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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이 가정환경을 변화시키다

글 / 허베이 대법제자 징이

[밍후이왕] 1999년 ‘7.20’, 장씨 건달집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사악한 선전이 하늘땅을 뒤덮었다. 그 당시 우리는 가정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 나, 언니, 형부 모두 대법을 수련하여 부부가 같이 불법 노동교양을 당하면서 열 살 된 어린 조카를 돌봐줄 사람조차 없어 부모님의 슬픔은 비할 수 없었다.

성실한 농민인 아버지는 사악한 당에 대한 두려움과 거짓 선전에 독해돼 이지를 잃고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권했다. 하지만 내가 조금도 동요하지 않자 당시 임신 6개월이었던 나를 발로 한번 차기까지 하였다. 남편은 나에게 대법을 포기하라면서 매일 나를 핍박하여 대법을 중상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하였고, 친척과 친구까지 동원해 대법을 포기하라고 권하는 게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단위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나에게 반달 앞당겨 출산 휴가를 주며 남편에게 나를 잘 지키라고 거듭 부탁하였다.

나는 대법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한 것은 틀림없고, 사부님께서 억울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출근하거나 혹은 출장 갔을 때를 이용해 자료를 배포하고 스티커를 붙였으며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2001년 8월 말, 아버지와 남편은 우리 단위 사악한 당 서기에게 기만당하고 협박당해 단위 사악한 요원들과 함께 나를 사악한 세뇌 반에 납치해 갔다. 그것들의 고압 하에 나는 굽은 길을 걷게 되었지만, 사부님께서는 그런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수련생을 보내어 나를 찾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2004년 또다시 대법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나는 모든 대법 서적들을 모두 한번 보고 난 후 그 무엇도 내가 다시 돌아오는 길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철저히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더는 간섭하지 않았다

나는 일체 시간을 다그쳐 법을 학습하고 연공을 했다. 내가 다시 수련하게 된 것을 알게 된 남편은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며 욕을 하고 때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은 친정 부모님을 불러왔다. 성격이 거친 친정아버지는 자녀는 무조건 당신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때리고 욕을 하며 죽음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두려워해 비교적 말을 잘 듣는 딸이었다. 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을 알게 되어 아버지가 대법에 죄를 범하는 것을 더욱 원하지 않았다. 나는 친정아버지에게 말대꾸하지 않고 평화롭게 대법의 진상을 얘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대법이 아무리 좋다 해도 정부가 연마하지 못하게 하면 너도 연마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네가 말할 권리가 없다.”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이 통하지 않아 앉아서 발정념을 하였다. 후에 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친정아버지는 내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자 조금 있다 나갔다. 친정아버지는 이튿날 내가 출근한 틈을 타 ‘전법륜’ 책을 숨겼지만, 내가 저녁에 퇴근해서 발정념을 한 뒤 웃으면서 책을 달라고 했다. 결국, 정념의 작용으로 책을 돌려준 아버지는, 대법을 수련하려는 마음이 그렇게 견고한 것을 본 이후에 더는 나에게 간섭하지 않았다.

동생도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동생은 ‘전법륜’을 채 한 번 읽어보기도 전에 사악의 박해가 시작되자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사악한 당에 대한 두려움으로 책을 읽지 않고, 대법진상을 얘기해 주어도 듣지 않겠다며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누나네 집이 지금 어떤 상황인데요.”라고 말했다. 남동생의 아내는 진상자료를 읽고 일찍이 단(공청단), 대(소선대)에서 퇴출했다. 그런 올케가 남동생에게 진상자료를 보여주어도 동생은 거절했다.

작년 설 전후에 남동생 부부가, 부모님과의 관계가 너무나 좋지 않아 거의 이혼할 지경에 이르렀다. 올케는 나를 신뢰했기에 나에게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해 주었다. 나는 친정식구에 대한 정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남동생 부부의 가정을 위해 올케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면서 대법의 법리로 그녀를 일깨워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과 선악윤보를 얘기해 주었으며, 고대 일부 효행으로 선한 보답을 받은 전통이야기 등등을 얘기해주었다. 또한,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일부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도 얘기해 주었다. 그러자 올케는 진심으로 그들을 위한다는 것을 알고는 화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점점 옅어지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었다. 그런 올케에게 시간을 내어 ‘전법륜’을 한번 보라고 권하자 집에 아직 한 권을 보관하고 있다고 하였다. (‘7.20’ 전에 동생이 보던 책이었다.)후에 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올케에게 선하게 대하라고 타일렀고, 부모님에게는 올케의 결점을 너그럽게 보고 친자식처럼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후에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좋아졌다.

한번은 집에 갔을 때 이웃들이 “당신 동생이 파룬따파를 믿는다고 하면서 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였어요.”라고 말해 나는 아주 감동하였다. 올봄, 남동생은 내가 갖고 간 진상 소책자와 전단지를 꼼꼼히 보기 시작했다. 남동생이 오토바이로 나를 장도 버스정류소까지 데려다 주는 길에 나는 “너 단대에서 퇴출하는 것이 어때?”라고 권했더니 남동생은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해 나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 같았다. 마침내 구원된 남동생은 현재 ‘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다.

남편의 큰 변화

나는 남편과는 관을 잘 넘길 때도 있었고 잘못 넘길 때도 있었다. 내가 다시 대법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 5살 난 아들에게 ‘전법륜’을 읽어 주었다. 집으로 온 남편은 아주 듣기 싫은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다만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에요.”라고 말했더니 “그래도 안 된다. 더 읽으면 책을 찢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더는 심성을 지키지 못한 채 “당신이 감히”라고 했더니 남편은 미친 것처럼 내가 소중히 보관하던 1999년 ‘7.20’ 전의 정교한 ‘전법륜’ 작은 책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나는 땅에 무릎을 꿇고 한 장, 한 장 찢어진 조각을 집어 들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음으로 묵묵히 “사부님, 제자는 사부님께 미안합니다. 대법 책을 잘 보존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한 뒤 조금씩 집어서 하나로 합쳤는데 저녁 내내 글자를 맞추었다. 나는 정말 억울해하면서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남편을 찾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생긴 것도 볼품없어도 당시 남편이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점만 보고 결혼한 것인데 지금은 그것조차 없었다. 이제는 당신이 왜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할수록 남편과는 더는 생활하기 싫었고 이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대법제자로서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괴로울 때 나는 법을 학습했지만, 이후에 더는 남편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남편에게 해 주어야 할 밥은 해 주었고, 내가 해야 할 일들도 모두 해놓았다. 하지만 나는 법 학습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반드시 내가 제거해야 할 집착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은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른 일이므로 가족이라면 응당 나를 지지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는 밖으로 찾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으로 찾고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 주셨는데 마음을 건드리는 자극적인 말에만 부딪치면 사부님의 법을 잊은 것이었다. 여기에는 남편에 대한 정을 제거해야 할 것도 있고, 아주 강한 쟁투심, 어투가 선하지 않은 등등이 있는 것이었다. 구세력은 나의 집착심을 잡고는 남편을 이용하여 나를 고험했던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으로 하여금 대법에 죄를 범하게 함으로써 남편을 훼멸하려고 하였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놀라서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법은 나에게 새롭게 마음을 조절하게 하여 우리 부부는 십여 일 넘게 지속한 냉전을 끝마쳤다. 평온한 마음으로 남편과 교류를 했더니 남편이 “당신이 나를 자극하지 않았더라면 나도 책을 찢지는 않았을 것이요. 나는 우리 아이가 대법을 배우면 나중에 학교에 다닐 때 영향을 받을까 봐 두려웠소.”라고 말했다. 이것을 보더라도 사람들이 중공 사악한 당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아낼 수 있다. 공산당이 만든 운동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심성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가. 나도 정중하게 남편에게 “내가 어디에 잘못한 점이 있으면 당신이 나에게 지적해 주세요. 그럼 나는 바로잡아서 다음에는 잘할게요. 그렇지만 당신은 절대로 대법 책을 찢으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알려 주었다. 이후부터 나는 되도록 남편을 선하게 대하며 관심을 쏟았으며 대법의 진상도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관점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늘 논쟁을 했는데, 처음에는 나도 평온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남편이 사리에 맞지 않게 억지를 쓰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남편은 큰 소리로 나를 제지하면서 “말하지 마라.”라고 하였다. 나는 아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것을 보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더 말해도 남편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대법으로 그런 상황을 비추어 보니 나에게 쟁투심이 아직도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 법 학습을 강화하면서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여 자비로운 마음을 수련해 내려고 하였다.

한번은 내가 ‘9평’ CD를 보고 있을 때 마침 “99년 이전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거의 1억에 가까웠다.”라는 말을 남편이 들었을 때 “허튼소리야.”라고 중얼거리고는 한참 방영하고 있던 CD를 꺼내 부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앉아서 남편의 배후에서 남편을 조종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한다는 발정념을 하였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을 보고도 조급해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고는 “당신은 거기에서 가부좌하고 뭐해요?”라고 말했다. 남편의 배후에 있는 사악이 분명히 적어진 것이었는데 나는 더는 남편과 다투지 않았다. 지금 남편은 비록 수련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가정환경도 아주 많이 좋아졌다. 가끔 남편은 “당신은 우리한테 고마워해야 해요. 우리 모두 당신 수련을 도와주러 온 것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그럼요, 당신들에게 감사드려요.”라고 말한다. 가끔 남편은 나와 신불, 생명윤회에 관한 화제를 담론하곤 하는데, 비록 표면으로는 아무 말을 안 해도 내가 말하는 일부 법리를 남편이 인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편은 가끔 내가 잘하지 못할 때 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나의 대법수련을 지지하는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늘 어린 손자를 돌보기 위해 우리와 함께 생활할 때가 잦다. 깔끔한 시어머니는 집안일도 깨끗하게 청소해서 아주 좋았지만, 시어머니는 말을 함부로 하는 편이었다. 시어머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말을 했는데, 그것 때문에 두 아들도 몇 번이나 시어머니에게 말해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내가 그런 시어머니와 함께 지낸 뒤부터 정말이지 느낀 게 많았지만, 다행히도 내가 대법을 수련해서 더는 그런 것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사악한 당의 거짓 선전을 믿고 내가 대법을 수련한다고 뒤에서 아들을 부추겨 나와 이혼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주 놀랐지만, 나는 한 수련자로서 응당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였기에 모른 체하면서 여전히 시어머니를 공경하였다. 가끔 뜻하지 않게 내가 한 말이 시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했지만, 나도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화가 난 시어머니가 짐을 챙겨 집으로 갔을 때 나는 전화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내 모습은 수련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나는 매일 아침 5시경 일어나 시어머니가 먹기 좋아하는 좁쌀 호박죽을 만들어 병원에 가져갔는데, 시어머니가 무척 좋아했다.

시어머니에게 진상을 얘기하면, 시어머니는 늘 TV에서 말한 게 틀림없다면서 가끔은 사리에 어긋나게 억지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매번 할 말이 없으면 화를 냈는데, 나는 안으로 찾았더니 나에게는 아직도 쟁투심이 있고, 나와 조금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여러 방면에서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시어머니를 우대하려 했고 자신의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하려고 하였다. 가끔은 내가 괜찮게 대하는데도 시어머니는 왜 아직도 내가 친정어머니와 자신을 대하는 게 다르다고 얘기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 한 층의 간격이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 공부를 하였다. “그들은 늘 사람과 비교하며, 늘 그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법의 각 층차의 요구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합니다.”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이것을 보았을 때 머리에 확 들어오면서 나는 일순간에 깨달았다. 내가 그전에 잘했던 것은 시어머니가 대법을 인정하여 나를 지지함으로써 나에게 느슨한 수련환경이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가. 시어머니가 나와 한 식구가 된 것은 대법에 동화되기 위한 것으로, 시어머니가 진상을 명백히 알아 구도 받는 것이야말로 근본인데 말이다. 관념을 바꾸자 이러한 간격은 즉시 없어졌다.

일은 이러하다. 올봄, 시어머니가 뇌에 가벼운 출혈을 일으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병원에 갔지만, 당시 남편은 업무가 바빠서 함께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았지만, 시어머니는 현성병원에 입원하였다.) 남편의 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다를 게 없다. 모두 대법에 대한 인연 때문에 함께 모인 것이므로 구별심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어머니를 보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몇 개월 보지 못한 사이 과로하여 머리가 대부분 하얗게 변했고 창백한 얼굴이 많이 늙어 있었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한순간 시어머니와의 간격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시어머니를 여러 방면으로 살뜰히 보살폈더니 시어머니의 명백한 일면이 그것을 알고는 특별히 만족했다. 병실에 있던 사람들 모두 내가 친딸인 줄 알 정도였다. 그 뒤 작년 10월 1일 휴가 때 집에 갈 때 시어머니 스스로 나에게 수련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수련생 집으로 가라고 했다. 고향에 몇몇 수련생이 있는데, 이전에는 매번 고향에 갈 때마다 그들을 만나러 가면 시어머니는 못마땅해하며 그들과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어머니가 먼저 이렇게 변한 모습을 보이자 남편도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어머니가 왜 당신이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지지하나요?”라고 했다. 나는 자신 있게 “그것은 내가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하니까 어머니도 그것을 인정하고 비로소 대법을 배우는 것을 지지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의 일사일념은 중생 거기에 모두 반영되므로 우리는 진정으로 시시각각 대법의 표준에 따라 엄격히 자신을 요구해야 하고, 직접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

올여름 시어머니는 동서와 싸운 뒤 몹시 틀어져 있었다. 남편이 어쩔 줄 몰라 하기에 내가 집으로 찾아뵙겠다고 했다. 나는 여러 집착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선념으로 대했더니 모순이 완화되었다. 남편도 비교적 잘했다고 하기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 “내가 대법을 배워서 얻어진 지혜이므로 당신은 응당 대법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했더니 남편도 묵인했다. 지금 대법에 대한 시어머니의 인식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내가 한 것은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직도 멀고도 멀다. 그러므로 오로지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노력하고,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만, 우리가 이곳에 올 때 품었던 대원을 완성할 수 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에게 감사드린다.

문장발표: 2012년 5월 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5/7/256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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