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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하게 보지 말고 담담하게 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인간은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생활하면서 가짜 이치를 몹시 중히 여기게 된다. 그러므로 후천적으로 가짜나 물질 이익에는 아주 쉽사리 이끌리게 된다. 고층차로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에서 벗어나야 하고 담담히 봐야 하되 그것을 내려놓을 때까지이다.

아래에 나는 법에서 깨달은 이치를 써내어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가 현실의 조그마한 이익을 중시할수록, 그의 흉금도 더욱 좁아지고, 그가 속인의 물질적인 이익이야말로 손을 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길수록 그는 더욱 그 자신이 현실을 중시한다고 생각하여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전법륜.轉法輪)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배우고 나는 깨달았다. 평소에 자신은 흉금이 좁아 남의 결함을 깔보았고 모순 충돌에서 넘어가지 못하였으며,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이런 표현은 모두 현실을 너무 중히 보고 남의 결함을 중히 보았으므로 그래서 견딜 수 없다고 여겼고, 마음은 그것에 이끌렸으며, 모순을 중히 보았으므로 넘어갈 수 없었고,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중히 보고 자신이 깨달은 이치야말로 정확하다고 여겼으므로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물론 정말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다만 절실한 이익, 이런 문제에서 담담하게 볼 뿐이며, 다른 면에서 우리는 모두 아주 똑똑하다.” “그러나 바로 우리 자신의 조그마한 개인 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모순의 충돌 중에서 우리는 담담하게 본다.” (전법륜) 나는 깨달았다, 인간의 가짜 이치, 가상, 후천적인 가짜 나에 대해 담담히, 담담히 또 담담히 보되 내려놓을 때까지이다. 어떤 때는 모 사람의 모 방법이 아니꼽게 보이는데 그럼 나는 곧 그를 담담히, 담담히 보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실은 그게 아무 것도 아니고 마음도 이끌리지 않는다. 모순이 올 때 만약 모순을 담담하게 보는 습관을 양성한다면 그럼 모순은 정말 담담해진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물질과 정신은 일성이다.”(전법륜)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이치는 상반되는 이치이고 인간의 현상 역시 가상인지라 정말이지 중하게 볼 필요가 없는 것이며, 정말로 담담하게 보아야 한다.

내가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견해와 이해에 대해 더 말해 보겠다. 좀 통속적으로 말하면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란 바로 자신이 깨달은 것만을 중히 여기고, 자신이 깨달은 이치로 남을 가늠하고 남을 요구하는데, 어떤 때 표현되는 것으로는 남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최종에는 여전히 자아를 강조하고, 자아의 생각을 강조하는데 자아 팽창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위해(危害)를 세 가지로 총화 해냈는데 (1) 자신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자신의 위치를 바로 놓지 못하며, 분수를 모르고 무모하게 날뛴다. (2) 생활에서 남에게 반감을 사게 한다. (3) 쉽게 자심생마에 빠진다.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것은 자신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정확하다고 여기는 데서 표현된다. 그러므로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은 우주의 법과 서로 위배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직장을 찾아야 하겠는데, 그 직장은 수련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또 법을 실증할 시간도 있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 충족해야 하고 또 집과 가까운데 있어야 하며, 봉급도 좀 높아야 하겠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바로 나는 이런 것을 요구하며 저런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법공부 팀에 가서 수련생과 교류했더니 수련생이 나에게 “당신이 그렇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가? 나 역시 몇 달 동안이나 일자리를 찾아도 찾지 못했다.(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한다) 이건 내가 달라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하고 말했다. 나는 그제서야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것이 이렇듯 강렬함을 아직도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히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나에게 점화를 해주셔서 비로소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수련생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비교적 힘든 일이여서 좀 간단하고 홀가분하여 대법 일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튿날 직장에서 그녀에게 업무를 바꾸어 주었는데 한 달에 며칠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수련생은 사부님의 법을 인용하여 말했다. “만사에 집착이 없으면 눈앞에 길은 스스로 열리리라” (홍음2 ㅡ막지 못하리라) 나는 깨달았는데, 절대로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아를 집착하는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런 마음이 더욱 확대되어 갈수록 자신의 인식이 절대적이고 정확하다고 여기면서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의견은 일체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데 이는 실로 상당히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깨달은 이치로 남을 가늠할 수 없으며 더구나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부동한 경지의 부동한 층차에서는 깨달은 이치도 같지 않은데, 설사 속인의 그 경지에서 깨달은 것 역시 속인 중의 이치라 할지라도 이 도리를 알았다면 남을 깔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그의 그 이치이기 때문에 더구나 자신이 깨달은 이치로 남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만이 옳다.’고 여기는 이 독소를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자아를 담담히 보고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의 각도에 서서 문제를 고려하고, 자아의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서서 문제를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사(私)를 내려놓은 것으로 남을 고려한 것이다.

삼계 내의 일체 상반되는 이치를 담담히 보고, 인간 세상의 일체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사명과 조사정법에 부끄럽지 않으며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2012년 3월 1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3/11/2540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