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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NTD에서의 수련체득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씬탕런(新唐人)이 2001년에 세워진 후부터 나는 법을 실증하는 이 항목에 참여했다. 2006년 보스턴에서 뉴욕 NTD로 왔다. 여기에서 나는 여러분들과 함께 몇 년간 뉴욕 NTD에서의 수련체험을 보고하려 한다.

1. 협조를 배우다

뉴욕에 갓 왔을 때 나는 주로 NTD 신년 만회를 널리 알리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 후 나는 요리대회 항목의 책임자를 맡았다. 그때 나는 이 항목을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한 션윈 협조인의 법회 교류가 나에게 매우 큰 계발을 주었다. 그는 우리가 마치 사부님이 발사한 하나의 화살같이 사부님께서 힘을 주시며 목적은 사부님이 정하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매 개인은 모두 이 화살의 일부분으로 오직 사부님께서 주신 힘을 믿고 사부님께서 정한 목표를 믿어야만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협조 인으로서 내가 바로 이 화살의 화살촉이고 내 책임은 이 화살을 끌고 흐트러지지 않게 하여 최후에 함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이용해 사람들과 교류했다. 우리는 매주 한 번씩 회의를 열었고 우리 모두 아무런 모순도 없었지만, 내가 배치한 업무는 마치 늘 어떠한 진전도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사방에서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했지만 그래도 참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나에게 “당신은 늘 많은 업무를 해내지 못했다고 강조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열정으로 사람들의 적극성을 모두 불러일으켜야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 지에 대해 사고하게 했다.

이어서 나는 대만에 가서 아태지역 요리대회 첫 경기를 참관했다. 그것은 우리가 처음으로 개최하는 개방식 요리대회였고 현장은 매우 컸다. 무대 설치부터 준비, 선수 소개, 경기 사항, 언론 보도, 합격자 명단 발표 등 여러 방면에서 대만의 협조인 수련생은 대회의 업무배치를 그렇게 자세히 하며 참여한 수련생들도 협조를 잘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대만 수련생들이 그렇게 협조를 잘할 수 있는데 나는 무엇 때문에 능력이 없고 사람들과 협조를 잘 할 수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자신은 중국대륙에서 태어나 어른이 된 후 미국으로 왔다. 아직 제거해 버리지 못한 당(黨) 문화의 것들이 서방의 독립적이고 개성적인 사상을 오염시켰다. 곳곳에서 나타난 것은 바로 자신의 거만함과 경솔함이었다. 그러나 대만 수련생들은 나에게 무엇이 진정한 중국인인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들 몸에서 중국인의 겸손함과 자율의 미덕을 보았다. 나는 한 훌륭한 협조인은 마땅히 그의 단체를 모두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모든 부담을 내려놓았고 다시는 몇 명이 이 항목에 참여하는지 걱정하지 않았으며 나 역시 다른 사람이 얼마만큼의 일을 했는지 주시하지 않았다. 설령 나 혼자만 남았을 지라도 이 일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화살이 설령 최후의 화살촉 하나만 남았을 지라도 나 역시 목적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단체의 많은 수련생들은 모두 낮에는 직장에 출근하므로 시간을 내기가 매우 어려웠다. 내가 시간이 많고 일을 빨리 할 수 있다면 거꾸로 당신들이 방법을 제시하고 내가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매주 우리는 해야 할 일에 대해 서로 의논하고 결정한 후 내가 일을 하기로 했다. 그 후 나는 매번 회의 후 내가 일을 함에 아주 순조로운 것을 발견했고 나는 전체 단체의 힘이 나를 지지했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늘 이런 꿈을 꾸었다. 나는 아주 더러운 어떤 방에 있었다. 밖에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이 방에서 나가려면 오직 하나의 그리 크지 않은 구멍으로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 구명이 너무 작아서 나갈 수 없었다. 만약 외부 경치를 보지 못한다면 나 역시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환경에 있는지 모를 것이며 그렇다면 고통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일체가 모두 매우 진실하지만 내가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 나는 미래에 대한 일종 생명의 절망을 느꼈다. 이 일 년 동안 요리대회 협조에서 압력이 가장 컸고 가장 힘들 때 결국, 꿈을 꾸게 된 원인을 깨닫게 됐다. 나가지 못했던 것은 나 자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자신을 작게 변하게 하는 지혜가 없었다. 만약 내가 작은 나비로 변했다면 그 구멍은 매우 컸을 것이고 바로 날아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나는 늘 자신에게 스스로가 보잘 것 없으며 자신을 작게 변하도록 일깨웠다.

아마 수련에서 제고했을 것이다. 그 후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도와주었다. 선수를 찾는 일부터 경기사항 준비까지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묵묵히 하고 있었고, 참여한 수련생들은 이미 내가 셀 수도 없을 만큼 됐다. 시합 시작 전날, 나는 대 뉴욕 지역에서 두 번째 날 수백 명 수련생들이 대회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오직 사부님의 법이야 말로 이렇게 많은 대법제자들을 함께 모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고, 그것은 근본적으로 어느 한 사람이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협조해 내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2. 어려움 중에서 수련하여 근본적인 집착을 찾다

그 해 요리대회는 전반적으로 비교적 순조로웠다. 이어서 NTD는 나에게 홍보업무를 책임지게 임명했고 동시에 요리대회도 담당하게 했다. 속인의 말로 하면 나는 중용되는 것이다. 나는 당시 NTD 발전이 이상적이지 못한 것은 바로 전직 업무를 보는 전문 인재들이 많지 않기 때문임을 알게 됐고, 자신이 NTD에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진지하게 일하는 것이며 매우 전문적으로 업무에 임해야 함을 알게 됐다. 나는 매일 매우 부지런히 일했지만, 수련 요소를 소홀이 했다. 그렇게 장기간 씬씽(心性) 방면에서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지 않았기에 이 1년 간 나의 씬씽은 여러 방면에서 엄숙한 고험에 부딪혔다. 구세력은 우리 각자의 수련해 내지 못한 사람마음을 이용해 각종 간격을 조성했다. 이런 간격으로 발생한 모순은 우리로 하여금 일을 해낼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이런 고험 앞에서 나는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지 못했고 잘하지 못했다. 가장 주요하게 나타난 것은 나와 두 협조인과의 모순에서였다.

나는 당시 한 협조인이 일으킨 수년간의 문제가 우리 부서의 업무효율과 사람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각종 유언비어와 바르지 않은 이야기가 이미 바르지 않은 마당을 조성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바르지 않은 상태를 바꾸려했지만 각종 압력과 요소들이 즉시 나를 가로막았으며 나로 하여금 빠져나갈 수 없게 했다. 나는 그가 수년간 쌓아두었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타인이 NTD 업무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어떠한 인연 관계인지 모르지만 나는 또 다른 책임자에 대해 경계심이 생겼다. 예전에 늘 다른 사람들이 그녀가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때문에 나는 그녀를 매우 신임하지 않았다. 이 두 협조인 사이에도 모순이 있었다. 이런 복잡한 모순 앞에서 나는 안으로 찾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을 잊었으며 NTD의 환경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지만 원망했다. 우리 세 명은 그 해 대회와 만회의 주요 협조인 이었는데 내부의 각종 간격들은 항목 관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오직 사람의 고만한 능력에 기대어 억지로 버텼는데, 수련은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몇백 명 수련생들이 그들의 시간, 정력, 심혈과 금전을 모두 뉴욕 타임스퀘어에 투자해 요리대회를 해냈을 때 하늘은 오히려 비를 뿌렸는데 이는 우리 정체 씬씽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요리대회가 가장 바쁠 때, 나의 어머니가 갑자기 드문 심장병에 걸렸고 수술을 해야 했으며 내가 돌봐드려야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속인 직장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나의 생활과 수련 모두가 혼란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구세력이 소위 우리를 위해 제고하게 하려는 것은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많은 수련생들이 밍후이왕에서 자신들이 근본 집착을 교류하는 것을 보았고 나 역시 나에게 어떠한 집착이 있는지 생각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 해 요리대회에서 겹겹이 쌓인 모순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나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았다. 속인 중에서 나는 그런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대법을 수련하게 된 목적은 완벽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나는 매우 정진했고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을 수 있었지만 잘하기 위해 잘했으며 근본적인 목적은 대법을 통해 자신이 인정하는 완벽함에 도달하기 위함이었지,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대법을 이용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근본적인 집착을 찾았지만 이 집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바로 착실한 수련을 통해 이 집착을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오랫동안 일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어 무엇이 착실한 수련인지 분명하지 못했고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요리대회가 끝난 후 우리 부서의 총결회의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근본적인 집착을 찾은 것에 대해 교류했다. 한 협조인은 “맞습니다. 바로 당신의 심태가 바르지 않았기에 올해 대회가 시작 무렵 그렇게 순조롭지 못했는데 당신의 심태가 좋아지자 대회는 바로 순조로워 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협조인은 “올해 대회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모두 좋았지만 다만 홍보가 잘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붕괴되는 것 같았고 수련 이후 가장 침체됐다.

그때 나는 이미 NTD에 갈 수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한 느낌이었다. NTD를 떠나고 싶었지만 또 아쉬워 떠날 수 없었다. 떠나지 않으려면 또 어떻게 자신의 수련상태와 주변의 이런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아프게 하는 환경을 바꿔야 할지 몰랐다. 그런 힘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심혈을 기울여 나를 격려해주시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예를 들면 내가 오직 하나의 정념으로 방송국에 가기만 하면 내가 만나는 매 한 수련생들의 언행 모두가 나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다만 내가 약간의 정념으로 방송국에서 약간의 일을 한다면 크든 작든 불문하고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 반드시 그 일을 해낼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나는 최후에 NTD를 떠나려고 결정했다. 나 자신은 바꿀 수 있지만 내가NTD의 환경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작게 해야 했다.

만약 NTD를 떠나려고 결정한 것이 고통이라면, NTD을 떠난 후에는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NTD를 떠난 후 나는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함께 남미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기만 하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휴대폰에서 NTD 전자메일을 모두 자세히 읽었다. 그런 단체를 떠나는 두려운 느낌은 나로 하여금 하나의 메일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게 했다. 비록 나는 매일 경치를 감상하고 먹고 마셨지만 내심은 NTD에서의 먹고 마실 것도 없이 밤낮없이 일하던 나날들을 매우 그리워했다.

줄곧 나는 자신의 모든 능력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아우 분명히 알고 있었다. 특히 NTD에서 전직으로 대회와 홍보를 담당한 후 많고 많은 지혜와 능력 모두가 끊임없이 법에서 온다는 것을 느꼈다. NTD을 떠난 후 나는 가끔 ‘이런 능력을 도대체 어떻게 사용할까? 사부님, 제가 영어를 모른 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나는 매일 같이 9평(九評) 진상장소에서 진상할 것입니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능력을 구비한 것으로 불안했지만 NTD에서 사부님이 주신 이런 능력을 어떻게 잘 사용하는지가 바로 내가 NTD에서 넘지 못했던 고비였다. 한 생명이 자신의 일체 지혜가 대법에서 온 것임을 분명히 알았을 때, 이런 지혜로 대법을 실증하는데 사용하지 못했다면 그런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후 한 동안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나의 능력을 제거하셨다. 내 머릿속은 텅 비어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무슨 일이든지 모두 생각해 보아야 했고 할 줄 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런 상태는 줄곧 성악대회를 할 때까지 지속됐다. 이를테면 나는 무엇이든 알던 데로부터 아무것도 모르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비할 수 없이 소중한 수련 과정이었다.

성악대회의 협조인은 신 수련생이었고 그가 업무에 진지하게 바치는 정신은 보기 드물었다. 그는 우리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았고 우리는 늘 한 소리 들었다. 한번은 그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머리가 목석이 됐다. 둘째 날엔 사람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갖지 말아야 하며 노 수련생은 신 수련생에 대해 반드시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에게 제고 할 요소가 없다면 그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번, 그는 우리 세 명의 수련생에게 NTD에서 발언하게 했다. 주제 내용은 그가 미리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틀 후 그는 출장을 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불러 모아 놓고 우리의 발언을 들었다. 들은 후 그는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말했다. “당신들의 이런 발언을 누가 듣겠어요? NTD에서 내일 회의하는 사람들 모두가 실망해 돌아가겠어요. 당신들 세 명은 돌아가서 다시 준비하세요. 말할 줄 모르면 쓰세요. 내일 당신들은 원고를 읽어도 되는데 아무튼 어느 정도 맞아야 합니다!” 그때는 이미 저녁 12시 반이었다. 머릿속은 텅 비었다. 나는 말하지 못하면 써서 내일 원고를 읽으려 했다. 한밤중에 그는 또 전화해서 말했다. “당신 수련을 이야기 하세요.”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나는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회의 전 이 협조인은 나에게 그 앞에서 원고를 한번 읽으라고 했다. 나는 읽고 읽다가 울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또 그에게 말을 들을까 봐 매우 두려웠던 것이다. 그는 들은 후 매우 상냥하게 아주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금 뒤 읽을 때 울지 말라고 했다. NTD회의가 시작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여러분들과 오랫동안 NTD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언한 적이 없어 매우 긴장된다고 말했고 때문에 나는 발언을 써왔다고 말했다. 나는 원고를 읽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읽으며 한편으로는 울고 싶었지만 나는 억지로 자신을 울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울어버리면 조금 뒤 또 말을 듣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찍이 관중들 앞에서 중문과 영문으로 모두 막힘없이 이야기하던 내가, 오늘에 와서 끝내 자신을 보잘 것 없이 만들었다. 나는 성악대회 이 한 단락 과정을 매우 소중히 생각했다. 나는 예전의 일을 함에 있어서의 관념과 경험을 제거했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모두 내려놓았는데 비록 표면으로 봤을 때 매우 바보 같았지만 나는 더욱 큰 지혜를 얻었다.

이런 끊임없이 자신을 작게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또한 각종 체험이 있었다. 처음에 시작했을 때 작게 변하는 것은 바로 적게 말하고 침체되는 것으로 표현해 사람들에게 나를 주의하지 않게 했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이렇게 할 때, 나는 자신을 나 자신의 생명이 아닌 것으로 변하게 하려고 함을 발견했다. 나중에 나는 우주의 생명은 풍부하고 다채롭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생명에는 특색이 있는데 어떤 것은 강하고, 어떤 것은 약하며, 강한 것과 약한 것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었다. 다만 우리의 이런 강한 것과 약한 것은 구우주의 위사위아의 기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구세력이 강하게 표현하는 것은 기세등등 했고, 약하게 표현되는 것은 바로 자기비하와 자아보호였다. 만약 우리가 우리 생명의 특성을 쩐싼런(眞善忍)에 동화한다면 그런 강한 것은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며 바로 일종의 진리에 대해 견지하는 바른 힘이 될 것이다. 게다가 쩐싼런에 동화된 그런 약함 역시 무능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우리 수련은 나의 생명의 특성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무조건 이 법에 동화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법에 동화하려면 역시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

3. 착실히 수련한 체험

수년간 항목에 바빠 늘 밤을 새워 법공부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법공부 할 때 마음이 조용하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허튼 생각을 많이 했다. 매우 괴로웠지만 이런 상황을 줄곧 돌파하지 못했다. 수련 중 부딪힌 어떤 한 가지 일이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올해 초 나는 나에게 정성을 다하는 남성을 만났다. 이는 나로 하여금 매우 경각심을 높이게 했다. 이렇게 많은 해를 수련하면서 나는 줄곧 자신이 이 방면의 법리가 매우 청성한 것으로 생각했고 남성과 교제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본분을 지키며 이런 방면에서 번거로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반드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밍후이왕에서 색욕에 관한 문장들을 한편 한편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자신에게 아직도 이렇게 많은 색욕이 제거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고 자신이 수련 중에서 쌓아놓은 각종 사람마음과 집착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다. 이 색욕심은 가장 표면적이고 더러운 것이며 또한 가장 쉽게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색욕심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은 한 무더기 기타 마음으로 과시심, 명리심, 환희심 등이었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이미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반드시 자신의 집착을 마주하고 착실히 제고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철저히 바꿨고 또한 법공부 시간이 일정하지 못한 버릇도 바꿨다. 나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반드시 세 가지 일을 하는데 바로 발정념, 연공과 법공부였다. 동시에 주말 이틀 간 새벽에는 실외 연공을 견지했다. 매일 차를 탈 때 법공부 아니면 발정념을 해서 자신의 머리로 하여금 허튼 생각을 하지 않게 했다. 낮에 근무할 때는 착실히 근무하고 저녁에 퇴근해 집에 돌아와서는 계속 법공부하고 연공했다. 몇 개월을 견지하자 나의 수련에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예전에는 안으로 찾는 것이 피동적이었다. 어려움에 부딪히게 됐으며 부득이할 때만 안으로 찾았다. 지금은 매 순간마다 자신이 수련생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작은 일에서나 혹은 일사 일념에서 법에 어긋나는 것을 찾아내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배웠다. 예전에 안으로 찾을 때 집착을 찾았지만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이런 집착을 제거하지 않았으며 인위적으로 집착심을 보호하는 우산이 됐다. 지금은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제외하고 착실한 수련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요한 것은 집착심을 제거할 때 괴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 참을 수 있는지, 바르게 깨달을 수 있는 지였다. 아래에 나는 집착심을 제거한 일부 체험을 이야기 하겠다.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은 바로 소업하는 과정이다. 나타는 것은 병업을 소업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하지만 병업은 신체상에 나타나지만 집착심을 제거할 때는 정신상에 나타난다. 내가 첫 번째로 제거한 것은 색욕이다. 이 색욕은 밀려오는 기세가 매우 강했지만 쉽게 제거됐다. 색욕심을 제거할 때 나타나는 것은 사람 머릿속에는 온통 헛된 생각에 빠지는 것들이며 내가 만약 그것을 나 자신으로 여긴다면 그것에 의해 좌우지 되는데 그렇다면 이런 집착을 제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자라날 수 있게 한다. 때문에 그것이 표현되어 나올 때 그것에게 좌우지 되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그것은 표면으로 밀려나와 곧 훼멸되려 할 때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때, 반드시 그것을 제거하고 훼멸하고 배척해야 한다. 우리가 더욱 확고할수록 그것이 더욱 빨리 제거된다. 정(情)의 물질을 제거하는 표현은 비교적 명확하지 않아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에게 습관이 되어 평범한 일로 여기는 각종 느낌, 각종 정서인데, 예를 들면 슬프거나 기쁨 등등이다. 정은 많은 곳에서 기타의 집착심과 함께 교차되어있으며 기타 집착으로 하여금 더욱 살상력을 구비하게 한다. 예를 들면 질투심과 정이 함께 교차되어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나쁜 말을 더욱 하게 하여 모순이 생기게 한다. 색욕심과 정은 함께 묶어져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정과 색 중에 미혹되게 하여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게 한다.

어느 날 나는 자신에게 사람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로 조급했다. 조급하여 울었고 어떻게 해야 사람을 존중할 수 있을지 몰랐다. 곧 오늘부터 나는 누구를 보든 나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다만 행위로 자신을 단속하는 것이지만 또한 반드시 법리에서 명확해야 했다. 그 후 한 수련생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질투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며, 둘째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었구나. 그 뒤로 나는 매 개인의 지위, 외모, 신분을 막론하고 나는 모두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한 수련생에 대해 나는 어떻게 해도 그녀를 무시하게 됐는데, 바로 그녀의 수련상태에 엄중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가 그녀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나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한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그는 말했다. “당신이 당신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당신은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느낍니다. 당신이 법으로 일체를 가늠할 때 당신은 이런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됐고 우리는 구세력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되며, 또한 아름다운 말로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구세력으로 수련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법으로 주위 일체를 대해야 한다. 그 후 사부님께서는 또 나에게 정을 제거하라고 점화해 주셨고 나는 정의 요소 역시 이런 사람을 무시함을 더욱 크게 확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이런 정과 같은 요소를 제거한 후 다시 이 수련생을 보았을 때 그녀를 무시하는 염두가 사라졌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은 바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좋지 않은 물질들이 끊임없이 밀려나오면 나는 끊임없이 배척하고 제거했다. 나는 다른 공간은 바로 하나하나의 큰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노력하지 않고 그것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때 그런 물질은 마치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때야말로 바로 자신의 의지력과 신사신법의 정념을 고험하는 시기인 것이다. 얼마를 노력하면 얼마를 얻는다. 정념이 얼마나 강하면 집착심도 얼마를 제거한다. 몇 차례 장기적으로 견지해 어떠한 집착심을 제거한 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집착심을 제거한 후의 아름다운 상태를 체험하게 하셨다. 오랜 시간 끊임없이 이런 집착심을 제거한 탓으로 나는 매일 자신의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나는 자신이 끝내 수련의 궤도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꼈으며, 바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련기구가 나를 이끌어 집착심을 버리게 하고 위로 올라가게 했는데 나는 무엇이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상태인지를 체험했다. 수련은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며 우리는 오직 수련인의 이런 순정한 마음만을 유지하고 시간마다 씬씽을 수련한다면 법에 동화하는 속도는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그런 초기와 같은 수련상태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수련에서 제고되자 문제를 보는 시점도 변했다. 나는 예전에 NTD에 대해 늘 일종의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올해 겨울, 나는 사람들이 수년간 쌓았던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이 이미 NTD에 부정적인 장을 형성한 것을 인식했다. NTD는 이미 충분히 어려운데, 자신이 예전에 NTD에 대해 생각했던 부정적인 견해와 언어들이 모두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겠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이런 생각이 떠오른 후 며칠간 나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한 달 동안 기침했다. 나의 체험은 수련 중에서 어려움을 겪지 못한다면 제고할 수 없는 것이다. 늘 어려울 때일수록 바로 더욱 빨리 제고하는 시기다. 어려움 속에서, 고통 속에서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올해 뉴욕 법회 후 나는 NTD로 돌아왔다. 나는 아주 빨리 이 결정을 내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서약을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며 NTD를 잘 꾸려나가 예전에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그런 예전의 나와 같이 아직도 NTD에서 몸부림치며 고비를 넘기려 하는 수련생들에게 나는 “이런 모순은 모두 가상이며 집착을 내려놓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기연을 소중히 여기면 NTD를 잘 꾸려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되돌아본다면 그런 소위 고비와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대법제자를 육성하는 한 가지 기회를 제공했을 뿐이다. 또한 그런 나와 같이 일찍이 NTD를 떠났던 수련생들은 조속히 NTD로 돌아와 함께 우리의 공동서약을 완성하기를 희망한다.

약 7,8년 전, 나는 밍후이왕에서 교류문장 하나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매우 감동했다. 그 문장에서는 말했다. “대법제자의 수련이 끝난다면 그때의 대법제자들은 모두 신의 상태이며, 이미 사람의 사상이 없을 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생각일 뿐이고 마침 그 일보직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원만하는 신들에게 놓고 말한다면 오히려 발걸음을 내 딛기가 어려울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손상되어 완전하지 못한 세계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 교류문장을 읽고 나는 문장에서 형용한, 신이 자신의 중생들의 고통에 직면할 수 없는 느낌을 매우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이것으로 자신을 더욱 정진하고 격려해 중생구도의 일을 잘할 수 있게 할 것이며, 희망하건대 우리 모두가 수련초기와 같은 열정을 되찾아 자신의 수련에 어떠한 유감도 남기지 않고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2년 미국 워싱턴 DC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2년 7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18/260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