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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을 설득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힘들 것이라는 마음은 모두 사람 마음

글/ 싱가포르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가 중생을 구할 때 완고한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아는 것이 많지만 다수가 당문화의 사유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때 당신이 그와 쟁론하면 그는 자신의 관점을 말하고 우리는 갖은 방법을 다해 그를 설득하고 반박하려 한다. 항상 우리가 진상을 알리는데 하나의 체계가 있고 다 그 체계에 따라 말한다. 때로 상대방의 받아들이는 정도와 오해를 주의하여 관찰하지 않는다. 단번에 자신의 관점을 말한다. 그 결과 비교적 좋은 경우는 우리가 그를 설득하고 그의 말을 막아버리고, 그는 돌아가 잘 이해하겠다고 한다. 좋지 않은 결과는, 그는 굴복하지 않고 당신과 쟁론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더욱 나쁠 때는 심지어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련의 각도에서 인식하면 나의 느낌은 이것도 또한 “기와 기 사이에 제약 작용이 없다.”(전법륜)는 경우다. 상대방이 한 가지 생각을 말할 때 나는 속으로 ‘아, 그가 말한 것이 틀리다. 나는 어떠한 예를 들어 그를 설복할까.’하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상을 알리는 것이 어렵다는 느낌이 든다. 늘 쟁론 속에 빠져들고 힘이 따르지 못한다. 사실 이때 우리의 마음은 속인의 그 층차로 떨어졌다.

“어느 곳에 검은 기가 있으면 바로 그곳에 병이 있다는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검은 기는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이 아니며, 더욱 깊은 한 공간 중에 그런 영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내보낸 이 장(場)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배출하거나 내보내는 것을 말한다. 당신이 배출해 보라! 잠시 후면 그것이 또 생기는데, 어떤 것은 힘이 커서, 배출되자마자 당겨져 되돌아오며, 스스로 거둬들일 수 있어 아무리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다.”(전법륜)

진정으로 그 사람이 진상을 듣지 않고 당문화의 사상을 매우 많이 가진 경우는 그 배후에서 통제하는 사악의 요소 때문이다. 만약 그런 요소를 제거해 버리면 간단한 몇 마디로 바로 그의 표면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할 것인가?

나의 체험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람의 생각으로 하면 안 되고 언제나 청성함을 유지하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 생명을 구하는 것이지 쟁론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혹은 그를 설복하고 혹은 ‘삼퇴’시키는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그를 구하려면 그가 진정으로 진상을 알아야 인정한다.

둘째, 사람 마음이 그에게로 이끌려 가면 안 된다. 특히 ‘정’에서 나온 각종 집착심, 체면, 승부욕,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마음 등등이다. 한신(韓信)은 한 생명을 죽이지 않으려고 치욕을 참았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고생을 더 많이 해도 당연하다.

셋째(중요), 수시로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야 하고, 표면과 다른 공간을 향해 함께 한다. 표면상 지혜와 선한 말투로 중생을 권하고 다른 공간의 사악에 대해 손을 놓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모두 그렇게 사나운데, 당신 생각에 당신 속인의 손으로 당신이 그것을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 게다가 당신은 그것을 잡지도 못하는데, 그런 공능이 없으면 또한 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공간에서 당신이 뭘 하려고 하여 당신의 머리가 생각만 해도 그것이 알기에, 당신이 그것을 잡으려 하면 그것은 미리 도망쳐 버린다. 환자가 문을 나설 때를 기다려 그것은 바로 또 올라가고, 병은 재발한다. 만약 손을 대어 그것을 다스리려면 이런 공능이 있어야 하는데, 손을 내밀기만 하면 ‘탁’ 거기에 고정된다. 고정된 후에, 우리는 또 한 가지 공능이 있는데, 과거에는 섭혼대법(攝魂大法)이라 했으며, 그런 공능은 더욱 대단하여 사람의 온 元神(왠선)을 끌어낼 수 있어, 그 사람은 즉시 움직이지 못한다.”(전법륜)

우리가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속인에게 ‘정당’, ‘신앙’을 논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신의 생각으로, 입에 연꽃이 나오고, 강대한 위력적인 공능을 가지고 있어 순간 상대방의 사악을 제거할 수 있다. 이 한 점을 해내려면 우리가 진상을 알릴 때 사람의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 머리가 순정함을 유지하고 일사일념이 법에 있어야 한다.

때로 완고한 사람도 순식간에 180도로 변한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면 고려, 의심, 체면, 쟁투심 등등이다. 마치 “왜냐하면 다른 공간에서 당신이 뭘 하려고 하여 당신의 머리가 생각만 해도 그것이 알기에, 당신이 그것을 잡으려 하면 그것은 미리 도망쳐 버린다.”(전법륜)와 같다. 그 배후의 사악을 해체하지 못하고 역시 기로 그의 기에 대항한다.

비록 우리 많은 사람이 미혹 속에 있어 자신의 공능을 펼쳐볼 수 없지만 나의 체험은 다만 당신의 머리가 순정하고 마음이 법에 있으며 수시로 발정념에 주의하고 다른 공간의 공능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사부님과 바른 신이 모두 이때 당신을 가지해 준다. 당신이 구하는 중생의 층층의 껍데기를 끊임없이 벗기고->벗겨 그 불성이 나타날 때 혹 몇 마디로 그를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의 신의 생각이 주위의 장, 사건의 발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소홀히 보면 안 되고 대법의 신기는 당신으로 하여금 감탄하게 한다!

진정으로 정념으로 중생을 구할 때,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으며 자비하고 상화로운 장이 당신을 감싸고 중생을 감동시키며 그런 순정하지 않은 요소를 제거하게 된다. 힘들 수 있다는 마음은 모두 사람 마음이다!

문장발표: 2012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21/2591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