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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찾는 것은 나를 신의 길로 걷게 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 말에 법을 얻은 제자다. 법을 얻은 후 나는 동북 한 성소재지의 중대형 호텔에서 재무업무를 보게 됐다. 호텔의 업무시간이 길어 나는 한 밤중 3시 좌우까지 해야 했지만 업무량은 많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법공부를 하는데 조건을 창조해 주었다. 퇴근 후, 나는 공원에서 매일 두 세 시간 연공을 했다. 동북의 겨울은 매우 추워 영하 30도가 될 때도 있었다. 땅에 갓 앉았을 때 몸은 떨렸지만 좀 지나 공에 뒤덮여 정말 편안했다. 그때 공이 자라는 것이 매우 빠른 것을 느꼈고 신체 변화도 매우 컸다. 나는 얼굴이 검었지만 수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살결이 뽀얗게 변했고 연공이 갓 끝나면 투명하게 흰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상처가 있으면 매우 쉽게 아문다. 한 번은 손이 다쳐 조금 깊은 상처가 났어도 나는 대수로워 하지 않았으며 이틀 후 나았다.

안으로 찾는 것을 몰라 크게 곤두박질하다

그때는 법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감성적이었고 진정으로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착실하게 수련-안으로 찾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관을 넘지 못할 때 나는 아래로 떨어지게 됐다. 신체도 퇴보하고 집착심(또 외래요소도 있었다)의 통제 하에 나는 또 하루 동안 책을 보지 않고 연공장도 가지 않았다.

한 사람이 생명의 진정한 의의를 깊이 알고 또 실천할 방법이 없는 그런 고통은 언어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너무 수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또 돌파하지 못했다. 나는 한 밤 중에 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자신에 대해 확신을 잃었다. 아마 이익이 있으면 해로운 점도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비록 관을 넘지 못했지만 불은호탕(佛恩浩蕩)에 대해 또 약간의 이해가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점화해주시는 것을 알았다. 속인의 입을 빌어 나에게 나는 수련인이라고 알려 주셨다. 각종 방식으로 나를 깨닫게 하셨고 수련생을 배치해 한번 또 한번 나와 교류하게 하셨다. 이후에 정법노정에 따라 나는 은사께서 또 나를 대신해 감당하시고 위로 밀어 주신 것을 알았다.

내가 사부님의 ‘싱가포르 법회 설법’에서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리 자신이 이 방면에서 한번 가늠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원만의 이 길에서 어떠한 장애도 당신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모두 밖을 본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장애이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는 제일 큰 장애로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받은 고통과 당한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어느 곳이 잘못됐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 매우 어렵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에서, 수련하는 이 길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러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설법을 보고 나는 희망을 찾았다. 안으로 찾으라. 만사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라. 나는 정말 수련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때 나의 매 일념은 모두 이 몇 글자였다. 오직 눈을 뜨면 머릿속에는 이 몇 글자였다. 그때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을 했지만 너무나 가치가 있었다. 나는 보물을 찾았고 확신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꿈을 꾸었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업고 하늘로 향하는데 나는 번개의 기습으로 기절했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업고 암흑을 돌파하셨다. 나는 언어로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할 방법이 없었고 나는 진정으로 자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깨닫게 하셨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 오직 한 가닥 희망이 있으면 사람에게 희망을 준다.

안으로 찾으니 곤란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몸과 마음으로 법공부를 하고 수련을 할 때 사악의 박해가 발생했다. 크게 곤두박질을 한 나는 사부님과 법의 중요성을 깊이 알게 됐다. 나는 사부님에 대해 법에 대해 의심을 한 적이 없었고 그때는 박해의 사악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사악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정해야 된다는 것을 몰랐다. 다만 수련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이며 대법제자는 정법하고 법을 수호해야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99년 7.20 박해 후, 개인적으로 나에 대해 안으로 찾는 큰 검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는 제고가 가장 빠를 때였다. 그때는 베이징에서 사부님께서 우리의 정념을 상당히 강하게 가지하셨다. 매일 전국 각지에서 온 대법제자를 만날 수 있었고 우리는 함께 교류를 했다. 우리는 베이징 동서남북을 행각했다. 하늘을 이불로 삼고 땅을 침대로 삼아 어디에 가면 어디에서 자고 만두를 먹고 냉수를 마시면서 정말 자유로웠다. 그러나 심성의 제고에 대한 요구는 절대로 대충하지 않았다. 그때 베이징에는 만난 수련생이 붙잡히고 맞은 소식이 끝없이 전해왔다. 나의 마음은 자주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찾고 찾으니 나는 상처를 받는 것이 무서웠고 맞는 것이 무서웠다. 그때는 그러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시던 것이 생각났다. 나는 이 문제를 법에서 어떻게 직면해야 하는지 안으로 찾았다. 생각하고 생각하니 단번에 ‘무술기공’ 그 법이 생각났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무엇이 두렵겠는가 생각했다. 나는 수련인이고 오직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나를 때려 다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해는 종종 자신이 잘하지 못해 초래한 것이다. 한 번은 경찰 발에 채인 적이 있는 것이 생각난다. 그것은 1999년 8월 각지에서 모두 청원한 대법제자를 데려갈 때였다. 나는 중도에서 화장실에 가는 척 하다가 빠져나와 또 베이징으로 되돌아갔다. 며칠 지나 나는 또 납치되어 4, 5명이 특별히 전송해 되돌아왔다. 현지로 되돌아 온 후 전번에 나를 책임지고 압송하던 경찰이 나를 보고 중도에서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경과를 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되돌아 베이징으로 도망쳤다고 썼다. 당시 내가 도망이라는 글자를 쓸까 되돌아갔다고 쓸까라고 망설이었다. 마지막에 정념이 부족해 베이징으로 도망쳤다고 썼다. 그때 내가 도망이라는 글을 쓸 때 그 경찰이 나를 발로 차면서 “당신 도망을 쳐라”라고 말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고 그의 눈앞에서 도주하니 그가 앙심을 품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간 후 나는 그가 무엇 때문에 나를 찼는지 안으로 찾아보다가 ‘우리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법을 실증한 것은 얼마나 신성한 일인데 도망이라는 글로 그 과정을 형용할 수 있겠는가’라고 깨달았다.

7.20 이후, 비록 형세가 엄혹했지만 나는 제고가 매우 빠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확신이 있었기에 나는 오직 안으로 찾으면 아무것도 나를 가로막지 못한다고 확고히 믿었다. 그러나 그때 수련은 줄곧 소극적으로 감당하는 것이었다. 한 동안 구세력에 대해 부정하지 않고 구세력의 존재를 승인하고 구세력의 길을 걸었다. 사상표현은 자신이 붙잡히고 맞는 것은 자신이 집착이 있고 버려야 할 사람마음이 있고 법을 위해 지불하는 것이 수련이라 생각했다. 이번 박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노동교양을 받는 것을 초래했다.

어떻게 하면 전면적으로 부정하는가

그때는 2006년 4월이었다. 나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파출소로 납치됐다. 비록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수갑을 찼다. 나는 반대의식이 없었고 수갑을 채우니 찼다. 마치 파출소에 가면 수갑을 차는 것이 정상인 것 같았다. 좀 지나 파출소에서 또 오토바이를 타고 가방을 강탈한 범인을 붙잡아왔다. 파출소 사람도 그에게 수갑을 채웠는데 그는 무엇이라 말해도 차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증거가 없기에 수갑을 채우는 것은 위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 사람을 놓아주었다. 나는 갑자기 크게 깨달았다. ‘파룬따파는 우주대법이고 제일 바르다. 때문에 파룬따파(法輪大法) 및 대법제자에 대한 일체 부정당한 행위는 모두 범죄이며 이런 정념의 견지야말로 수련이다. 일체 부정당한 행위와 관념을 배척하는 것이 바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후에 나는 간수소로 보내졌다.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중공사당이 단속하는 간수소가 연공을 하게 하겠는가?’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 신체검사를 할 때 경찰이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연공하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가부좌를 하여 보여 주었다. 그는 ‘음’하고 말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감옥에서 연공할 수 있다고 점화하신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나는 연공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때 연공을 하지 않는 것은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러면 그것들이 작용을 일으켜 정말로 수련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깨달았다. 우리는 시시각각 수련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마귀굴에서도 진상을 알릴 수 있겠는가? 구치소에 갓 들어가니 죄수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감방에서 책임을 진 사람이 매우 기뻐하면서 빨리 말하라고 했다. 이렇게 감방의 18명이나 되는 사람이 전부 삼퇴를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사부님, 무엇 때문에 그들을 배치해 여기에서 삼퇴를 하게 하셨나요?’ 나는 천천히 박해라는 사상, 관념이 모두 없어야 하며 있으면 확고히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상 중에 오직 사람을 구하려고 생각만 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은 사람을 구하는 길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

사부님께서는 두 사람이 모순이 발생하면 자신을 찾고 제 3자가 보아도 자신을 생각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전의 나의 이해는,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질투심이 있으면 나는 자신이 질투심이 있는지 찾아보거나 혹은 이런 행위를 내가 무엇 때문에 보았는가 생각을 했다. 내가 사부님의 ‘따지웬 회의에서의 설법’을 배운 후, 나는 안으로 찾는 것에 대해 더욱 깊은 인식이 생겼다. 나는 대법제자의 책임은 정말 중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은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올해 1월 초, 두 명의 현지 수련생이 차를 몰고 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의적인 고발로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밤에 갑 수련생은 정념으로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차는 압수당했고 을 수련생은 병보석 됐다. 을 수련생의 집은 소형 자료점이며 경찰이 불법적으로 매우 많은 물건을 강탈해 갔다. 악경은 을 수련생에게 다른 수련생을 말하라고 요구하고 말하지 않으면 3년 판결을 하겠다고 했다. 을 수련생의 가족도 을 수련생을 핍박해 다른 수련생을 말하라고 했다. 을 수련생은 당연히 다른 사람을 팔아먹지 않았지만 심태가 불안정하고 또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까 집을 떠나려고 생각했다. 우리 현지 수련생은 그때 두 가지 의견이 있었다. 하나는 정념을 확고히 하여 움직이지 않고 파룬궁은 틀리지 않았고 진상자료는 정당한 것으로 정정당당하게 그들을 대면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관점은 을 수련생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일단 정념이 부족해 다른 수련생을 연루시키면 손실이 매우 크기에 즉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의견이 교착될 때 을 수련생이 표현되는 사상 상태는 좀 있다가 가고 싶어 하고 좀 있다가 가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동요했다. 우리 지역에서 여러 번 교류한 후 첫 번째 의견으로 기울어져 움직이지 않을 때 을 수련생 그쪽에서 각 방면이 개변됐고 을 수련생의 정념도 일어나 확고히 가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우리 지역에서 모두 확고하게 정정당당하게 대면할 때 갑 수련생은 ‘610’에 가서 차를 요구하겠다고 전했다. 그때 우리 지역은 의견이 일치했고 정체적으로 발정념으로 가지했다. 발정념을 하던 그날, 처음에 나의 사상 중에는 시시각각 갑 수련생이 붙잡혀 돌아오지 못하고 밖에서 발정념을 하는 수련생이 위험하다는 등등의 사상이 나타났다. 나는 이런 나쁜 생각은 내가 부정해야 되는 것이며 자신이 수련해야 할 곳이라고 의식했고 나의 공간마당이 점차적으로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자연스럽게 차를 되찾았고, 갑 수련생 안건도 없앴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그들도 그날 나와 비슷한 상태였으며 이 일은 나에게 준 감개가 매우 깊다. 우리 상태의 좋고 나쁨은 외부환경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준다. 그러면 지금 많은 사람이 진상을 알지 못하며, 지금도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은 우리 수련의 상태가 조성한 것이 아닌가!

정법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하지 못한 곳이 아직도 너무 많으며 정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이 문장을 써낸 뜻은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3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21/2545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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