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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을 저애하는 몇 가지 부정확한 심태

글/하얼빈(哈尔滨)대법제자

[밍후이왕] ‘2012년 결속한다는 심태는 정법을 저애하는 일대 집착이다’라는 문장 중에서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관찰한데 따르면 현재 많은 대법제자들이 보편적으로 정진하지 않고 사람마음이 너무 중해 3가지 일을 하는데 비교적 태만하다.”고 제기했다. 나는 비록 열리지 않고 수련하지만 접촉한 수련생을 관찰한 바에 따르면 확실히 이러한 정황이며 진정 정진하는 수련생은 아주 적고 다수의 수련생은 각종각양의 사람마음의 장애로 정진하지 못하며 더욱이 3가지 일로 사람을 구하는 것에 주동적이지 못한다. 나는 내가 본 수련생의 정진을 장애하는 몇 가지 부적절한 심태를 써 내어 수련생을 도와 재빨리 잘못된 인식에서 걸어 나오기를 희망한다.

자만심은 정진을 저애하는 강대한 장애이다

나는 지금 많은 수련생이 정진하지 않는 가장 큰 장애는 자만심임을 발견했다. 특히 이전에 비교적 잘하던 수련생들이 자신이 매우 많이 감당했고 법을 실증하는 일도 했으며 사람을 구하는 일도 적지 않게 하여 원만은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 자신을 느슨히 하고 더는 긴박감이 없으며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가서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매일 법 공부와 연공하고 교류하며 평온하게 걸어 정법이 결속되기를 기대한다. 더욱이 시간에 대한 집착이 있는 수련생이 몇 년 전에는 매우 정진하였으나 몇 년 지나면서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으니 기약도 없이 아득하다고 여기며 어쨌든 이미 많이 감당했고 정법이 어느 해 결속될지 모르니 자신을 느슨히 하며 정상생활을 하려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안일한 마음이 생겨 많은 정력을 속인의 생활과 사업에 투입한다. 한번은 몇몇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내가 이런 현상을 말할 때 한 수련생이 천목으로 다른 공간에 펼쳐진 장면을 보았다. 많은 수련생이 매우 크고 딴딴한 껍질 안에 앉아 있는데 어떤 수련생은 자신이 괜찮게 수련했다고 여겨 자만하는 심리가 있었다. 이 껍질은 바로 이러한 마음과 대응되었다.

사실 우리가 일단 이런 마음이 일 때 우리는 제자리걸음하며 정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터넷 한 문장이 기억나는데 30여세 되는 한 독신 여수련생이 지난 몇 년간 자료점에서 매우 정진했으며 시간이 길어지니 이렇게 다시 노력하려하지 않고 상대를 찾아 가정을 꾸려 정상적인 생활을 하려하고 수련생이 어떻게 권해도 듣지 않아 결국 병마에 끌려갔다. 사부님께서는 ‘각지설법7, 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인류가 사회에서 형성한 관념의 교란이 있다. 이 일체의 일체는 모두 당신을 속인 속으로 끌어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 “매 일보(一步)는 모두 매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일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느슨히 할 수 없으며 이런 긴박한 시간에 아직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도되지 못해 사부님은 아직도 시시각각 우리를 위해 감당하니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도 만족하고 느슨할 수 없다.

사와 이기적인 관념을 품고 수련을 대하다

이런 수련생이 일부 있다. 법공부와 연공은 줄곧 견지하고 3가지 일도 하나 시종 사와 자신을 위하는 관념을 전변하지 못해 사람마음을 품고 일을 한다. 나는 이런 법공부소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10여명 수련생이 매번 다만 한부의 진상자료만 가지고 다른 것은 조금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런 수련생이 자료를 만드는 기점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원만할 수 없는 것이 두려워 겨우 좀 한 것이다. 이런 강렬한 사심을 지니고 어떻게 원만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경고하는 말’에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사실 이런 심리와 “금부처”이야기 중 두 양주의 표현은 그토록 비슷하며 이런 마음이 어떻게 신이 되고 부처가 되겠는가, 이것은 신불의 경지와 차이가 얼마나 먼가.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나 꼭 기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기점에 서서 얼마를 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위덕이며 반대로 사람마음을 품고 사심으로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사람 일을 하는 것이고 많게는 분복을 쌓은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법의 틈에서 요행심리를 품고 수련을 대한다. 다만 마지막까지 견지하면 원만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수련을 질질 끌며 3가지 일을 매우 적게 한다. 나는 이런 견해는 사부님의 말씀을 되새겨야 한다고 여긴다. 예수가 당신이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 것은 당신이 예수의 말대로 해야 그의 천국으로 갈 수 있으며 표면적인 믿음에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연마(煉)를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또 여전히 당신이 수련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게다가 사부님은 수련은 엄숙하고 대법제자는 표준이 있다고 강조하셨다. 사부님은 ‘각지설법3, 대뉴욕지구법회설법’에서 “시간이 많지 않다. 잘하지 못한 그러한 사람들, 당신은 자신을 생각해 봐야 하며 당신은 정말로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처음으로 대법제자에게 이처럼 경고를 제기한다.(박수) 당신이 원만을 이룰 수 있는가 없는가는 당신 자신에게 달렸다.” “원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날 당신은 거기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다!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내가 보건대 울어도 늦었다.”그러므로 요행심리가 있는 수련생은 꼭 엄숙하게 수련을 대해야하며 착실하게 법에서 수련하고 절대 기연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법공부 양을 정진하는 표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법을 잘 배워야 한다는 함의를 이해하지 못해 매일 법공부 양을 정진하는 표현으로 삼는다. 오늘은 이 법공부장에 참가하고 내일은 저 법공부장에 참가하며 만나기만 하면 나는 오늘 몇 강의 읽었고 너는 오늘 몇 강의 읽었다는 등 법공부를 형식에 치우쳐 심성을 제고하지 못한다. 사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다그쳐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여 법을 잘 배우라는 것은 우리더러 법의 부동한 층차의 함의를 많이 장악하라는 것이며 문제에 부딪칠 때 법의 표준에 따르라는 것이다. 만약 법공부에 대조해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법을 얻지 않은 것과 같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착실한 수련’에서 말씀하셨다.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 사부님께서도 말겁시기 화상이 수련성취하지 못한 원인을 말씀하셨으며 바로 법을 학문으로 여겨 실수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한 노년 수련생 한 분을 만났다. 법을 상당히 유창하게 암기했으나 도리어 실수하지 못해 병업이 나타나 집에서 약을 먹고 산소호흡기를 달고 수련생에게 그를 도와줄 수련생을 찾아 달라(노년 수련생은 혼자이고 자식은 모두 따로 지낸다)하여 특별한 일이 없는 대법제자를 소개했다. 그런데 그 노년 수련생은 냉장고의 음식을 혼자서 먹고 수련생에게는 먹게 하지 않아 짠지만 먹었다. 이런 속인보다도 못한 심태로 법공부를 얼마나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또 어떤 수련생은 법공부, 연공과 사람을 구하는 관계를 바로 놓지 못해 맹목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강조하면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수련 외의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부 사람들은 나오지 않고 중시하지 않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이 일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사실 당신이 대법제자로서 져야 할 책임은 전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하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 일을 여러분은 반드시 잘해야 하는바 줄곧 당신이 원만에 이르기 전까지 당신은 마땅히 이러한 일을 모두 잘해야 한다. 당신의 위덕, 당신의 미래의 일체는 모두 이러한 속에서 생긴다.” ‘각지설법6, 2004년 워싱턴DC법회 설법’에서 “만약 다만 개인의 원만을 최고의 일로 여긴다면 나는 그것은 정법시기(正法時期)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북미순회설법’에서 사실 우리 개인의 수련과 원만은 정법에 이미 비할 수 없으며 우리 개인의 수련은 단지 조사정법을 다지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초일 뿐이다. 구도중생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이다. 어떤 사람은 무엇이 필요하기만하면 법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며 법공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고 쉽게 박해 당한다고 강조한다. 정법이 이미 최후에 이르렀는데 우리는 마땅히 각자 경지 중의 법리를 장악해야한다. 만약 단순히 법공부만 강조하면 정법이 위덕을 세우는 기회를 놓치며 그건 바로 득보다 실이 많다.

두려운 마음

두려운 마음은 정진할 수 없게 하며 더욱이 중생구도의 최대 장애다. 아직도 일부 수련생들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나오지 못했으며 다만 집에서 법공부하고 연공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대법(大法)을 수호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면 원만할 수 없다.” ‘정진요지2, 정법시기 대법제자’에서 “오로지 대법(大法) 속에서 좋은 점만 얻으려 하고 대법(大法)을 위해 지불하지 않는 사람은, 신(神)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사람은 가장 좋지 못한 생명이다. 게다가 이 법은 우주의 근본이다. 지금까지 걸어 나오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이번 마난(魔難)이 지나간 후 곧 도태될 것이다.” ‘정진요지2, 건의’에서 그럼 이런 대법제자가 직면한 것은 가장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상에서 모두 매우 많이 지불했으며 사부님은 제자 한 사람도 떨어뜨리려 하지 않으니 어떻게 이런 수련생을 도우겠는가, 이것도 우리의 책임이며 역시 수련의 일부분이다. 나는 이런 수련생에 대해 깔보지 말아야 하며 그와 더 많이 교류하고 먼저 그에게 쉽고 간단한 것부터, 예를 들면 검은 소굴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고, 신변의 친구들에게 진상을 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여 걸어 나오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정진하는 것을 저애하는 사람마음은 아직 매우 많은데 나는 다만 비교적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몇 가지만 말했으니 수련생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지금의 시간은 매분매초가 모두 사부님의 피로 바꾸어온 것이니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를 더는 무시할 수 없으며 사부님의 감당과 지불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매 사람들이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를 잘 수련하고 사부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하고 다시는 우리의 사람마음이 사부님정법에 저애되지 말게 하자.

문장발표: 2012년 4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4/22/2559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