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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정진하자

글/쑈이밍

[밍후이왕] 수련상태는 자주 기복이 있다. 간혹 사람 마음이 나오고, 피곤하고 소침하며, 혹은 안일을 추구하여 지속적으로 정진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불량한 상태가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 늘 약해지지 않는 힘을 찾기 위해 아래 인식에서 시작하는 것도 무방하다.

1. 대법수련은 유일하게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고 근본문제를 해결한다

인생의 최종목적과 의의는 반본귀진(返本歸真)하여 자신이 온 아름다운 경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 세인은 대부분 칠정육욕보다 더 심한 느낌에서 생활한다. 자극을 추구하고 누리며, 그 속에서 힘껏 발버둥치고, 서로 배척하고, 좌충우돌하며 희망을 잃고, 한없는 고통스러움 속에서 거대한 업을 짓고 있다. 다소 성취가 있는 억만 장자도 인생의 만년에는 공허함을 깊이 느낀다. 물질재부는 가져갈 수 없다. 진정한 자신은 이것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알고 있다. 속인의 대뇌는 왠선(元神)이 수련제고하려는 정보를 번역하여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왠선이 만족하지 못해 생긴 초조와 불안은 자주 개인의 물질신체 표면에 반영되어 나오고, 백년 후 갈 곳과 귀착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된다. 또 나쁜 일을 많이 하면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사실 대법을 수련하면 주왠선(主元神), 푸왠선(副元神)은 공포심에 빠지지 않는다. 주왠선이 속인 사회에 미혹되어 관념과 업력에 덮인 채 수련하지 못해도 푸왠선은 방법이 없다. 진정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서면 주왠선이 공을 얻고 푸왠선도 제고된다. 이렇게 되면 주왠선, 푸왠선이 조화를 이루고 몸과 신(神)이 합일에 이른다. 이 공간에서의 표현은 이 사람이 매우 유쾌하고, 여유가 있고, 침착하며, 올바른 주견이 있다. 십악구전(十惡俱全)의 이 난세에서 단독으로 행하고 오독에 오염되지 않는다. 불법이 길을 가리켜 앞길이 있고 희망이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고 진리를 견지하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풍모이다. 왠선과 표면 생각은 모두 수련을 통해 큰 해탈에 이른 것을 알고 있다. 이 최종 목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관점을 이야기하면 이기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일종의 의미에서 대법제자가 한 모든 일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기적이 아니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일은 모두 중생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중생이 도태되는 것을 피하고 평안하게 인류의 신기원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자신을 포함하고 대응하는 천체의 중생을 포함한다.

선악은 응보를 받는다는 것은 대법의 이치에 부합한다. 좋은 일을 하면 마땅히 선한 보응을 받는다. 이것은 이기적인 마음에 의해 쟁취한 것이 아니고 우주의 법칙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얼마만큼 지불하면 얼마만큼 받는다. 다른 사람에게 이롭고 자신에게도 이롭다(반대로 다른 사람을 해치면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옛말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남에게 편리를 주면 그것이 자기에게 되돌아온다.’라고 했다. 지식인은 ‘다른 사람에게 장미를 주면 손에 향기가 남는다.’고 말한다. 모두 같은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2. 대법수련은 단번에 일을 끝낸다

층차에서 예를 들어 보자. 전통문화에서 숭배하는 군자, 성인은 유가 경전이 육성한 것이다. 유가가 극히 고층차에 이르면 도가에 귀속된다. 하지만 도가는 소우주의 이치이다. 파룬따파의 이치는 부지기수의 이런 소우주를 포괄한다.(큰 이치가 작은 이치를 제약한다) 우리는 직접 우주의 근본특성 진선인(眞善忍)을 겨냥하고, 이 홍대한 이치에 따라 수련하고 동화한다. 하지만 군자, 성인도 비교적 높은 경지의 속인이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대각자, 왕, 주(主)의 위덕을 성취한다. 이것은 어떠한 신성한 인연인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정인군자(正人君子)는 성인(聖人)이 소박한 고대 사람을 공경하고 칭찬하는 말이다. 현재는 풍자적인 의의를 갖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문화가 신이 전한 우수한 중화 문화를 파괴한 죄악이다. 만약 대법제자의 일거일행이 군자도 따라가지 못한다면 정말로 사람에게 부끄럽고 대법을 모욕하는 것이다.

시간상에서 보면 금생금세에 원만한다. 이것은 어떠한 종교도, 법문도 절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역사가 특정한 시기에 이르렀을 때 정법은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고, 남은 시간은 갈수록 적어진다. 한 걸음이 성패를 정하는 관건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고, 약간의 편차는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 대법수련은 성취하는 과위는 높지만 다른 수련과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불이 적고 걸리는 시간이 짧다. 따라서 요구하는 표준은 높고 엄숙하다.

대법제자는 우주의 제1 호칭이고, 중생과 뭇 신이 주목하는 초점이다. 불은호탕으로 대법이 널리 전해져 사부님과 법이 동시에 있을 때 태어난 것은 하늘이 내린 신성한 인연이다. 이것은 자신이 생생세세 기대한 것이고 사부님이 보호한 결과이다. 높은 층차의 신은 얻으려 해도 얻지 못하는데 우리는 얻었다. 그렇다면 어떤 정신상태로 대해야 하는가. 극히 소중히 여기고 정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3. 어떻게 정진하는가

수련에 정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수련과정에서 만나는 일체는 사부님이 질서 있게 배치하신 것이다. 우리는 일부러 고생을 찾아 하는 것이 아니고, 남달리 특별한 것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요구에 따라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면 된다. 수련인은 수련과정 중에 반드시 사람 마음과 집착심이 있는데 이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다. 두려운 것은 장기간 느끼지 못했던 고유한 관념이 건드려질 때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바로 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수련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구우주에서 떨어져 나왔으므로 당연히 순정하지 않아 수련이 필요하다. 집착심이 있기에 수련할 수 있고, 수련을 거쳐야만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으며 비로소 제고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현재의 층차에서 맴돌고 심지어 떨어질 수도 있다.

나쁜 관념과 업력 때문에 고정된 사유방식이 형성되거나 구세력의 교란 등의 요소가 있다. 세 가지 일을 하거나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속인의 일과 생활에서 심령을 건드리는 난과 관이 있기 마련이다. 이 관건시간에 폭로되어 나오는 사람 마음을 발견하고 붙잡고 억제해야 하고 소멸해야 한다. 건드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아픈 것을 두려워하여 붙잡고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를 내려놓으면 사부님은 얼마만큼 제거해 주시고, 완전히 내려놓으면 곧 완전히 제거해 주신다. 이것이 바로 무조건 안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구체적인 상태이고,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관건이다. 초상적인 이치로 지도하는가 아니면 속인의 이치로 대하는가가 관건이다. 또한 수련인과 속인의 근본적인 구별이다.

만약 이때 수련인의 정확한 사상으로 대하지 않고 집착심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으면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제고하는 기회를 놓친다. 우리는 사부님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관과 난은 모두 세밀하게 배치된 것이다. 우연이 없고 수련제고와 무관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집착심을 안고 버리지 않으면 사부님이 보고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강제로 당신의 품에서 당신의 물건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그러면 우주의 이치를 파괴하는 것과 같다. 『전법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 “당신이 가지려는 것은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이 이 우주의 이치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을 강제로 수련하게 할 수 없는데, 그렇게 하면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누가 당신을 강제하여 당신의 마음을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자신이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관과 난, 곤란 앞에서 물러서는 약자는 그것을 정진의 걸림돌로 여기고, 용맹정진하는 수련자는 그것을 정진하는 디딤돌로 여긴다. 사실 명리정 등 이기적인 심리로 형성된 집착심은 사람에서 신으로 나아가는 수련인의 발목을 잡는 쇠사슬이다. 다만 사부님이 주신 법보 – 안으로 찾는 열쇠 -를 잘 이용하면 하나하나 그것을 열 수 있고, 한층 한층 제고할 수 있다. 최후에는 아름다운 천국의 대문을 열고 원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문장발표 : 2012년 6월 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6/14/2588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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