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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작품] ‘진선인’은 세인을 자비하게 한다

글/ 후베이 대법제자 우슈신(伍修心)

[밍후이왕] 대법 전파 20주년, 전 세계가 함께 축하하고 노래할 즈음, 나의 일부 깨달음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여러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997년 10월 25일, 오래된 가까운 친구가 나에게 보귀한 책 ‘전법륜(轉法輪)’을 추천했다. 다 읽었더니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많은 문제가 다 풀린 것 같았으며, 마음이 탁 트이면서 마침내 내가 진정한 경문, 정법을 얻었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 후부터 나는 ‘진선인(眞善忍)’의 법리에 따라 언행을 바로 잡으며 억만 대법제자 중 한 명이 되었다.

10여 년간 수련경력을 돌이켜보면 감개가 많아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위대한 사부님의 무궁한 은혜를 표현할 수 없다. ‘진선인’의 법리는 나의 마음을 넓게 하여 해결하기 어려운 은원정구(恩怨情仇)도 내려놓게 했고, 업력으로 온몸이 병을 앓아 일 년 내내 침대에 누워있던 폐인을 건강하게 하여 항상 웃게 했다. 그리하여 가족과 많은 친구, 인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은호탕(佛恩浩蕩), 은택사방(恩澤四方)을 느끼게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중공의 사악한 본질에 중국 땅이 있는 사람들의 도덕이 급속히 내려가고, 탐오부패가 습관이 되었으며, 창기가 성행하고 영욕이 전도되었다. 나의 전남편의 본성은 선량했지만, 그의 부모님은 중공이 수차례 벌인 운동에 독해를 많이 받아 그가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이런 대 환경 속의 유혹에 견디지 못해 끝내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고 도박하는 진흙탕 속에 빠져들어 가정을 깨트려 갈라섰다. 그 당시 아이는 10살이었다. 아이와 나는 비록 갈 곳이 없었지만, 아이의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 내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했다. 월급이 200여 위안(약 3,600원) 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3만여 위안(약 540만 원)을 빌려 집을 한 채 샀다. 전 남편이 원래 집값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후에 결국 마음이 변해 이행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공부할 마음을 잡지 못했고, 학교 공부하기 싫은 친구와 어울려 다니면서 무단결석을 일삼았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폭행에 싸움질까지 했다. 한 번은 자동차사고까지 내 학교에서는 아이를 퇴학시키려 했다. 당시 나는 갖가지 병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지쳐있었는데, 인생길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법을 얻은 후에야 나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법 공부하고 연공함에 따라 신체는 빠르게 건강해졌는데, 마르고 노랗고 창백했던 얼굴이 흰 바탕에 불그레하게 붉은빛이 났다. 마치 걸을 때는 바람 같아 진정한 기쁨에 항상 미소 짓는 웃는 얼굴이 되었다. 한 번은 외지에서 우리 직장에 실습하기 위해 출장 온 사람이 내가 이미 53살이라는 것을 알고는 의아해하며 “불가능하다. 35세라고 해야 맞겠다.”라고 했다. 동료, 친척, 친구, 이웃사람들이 내 몸의 변화를 보고는 보귀한 책 ‘전법륜’을 모셔갔다. 연로한 어머니와 팔순 할아버지도 매일 ‘전법륜’을 읽어서 할아버지는 결국 몇십 년 동안 피우고 마시던 술·담배를 모두 끊었고, 어머니의 몸도 갈수록 건강해져 동생들에게 나를 따라 반드시 파룬궁을 배우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매일 저녁, 아이가 저녁자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사부님의 설법을 듣게 했다. 비록 아이는 공부 때문에 바빴지만, 오직 대법만이 아이를 바뀌게 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점차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주동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듣겠다고 했다. 아이는 아무리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도 법을 듣기만 하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법 공부를 깊이 함에 따라 아이도 ‘진선인’대로 자신의 언행을 단속하여 마침내 좋지 않던 친구들과 왕래를 끊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하여 결국 대학 입학시험을 치른 뒤 중점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신기하게 사람마다 칭찬하는 직업을 찾았다. 한 사람이 연공하여 온 가족이 혜택을 누렸는데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수련인은 적이 없다

1993년, 내가 전남편과 이혼한 지 10일도 안 되었을 때 그가 찾아와서 합의서에 서명하라는 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그 어떤 이유로도 자신에게 돈 한 푼 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결혼해야 하니까 자신의 가정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아이가 자신을 찾아오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몇 년 동안 그는 아버지의 책임과 의무를 한 적이 없었다. 아이가 교통사고를 내고 휴학하고 있을 때 사과 6개와 갈비 2근을 보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도 바깥에서는 “그들 모자는 1주일에 5위안(약 900원)으로만 채소를 사 먹지만, 나는 1주일에 도박해서 1,400위안(약 25만 원)을 잃었다.”라고 자신을 내세워 말했다. 아이가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을 때까지 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후에 그가 실직해서 수입이 없어지자 누구도 그에게 시집가기 싫어했다. 그는 아이가 대학 2학년 때 불치병에 걸렸는데, 그의 형제들 모두 자신의 가정을 먹여 살리느라 그를 돌봐줄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출근하고 있었는데 그런 소식을 듣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인은 적이 없다.” (세간을 향해 파룬(法輪)을 돌리노라)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제자로서 꼭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다. 그가 이생에 나와 부부가 된 것은 적지 않은 인연이다. 그도 사당의 피해자이다. 그리하여 그가 사는 곳에 달려가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쓰레기도 20여 통 치웠다. 그리고 사방에 부탁하여 간병인을 구해 하루에 20위안(3,600원)을 주고 그가 죽을 때까지 돌봐주게 했다. 그 당시 나의 월급은 700여 위안(약 13만 원)이었는데, 매년 아이의 생활비, 학비만 해도 1만여 위안(약 180만 원)이 들었고, 게다가 집을 산 빚도 아직 갚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명백히 대법제자이고 사람 속에서 좋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원망하지 않고 매일 채소(땔감·곡식·기름·소금 등 생활필수품)를 보내며 참을성 있게 그에게 ‘톈안먼 분신’ 진상을 말해주었다.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진상을 알려주고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명심하여 내세에 꼭 수련하겠다고 맹세하라고 알려주었다. 아내와 자식을 버렸던 그는 우리와 정을 끊은 채 냉담했는데, 자신이 죽기 전에 우리가 자신에게 그렇게 잘 대하리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전남편은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한 채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眞善忍好)’를 읊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아이에게 집에 와서 빈소를 지키게 했고 모든 비용을 감당했다. 전남편의 집안에서 덕망이 높은 삼촌 할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당신이 한 모든 일에 감사한다. 조카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장례식에서 한 모든 일. 우리는 당신이 그를 도와줄지 생각지도 못했다. 조카는 자네들에게 나쁜 짓을 했는데. 우리는 당신에게서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공산당은 전문적으로 원죄(冤罪)·날조·오심(誤審) 사건을 조작하고, 하는 짓거리가 악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야, 너 자신을 잘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저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과 이혼할 때는 아직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만약 수련하고 있었다면 이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대법제자 중에서 저는 아직 보통입니다. 저보다 잘 수련한 사람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 후로 친척과 친구, 이웃이 나를 경중하게 대해 진일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는데 아주 좋은 기초를 닦아놓았다.

역시파룬궁이 좋다!

2005년 11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나는 출근하기 전에 갑자기 ‘월급카드’로 얼마나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아이의 학비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7월에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과부살이 하는 동료가 죽었고, 직업이 없던 그의 아내가 아들의 결혼식을 해주려고 곳곳에서 돈을 빌리다가 빌리지 못해 급해서 나를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 카드에 있던 유일한 4,000위안(약 72만 원)을 빌려 가면서 반달 후에 갚겠다고 했는데 당시 차용증을 쓰지 않았다. (그녀는 글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갚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려움이 있다고 여겨 줄곧 갚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12월, 학비를 내야 하는 최후 기간이 다가와 카드에 얼마 있는지 은행에 가서 확인했더니 4,200위안(약 76만 원)이 있었다. 학비를 내기에는 아직 2,000여원(약 36만 원)이 모자랐다.

출근했더니 옆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에 점원 샤오천(小陳)이 온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들어왔다. 그녀에게 물을 먹인 뒤 나는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흐느끼면서 “샤(夏)언니가 너무 가련해요. 아줌마 한번 가보세요.” 나는 일어나 옆방으로 갔더니 40세가량의 고객이 전화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딸과 통화 중이었는데, 그 딸이 내일 졸업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학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졸업장도 받지 못할 것이다. 딸은 전화 저쪽 편에서 울면서 하소연하고, 어머니는 이쪽에서 울고 있었다. 딸의 아버지는 원래 장사가 잘되었는데, 제삼자가 끼어들어 다른 집에 가서 살면서 그들 모녀를 버린 채 아예 돌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사연을 들은 나는 월급카드를 들고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에게 “나의 월급카드에 4,000위안(약 72만 원)이 있는데 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2,000여 위안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고객은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나에게 절을 하려고 하면서, 남은 액수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 아이도 대학 4년생인데 아직 학비를 내지 못했으므로, 그때까지만 지체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은인이여, 정말 너무 큰 도움이 된다. 절대로 필요한 시기까지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 지금 어디에 당신같이 좋은 사람이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나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곳곳에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려면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샤오천에게 월급카드를 들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보내주라고 했다. 그녀는 또 두 군데 가서 돈을 마련한 뒤 은행에 갔더니 은행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녀는 바깥에서 크게 울면서 파룬궁을 연마하는 좋은 사람이 나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오늘 돈을 학교에 입금해야 딸이 내일 시험을 볼 수 있으니 은행직원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했다. 은행직원도 아주 감동하여 전례를 깨뜨리고 그녀의 송금을 도와주었다.

당시 나는 그녀가 다만 성이 샤라는 것만 알았고, 어디에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아예 몰랐다. 샤오샤(小夏)부부는 가게 주인의 친구였다. 이 일이 있었던 후에 가게 주인은 “나의 큰언니인데, 그 일은 너무 위험하다. 당신은 왜 우리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았는가? 지금 그들 부부는 곳곳에서 돈을 빌리고 다녀서 친구들도 감히 돈을 빌려주지 못한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사람과 동거한 뒤부터는 집안일에는 아주 적게 참여한다. 당신은 아마 돈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나는 사람의 선량을 믿는다.” 이튿날 오후, 샤오샤는 돈을 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큰 바나나 한줄기를 사서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서 시어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모르는 사람도 이렇게 우리 손녀딸을 돕는데 할머니가 되어서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겠냐?”고 하면서 당장 자신이 몇 십 년간 모은 쌈짓돈을 꺼내주며 거듭 당부했다는 것이었다. “그들도 아버지 없이 홀어미인데 절대 그 아이의 학비를 지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세상 사람의 마음은 다 나빠졌어도 파룬궁은 좋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 5일 후에는 이전에 빌려줬던 4,000위안까지 돌려받았다. 그리고 6일째 되던 날 아이가 학교에서 학비를 재촉했다고 말했다. (학비를 내지 않으면 졸업시험을 못 친다.) 나는 속으로 명백히 알고 있다. 내가 ‘眞善忍’대로 하면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안배해주시고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 둘이 그녀 한 사람을 바꾸자”

아이의 동창인 량이(良益)의 집은 농촌이어서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다. 나는 량이에게 우리 집에 와서 살고, 평소에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녀를 집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들이 공부하고 난 뒤 여유시간에 ‘톈안먼 분신’, 파룬궁이 박해받게 된 진상과 관련 자료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진상을 알고 정확한 선택을 했으며 가명으로 단(共靑團), 대(少先隊)조직에서 탈퇴하고 량이의 동생도 탈퇴했다. 나는 그들이 공부하느라고 바쁘고 학교식당 음식이 좋지 않은 것을 알기에 거의 매일 저녁 자습이 끝나면 뜨끈한 채소 국밥(아직 빚을 다 갚지 못했기 때문)을 해주었다. 비록 보통 음식이지만 추운 겨울에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량이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 사회적 책임감이 있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진취적인 사람으로 마지막에는 명문 대학에 붙었다. 량이의 부모님도 나와 친숙해졌는데 도움에 아주 감사했다. 후에 그들이 시내에 돈벌이하러 왔을 때도 나는 그들을 도와 집을 잡아주고, 몇 년 후에는 그들을 도와 돈을 빌려서 단층 집 한 채를 사주고 도시 사람이 되게 했다. 후에 그들도 아주 많은 대법제자를 알게 되면서 대법에 대해 경의의 마음이 생겼다. 그들은 ‘전법륜’, ‘9평 공산당’ 여러 가지 진상자료, 매년의 ‘선윈’ CD 등등을 봤다. 그들은 철저히 공산당의 사악을 알게 되었고 파룬따파는 정법이고 천멸중공(天滅中共)은 하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은 파룬궁의 좋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이 알고 있는 진상을 기족의 친척, 친구에게 마음껏 선전했다.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이 공산당의 사악을 알게 했고, 사부님께 충만한 경의를 가지고, 대법제자를 동정했다.

내가 세뇌반에 납치된 후에도 그들 부부는 몇 번이나 장사를 놔두고 세뇌반에 찾아와 나를 만나겠다고 했다. 나를 만나지 못하면 여전히 가지 않고 세뇌반 두목에게 “당신 경찰들은 사회 치안을 유지하고 나쁜 사람을 잡는 게 아닌가? 어떻게 아주 좋은 사람을 잡는가? 이는 정말로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다. 당신들은 그녀를 풀어 주어라. 우리 둘이 그녀 한 사람을 바꾸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후에 사법국에서 보도 교육하는 사람(帮教)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을 가두었더니 이곳이 조용하지 않았다. 매일 전화가 터질듯이 오고, 또한 차를 몰고 와서 끊임없이 놔주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을 보겠다고, 특히 부부 둘은 여기서 떠들썩하기 이를 데 없다. 당신의 인맥이 참 좋구나.”라고 하여 나는 “대법제자는 어디에 가든지 다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중공의 멸망은 하늘의 뜻이다.

내가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갇혀 있을 때 매일 세 가지 보도 교육하는 사람이 밤낮으로 대법제자를 감시했다. 이 사람들은 진상을 모르기에 걸왕을 도와 잔학한 짓을 하고(助桀為虐) 있는 게 가장 가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대법제자는 어디에 가든지 다 사람을 구해야 하고 법을 실증해야 한다. 그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들에게 파룬궁의 가르침은 ‘진선인(眞善忍)’이고 내가 연공하고 ‘진선인’대로 자신의 언행을 규범해서 몸과 마음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고, 원망을 화해시켰다고 말했다. 만약 장(江)씨 집단이 파룬궁의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않았더라면 전국에 더욱 많은 사람이 연공하고 더욱 많은 사람이 심신에 혜택을 볼 것이고, 더욱 많이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가와 백성에게 백 가지 이득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고 설명한 다음, ‘톈안먼 분신’의 위안(伪案)은 파룬궁 수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며 모함한 것으로 허점투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집에 가서 분신자살 녹화장면을 다시 보면 알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음에 중점으로 그녀들의 ‘무신론’을 제거했다. 주요하게 두 가지 일을 말했다. 하나는 구이저우 핑탕장부(貴州平塘掌布)향에 2억 7천만 년 전의 돌, 5백 년 전에 산에 떨어져 ‘중국공산당망(中国共产党亡)이란 6글자가 자연적으로 새겨져 있는데 인위적으로 조각한 흔적이 없음을 알려 주었다. 그 구역은 이미 관광지역이 되어 6개 글자를 보기 위한 입장권도 만들어져 한 장에 50위안(약 9,000원)이라고 말했다. 중공의 멸망은 신불의 뜻으로, 조그마한 사람 혹은 집권당이 하늘의 뜻을 어길 때 하늘의 버림을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일은, 본래 정년퇴직한 칠순 노인 화베이시(華北細)(가명)의 아내가 죽은 지 몇 년 되었는데, 부부의 정이 아주 깊어서 매일 아내의 유상 앞에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웠다. 몇 년 전에 죽은 아내가 꿈에 나타나 자신은 이미 십여 리 떨어진 한 농촌 제 3줄 2행에 환생하여 살고 있다면서, 집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있다며 자신을 다시는 생각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노인은 꿈에서 깨어난 후 즉시 그가 듣지 못했던 마을 이름을 적어두었다. 이튿날 지도에서 꿈에서 들었던 마을까지 아들과 함께 차를 몰고 갔다. 과연 문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확실히 그 집에 남자 아기가 갓 태어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두 집은 친밀하게 왕래했다. 이것은 충분히 육도윤회(六道輪回)는 실존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당신들은 인터넷에서 ‘장자석(藏字石)’을 찾아볼 수 있고 그 노인 집에 가서 조사할 수도 있다. 그 노인은 아직 생존해 있고, 그의 자녀도 증명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을의 남자 아기 집도 실증할 수 있다. 후에 보도 교육하는 사람은 몰래 그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무신론’이 틀렸다는 것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신불(神佛)의 존재는 아주 정확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중 몇몇은 ‘삼퇴’에 동의하고 새로운 생명을 선택했다. 그들이 교대로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일부러 과일과 간식을 들고 나를 보러 왔다. 나에 대해 경의를 충만했다. 지금까지도 그녀들 중의 많은 사람은 무슨 소식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고 암암리에 대법제자를 보호했다. 나는 그들이 각성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뻤다.

지금 사당의 악행이 다 드러나고 있으며 천멸중공이 곧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러나 아직 일부 세인은 사당의 거짓말에 속고 있고 눈앞의 소위 번영에 매혹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시시각각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이 정법시기의 제법제자이며, 중생이 구도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일깨웠다. 절대 게을러서는 안 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해야 한다. 자신을 통해 대법의 아름다움과 수승(殊勝)함을 전개하고 더욱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2년 5월 27일
문장분류: 513 원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27/2573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