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교를 반대하는 약속카드’ 서명거부에 관한 약간의 견해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재 일부 지역에서 사교(邪敎)반대 약속카드(중공이 진정한 사교임) 서명으로 일부 사람을 미혹시키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방문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치가 있고 태도도 매우 온화하고 말하는 것도 사람에게 일종 사리를 밝혀가며 설득하는 태도이다. 약속카드의 내용에 파룬궁이란 글자가 없고 단지 사교에 대한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서명을 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고 당신이 서명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모두 되며 일체는 당신이 선택한다고 알려 준다. 결국은 수련생이 붙인 ‘중공 사당은 진정한 사교’란 스티커에 의견이 있는 일부 ‘유식한 사람’을 미혹시켜 매우 쉽게 서명을 하게 한다.

처음에 이 현상에 나도 한번 미혹됐다. 이것은 세인에게 위치를 바로잡고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후에 이 관념은 여전히 구우주의 이치일 뿐만 아니라 일부 진상을 모르는 세인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서명을 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하면 공평한 것이 아니며 오리무중에서 선택을 한 것이며 객관적으로 진실하게, 명백하게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약속카드 서명을 거절하는 스티커를 적지 않게 붙여 사람들에게 중공은 진정한 사교라고 사람들에게 알렸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여전히 약속카드에 서명을 했다.

이후에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또 진일보 사악의 정당하지 못한 수법을 발견했다. 매우 많은 지식인은 현재 여전히 당 문화의 관념으로 문제를 대한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나는 한 교사에게 션윈CD를 줄 때 그는 매우 안정적으로 나와 소통을 했다. “나는 이 신탕런(新唐人)에 의견이 있는데 그가 말하는 방식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것을 느껴요. 나는 온건파에 속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접수하기 어려워요. 조금 폭력적이에요.”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이 없고 단지 언론이에요. 그렇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그는 “언어도 일종 폭력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각도에서 말하면 그가 말한 것이 진실한가를 봐야죠. 만약 사실이면 그것은 폭력이 아니죠. 만약 단지 일종 형태의 선전이면 나는 당신이 보는 견해에 동의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하면서 말이 없었지만 또 말했다. “만약 당신들이 지반을 점령하려면 마땅히 우리가 접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 관계로 우리는 더욱 깊이 토론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개괄적으로 당 문화의 문제를 말하고 ‘9평’과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요점을 말했다. 나는 그가 당 문화로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그가 한 말을 생각해보니 당 문화의 변이 물질은 이미 대륙인 자아 중에 들어갔다. 예를 들면, 소위 온화함은 바로 하나의 함정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마치 따뜻한 물속의 개구리가 마지막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가는 것과 같다. 온화함을 뺀 이성(理性)에 정을 가하면 사람을 매우 미혹시킨다. 사람들이 진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허위적인 번영 속에 빠져 주동적으로 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령 신이 그의 앞에 와도 약간의 중요치 않는 습관과 관념으로 간격이 생길 수 있다. 이 약속카드를 연상하니 당 문화 중의 사람은 ‘기왕 당신들의 파룬궁을 제기하지도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반대하는가?’라고 인식한다. 당신들이 이렇게 서로 사교라 말하는 것이 문제가 있지 않는가? 당 문화 중에서 객관적으로 사실을 보는 사람은 종종 사당과 세상의 일체 당파를 함께 논한다. 그들은 아직 사령(邪靈)이란 개념을 인식하지 못했다. 때문에 문제를 보는 것도 다만 표면 현상에만 그친다.

법에서 이 문제를 보면 어떤 주체의 사교를 반대하는 카드는 공(空)이라고 설명하지 않았고, 이 공도 빈틈이 있어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설령 기타 사교를 반대한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중공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가? 당신은 생각해 보라. 그것에 대한 어떠한 승낙은 그것의 합법성에 대한 승낙이 아닌가? 중공은 그것의 정권과 이익을 위해 그것을 반대하는 언론을 존재하게 할 수 있고, 심지어 6.4천안문사건, 파룬궁의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다. 한 수련생이 일찍 중공사교의 내용에 서명을 거부한 것이 생각난다. 나는 일시적으로 이런 행위에 미혹되어 이것도 역시 진상을 알리는 방식이라고 느꼈다. 법에서 문제를 보니 매우 문제가 있다. 설령 중공이 자신이 사교라는 것을 시인하고 당신이 그것을 향해 그것을 반대하는 말을 승낙하면 그것은 여전히 사당의 틀 안에서 맴도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부득불 사람에게 사당이 마지막 순간에도 그것의 합법적인 지위를 수호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방면은 약속카드 중에 대법의 결백과 진상을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반적인 문제가 아닌데 어떻게 접수할 수 있는가?

당 문화는 여태껏 이목(視聽)을 혼란시키며 민중을 속여 왔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에게 진정한 선과 악, 좋고 나쁨을 구분하고, 일체 그릇된 견해를 타파하고 올바른 견해를 가지라고 요구하셨다.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법공부를 잘하고 사악의 가면을 간파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어 집으로 갈 수 있다.

문장발표: 2012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23/26052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