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광위
[밍후이왕]1999년 4월 25일 중국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의 중남해 단체청원 사건이 발생하였다. 나는 톈진(天津)의 파룬궁 수련생으로 당시 4월 25일 사건이 있기 전에 내가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
허쩌우슈(何祚庥)는 ‘청소년 잡지’에 “나는 청소년이 기공 수련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라는 한 편의 문장을 올렸다. 그 문장은 파룬궁을 중상하는 진실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그러자 톈진 파룬궁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톈진 교육학원 편집장 장사우루(张绍禄)에게 “허쩌우슈의 글이 진실하지 않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여러 사람들이 전한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교육학원 책임자가 허쩌우슈의 문장을 삭제하고 또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을 동의하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모두 사건이 원만하게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진 교육학원 측이 갑자기 태도를 돌변 허쩌우슈 문장이 잘못 되어 정정해야 한다고 했던 앞서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정정 발표를 했다. 교육학원 측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4월 22일 톈진 교육학원을 방문하여 파룬궁의 진실을 이해시켜 잘못된 문장을 고치도록 희망 하면서 정황을 반영시키려 하였다.
4월 22일 많은 사람들이 톈진 교육학원으로 간 것을 알게 되어 나도 그날 그곳에 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이 청사 앞마당에 모두들 조용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청사 울타리 안에 파룬궁 수련생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전하는 말로는 당시 6천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그곳에서 법 공부를 하거나 교류를 했으며 또 연공도 하면서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4월 24일까지 있었다.
그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던 하늘에서 갑자기 양동이로 쏟아 붓듯 엄청난 비가 퍼부었다. 거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고 모두들 조용한 상태 그대로였다. 다만 몇몇 사람들이 옷으로 책을 가렸을 뿐이다. 나는 당시 그런 수련생들의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되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비는 그치고 바람이 조금 불었고 가렸던 태양도 나와 흠뻑 젖었던 옷은 불에 말린 것처럼 말랐다.
이러는 중에 외지 수련생들도 톈진으로 왔고 또 교외 5현의 수련생들도 톈진으로 왔다. 이 곳 시내의 수련생은 외지에서 수련생들을 위해 손수 음식물을 가져다주는 등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4월 24일이 되자 톈진 경찰이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타하며 대규모로 체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경찰은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톈진 교육학원에서 모두 해산하여 돌아갈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였다. 그러나 수련생들은 교육학원 측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해 누구도 떠나려하지 않았다. 저녁나절이 되자 갑자기 일백여 명의 경찰이 집단으로 몰려 와서 그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확성기를 통해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떠나세요. 지금 곧 장내를 정돈할겁니다!” 당시 여러 사람들은 뭔가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함께 큰 소리로 ‘전법륜(轉法輪)-논어(論語)’를 힘차게 외웠다. 그 소리는 교육학원에 울려 퍼졌다. 오후 8시경 경찰들이 좌우에서 폭력을 가하며 몰아내는 바람에 사람들은 청사 안 뜰에서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당시 나는 학원 본관 계단에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맞은편 위층에서 붉은 색의 작은 원점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들은 이미 수련생들의 모습 일체를 은밀히 촬영한 것이다.
청사 울안 일대는 혼란스러워졌다. 경찰이 무자비하게 야만적인 폭행을 가하며 해산을 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노인이든 소년이든 연약한 부녀자이든 구분하지 않고 밀고 잡아끌고 또는 구타를 가하며 해산을 시키고 있었다. 그 때 경찰 5명이 가부좌하고 있는 나를 무슨 예고도 없이 발로 찼다. 6, 7개의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다시 달려들어 재차 발로 밟고 걷어차고 또 걷어찼다. 그런 다음 실신지경에 이른 나를 두 명의 경찰이 양쪽 다리를 잡고 질질 끌며 경찰차로 갔다. 나의 머리와 상체가 땅에 끌려가는 모습이 너무 위험해 보였던지 옆에 있던 한 경찰이 “그렇게 끌고 가다가 죽으면 안 돼!” 하고 소리치자 그들은 다시 나의 양팔을 잡고 10m 넘게 끌고 가서 경찰차에 집어 던져버렸다.
그때 나의 정신은 뚜렷하였는데 좌석 사이 틈에 웅크린 채로 있었으며 차가 얼마를 달리다가 멈추어 섰다. 그들이 차에서 내리라고 했지만 나는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며 고함을 지르며 한바탕 또 소란을 피우며 폭행을 가했다. 그때 차 안에 다른 수련생도 있었다. 나는 갑자기 일어나 큰 소리로 그들을 향해 질책했다. “당신들, 이것이 사람의 행동인가?” 그러자 40대의 한 경찰이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 제지를 했다. 그들은 나의 목덜미를 잡고 힘껏 밀치면서 차에서 끌어 내렸는데 도착한 곳은 톈진시 허핑구(和平区) 스맨중(四面钟) 파출소였다.
파출소에서는 끌려간 수련생 하나하나를 조사하고 기록을 했는데, 나를 담당한 경찰이 물었다. “당신은, 당신들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경찰은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집단으로 몰려와서 소란을 피웠는가?” 하고 다시 물었다. 나는 “우리는 진실한 정황을 알려주려고 온 것이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은 “당신들은 왜, 중남해에 가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중남해에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경찰은 “당신들은, 중남해에 갈 용기가 있는가?” 라고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파출소에서 4월 25일 새벽 2시까지 있다가 비로소 석방되었다. 그때 파출소에 잡혀가서 조사받은 수련생들 모두 경찰로부터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중남해’에 가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나와 또 다른 한 수련생은 맨발로 파출소에서 걸어 나왔다. 우리가 풀려난 시간이 밤중이라 우리는 그곳에서 가까운 한 수련생의 집에 묵었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눕자마자 잠들었고 다음 날인 4월 25일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 수련생으로부터, 어제 교육학원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 수련생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 시정부에 역시 진실한 정황을 알리면서 검거된 수련생들을 속히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시정부로 갔다. 당시 나는 수련생들이 중남해에 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언론사 기자로 보이는 한 여자가 “어제 누가 구타를 당했나요? 경찰에 구타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즉시 “내가 맞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등과 구타당한 몸의 각 부위를 보여줬다. 나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전신에 가지색으로 퍼렇게 멍이 들었다며 놀라워했다. 여기자는 나와 함께 파룬궁 보도원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간단한 정황을 들은 후 다시 나를 대동하고 톈진시 공안국을 찾아가서 모 책임자를 만났다. 즉석에서 나의 옷을 걷어 올려 구타당한 몸 상태를 보여주었다. 그 책임자는 사실 앞에서 할 말이 없자 우리를 대강 대처하도록 했다.
후에 수련생이 전한 말에 의하면 시정부에서 수련생들의 요구를 응대하던 담당자가 “자신들은 그 문제에 대해 어떤 작용도 할 수 없으니 직접 북경에 가서 진정을 하라.”고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4월 25일에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중남해에 찾아가서 청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톈진공안국 대변인이 TV에서 “톈진에서는 사람을 구타하지도 않았으며 사람을 검거하지도 않았다.” 하고 발표하는 걸 보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발표는 철저한 기만책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다. 그들은 사전에 파룬궁 수련생을 기만하려고 모의한 것이다. 톈진사건을 회억해 보면 교육학원 편집장이 공개사과를 번복 부인하던 데로부터 파출소 경찰이 기록을 하면서 “당신들이 중남해를 갈 용기가 있어요?” 한 것과 시정부에서 관계자가 “자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작용도 할 수 없으니 북경으로 가서 진정을 해라.” 하고 종용한 것 등등이 모두 장쩌민 집단이 사전 모의를 해서 파룬궁 수련생들을 만인이 주목하는 북경으로 모이게 하여 그걸 빌미로 트집을 잡아 파룬궁을 박해하려고 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몸소 목격하고 체험한 ‘톈진사건’의 내막과 과정이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생의 ‘4.25 청원’은 중공 장쩌민 집단의 폭정과 음모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양심을 견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권리를 지킨 것이다. 그들 파룬궁 수련생들의 마음속에는 개인의 득실이 없고 오직 바른 믿음과 공통의 의(義)가 있을 뿐이다.
문장발표 : 2012년 4월 2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25/2561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