으로 하여금 삼계 중의 밀도가 엄청 큰 물 속에 미혹되게 하는 것이다. 일순간 나는 이 분홍색 물속에서 뛰쳐나오게 됐고 어찌해도 원래의 그런 ‘정’에 대한 감수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상태를 귀정(歸正)하고 ‘자아’를 알아야

사부님의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은 2007년 10월에 발표한 것인데 이번 설법이 이전의 설법과는 다르다는 감을 느끼고 여러 번 보았지만 사존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알지 못했다고 느꼈다. 그 후에 거의 8, 90일이 되는 두 휴가일에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보기 위해 전문 DVD플레이어를 샀고, 설법 CD는 내내 플레이어 안에 넣어두고 매일 아침 한 번을 다 보지 않으면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오후에 시간이 있으면 다시 한 번 보고 저녁에 시간이 있으면 이어서 보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거의 백 번은 본 것 같았다. 그 후 자신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보는 과정에 이미 알게 됐던 것이다.

보기 시작할 때엔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이 우주의 이치임이 이지적으로 아주 똑똑했고 옳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의문을 가졌고 또 아주 불복했다. 마치 마음속에 엄청 강대한 세력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와 겨루는 것 같아 늘 보다가는 그 자리에 앉은 채 잠들어 버렸으며, 기계도 정지되고 설법도 끝나면 깨어나곤 했다. 수련생과 함께 ‘전법륜’을 공부할 때 어느 한 마디를 듣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자신이 이곳 법리가 똑똑치 못해 문제가 있어서 졸게 되거나 듣지 못한 것이다.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공부할 때도 똑같은 상태가 나타났는데 자신이 이미 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수련 상태에 이미 아주 큰 문제가 존재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견지했다. 잠들었다가는 깨어나면 계속 보았다. 한 번 또 한 번 보았고 무슨 계획이라는 것도 없었고 다만 자신의 수련상태에 이상이 생겼으니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고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은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여러 해 만에 유일하게 녹화설법하신 것이므로 마땅히 많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열 몇 번, 스무 번 이후, 다시 말해서 열 며칠이 지난 후 더는 법을 보기만 하면 잠이 들지 않았고 법공부 할 때도 졸지 않게 됐다. 사부님이 말씀하신 법리를 조금씩 알게 됐고 몸의 좋지 못한 것들이 사부님에 의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몸은 늘 아주 민감했으나 보지 못할 뿐 얼마나 떨어져 나가고 어디에서 나갔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속으로 법리와 겨룸을 하던 그 세력도 부단히 약해지더니 나중에는 탄복했고 사존께서 말씀하신 법리가 옳고 자신이 틀렸다면서 철저히 탄복하는 것이었다. 몸에서 더는 무슨 생명이 법리와 다투지 않았다. 지금 나는 그것이 낡은 우주 생명의 본질, 사적인 것, 자아, 강대한 자아임을 알게 됐다. 가장 좋은 상태일 때면 사존님의 눈길, 동작이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이며 알리려는 것이 무슨 법리인지를 모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두 휴가가 끝날 무렵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족히 백번은 보았고, 사존께서는 나에게서 내가 보지 못하는 많고 많은 좋지 못한 것들을 청리해 주시어 그 후 몇 년간 수련에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법에 용해할 수 있는 그런 상태는 아주 좋았고, 법리를 깨달은 다른 공간은 세간의 일보다 더욱 진실했다. 그러므로 법리가 분명해야만 세속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고 진정으로 조사정법을 할 수 있다.

그 후부터 다시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면 나는 아주 조심했다. 왜냐하면 ‘자아’는 늘 저도 모르는 사이에 표현돼 나오고 그것이 나오기만 하면 나는 반드시 그것을 억제해야 하고, 그것이 ‘자아’를 표현하려 할 때면 그것에게 표현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했다. 동시에 다른 수련생이 ‘자아표현’을 강조할 때면 나도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다. 연속적으로 그렇게 여러 번 ‘호주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공부하면서 당시에는 별로 너무 많은 생각이 없이 그저 자신의 수련 상태를 귀정하려 했을 뿐이다. 이후에 수련생과의 협력 가운데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일하는 생각이 법에 있지 않을 때면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며, 서서히 자신을 실증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로 변할 때면 바로 구세력과 똑같이 되어 법, 사존, 수련자에 대한 관계상에서 위치를 잘못 놓게 되는데 수련 중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이미 아주 위험한 것이다.

‘9평공산당’을 정오(正悟)하여 사령(邪靈)을 제거하자

‘9평공산당’이 대기원 사이트에 발표된 후 줄곧 관심했다. 동시에 발견한 바로는 사존께서 최근 말씀하신 법이 이해되지 않았다. 설이 지나자 손에 ‘9평’ 서적이 있게 되어 주변 수련생과 함께 ‘9평’을 읽었는데 ‘전법륜’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부했다. 낭독하는 동시에 우리는 신체에서 으스스한 것이 밖으로 도망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9평’도 잘 공부해야겠다는 것을 알게 됐다. ‘9평’ CD가 있게 되자 아주 성실히 보았고 조금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처음엔 9평에서 말한 것이 옳은 건 알긴 하지만 그래도 인정할 수 없었다. 신체 속의 사령 요소를 거의 다 청리하게 됐을 때에야 비교적 조금씩 ‘9평’을 이해하게 됐고, 다시 사부님 신경문을 학습하게 됐을 때는 명백하게 보아낼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는 정법노정이 여기까지 밀고 오면서 자신의 당(黨)문화 요소를 건드리게 됐고, 수련하는 제자가 직면한 것은 대법에 속하지 않는 낡은 요소로서 청리가 필요한 것으로서 매 사람마다 모두 반드시 자신 몸의 대법에 속하지 않는 요소를 청리해야만 비로소 사존 정법의 보조를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구(舊) 우주의 한 생명을 신 우주로 건너가게 하려 해도 구 우주에 속하는 것은 신 우주로 데려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과 형성된 당문화 요소 및 사유방식을 반드시 엄숙히 대해야 함을 알고 있다. 이후에 ‘9평’을 많이 공부하고서야 비로소 사령은 한층 한층 부동한 층차의 신체 속에 짓눌러 들어갔으므로 한 층을 청리하면 미시적인 신체 속에 또 있고, 청리하면 또 있었으며, 청리하면 또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수시로 ‘9평‘을 학습하면서 계속 끊임없이 사당 문화 요소를 청리했다.

공산 사령 요소가 청리되면서 션윈에 포함된 법리를 보아낼 수 있었으며 자신 수련의 많은 문제도 답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나의 수련 중의 일부 체험인데 아직도 너무 많은 부족함이 있다. 문장 중에 부당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8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8/19/2616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