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위쉬안(宇軒)
[밍후이왕] 일전에 헤이룽장 따칭(黑龍江大慶)시에서 7명의 수련생이 3명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하여 박해받은 놀란 소식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설령 속인일지라도 나쁜 사람 셋이 좋은 사람 일곱 명을 납치하기는 아주 바쁠 것이라고 나는 느낀다. 만약 당시 수련생이 모두 악독한 경찰더러 ‘거기에서 꼼짝 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모두 거기에 정지되어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일곱 신선이 작디작은 세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 없는가? 한 발짝 물러서 말하면 그 당시 정공(定攻)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악독한 경찰이 전화로 경찰차를 부를 때 수련생은 그들더러 ‘휴대폰이 통하지 마라.’라고 생각한다면 박해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라. 7명의 수련생이 세 악독한 경찰에게 구타, 납치당한 것은 당시 한 수련생도 정념이 충족하여 박해를 부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령 한 사람이라도 진정하게 법에서 문제를 보고 정념이 충족했다면 능히 그 ‘장(場)’을 억제할 수 있어 악독한 경찰이 제지당할 수 있었으며 대법제자가 능히 악독한 경찰의 악독스런 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해 수련한 대법제자로서 관건 시각에 왜 사부님이 생각나지 않고 대법 중의 법리가 생각나지 않는가? 왜 대법의 신성함과 위엄을 실천하는 중에 대법일을 자연스럽게 펼칠 수 없는가? 대법제자의 세간에서의 사명이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예수가 세인을 구하려다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을 사부님은 이미 개변시켜 이후에는 세간에 와 사람을 구하는 각자를 박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 대법제자는 이 방면에서 솔선수범하여야 하며 후세 사람에게 좋은 본보기를 남겨야 한다. 길에서 만나면 인사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며 자연히 노니는 것도 모두 정상이지만 사악의 교란과 박해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정(定)이 일념과 이 일념을 지키는 전제로 다시 박해를 부정하면 쉬울 것이다. 이어 문제가 나타날 때, 대법제자는 어떤 염두를 움직이는가를 보자.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전법륜(轉法輪)) 한 가지 일이 나타날 때 우리 첫 일념이 가장 중요하며 이 일념도 비범한 의의를 나타낸다.
여기에서 자신이 친히 겪은 몇 가지 일을 사례로 ‘일념’의 작용이 얼마나 큰가를 증명하며 관건 시각에 ‘일념’이 진정하게 법에 있을 때 대법이 펼쳐진 끝없는 법력을 증명한다.
최근 나는 어떤 도시에 갔다. 집으로 가기 전 나는 이 시(市)의 공원을 거닐려고 결정했다. 당일 아침 나는 꿈에서 이 한 장면을 예견했다. 현지 사악이 몹시 화를 내며 나에게 말했다. ‘너 할 일 없이 온종일 무엇하러 우리를 혼내주려 하니? (나는 여러 차례 이 시(市)의 사악을 폭로했다.) 오늘 네가 감히 공원에 가면 꼭 너를 납치하겠다.’ 깨어난 후 나는 매우 곤혹스러워 어떻게 하겠는가? 가겠는가, 가지 않겠는가? 가지 않으면 사악의 안배를 인정하는 것이니 개인의 대법에 대한 인식에서 보면 나는 절대 그것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가면 또 수련생이 나와 동반하는데 그 수련생의 안전을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재삼 고려 끝에 그런 사악을 믿지 않고 간다고 결정했다. 이 꿈을 수련생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내가 충족한 정념이 있으면 사악의 안배를 부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 네 명이 공원에 갔을 때 경찰차가 같은 시간에 갑자기 우리 앞에 멈췄으며 차에서 경찰 세 명이 내려 동시에 우리를 보았다. 나의 가슴은 금방 쿵쿵거렸으며 눈앞에 즉시 일곱 명 수련생이 세 명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당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때 경찰은 또 뒤로 우리를 한 번 힐끔 본 다음 우리와 1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생각하니 우리는 사진기를 지녔으나 그들은 모두 빈손으로 정색한 얼굴로 주위 풍경을 보러온 것 같지 않았다. 조금 지난 후, 과연 둘이 우리 앞에 걸어와 하나가 뒤에 있어 마치 포위 공격하는 자세여서 나는 더욱 미심쩍었다. 그러나 나는 일분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크나큰 ‘멸(滅)’ 자를 보내 먼저 그들이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다. 이때 수련생도 그 세 사람을 주의하며 한 수련생이 이는 어느 직장의 보안요원이라 말해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를 보아하니 가장한 공안국 요원이어서 나도 의미 있게 수련생에게 암시했다. 수련생도 말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들 매 개인의 일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었다.
이때 나는 우리도 함께 발정념을 잘하자는 것을 그래도 수련생에게 알려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만약 수련생이 알면 사악의 안배를 인정 하지 않더라도 근심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일부 심정이 모순되어 자신에게 물었다. 몇 명 수련생의 안전을 어찌 너 자신이 책임지고 주장하는가? 이때 나는 수련생을 따라가면서 자신에게 반문했다. 너 혼자 되는가? 몇 번 물었을 때 갑자기 자신이 매우 우습게 느껴졌다.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보호하는데 사부님은 또 우리에게 호법을 안배하셨는데 나는 어찌 한 사람인가? 게다가 수련생의 몸에도 호법신이 있지 않은가! 이때 나는 나와 수련생이 이렇게 높고도 크고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며 나 한 사람이 새끼손가락으로 비빌 나위도 없다고 느꼈다. 하물며 우리 대법제자 넷의 정념의 장이 아닌가? 그리하여 다른 공간의 사악에게 강렬한 일념을 내보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쓸모없다. 죽지 않으려면 멀리 가라. 멀리 갈수록 좋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머리를 돌리니 경찰 셋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으며 계속 우리가 공원 한 바퀴를 돌아도 그들은 모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도 수련생에게 알리지 않아 사악은 이렇게 자생하고 자멸했다.
여러 달 전 내가 겪은 정념으로 위험한 일을 제거한 한 가지 일을 말하겠다. 수련생 갑이 나더러 휴대폰의 음성 시험을 도와 달라 했는데 휴대폰 이어폰의 마이크를 끄지 않아 우리 둘의 대화는 감청당했다. 결과 10분도 되지 않아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뚝 하고 나의 앞에 멈추었다.
길가의 등불로 검은 차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는 기사가 독살스런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을 한눈에 보았으며 그 눈길은 나를 먹어버릴 것처럼 사람더러 두렵게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나의 신분을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법제자이다. 그리하여 즉시 강대한 의념으로 크고 큰 ‘멸(滅)’ 자 하나를 내 보내 그 차에 씌웠고 게다가 마음속으로 ‘사부님!’하고 한번 외쳤으며 동시에 태연한 표정으로 수련생을 이끌고 승용차 뒷부분으로부터 밀치고, 밀치면서 눈으로 차를 한 번 보았다. 안에서 두 사람이 함께 머리를 돌려 줄곧 우리를 주시했다. 나는 사악이 주시해서 본다고 수련생에게 암시하였으며 우리의 표현은 자연스러웠다. 그리하여 우리 둘은 팔짱을 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정념을 하면서 안전히 떠났다.
기억하건대 2008년 중공사당(中共邪黨)이 올림픽을 하는 기간 현지 파출소 경찰이 여러 차례 이유를 찾아 나를 난처하게 했으며 게다가 나더러 근간의 사진을 보내라고 했다. 수련생은 사진을 보내지 말라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악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뻔질나게 찾아와 재촉했다. 나는 피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고 느껴 사진을 보내려 할 때 마음은 도리어 복잡하여 층계를 내릴 때 매우 무거워 나는 자신에게 어떻게 하겠는가를 물었다. 바로 괴로울 때 나는 갑자기 이런 하나의 도리를 생각했다. 대법제자는 세인이 희망이라고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그럼 각 지역의 대법제자는 바로 거기 중생의 구명은인이다. 그 중생이 은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으로 기뻤다. 그리하여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강렬한 일념을 보냈다. 당신 지역에 대법제자가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대법제자를 한 번만 보아도 모두 당신들의 복인데 빨리 나와 나를 영접하지 않는가? 말하는 사이에 파출소에 도착하자 이때 한 여 경찰이 정말 걸어 나와 웃으면서 무슨 업무를 처리하러 왔는가 물었다. 나는 모 경찰을 찾는다고 말하니 그는 즉시 나를 보내주었다.
사무실 문 입구에 이르니 안에는 한 무리 경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내가 문 입구에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뜻밖에 모두 일어나 정말 손님을 영접하는 것 같이 맞이해 주었다. 나는 태연하게 사진을 넘겨주니 그들은 연이어 오해하지 말라면서 이것은 상급의 요구로 사람마다 모두 내야 한다면서 서류를 펼치면서 나에게 보였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누고 돌아갈 때 그들은 또 모두 일어나 나를 문 입구까지 내보냈다. 이때 나는 이후에 나를 보면 스스로 인사하라고 또 일념을 보냈다. 결과 다시 나를 볼 때 그들은 멀리서 나를 향해 웃는다.
세 가지 일 중에서 정념으로 주도하는 것을 제외한 후 나는 일상생활 중의 일도 모두 일념을 최대한도로 대법의 부동한 요구에 부합되게 한다.
몇 년 전 내가 집을 살 때 실내 옥상에 빗물흔적이 녹슬어 있고 그 아래 바닥에 빗물을 받느라고 썼던 대야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나는 집주인에게 비가 몹시 새는가 물으니 그는 조금도 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대야 두 개는 작년에 거기에 놓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아하니 그는 눈을 부릅뜨고 거짓말하여 나는 웃으면서 얼마나 새던지 막론하고 내가 살면 조금도 새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집주인과 이웃은 다만 웃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과 내가 이사 온 후 정말 몇 년간 조금도 새지 않았다. 이웃은 이 집의 옥상은 여러 번 수리해도 도리어 어떻게 해도 수리되지 않아 큰비가 올 때 집은 비가 새어 빗물이 이웃집에 흘러 사람들의 전원 안전스위치가 차단되는 것을 초래했다. 이웃들은 모두 기쁘게 나를 귀인이라고 말하며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일념을 움직이고 한마디 말을 하면 특히 영험하다고 말한다.
어느 한 해 나는 일층에서 살았는데 얼마동안 늘 내집 창문 앞에 경찰차를 세웠고 경찰은 매번 차를 세울 때마다 방안을 보곤 한다. 어느 하루 그는 또 차를 몰고 와 나는 갑자기 경찰차를 내집 문 앞에 세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먼저 망신을 당한 후 차를 몰아라.’라고 정념을 보내자 결과 그가 어떻게 시동을 걸리지 않아 다만 한 차례씩 시도해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면서 마음으로 ‘망신을 당해라.’라고 생각했다. 몇 분 지나자 ‘팡’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경찰차는 바퀴가 터져 경찰은 놀라 즉시 차에서 내렸다. 소리가 너무 크기에 그는 매우 많은 사람이 들은 것을 알고 황망히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내가 바로 베란다에서 그를 보는 것을 보고 마침 무엇을 아는 것처럼 낯을 붉히면서 걸어갔다. 당시 속인 친구가 맞은편 층집에서 자전거를 타려다가 거대한 소리에 자전거에서 떨어졌다. 머리를 돌려 보니 내가 베란다에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달려와 내가 경찰에게 주문을 외우지 않았느냐고 물으며 내가 그를 뒤로 벌렁 나자빠진 자세로 해쳤다고 했다. 나는 경찰차를 여기에 둘 수 없다고 말했으며 지금까지 경찰차를 다시는 나의 창문 앞에 감히 세우지 않았다.
나는 몇 번 집단 싸움하는 것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식칼과 삽으로 사람을 찍으며 구경하는 사람들은 싸움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나는 즉시 ‘찍지 못한다.’라는 일념을 내보냈다. 결과 정말 찍지 못했으며 매번 모두 인명사고가 없었다. 지난 후 나는 안을 향해 찾았다. 무엇 때문에 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을 보는가? 자신이 수련하기 전 사람을 중하게 때린 적이 있는데 자신이 변이된 것을 한 차례 한 차례 청리하니 후에 다시는 이런 정경이 보이지 않았으나 부부간의 싸움은 볼 수 있었다.
어느 한번 아래층에서 울음소리가 들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보니 부부간 싸움인데 남자가 나무 몽둥이로 여자를 때렸다. 당시 집에는 수련생이 있었는데 수련생은 나의 표정을 보고 쓸데없는 일을 관계하지 말라고 권했다. 나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창문을 사이 두고 남자에게 ‘몽둥이를 놓아라.’라는 일념을 내보냈다. 이 일념에 ‘탁’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는 몽둥이를 땅에 버렸다. 이때 수련생은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으면 모두 인연관계라면서 내가 관계하는 것이 틀렸다며 원망했다. 내가 금방 망설이자 남자는 몽둥이를 주어 들고 또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의 울음소리에 나는 참을 수 없어 또 의념으로 남자에게 ‘몽둥이를 버려라.’ 이렇게 생각하니 여자는 몽둥이를 빼앗아 옆에 있는 단층집으로 힘껏 던졌다. 나는 수련생에게 말했다. 혹시 그들은 연원(淵怨)이 있어도 우주대법을 세간에 전해 세인들이 가장 좋게는 진선인(眞善忍)의 이념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최저한도로 내 공간장 안의 사람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들도 이렇게 요구해야 한다. 수련생은 도리가 있다고 느껴 다시는 나를 막지 않았다. 내가 보니 아래층 두 사람은 아직도 싸워 그리하여 또 일념을 내보냈다. ‘할 말이 있으면 잘 말하고 싸워 남에게 망신당하지 말며 다그쳐 집에 가라.’ 일념을 내보내는 데 따라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이 있으면 당신은 잘 말하고 절대 때리지 마라. 얼마나 창피스러운가. 빨리 집에 가자.’ 두 사람은 집에 가고 나와 수련생은 웃었다.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이 생각나는데 수련은 사람의 사상을 순정히 하고 사상을 순정히 한 것이 어느 정도면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럼 우리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상이 간단할수록 쉽게 정념을 낼 수 있으며 생각이 복잡할수록 사람의 마음을 쉽게 내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악인을 두려워하고 공능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가 의심하며 심지어 사부님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의심하는 등등이다. 사람 마음이 많으면 사악은 구실을 찾아 박해하며 우리는 수동적인 입장에 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관건시의 일념을 사람마음에 섞으면 그 일념의 작용을 약해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평시 생활 중에 될수록 정념을 움직여야 하며 의념을 잘 움직여야 하고 위험에 부딪힐 때에는 더욱 이렇게 해야 한다.
일념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가의 관건은 신사신법 정도에 달려있다. 신사신법을 말하자면 우리는 현대화의 불교학자처럼 그런 대법을 이론으로만 삼을 수 없으며 관건시각에 도리어 대법의 법리로 모순을 균형 시키고 없애버리지 못하며 심지어 기적이 정말 나타날 수 있는 것을 믿지 못하는 그것은 모두 대법에 불경한 것이다. 대법제자는 대법과 사부님을 내심으로부터 신뢰하고 공경해야 하며 문제에 부딪힐 때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기에 몰두해야 한다. 기왕 사부님이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 고험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면 그럼 꼭 자격이 없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바른 믿음을 지켜야만 위험을 제거할 수 있고 더욱 좋게 대법의 비할 바 없는 법력과 위덕을 납득하고 보아낼 수 있다.
관건시의 일념을 엄숙히 대해야 하며 자신의 정념이 얼마나 강한가를 실증하기 위함이 아니라 대법제자로서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여 더욱 좋게 법을 실증하고 법을 펼치는 것이 대법제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2012년 7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23/2604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