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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을 추진하면서 걸어온 춘하추동

글 /미국 일리노이주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수련생들 안녕하세요?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었다. 업무 특성상 나는 매일 많은 시간이 있어 학습을 했기에 모순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부님의 법이 눈앞에 나타나서 99년 박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거의 넘지 못한 개인 관이 없었다. 법을 잘 학습한 것은 내가 뒤의 십몇 년 반박해 가운데서 신사신법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는데 견고한 기초를 닦아 주었다. 2010년 가을에 미국에 와서 그해 10월 말, 션윈을 널리 보급하는데 참여했다. 나의 첫 일념은 션윈은 전체 인류를 구도하는 것이고 션윈 문화는 위아래로 관통되었다는 것이었다. 12월 말, 처음으로 현장에서 션윈을 보게 되었는데 당시 매표가 제대로 안 된 장면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2011년 4월 말, 참여한 여러 곳의 매표 정황은 모두 여의치 않아 내 마음이 너무 쓰렸다. 나는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라는 도리를 알고 있는데 제자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중생구도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이고 사부님께서는 다른 공간에서 길을 모두 깔아 주셨는데 우리 스스로 가서 걷기만 하면 된다. 나는 몰래 사부님께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미국 주류사회를 열겠다고 맹세했다.

2011년 7월 17일, D.C법회 이후 나는 요청을 받아 휴스턴에 가게 되었는데, 같은 해 12월 하순에 이곳에서 6차례 션윈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7월의 휴스턴은 태양이 강하게 내리쬈고 낮의 최고온도는 화씨 117도 전후였다. 나의 첫 번째 임무는 포스터를 붙이는 것인데, 이튿날 오후 1시 반에 포스터가 도착하자 2시에 나는 곧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10여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나는 입이 마르고 혀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마치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많은 것을 아랑곳할 사이가 없었다.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너무 급했기에 오후 4시 반까지 2시간 반 동안 이미 80장의 포스터를 붙였다. 그때부터 나는 휴스턴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션윈 홍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느 한 수련생이 나를 큰 쇼핑가까지 데려다준 후에 가서 다른 항목을 했다. 매일 나는 200장 가까이 되는 작은 포스터와 전단지 한 상자를 끌고 어깨에 가방을 메고 다녔다. 가방 안에 아이패드가 있어서 상점에 갈 때마다 우선 간단하게, 훌륭한 공연이 왔으니 어느 극장에서 한다고 알려주면서 포스터를 붙이는 김에 30초가량 션윈 소개를 틀어주었다. 다 틀어주면 마침 부착 작업도 끝난다. 붙이지 못하게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나는 기쁘게 자료 한 부를 주면서 반드시 매니저나 사장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내가 오전에 상점이 문을 열기 시작해서부터 오후 6, 7시까지 걸어 다닌 후, 수련생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다. 하루 동안 200장 내외의 포스터를 거의 다 붙일 수 있었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면 온몸이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뜨끈뜨끈했다. 나는 열기를 식히려고 얼음을 한 사발 또 한 사발 먹었다. 며칠 후 어느 저녁, 누운 후에 나는 힘들어서 일어날 수 없었기에 부득이 먼저 기어서 꿇어앉은 다음 천천히 일어났다. 날이 밝은 후 또 자신만만하게 포스터를 붙이러 갔다.

이런 과정 중에서 여러 가지 사람 마음의 교란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기본상 그것들을 배제하고 영향을 받지 않았다. 나는 내 표면으로 반영된 사상 교란은 흔히 업력과 관념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다. 나는 나의 이전 우주의 중생과 교류할 수 있는데, 내가 수련하면 그들도 함께 수련하므로 그들의 상태는 내 신체 표면에 반영되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또 구도되어야 할 생명들 역시 표면 이 사람에게 반영되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정념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법을 잘 학습해서 이러한 교란을 바로 잡거나 제거했다. 즉, 이런 생명의 사상을 바로 잡아 그들로 하여금 정법 중에서 구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또한 자신이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했는데, 매번 마음에 거슬리는 일이나 신체가 좋지 않은 반영에 부딪쳤을 때 나는 좋은 일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생각을 바르게 하면 포스터를 붙이는 것도 아주 순조롭게 되었다.

포스터를 붙이는 과정에서 나는 흥미롭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들을 아주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포스터를 안은 채, 그곳에 간 의향을 밝히자 상점에 있는 여사는 한편으로 두 손을 흔들면서 한편으로 내 이름을 물었다. 내가 톰(Tom)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흥분하면서 “션윈이 정말로 온 건가요? 톰,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당신은 손에 이렇게 많은 물건을 들고 있다니. 빨리 물을 드세요. 당신은 반드시 견지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럼 당신은 표를 구매하셔서 나를 격려해 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는 남편과 상의 후 내일 반드시 표를 구매하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도와 붙인 후에 내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이튿날 현지 협조인이 내게 전화해서 어느 여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톰에게 자신이 이미 표를 구매했다고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루 지나 방문했던 찻집의 주인, 매니저, 손님들도 같이 표를 구매했다.

사거리에서 어느 큰 식당에 큰 유리가 환하게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반드시 션윈 포스터를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으로 들어가 여자 안내원에게 온 이유를 설명하자 그녀는 다른 여사를 가리켰다. 나는 그 여사 앞에 가서 포스터를 펼쳐 보이고는 간단하게 션윈을 소개했다. 그녀는 내 마음대로 몇 장이나 붙여도 된다고 말하면서 또한 거기에 있는 음료를 내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고 했다. 나는 큰 컵에 얼음을 꽉꽉 넣은 콜라를 한꺼번에 절반 넘게 마시고는 머리를 돌려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녀는 급히 “나에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내가 당신한테 감사를 드려야 해요. 당신은 이렇게 아름다운 소식을 나에게 알려주었는데요.”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마치 중생이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을 본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를 마중하러 오는 수련생이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나는 엘리베이터를 따라 한 빌딩의 아무 층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갔다. 문마다 모두 비밀번호가 있었는데 가볍게 문을 밀자 문이 열렸다. 안에 세련된 옷차림을 한 여사가 앉아 있어서 나는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뛰어난 공연을 소개해줄게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홍보책자를 받아 쥐고는 너무 아름답고 매우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의아해 하면서 나에게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문이 열렸어요. 미안해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당신한테서 소식을 받을 수 있는데 대해 아주 기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들어오면 당신에게 시끄러움을 가져다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문을 나선 후에 나는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했지만 방법을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비밀 문을 밀고 들어가자 또 열렸고 안에 문이 두 개 있었는데 여전히 한번 밀기만 하면 모두 열렸다. 전처럼 여전히 한 여사가 있었다. 그녀는 홍보책자를 받아 쥐고 연달아 감탄을 하였지만 이어서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역시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나는 반드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자료를 갖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래층은 모모 변호사사무소 본사였는데 안내 데스크 옆에 경호원이 있었다. 내가 바로 션윈 자료를 안내원에게 건네주면서 그에게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될 뛰어난 공연이라고 알려주자 그는 반드시 나누어 주겠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후에 다시 크고 작은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안내 데스크나 우편 데스크를 찾아 간다. 일부 작은 회사에는 비록 안내원이 없었지만 여전히 누군가 나와서 자료를 받고는 했다. 사람마다 션윈 자료를 보고는 모두 아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방법을 현지 협조인에게 알려주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그는 연달아 긍정하면서 된다고 했다. 또한 매일 얼음을 많이 가지고 가라며 신신당부하면서 여기는 너무 더워 사람을 익힌다고 했다. 이 협조인은 정념이 아주 족한데 착실하게 션윈을 널리 전하는 매 하나의 일에 대해 그는 모두 격려를 해주었고 반드시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모두 서로 간에 이렇게 정념으로 지지해 주었기에 했던 일들도 반드시 정면적인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10여 일 나를 휴스턴으로 요청했던 수련생은 피닉스에 가서 션윈 광고를 했기에 그는 자신의 새 차를 나에게 넘겨주며 나보고 운전하라고 했다. 이는 정말 크게 도움이 되었고, 나는 온 하루 걸어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너무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일 저녁 돌아온 후 바로 수련생이 제공해 준 이튿날의 위치를 GPS에 입력했다. 매일 7, 8개 위치점이 있었는데 7, 8개 큰 쇼핑센터를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스스로 자신을 일깨웠다. 반드시 빨리 사람을 구해야 하고 시간이 없으며 오늘의 임무는 반드시 오늘 완성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기간에 나도 일부 교란에 부딪쳤는데 나는 아이패드를 잃어버렸고 직불카드도 돈을 찾을 수 없었으며 몸에 지녔던 현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 조금 궁지에 빠진 것 같았다.

약 4주 기간에 나는 4천 장에 가까운 포스터를 붙였고 현지 수련생과 협력해서 포스터를 한 바퀴 붙였다. 협조에 참가한 수련생은, 스폰서들이 어디에서나 모두 당신들 션윈 포스터를 볼 수 있다고 얘기해 준 것을, 피드백해주었다.

후에 오스틴 협조인도 나보고 포스터 붙이러 오라고 요청했는데 현지 한 노인 수련생과 한 젊은 수련생이 나와 한 팀이 되었다. 여기의 수련생들은 협력을 아주 잘 했기에 여드레 전후 동안 포스터를 한 바퀴 모두 붙였다. 주말에 마침 시 중심에 션윈을 널리 보급하는 진열장이 있어서, 오가는 손님들이 곳곳마다 당신들 션윈 포스터를 볼 수 있다고 얘기해 주었다.

휴스턴에 돌아간 후 세인트루이스의 한 수련생도 와서 도와주었다. 우리는 둘이 한 팀이 되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 분야로 뛰어다녔고 주말에는 회사들이 쉬기에 사무실 문 손잡이에 걸어 놓았다. 협조인은 나보고 11월 말까지 크고 작은 회사를 모두 다녀오라고 요구했다. 시간은 아주 긴박했는데 조금도 낭비할 수 없었고, 더욱이 아직도 많은 도시로 가서 도와줘야 하니 말이다. 우리는 뛰는 것이 아주 간단했다. 수련생이 계획을 하면 우리는 거리를 청소하듯이 뛰어다녔다. 층집만 보면 들어갔고 한 층 한 층 뛰기 시작했다. 다 뛰고 난 후 지도에 기호를 표시해 두었다. 이 과정 역시 아주 고달팠는데 완강한 의지, 이성, 온화함, 견정함과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필요로 했다. 10월 초에 우리는 이미 임무를 완성했고, 1개월 전후 넘는 기간에 약 8,000개의 크고 작은 회사로 뛰어다녔다. 협조인이 배치해준 것보다 한 달 반 정도 앞당겼는데 다음 도시를 협조하기 위해 소중한 시간을 절약했다. 차를 몰고 다니면서 그러한 크고 작은 층집을 볼 때마다 여기에 모두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아주 불가사의하게 여겨졌고 매우 위안이 되었다. 10월 중순에 우리 둘은 두 번째로 포스터를 한 바퀴 붙이는 것을 완성하였는데 약 3,000장이였다.

10월 말, 수련생은 나를 피닉스로 데려왔다. 피닉스는 사막에 건설된 도시로서, 시간이 너무 긴박했기 때문에 현지 협조인은 우리보고 빨리 포스터를 붙이라고 안배했다. 수련생은 우리를 위해 상세하고 빠짐없이 중상류층의 소비 센터를 준비해 주었는데 모두 256개였다. 우리는 이것을 참고로 해서 매일 14개 상가에 다 붙이고 그 날의 일을 끝냈다. 사실 붙인 곳은 더욱 많았고 업무량도 그전의 곱절이었다. 그전에 우리는 이미 나는 듯이 빨랐지만 지금은 신의 속도를 요구하고 있었다. 매번 나는 정신과 신체의 감당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해 달라고 빌었다. 어떤 수련생들은 “분명히 금방 차에서 내렸는데 어떻게 순식간에 전체 거리에 모두 다 붙였지?”라고 말했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시시각각 법으로 자신을 가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나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고 사람의 요소가 있지만 나는 자신을 신으로 여겼다. 나는 대법의 표준에 도달할수록 션윈을 널리 보급하는 것이 더욱 순조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닉스에서 우리들이 얻은 피드백은 여전히 곳곳에서 모두 포스터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돌아온 후 시간을 다그쳐 연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에 인터넷에서 다른 션윈 주최 도시와 체득을 교류하면서 서로 촉진했다. 목적은 오로지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주류사회를 열어 놓은 길을 이미 마련해 주셨는데 우리는 견정히 걷기만 하면 된다.

피닉스는 주요 공업이 전자산업이기에 보안 등급이 아주 높아 우리는 반드시 방법을 생각하여 정보를 들여보내야 했다. 예를 들면 가끔은 차가 들어갈 수 없어서 자료를 메고 방법을 생각해 안에 들어가서 한 층 한 층 나누어주어야 했다. 우리는 스스로 명석한 두뇌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세인 마음에 움직이지 않고 세인의 틀에 제한받지 않았다. 어느 한번 나는 정사각형으로 된 아주 예쁜 빌딩을 보았는데 지하 주차장의 전자카드와 경비원이 지키는 통로 외에는 들어갈 문이 없었다. 이때 택배 차 한 대가 마침 내 옆에 세워져 있었고, 택배원은 물건 한 상자를 안고는 카드를 긁는 작은 문 앞에 가서 카드를 긁고 들어갔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따라 들어갔다. 나는 그가 엘리베이터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보고 나도 따라서 눌렀지만 쓸모가 없었다. 원래 엘리베이터에도 비밀번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택배원이 나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묻자, 나도 그처럼 물건을 배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돌고 돌아 안내데스크(경비실)까지 왔다. 접수하는 여성은 기쁘게 나와 인사하면서 택배원에게는 스스로 나르라고 하였지만 나의 자료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받아주었고, 나에게 어떻게 나누어 주면 되느냐고 묻기에, 사무실마다 나누어 주면 된다고 내가 말했다. 그녀는 연달아 “네, 네”라고 했다. 우리는 사람을 구도하는 중요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동시에 겸손하고 점잖으며 예절 바르게 주의해야 한다. 나의 세인 속에서의 업무는 항해인데 내 사무실에는 많은 국제 협약, 여러 나라의 법규와 규정이 있으며 항해는 사람의 생명 안전을 담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한 것으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은 제일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션윈을 보급할 때 정정당당하게 해야 하고 동시에 명석함과 이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사악에게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12월 말에 나는 여기 6천여 개의 크고 작은 회사를 모두 다 뛰어다녔다. 이때 휴스턴과 오스틴의 공연도 끝났는데 두 곳 수련생들의 노력으로 매번 객석을 가득 채우거나 만원이 되었다. 여기의 주류사회를 이미 열어놓았는데 이는 이후의 주최도시에 아주 큰 고무와 격려를 가져다주었다.

이어서 내슈빌 협조인은 나보고 될수록 빨리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집에 가서 겨울옷을 가져와야 했고, 오전에 집에 도착하여 저녁 무렵에 대형 버스를 타고 떠나야 했다. 아내는 “당신은 집에 돌아올 필요가 없어요. 내가 옷을 역전까지 가져다줄게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협조인의 안배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을 잘 해 나갔다. 현지 수련생과 몇몇 외지 수련생들은 상태가 좋고 정념이 강했다. 여러 사람들은 아주 빨리 신처럼 되었다. 1월 중순, 우리는 현지 수련생을 협조하여 내슈빌에서 보급하는 것을 완성했고 예기했던 목적에도 도달했다.

그 후에 나는 내슈빌에서 매디슨까지 곧장 날아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나를 마중하는 협조인은 내가 왜 이렇게 초췌해졌는지를 물었다. 매디슨은 미국 중북부 지역으로, 여기 겨울은 매우 춥고 눈도 아주 많았다. 도착한 이튿날에 큰 눈이 내렸는데 협조인은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나는 그의 차를 몰고 자료를 나누어 주었다. 여기에선 수련생이 적었지만 업무가 중했기에 매일 아주 늦게 돌아왔다.

뒤이어 여러 날 거의 하루 건너 큰 눈이 내렸다. 내린 눈의 양이 아주 깊어 걸어 다니기 더욱 어려웠기에 나는 줄곧 눈밭에서 뛰어다녔다. 캐주얼화를 신었기에 바로 얼음이 신 안에서 녹아 물로 되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녹고 끊임없이 뛰어다녔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더욱 빨리 달렸다. 속으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급한데, 구도하는 것이 급한데 하면서 말이다. 눈이 내릴 때에 목이 마르면 입을 벌려서 눈을 몇 입 먹거나 혹은 눈을 한 움큼 쥐어 먹었고 아주 늦게야 집에 돌아오곤 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당신은 이렇게 눈밭에서 뛰어다니고 있는데 발이 얼음 냉수 가운데서 온종일 담겨져 있고 점심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니 어떡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으니 사부님의 가지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3일 후 내 왼쪽 발뒤축은 얼어서 큰 상처가 났고 핏발이 섰다. 협조인이 보고는 바로 저녁에 나를 데리고 가서 부츠를 사 주었고 한 수련생은 나에게 스키복을 주었다. 이렇게 해서 눈이 들어오지 못했는데 이틀 후 저녁에 발을 씻을 때 나는 갑자기 발에 상처가 하나도 없었고 흉터마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저녁 하늘이 흐렸을 때 나는 어느 집에 나누어 주려고 했는데 문이 열린 것에 주의하지 않았다. 자료를 걸어놓고 돌아서려고 할 때 큰 개 한마리가 나에게 덮쳤고 나는 팔로 막았다. 그것이 아주 무섭게 덮쳤기에 눈밭에 크게 넘어졌다. 그 집주인은 너무 놀라서 급히 “당신 괜찮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팔에서 피가 흘러내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 자료를 매달았다. 그때 나는 조금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나는 부단히 자신에게 사람을 구도하는 시간은 너무 급하다고, 시간이 너무 급하다고 경고를 주었다. 어느 날, 많은 차들이 언덕길에 정차해 있었는데, 나는 내 차를 그들 옆으로 몰고 지나갔지만 미끄러지지 않았고 안전하게 집까지 왔다. 샤워할 때 팔에 있던 어혈을 깨끗이 씻어내자 상처는 조금 흐릿해졌다. 하루 지나 샤워할 때 상처가 생각나서 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흉터마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큰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이 차를 덮어 버리는데 매번 자기도 모르게 어떻게 내 차를 찾아내고는 했다. 정말 사부님께 너무 감사를 드리고 또 사부님께 너무 감사를 드린다.

어느 주말, 협조인은 나를 데리고 자료를 나누어 주었는데 지방 도시의 오솔길은 모두 얼음길이어서 그는 여러 번 넘어졌다. 오후에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는데 자신의 무릎이 심하게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그를 찾았고 그에게 차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내가 나가서 자료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자신은 차에 앉아만 있음을 아주 괴로워하면서, 반드시 견지하여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이틀 후 우리가 자료를 나누어 준 이 작은 도시에서, 한 사람이 한번에 16장 표를 주문하여, 정말로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2월 중순이 되자 시카고 수련생은 나보고 될수록 빨리 돌아오라고 했다. 우리 집은 시카고 남쪽의 한 작은 도시에 있었기에 시간이 급해서 나는 집에 가지 않고 직접 시카고로 갔다. 거기에서 모두 아주 힘들게 하고 있었는데 늘 다른 공간이 열리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나도 아주 억압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줄곧 자신에게 이는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수련생과 함께 이를 악물어 신사신법하면서 사명을 완성하겠다고 자신을 훈계했다. 나는 5일 동안 50개 큰 병원을 돌며 한층 한 층씩 뛰어 달렸고 한 진료실, 한 진료실마다 뛰어 달렸다 이어서 세인트루이스에 있던 그 수련생도 와서 도왔다. 우리 둘이 시 중심에서 여러 부문을 뛰면서 매일 아주 늦게 돌아왔다. 그때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는데 이는 자신이 법 학습과 연공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 나를 도와달라고 빌었고 제자를 가지해 달라고 빌었다. 그때 비록 고달팠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션윈 곡들을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또한 소리도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연속해서 10여 일 지난 저녁에 차를 몰고 집에 와서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은 내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가 다시는 사명을 완성하지 못한 그러한 억압감이 없었고 나 자신이 사명을 완성했다는 것을 알았으며, 온몸의 세포가 모두 기쁨에 젖어 있음을 느꼈다.

계속해서 몇몇 외지 수련생들도 와서 도와주었는데 우리 또한 계속 두 번째, 세 번째 자료를 걸어놓았다. 그때 매표상황이 아주 좋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부님의 말씀을 외웠다. “양지(良知)를 불러오지 못하리라 믿지 않노라! 양지(良知)를 불러오지 못하리라 믿지 않노라!” 이렇게 모두 마음을 합쳐 앞으로 나갔다.

4월 초, 매디슨 협조인이 내게 전화를 했고, 거기에 만원이 될 것이라고 기뻐하면서 나보고 꼭 와서 공연을 한번 보라고 요청했다. 두 도시는 아주 가까웠고 나는 션윈을 근 9개월 널리 보급했지만 공연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때 시카고 공연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는데 매표는 아직도 이상적이지 못했다. 모두 서로 신사신법하고 흔들리지 말자고 고무 격려했다. 제일 마지막 공연하는 아침, 나는 샌 앤토니오에 요청받아 매표하러 갔다. 금방 비행기에서 내리자 아내한테 처음 두 번 사람이 꽉 찬 것에 이어서 시카고 마지막 공연도 만원이라는 전화가 왔다. 나는 이는 사부님의 위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샌 앤토니오에서도 우리는 순조롭게 협조인의 안배를 완성했다. 뉴욕법회가 금방 끝나자 시카고에서는 7월 초에 다시 션윈의 두 번의 공연을 준비했다. 극장이 정해진 후, 다가올 공연은 단지 6주라는 시간만 남게 되었다. 내가 이 심득을 D.C법회를 투고한 후, 시카고 수련생들과 함께 션윈 홍보를 시작했다.

걸어 지나온 춘하추동을 되돌아보면 비록 자신이 아주 약소하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유감을 남기지 않도록 안배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션윈을 보급하는 과정 역시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과정으로써 1년 동안 나는 부단히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인내심이 부족하고 가끔은 수련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는 등등이다. 분명한 것은 이는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힘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학습을 통하여 나는 수련생을 너그럽게 대하는 것을 배웠고 명에 대한 많은 집착을 버리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우리가 취득한 모든 성적은 모두 대법의 위력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지불한 그 조그마한 고생은 중생을 위한 것이고 동시에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우리 함께 ‘홍음2’ 중의 ‘사도은(師徒恩)’을 읊자.

“사제는 정을 따지지 않나니 부처의 은혜 천지를 녹이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

사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사은에 공손히 절을 올립니다!

(2012년 미국 워싱턴 DC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2년 7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17/2603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