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앞글에 이어) 2005년 5월, 남편은 직장에서 돈을 너무 적게 받는다고 불만이 하며 외지로 가서 돈을 벌겠다고 얘기했다. 정오에 퇴근해 돌아와 나와 같이 가겠느냐고 상의했다. 나는 그와 “당신이 나가서 일하는 것이 좋으면 가세요. 만일 가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저녁에 퇴근하니 그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즉시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환희심’의 꾐에 빠지지 말자고 경성(警醒)했다. 대략 한 달간 법 공부를 통해 나는 마음을 평정하게 하였다. 그쪽 사장이 또 와서 남편을 청했고 사장이 매우 간절했기에 그는 거절하기 어려워 정말 일하러 갔다.
컴퓨터를 사왔는데 시스템을 깔고 컴퓨터를 배우려면 누구를 찾아야 할까? 이 일은 또 소문을 내면 안 되기에 나는 언니를 찾았다. 언니는 나에게 시스템을 설치할 줄 아는 외지 A 수련생이 여름휴가에 온다고 말했는데 결국 시간이 없어 또 오지 않았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그때는 일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라고 느꼈다. 아마 나의 수련상태가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또 하나는 그저 조급하기만 했다. 순리에 맡겨야지, 먼저 타자나 하자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시간이 있으면 나는 컴퓨터로 타자하고 ‘홍음’의 시를 외워 썼다.
대략 7월 말 어느 날, 날씨가 매우 더워 나는 양산을 들고 시장에서 집으로 가다가 앞에 나와 100m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이 정면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단번에 멍해졌다. 바로 A 수련생 부부가 아닌가?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들을 불렀다. 흥분한 것을 억지로 참고 단도직입적으로 정황을 설명했고 A 수련생은 매우 기뻐하며 승낙했다. 원래 A 수련생은 갑자기 며칠 시간이 있어서 온 것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썼을 때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때는 일하려는데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라고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어려운 점을 보고 수련생에게 나를 도와주러 오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A 수련생은 이틀 동안 나에게 시스템을 깔고 우리 집 어린 수련생이 밍후이왕에 올라 문장을 내려받고 USB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린 수련생은 학교에서 약간의 컴퓨터 지식을 배웠기에 나보다 배우는 것이 빠르다.) 동시에 또 나와 자료를 만들 때의 심태와 일부 안전에 주의할 사항을 교류했다. A 수련생은 올 때 잉크젯 프린터를 갖고 왔다. 그는 이번에 올 때 우리 여기도 자료점 하나를 만들기를 희망했다. 내가 이런 것을 배우자 A 수련생은 가면서 나에게 전화번호를 남겼다. 이후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밖에서 카드로 A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 어린 수련생을 데리고 가 한 사람이 전화를 하고 한 사람이 적었다. 우리 여기는 10월이 되면 매우 춥기에 많이 적으면 손이 얼어 말을 듣지 않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A 수련생은 해마다 설날, 여름방학에 우리 여기 와 며칠 있으면서 기술을 전수했다. 2006년 여름방학에 나는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을 배웠으며 A 수련생은 법리가 분명하며 말하는 어조도 상냥하고 표정도 늘 그렇게 순수하고 인자했다. 매번 올 때 나는 기술상에만 제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성에도 매우 큰 수확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자신에게 매우 많은 쟁투심을 보았으며 점차 닦아버렸다.
법으로 대조하고 마련(魔煉) 중에서 성숙되고 이지적이 되다
2005년 9월, A 수련생이 갖고 온 프린터가 고장이 났다. A 수련생은 전화에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 프린터는 본래 낡은 것이기에 수리할 수 없어요.” 나는 곤혹스러웠다! 이후에 나는 이렇게 기다릴 수 없으며 관념을 개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우리 여기로 자료를 보낸 수련생에게 물어보는 편이 났겠다. 아마 그녀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녀는 나에게 B를 소개해 주면서(B는 이미 사오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를 수련생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B는 자료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 B는 우리 여기에서 조금 유명하며 대법이 박해를 당한 후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불법 판결을 받은 후 나와 자료를 만들었다. 구치소에 갓 들어간 후 정념으로 뛰쳐나왔고 집을 판 돈을 모두 자료를 만드는데 기부해 우리 시 일부 수련생의 숭배를 받았다. 그때 나도 매우 기뻤다. 마음속으로 B를 알게 되어 이후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은 내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 B를 알게 되어 나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어 버렸다.
나는 B에게 2,500위안(약 45만 원)을 주어 레이저 복합기 3110을 샀다. 그때는 어떤 프린터를 사용해야 할지 몰랐다. B는 이 기기가 빠르니 사자고 했다. 사실 이 기기는 공장에서 이미 생산하지 않았고 쉽게 종이가 걸렸다. 이때 나는 B가 컴퓨터 기술이 없고 단지 복사만 할 줄 안다는 것을 보아냈다. 컴퓨터, 프린터가 문제가 나타나면 B는 우리 이웃 시의 C 수련생이 와서 수리하게 했다. B와 C 수련생은 교도소에서 알게 됐다. B는 성격이 좋지 않아 늘 일부 협조인이 이것도 좋지 않고 그것도 잘하지 못하고 그와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도 사양하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수련인은 선을 말하는데 당신의 지금 상태는 일반 속인보다 못해요.” 교류하다가 나는 B 수련생이 수련하기 전에 건달이었던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이러한 사람이 수련을 선택하니 매우 대단하고 또 몇 년간 박해를 받았고 법 공부가 적으니 자신의 용량을 늘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독촉해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게 하자.
B는 우리 시의 모든 주간 100권을 나보고 만들라고 했다. 당시 나는 놀라 그에게 나는 그렇게 큰 감당 능력이 없고 나는 단지 우리 이 지역 자료만 만들겠다고 말했다. B는 화를 내면서 “나는 당신이 법리에 대해 명석하기에 당신에게 하라고 했는데 당신의 정념은 어디에 있어요? 내가 만약 당신처럼 그렇게 법 공부를 많이 하면 나는 못 하는 것이 없겠어요.” 나는 이러한 수련생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때도 B의 심성이 자료를 하기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와 접촉하지 않으면 C 수련생과 연락을 하지 못하고 기계가 고장 나면 또 수리할 사람이 없기에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결국은 대법의 일이니 그래도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B는 매번 나의 이곳에 와서 매번 이것을 질책하고 저것을 불평하고 나에게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고 명령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으면 그는 화를 냈다. 심지어 여기에서 자료를 갖고 가는 수련생과 오해가 생기게 하고 우리가 협조를 못하게 했다. 어느 한 번 억울한 나는 남몰래 울었다. 울면서 생각했다. ‘대법제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 좀 지나 눈물을 통제하고 묵묵히 사부님과 말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나는 해내고야 말겠습니다.’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나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 길을 걷는 과정 중에 곤란이 있을 것이고 각양각색의 고험이 있을 것이며,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마난(魔難)이 있을 수 있는 동시에,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각양각색의 집착과 정(情)의 교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교란은 가정, 사회, 친구, 심지어 당신들 동수 사이에서 오며, 아울러 또 인류사회 형세의 교란이 있으며 인류가 사회에서 형성한 관념의 교란이 있다.” (각지 설법7-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
꿈에서도 사부님께서는 나를 점화해 주셨다. 그래서 나와 접촉하는 수련생이 어떻게 나를 대해도 나는 모두 참았고 수련생과 모순을 발생하지 않았고 계속 협력했다. B는 법으로 자신을 대조할 줄 몰랐고 늘 법으로 수련생의 부족함을 보았고 내가 그의 사람 마음을 지적했을 때 B는 늘 변명했다. 그러나 나는 법 공부, 발정념을 할 때 조용하지 못했고 마음이 번거롭고 정신이 산란했다. 나는 한 수련인으로 말하자면 법 공부, 발정념을 고요한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전법륜’ 제1강 첫 단락을 나는 하루 만에 능숙하게 외울 수 있었다. 동시에 발정념으로 내가 법 공부를 하는데 교란하는 흑수, 난귀(爛鬼), 공산사령을 전부 해체하고 깨끗이 소멸했다. 내가 ‘眞(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를 외울 때 나는 단번에 분명히 자신의 집착을 찾았다. 나는 수련생 정이 있고 ‘법 공부를 했기에 수련생이라고 인식하고 대법 일을 할 수 있으면 정진하는 수련생이라고 인식’한다는 착오적인 인식이 있고, 동시에 나도 B는 진수(眞修)하지 않고 그렇게 가련하다는 것을 깨달으니 내 마음도 많이 평온해졌다. 나는 매우 냉정하게 B에게 이후에 나 여기로 오지 말라고 말했다. 당신은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심성이 제고된 다음 다시 일하라고 말했다. B 수련생을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구세력을 정확히 인식하게 했고 점점 이지적이 되게 했다.
신기한 것은 기술과 기계 유지와 보호에서 나는 곤란을 만나지 못했다. 한번은 기계가 고장 나 운행하지 못하게 되자 C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왔는데 지나가다가 들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또 한 번 나를 도와주셨다. 이후에 협조인을 통해 나는 우리 시에서 프린터기 수리를 갓 배운 D 수련생을 알게 됐다. D 수련생은 2004년에 법을 얻었다. 그는 우리 시의 자료가 너무 부족한 것을 보고 2005년 말에 직장을 떠나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D 수련생에게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D 수련생은 우리 시 각 자료점에서 기술 지도를 했다.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이 심성관을 못 넘어 자료를 만들지 않으려고 생각하면 D 수련생은 나를 찾아와 수련생의 정념을 계발하고 수련생이 견지해 계속 자료를 만들게 격려하라고 했다. D 수련생은 사람 마음이 적고 담이 크다. D 수련생을 알면서 나는 나의 아주 많은 부족함을 보았고 많은 두려운 마음을 버렸다.
정념으로 가장 바른 일을 하다
2006년의 새해를 며칠 앞두고 남편은 휴가를 왔다. 남편은 내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몰랐고 나도 그가 아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매일 집에 있었고 나는 또 그 몰래 할 수 없었다. 나는 반드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환경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매우 어려운 것을 느꼈고 언니를 찾아가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해달라고 했고 매일 시간이 있으면 발정념을 했다. 나의 공간장 마당에서 내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한다. 나도 스스로 훈계했다. ‘반드시 마음을 평온하게 내려놓고 거리낌 없어야 하며 네가 하는 일은 가장 바른 일이다.’
처음 2, 3일 남편이 나가자 나는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고 내가 다 만들고 프린터를 정리하면 그도 돌아왔다. 세 번째 날 자료는 비교적 많았다. 저녁이 되어 그가 돌아왔고 나는 다 하지 못했다. (그때 나도 좀 긴장했다.) 그는 방에 들어서 눈앞의 프린터, 자료를 보고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당신은 담이 너무 크네, 당신 살기 싫은가 봐, 언제 프린터를 샀지? 내가 부숴버려야지.” 나는 즉시 프린터를 보호하고 평온하고 또 엄숙하게 말했다. “당신은 움직이지 마세요. 내가 프린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아요. 나는 어떠한 사람도 손상하게 할 수 없어요. 당신이 정말 나를 잘 대한다면 나를 지지해 주세요.” (평소에 그는 늘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잘 대해주는가.’ 등 말을 했다.) 그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듣기 싫은 말을 외치더니 (지금껏 그가 이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를 때리려는 자세를 취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때려도 나는 되받아 치지 않겠으며 내가 당시 빚을 갚은 것으로 치겠다. 그러나 절대로 나의 프린터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부좌를 하고 프린터기 옆에 앉아 눈을 뜨고 발정념을 했고 그가 뭐라고 말해도 개의치 않았다.
좀 지나 사부님 법이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 (전법륜), “의지 확고하지 못하면 고비는 산과 같나니” (홍음2-끊다). 이때 나는 A 수련생, C 수련생이 대법이 박해를 당했을 때 모두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공평한 말을 하기 위해 박해를 받았고 감옥에서 그들 두 사람은 사악에게 협조를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나왔으며 나온 후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고 일을 한 것은 나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껏 나에게 ‘어렵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밍후이주간’에서 의지할 곳이 없어 떠돌아다니던 수련생이 여전히 자료를 만든 것을 늘 보았다. 이때 나는 그들이 그렇게 위대하고 나는 이렇게 미미하다고 느꼈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멈출 수 없었고 자료를 만드는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남편은 내가 우는 것을 보고 객실에 가서 TV를 보았다. 저녁 9시 전후에 자료를 다 끝냈다. 이 사이에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고 남편은 여러 번 “끝났어.”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료, 프린터를 다 정리한 후, 나는 침대에 앉아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하게 남편에게 진상을 말했다. 대법은 억울하고 천안문 분신자살은 가짜이며 중공악당의 부패현상을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듣지 않으며 나와 다투기만 했고 프린터, 컴퓨터를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온몸이 병이었고 허리가 아파 길도 걷지 못했으며 병원에 여러 번 입원하고 얼마만 한 돈을 썼지만, 치료가 안 됐어요. 대법을 배운 후 나는 다시 병원에 가 치료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이것은 당신이 직접 본 것이에요. 대법은 나의 몸을 정화해주어 나는 가사 일을 할 수 있고 또 장사도 할 수 있었으며 정신상에서, 경제상에서, 대법은 우리 집에 너무 많은 좋은 점을 주었고 우리는 영원히 갚을 수 없어요. (나는 또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내가 본 자료는 모두 수련생에게 요구한 것이고 수련생이 너무 바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이기적이에요. 나는 지금 단지 그들을 위해 조금 분담하는 것일 뿐이에요. 만약 당신이 양심이 있으면 저를 지지해 주세요.” 여기까지 말하자 그는 말투가 점점 평온했다. 마침 나도 발정념을 할 시간이 됐다. 이후에 나는 되도록 그의 앞에서 자료를 만들지 않았고 법 공부, 심성 승화에 따라 나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이 촉성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철저히 제거했다. 이후에 나는 ‘전법륜’, ‘9평 공산당’, 진상자료를 만들고 수련생을 찾아 기계를 수리하는 것을 다시는 그 몰래 하지 않았다. 남편도 매우 정상이라고 여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7년, 우리 시의 한 자료점이 박해를 당했다. 이튿날 몇 명 수련생이 그의 집에 가 컴퓨터, 프린터, 소모품을 옮기다가 그의 집 부근에서 잠복하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고 그중에 수련생 E도 있었다. 수련생 E는 자료를 만들려고 생각했기에 나는 프린터, 컴퓨터, 종이 두 상자를 그녀 집에 운반했고 시간이 있으면 가르쳐주려고 준비했다. 이 소식을 갓 듣자마자 나는 매우 애석함을 느꼈고 또 약간 긴장됐지만 고험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어 나와 늘 연계가 있던 몇몇 협조인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전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박해를 당한 몇 명의 수련생이 감당하지 못해 수련생을 말했고 E는 그녀 친척(수련생)을 모두 말했어요. 어떤 사람은 이미 숨었는데 당신이 어떻게 할 건지 방법을 생각하세요.” 매번 이러한 전화를 받으면 나는 약간 긴장되지만 늘 마음속에 일념이 있었다. “누구도 나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서 나에게 알려 주었다. “듣는 바로는 사악이 오늘 밤 대대적으로 체포한다고 하는데 당신은 물건(프린터, 컴퓨터)을 옮기고 숨는 것이 좋겠어요.” 나는 수련생과 교류했다. “피하라고 말하기만 하면 나는 울고 싶어요. 이렇게 하면 사부님께 너무 죄송해요. 내일은 금요일인데 ‘밍후이주간’은 누가 하나요? 당신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나는 좀 겁이 나지만 법 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하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오직 내 공간장만 깨끗하기만 하면 사악은 들어오지 못해요. 당신은 마음을 놓으세요.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어요. 나는 발정념을 할 때 사부님께 나에게 가리개를 씌워 사악이 나를 생각지도 못하게 해달라고 해요.”
이렇게 나는 우리 시 자료를 견지해 만들어 냈다. 당시는 다만 한 협조인과 연계를 할 수 있었고 내가 위안이 되는 것은 또 한 수련생이 일부분 주간을 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갔던 수련생이 연속 돌아왔고 자료를 요구하는 것도 많아졌다. 오직 내가 집에 있으면 기계는 일했고 저녁에는 프린터는 조용한 모드로 변경해 놓고 매일 밤 발정념이 끝나면 프린터에 종이를 지속해서 공급하는 것으로 조절하고 다시 잤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종이를 추가하고 연공을 시작했다. 이튿날이 되면 나는 피곤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대략 3개월을 견지했다. 그때는 비록 매우 바빴지만 나는 매일 법 공부를 잘하고 발정념을 하고 연공을 잘하는 것을 견지했지만 ‘전법륜’ 외우는 것은 중단했다.
마음속에 법리가 가득해 정진을 격려하다
그 자료점이 박해를 당한 지 한 달 후 C 수련생도 납치됐다. 그때부터 나는 시스템을 깔고 프린터 기술을 전수해 주기 시작했다. 우리 여기 자료점은 아직도 곳곳처에 꽃을 피우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했고 오직 자료를 만들려고 생각하는 수련생이면 나는 강력하게 지지해 컴퓨터를 사고 프린터를 사고 소모품을 사는 동시에 자료를 만드는데 주의할 사항을 그들이 독립적으로 운행할 때까지 교류했다. 어떤 수련생은 한동안 하다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수련생에게 일을 중단하고 법 공부를 잘하라고 격려했고 다시 하고 싶을 때면 여전히 열정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 중 어떤 수련생은 내가 수구(修口)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수련생은 내가 정념이 충족하다고 말하며 어떤 수련생은 내가 교류를 할 때 정이 없다고 말하고 또 숭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면 나는 모두 선의적으로 지적한다.) 어떤 수련생은 한 문제를 배우면 며칠이 지나면 또 잊어버려 나를 찾기가 쑥스러워했다. 나는 그녀를 격려하며 말했다. “당신이 하는 정법의 일을 나는 협조하러 온 것이에요. 동시에 나도 수련하고 있어요. 조급해하지 말고 나를 찾으면 돼요.” 그래서 자료를 만드는 몇 수련생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관을 못 넘으면 나와 교류하기를 원한다. 사실 나는 매일 사람 마음이 폭로되어 나온다. 발견하면 억제하고 제거해 버린다. 우리 시의 일부분 수련생은 매일 나가 진상을 알린다. 그들 말로 말하면 ‘바람과 비에도 지체하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만나서 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내가 수련의 길에서 평온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은 항상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떠날 수 없고 동시에 밍후이왕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떠날 수 없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하고 나의 정념을 강화하게 했다. 내가 매번 한 단락 길을 걸은 다음 사부님께서는 모두 정진하는 수련생을 만나게 하고 그들 몸에서 자신의 사람 마음을 보게 해서 나는 멈추지 않고 승화하고 있고 항상 나에 대한 요구가 또 높아졌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또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법을 배워도 대법과의 격차가 여전히 그렇게 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경문을 보고 마음을 닦는 법을 볼 때면 나는 모두 여러 번 더 보거나 심지어 외운다. 이렇게 한 환경에서 오직 내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나는 사람 마음이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것은 빨리 버리고 어떤 것은 버리는 것이 늦다. 법을 배운 초기에는 곤두박질한 적도 있고 부딪쳐 큰 혹이 생긴 적도 있다.
‘경지’를 외울 때 나는 반드시 각자(覺者)가 되겠다고 염을 발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이 단락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 근거해 나는 관을 하나 또 하나 뛰쳐나왔다. 다시 한 번 사부님께서 대법을 전해 내가 화로 인해 복을 얻은 데 대해 감사를 드리며 일찍이 나에게 도움을 준 모든 수련생에게 감사를 드린다.
매번 밍후이왕에서 대륙 수련생에게 원고모집을 통지할 때 나는 모두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고 줄곧 매우 괴로웠다. 제7차 법회 원고모집 통지가 나왔을 때 나는 울었다. 나는 반드시 써내 사부님께 이 답안을 바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일이 있고 또 마땅히 해야 했기에 (지금 보니 아마도 교란이다.) 여전히 염원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 나는 일부 일을 내려놓고 시간을 내어 썼다. 사실 나는 마음속에 매우 많은 법리를 담고 있어 내가 정진하는 것을 격려하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어느 법에서 말씀하신 것인지 똑똑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용하지 못하고 부득이 자신의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또 매우 많은 신기한 일(협조, 진상을 알리는 방면)이 있지만, 시간 관계로 다만 여기까지 쓰겠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투고하는 것이다. 나는 발표될 수 있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지만, 자신에게 열심히 쓰라고 요구한다.
(밍후이왕 제8차 중국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제8차 중국대륙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10/2503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