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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유한 경험

글/ 허베이대법제자 즈구이

[밍후이왕] 최근 나는 진상을 듣기 좋아하는 몇몇 사람을 만나 한 시간 넘게 말한 적이 있다. 이러한 세인들은 대부분 정의감이 있고 파룬궁을 지지하겠다고 표시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중국공산당 해체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대학을 막 졸업한 한 청년은 1시간 가량 내게 진상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CD와 자료를 받아 갔다. 나는 또 그에게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이 담긴 작은 CD도 주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는 쩐싼런(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오직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또 공산악당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고, 사람들은 공산당을 탈퇴함으로써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데 하늘의 법은 꼭 악을 청산하고 제거할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사악한 당도 절대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1. 구치소에서 진상을 알린 경험

2006년 7월 26일, 나는 사당에게 납치되어 스쟈좡 제2구치소에 감금됐다. 악경들은 나를 사납게 박해했다. 손발에 수갑과 족쇄를 채웠고 다른 죄수를 사주해 내게 잘못을 저지르게 하여 독방에 가두었다. 내 신체의 자유를 빼앗았는데 심지어 대소변을 볼 자유조차 주지 않았다. 악경은 다른 죄수들에게 나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기 위해 매일 죄수 한 명씩 교대로 나의 대소변 보는 일을 돕게 했다.

박해에 항의하고 독방에서 나오기 위해 나는 몇일 동안 단식으로 항의했고 다른 죄수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를 박해한 경찰과 죄수들 모두에게 대선대인의 마음으로 대했고,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도했다. 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을 탈퇴시켰는데 그 중에 성 관리도 있었다. 그는 처음 진상을 접수하려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일반 범죄자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공산사당의 하수인들의 박해를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후 삼퇴에 동의했다. 나는 또 사당에 미혹된 후 우리를 미워했던 사람을 만나도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삼퇴를 권유했다. 대법제자의 자비를 느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바로 삼퇴했고 어떤 사람은 가위로 족쇄와 수갑을 감은 밧줄을 가위로 끊는 등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다른 죄수들이 불편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족쇄와 수갑을 벗고 직접 화장실에 갈 방법을 강구했다.

나는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얘기했다. 몇몇은 법을 배우기도 했고 출감 후 수련하겠다고 말했다. 어떤 죄수는 악경 몰래 우리를 위해 경문과 최근 소식을 전해 주었고 함께 파룬따파하오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어떤 죄수는 남몰래 연공을 하기도 했다. 한 죄수는 나를 마치 자비로운 보살과 같다고 말했다. 추석이 되어 감옥을 순찰하는 소장과 경찰에게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탈당하여 스스로를 구하라고 진상을 말해 주었다. 그런 후 가부좌한 채 입장하여 발정념을 했다. 또 한 번은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탈당하여 스스로를 구하라는 말을 들은 소장이 내게 다가와서 저녁식사는 했는지 물었고 먹었다는 나의 대답을 들은 후 몸을 돌려 다른 경찰들을 데리고 나갔다.

사악은 내게 불법으로 4년 실형을 선고했다. 2007년 5월 15일 나는 갑자기 허베이 여자감옥으로 이송됐다. 나는 십여 명의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매우 무서워하며 내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장쩌민 집단이 파룬따파와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한 범죄에 대해 소송 제기를 위한 소장을 제출했다. 그들은 내게서 펜을 빼앗고 5,6명의 죄수를 사주해 폭행했다. 폭행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들은 2년 3개월 간 나를 감금했다. 그들은 늘 폭행하고 모욕을 주며 나를 박해했다. 나는 유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체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고 사람을 구했다. 그러나 죄수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었기에 겨우 몇 사람 밖에 탈퇴시키지 못했다. 삼퇴를 권유할 기회가 없는 정황 하에서 나는 공개적으로 탈당을 이야기 하는 방법을 택했다. 악경은 쇠고랑을 채우고 줄로 묶은 후 전기봉으로 때리고 욕을 했다. 악경은 또 죄수를 사주해 나를 때리고 줄로 묶었다. 악경이 죄수들에게 큰 소리를 치면 죄수들은 곧바로 떼로 달려왔다. 어떤 죄수들은 악경의 환심을 사 감형받기 위해 인간성마저 저버리며 나쁜 일만 했다. 이렇게 사악한 곳에서 진상을 얘기하려면 정말 정념과 용기가 필요했다.

사부님께서는 몇 번이나 대법제자를 시켜 설법을 가져다주셨다. 법은 정념을 강화시켜 주었고, 법은 사람마음과 집착을 제거해 주었다. 법을 학습한 후 나는 모든 환경은 우리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더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반복하여 사고했다. 그들이 나를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공개적으로 진상을 알리겠다고 결정했다. 2009년 새해가 밝을 무렵 감옥 측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한 죄수들에게 강제로 사당의 노래를 부르게 하며 휴식하지 못하게 했다. 경찰은 간수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노래를 부르게 강박했기에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당의 노래는 아주 좋지 않다고 알려주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간수는 크게 소리쳤고 한 무리 죄수를 사주해 때린 후 나를 감옥에 가두었다. 악경 안즈잉은 수갑을 가져왔고 몇몇 죄수는 나를 침대에 묶었으며 4명의 죄수가 곁에서 나를 감시했다. 구정 전에 죄수들의 사당 노래 부르기를 점검하기 위해 교도소장 위푸치가 7감옥을 방문했다. 악경 안즈잉은 죄수들을 사주해 5층 제일 끝 방으로 나를 이송했고 침대에 묶었다.

매번 사당의 박해는 곧 대법을 널리 알릴 기회였다. 결국 사악은 단수, 단전, 방화, 보일러 고장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리며 방해했다. 올림픽 기간, 7감옥 악경들은 사당에게 잘 보이기 위해 파룬궁수련생을 미친 듯이 세뇌하고 박해했다. 그러나 사당이 7감옥의 노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자 악경들은 이성을 잃었고 죄수들에게 보름간 선채로 생활하는 벌을 가했다. 화장실이 자주 고장 나서 바지에 일을 보는 죄수들이 많았다. 잔혹하게 죄수들을 학대해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매일 15-18시간 일을 시켰고 일을 마친 후에도 감방에서 계속 일을 하게 만들었으며 일요일에도 쉴 수 없게 했다. 체벌을 하거나 벌금을 물렸고 죄수들의 돈, 음식, 죄수복, 음식 등을 수시로 가로챘다. 매월 죄수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5위안의 돈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죄수는 돈이 없어 휴지를 살 수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떤 죄수는 휴지, 음식물, 일용품에서 죄수복까지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죄수들은 밤낮없이 일해야 했고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어 결국 더는 손을 쓸 수도 없는 지경에 처했다. 더는 견딜 수 없게 된 후에야 가족들에게 넘겼다. 간수는 가족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 죄수는 돈을 가지고 갈 수 없었고 약도 먹을 수 없었으며 오직 감옥의사가 처방한 약만 먹어야 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진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악이지 대법제자가 아니다. 어디에 교란이 발생하면 우리는 그 곳에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 파룬따파는 일체 생명을 바로 잡고 일체 중생을 구도한다. 내가 처음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을 때 죄수들은 별의 별 말을 다 했지만 나는 교란 받지 않았다. 오직 사람을 구도하는데 유리하다면 나는 끝까지 견지했다. 감옥의 다른 죄수들은 우리는 당신을 많이 부러워하고 있지만 당신은 왜 여전히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느냐며 의아해 했다. 나는 ‘중국 사람들이 서둘러 탈당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또 미래도 없게 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중국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당신들 역시 사당의 박해로 인해 죽지 못해 살고 있지 않는가?’ 라고 말했다. 나는 매일 일하러 가자는 명령이 내려진 후에야 탈당을 말했다. 처음 그들은 나의 얼굴과 손, 이빨에 상처를 입혀 피가 흘렀다. 그들의 입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몸 여러 곳에 멍이 들 정도로 흉악하게 폭행했다.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죄수들은 바로 나를 때려눕히고 입을 막았다. 죄수들의 아침식사 시간은 아주 짧았다. 어떤 죄수는 밥을 다 먹지도 못한 채 일하러 가야 했다. 나는 죄수들의 정황에 근거해 나가서 일하라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진상을 얘기하지 않았다.

한 동안 고생을 거친 후 일부 경찰은 물러났다. 오직 악경 안즈잉과 고루 만이 법조차 필요 없다며 겁을 주곤 했다. 드디어 나는 공산당이 끝장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고 서둘러 탈당하여 평안을 보장 받으라고 권할 수 있게 됐다.

어느 하루 나는 사람들에게 양지를 일깨우는 진상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처음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매일 진상을 반복해 알려주자 많은 사람들이 명백히 진상을 알게 됐다.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어 주었고 일부는 나를 지지했다. 이때 나는 감옥에서 죄수를 박해하는 간수를 고발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자고 제안했다. 어떤 죄수는 나서서 참여자를 모집해 주었다. 고발장은 여러 피해자가 익명으로 작성해 안전을 꾀했다.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두 번 고발장을 제출하자 7감옥에서 일요일에 휴식할 수 있게 되었고 다소 느슨해졌다. 나는 ‘논어’, ‘법정인간 예언’, ‘부이유덕’, ‘홍음’ 등을 읽기 시작했고 읽을수록 정념이 강해졌다. 일부 세뇌당한 수련생들은 법을 듣고 난 후 명백해져 사당의 속임수에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다시 법공부를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정념은 죄수들에게 희망을 보게 만들었다. 나는 한번 또 한 번 사람들에게 사부님의 말씀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드린다’를 읽어 주었다. 내가 출감하기 전 진상을 명백히 알고 탈당한 사람들이 조용히 내게 와서 ‘내가 출감하면 꼭 당신을 찾겠다’고 말해주었다. 사부님의 한 단락 경문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한 중죄인은 내게 ‘내가 사회에서 망나니 짓을 하고 다닐 때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감옥에서 나는 하루하루가 일 년 같다. 지금 나는 출감 때까지 견딜 수 있는지 조차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날 나는 그가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에 밤새 그를 지켜봤다. 날이 밝자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더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자살은 큰 죄라서 그 결과는 지금 생활보다 더 고달플 것이라 말해 주었고 반드시 그런 생각을 지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가 진상을 명백히 알게 된 후 그가 탈당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는 내게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감탄한 적이 없었다. 나는 정말 당신의 의지에 감사드린다. 당신은 대법제자의 위대함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만사만물은 법을 위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종이, 포장지 등 물건 위에 하늘이 중공을 멸하니 탈당하여 생명을 지키라고 써 놓았다. 그들 생명들이 구도 받을 기회를 잃지 말고 세인들에게 경각심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출감하기 전 날, 경찰은 내가 이불을 갖고 가는 것을 불허했다. 나는 솜을 한 조각 한 조각 뜯어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갑자기 마음이 시큰해졌다. 이 감옥은 자신의 물품도 집에 갖고 가지 못하게 할 정도 사악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솜을 보면서 만약 큰 비가 내려 날씨가 추워지면 나는 너를 데리고 나갈 것이라고 속으로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덮히더니 거짓말처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공기가 맑아졌다. 나는 정말 솜을 가지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 문에 다다르자 한 경찰이 이 솜을 왜 가지고 나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내 이불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기에 그것을 뜯어냈는데 솜들이 감옥에 있기 싫다고 하기에 가지고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경찰은 할 말이 없어 했다.

2. 집에서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도하다

집에 돌아온 후 길거리를 걸어도 모든 것이 생소했다. 저녁에 외출하면 집을 찾을 수 없었고 몇 년 박해 때문에 친구와도 연락이 끊어졌다. 정말 마음속으로 너무 고달팠다. 어머니는 내가 출감하기 전 세상을 떠나셨다. 정말 걸음 걸음마다 침통함을 느껴야 했다. 집에서는 박해 때문에 서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는데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한 동안 나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고 한 발자국도 집에서 나가지 못했다. 비록 식구 몇몇에게 삼퇴를 권유해 탈퇴시켰지만 그들은 진상자료를 보지 않았고 진상을 명백히 알고 탈퇴한 것은 아니었다.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사전 소원이기 때문에 나는 눈물을 닦고 집에서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큰 난 중에서 견정해야 하나니 / 정진의 뜻은 접을 수 없도다(홍음2-견정)’가 생각났다.

사부님께서는 오직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나를 도와 수확이 있게 해주셨다. 나는 사부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점차 성숙해졌다. 처음에는 한 두 명만 얘기하여 탈퇴시킬 수 있었다. 진상을 듣지 않으려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기쁜 일도 있었다. 나는 다만 사악한 당의 요언날조와 모함이 중생을 독해했을 뿐, 그들이 이번 생에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인연이 있어 법을 기다리고 구도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모두를 정념으로 대했다. 나는 한번 말해 본 후 이 사람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최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그들을 고려했다. 설사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당신의 안위에 관련되기 때문에 진상을 들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내가 그들을 위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친구의 딸 결혼 소식을 들은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진상을 알릴 기회를 주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CD와 호신부를 지니고 식당에서 탈당을 권유했다. 비록 탈당한 사람이 3명 뿐이었지만 CD를 가져간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진상을 알람에 구하는 마음없이 했고 인연이 닿은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탈퇴시켰다.

2011년 새해를 맞아 가족들이 모일 기회가 있었다.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린 후 몇 명을 탈퇴시켰다. 나는 진상을 얘기할 기회가 없으면 방법을 생각해 그들에게 진상CD를 주었다. 길에서 물건을 살 때에도 진상을 알리며 CD와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고, 진상지폐도 사용하면 비교적 쉽게 탈당시킬 수 있었다. 예를들면 탈당을 말할 때 상대방이 듣는다면 좀 더 진상을 말하기 위해 그의 물건을 좀 샀다. 이럴 경우 100퍼센트 탈당이 가능했다. 설령 사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진상자료를 접수했다. 나는 그에게 탈당에 관해 꼭 그의 가족들에게도 알려주라고 당부하면서 하루 빨리 탈퇴하면 하루 빨리 평안해 진다고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끔 불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했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 탈당을 얘기하고는 물건을 좀 산 다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하통로 옆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진상을 알리고자 했다. 이때 시골 아주머니 한 분이 그에게 길을 물었고 그 청년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던 것이었고 나는 한 번 또 한 번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고마워할 필요 없다. 당신은 탈당하면 평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당신은 학교에 다닐 때 붉은 손수건을 두른 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올해 65살인데 작년에 입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왜 입당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촌에서 강요하기에 별 생각없이 입당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과 극악무도한 죄행을 말해주었고, 하늘이 그를 멸하고자 할 때 사당과 함께 희생양이 될 뿐이라고 알려주면서 탈당을 권유하자 그녀는 동의하였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을 때 모든 것이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때에 맞춰 당신을 만날 수 있었을까 하며 끊임없이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당의 속임수에 빠진 당신을 위해 우리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 탈당시키고 당신을 구하기 위해 나를 보내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는 내 말을 확실하게 믿으며 행복한 웃음을 띈 채 떠났다.

진상을 알릴 때는 우선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나는 당신을 구원할 것이고 당신보다 높으며 당신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성심성의껏 진심으로 상대방의 정서에 맞게 이야기해야만 상대방이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한 번은 한 남자가 아직 한 돌이 채 되지 않은 어린 손자를 창에 남겨둔 채 구름다리 위에 삼륜차를 세워 놓았는데 담배 피우는 데에만 집중하다 손자가 다리 난간으로 기어 올라간 것을 알지 못했다. 때마침 곁을 지나던 나는 조심스레 그 아이를 끌어 내려주었다. 그리고 아직 애가 어리니 조심해서 돌봐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도 자신이 너무 부주의했음을 알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탈당을 권유하자 그는 즉시 동의했고 연신 고마워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법제자로부터 진상을 듣고 명백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도와 탈당시켜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진상을 알릴 때 어떤 사람은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다. 나는 빨리 탈퇴하면 빨리 평안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절대 구도받을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준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를 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명백해진 후 그는 탈당을 선택할 것이다. 어느날 나는 큰길 양쪽에 각각 한 사람씩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인연이라 생각해 한 사람을 탈퇴시킨 후 길을 건너 다른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는 ‘전에 당신이 준 CD를 봤어요. 나는 한가하면 다시 봤는데 새로운 CD는 없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새로운 CD를 주었고 그는 주동적으로 탈당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기 위해 외지에서 온 사람이었다. 사부님께서 그에게 탈당할 기회를 안배해 주신 것이다. 자료를 받은 그는 자신은 정말 이것을 보기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 기뻐했다.

비오는 날 나는 입체 교차로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한 사람이 그 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인연이라 생각해 나는 ‘천 리의 인연은 실 한 줄로 이어지는데 우리에게 인연이 닿은 것 같죠. 하늘이 당신에게 위험이 있는 것을 보고 내게 당신을 탈당시켜 평안을 얻게 하라고 시킨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아주 기뻐하며 공산당, 공청탄,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내가 그에게 CD와 소책자를 주자 그는 돌아가서 꼭 잘 보겠다며 감사해했다.

다시 몇 걸음 걸어가자 한 남자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당신과 할 말이 있는데, 탈당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는 들은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내가 탈당했는지 묻자 그는 아직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사당의 죄악을 말해주었고 그는 모두 인정했지만 막상 탈당은 주저하며 망설였다. 나는 하늘이 작은 비를 내리는 것은 경각심을 주는 것이므로 사람들은 마땅히 명석해져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하늘이 오토바이 시동을 걸리지 않게 해 당신과 내가 만나게 했고, 내가 당신을 도와 당신의 평안을 위해 탈당을 권유하게 한 것은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탈당에 동의했고, 실명으로 삼퇴를 결정했다.

또 얼마 걷지 않아 법원 직원을 만났다. 그는 전에 진상을 들어 알고 있지만 두려운 마음때문에 탈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사당의 죄악을 알고 있었지만 탈당을 이야기하면 그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에게 명백하게 말해주었지만 탈당하면 계속 일할 수 없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명으로 탈당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두려운 마음때문에 그대로 법원으로 들어갔다. 나는 진심으로 그를 위해 아쉬워했다.

교차로에서 진상을 알릴 때 가끔 두 마디면 탈당하는 사람이 있다. 세인들도 부단히 각성하고 있다. 교차로에서 나는 어느 청년에게 ‘인터넷할 줄 알죠?’라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주며 세계 각지의 소식을 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후 탈당을 권유하자 그는 공청단과 소선대에 가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내가 당신을 도와 탈당을 시켜 평안을 지켜주겠다고 하자 그는 좋다며 탈퇴를 승낙했다. 나는 가명을 지어 그를 단, 대에서 탈퇴시켰다.

나는 진상을 알리면서 자신을 수련했다. 내게는 사람들이 CD는 보기 좋아하지만 ‘9평’ 서적은 그림이 적고 문자가 많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여기는 아주 좋지 않은 관념이 하나 있었다. 최근 나는 CD, 탈당소책자, 인터넷 봉쇄돌파 CD를 지니고 나갔는데 막노동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와 앞다투어 자료를 가져가려 했다. 가장 먼저 션윈CD가 동이 났고 소책자도 없어졌다. 나는 또 한 젊은이를 도와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시켜 주었다. 그 때 한 사람이 ‘9평’을 갖고 싶어 했다. 나는 미안하다면서 다음에 꼭 주겠노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관념이 세인들로 하여금 ‘9평’을 보는 것을 저애하고 있다는 인식을 한 후 아주 부끄러워졌다. 우리의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사람을 구도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청년과 얘기한 후 얼마 걷지 않아 길을 묻는 사람을 만났다. 나는 당신을 돕겠다고 말한 후 당신과 다른 한 가지 일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탈당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는 진상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묻자 그는 들은 적이 없다면서 여기 앉아서 차분히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진상을 듣기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우리는 계단에 앉아 반시간 넘게 대화했다. 나는 그가 궁금해하는 문제에 답해주었고 그가 명백히진 후 그의 탈당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9평’과 삼퇴소책자를 그에게 주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는 듯 그는 아주 기뻐하며 떠났다.

이러한 경험은 아주 많다. 다만 몇 가지 예만 들었을 뿐이다.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것에 마음을 놓는다면 사부님과 뭇 신들은 우리를 돕는다. 우리는 다만 인연을 이용해 세인이 진상을 명백히 알고 사당으로부터 탈퇴하는 것을 도와 아름다운 미래를 선사할 뿐이다.

이상은 내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있었던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이다. 잘못된 인식과 합당하지 않다고 느낀 점에 대해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22/2578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