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지금 이미 10여 년의 역사가 있다. 이 수련의 길에서 나도 많은 고험을 만났는데, 어떤 때는 잘 지나가고 어떤 때는 잘 지나가지 못했다. 매번 내가 잘 지나가지 못할 때 내가 오직 사부님의 요구대로 안을 향해 찾을 수 있으면 내가 부딪친 어떠한 고통, 곤란, 시끄러움, 고뇌, 근심과 불행은 매우 빨리 없어졌다. 나는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정말 법보라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 끊임없이 법공부하는 것을 통해 나는 무엇 때문에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이렇게 영험한 것인가를 갑자기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다. 인체과학 연구 중에서,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대뇌가 내보내는 사유는 곧 물질이라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물질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사람의 정신 중의 것이 아닌가? 그것은 곧 일성(一性)이 아닌가?”(전법륜) 또 사부님께선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에서 역시 제기하셨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전법륜(轉法輪)’ 이 책에서 이미 말했다. 나는 말하기를, 그 속의 법리(法理)는 매우 박대(博大)하며 당신이 매 한 글자의 배후를 본다면 모두 층층 첩첩 무수한 불도신(佛道神)이며 다 헤아릴 수도 없다고 했다.” 나의 개인적 이해로는 우리가 머릿속에서 ‘안을 향해 찾는’ 이런 사유 활동을 진행할 때 다른 공간의 불도신은 모두 우리를 도와 그런 고급생명이 즉시 작용을 발휘하여 우리가 부딪친 그런 좋지 않은 일을 매우 빨리 연기나 구름처럼 깨끗이 사라지게 하여 예상치 못했던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몸소 겪은 것에서 안을 향해 찾는 것이 확실히 법보라고 나는 느낀다.
아래 나는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퇴근하여 집에 온 후 주방과 화장실 하수도가 전부 막혀 바닥에 물이 가득 찬 것을 발견했다. 당시 나도 무슨 영문인지 몰랐고 오로지 자신이 하수도를 뚫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저녁 내내 애써도 하수도는 뚫어지지 않았다. 방법이 없어 이튿날 시공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가까스로 뚫은 후 나는 마침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겼다. 누가 알랴, 그 시공 전문가가 간 지 얼마 안 되어 하수도는 또 통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도대체 무슨 원인인가?
내가 뭐가 뭔지 전혀 모를 때 나는 안을 향해 찾기 시작했다. 하루 저녁 찾으니, 비록 매우 많은 사람 마음을 찾았으나 도리어 문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다. 3일째 저녁 나는 법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부님의 ‘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자’란 평어를 보았을 때 나는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았다. 자신의 두려운 마음이 매우 중하기 때문에 나는 줄곧 밍후이왕에 공개적으로 중공(中共) 사악이 나에게 한 불법적인 박해를 폭로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각종 방식을 이용하여 나를 교란했다. 내가 사악을 폭로하는 것도 중생을 구도한다는 법리를 안 후 나는 즉시 그런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을 쓰기로 결정했다. 내가 문장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하수도가 저절로 통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보아하니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정말 법보구나!
어느 한번 나는 한 고객을 회사 사장에게 소개했다. 영업상 관례에 따르면 고객을 소개해서 거래가 성사되면 소개인이 마땅히 비례에 따라 성과급을 더 받는다. 그러나 사장은 거래가 잘 되었음에도 내가 그 사장에게 성과급 건을 제출하자 그는 도리어 일부 핑계 혹은 이유를 들어 회피했다. 내가 그때 불쾌하게 했다면 하마터면 그와 사이가 틀어질 뻔했다. 후에 생각하니 자신의 심태가 이상했다. 나는 즉시 안을 향해 찾았다. 좀 찾으니 나는 그 아주 깊이 숨겨진 명리심과 쟁투심 및 과시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음을 알았다. 나는 자신의 집착심을 찾은 후 생각했다. 만약 이 돈이 나에게 속하는 것이라면 누구도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돈 역시 대법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대법의 자원을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그가 죄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돈이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요구하지 않는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 말에 의해 결정한다.
내가 이 마음을 놓은 이튿날 아침, 회사 사장은 자발적으로 이 돈을 나에게 전해왔다. 이 일은 문제에 부딪치면 안으로 찾는 것을 설명하는데 확실히 매우 영험하다.
어느 한번 나는 큰 길을 지나다 조심하지 않아 보행 도로에서 자가용 차량에 부딪쳐 땅에 넘어졌는데 손과 발에 매우 큰 상해를 입었다. 당시 나의 첫 일념은 “나는 대법제자이니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 기사는 병원에 가 검사를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나는 머리를 저으면서 한편으로 절뚝거리며 거기를 떠났다. 내 정신상태가 회복될 때 나는 안을 향해 찾았다. 한참 찾으니 나는 적지 않은 집착심과 누락이 있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과시심, 색욕심, 안일한 마음 및 큰 길을 지날 때 적색 신호등도 무시하고 가로질러가는 등등이다. 겨우 나의 거처에 돌아와 좀 휴식하고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그때는 연공과 발정념 동작이 모두 표준이 되지 않았다)을 했다. 당일 저녁, 잠을 잘 때 전신이 아파서 죽을 지경이어서 뒤치락거리며 잠들기 아주 어려웠다. 나는 오직 사부님께 나를 도와주시길 요구했고 좀 지나 나는 잠이 들었다.
연속 며칠간 나는 집에서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며 연공하는 것을 견지했다. 다섯째 날 나의 신체 상태가 다소 회복되어(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나는 회사에 출근했다. 이상한 것은 나의 신체가 아주 빨리 전부 회복되었다고 여겼으나 한 달 후 나의 신체 상태는 다섯째 날 그 상태와 비슷했다. 나는 당시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한 달 정도 기간에 늘 법공부하고 연공, 발정념을 하여 어떤 때 안을 향해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의 신체상황은 계속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는데, 나는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어느 날 나는 사부님의 ‘스위스법회설법’에서 이러한 예를 보았다. “그 마음속에는 내가 연공만 하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나의 병을 제거해 줄 것이다 하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당신이 보라. 그의 마음속에 있는, 아직도 내가 연공을 하기만 하면 사부가 반드시 병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그의 마음속에는 그런 조그마한 것이 여전히 깊게 숨어있는데, 그는 아직도 내가 그의 병을 관리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한다면 그는 아직도 그의 병에 집착하고 있다.”
나는 이 예를 나 자신과 대조하니 나의 정황과 그 사람의 정황이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한 달 정도의 기간에 비록 늘 연공하였으나 매번 연공할 때 나는 생각할 수 있었다. ‘나의 신체가 빨리 회복되고 가장 좋은 수련상태, 정상상태로 돌아가라.’ 실제상 이것은 변상적인 구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나의 신체 상황은 계속 완전히 회복될 수 없었다. 문제점을 찾은 후 지금부터 다시는 이 일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신체 상황은 기본적으로 완전히 회복됐다.
여기서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에 감사드리며 그 외에 나는 또 충심으로 한 마디 말을 하겠다. “안을 향해 찾는 것은 정말 법보다!”
문장발표: 2011년 3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18/2543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