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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법제자도 정법노정을 바짝 따라야

글/ 대륙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글을 진작 써내 같은 또래의 청소년 수련생과 교류하고 싶었으나 늘 각종 사람의 마음이 가로막아 오래 동안 끌어왔다. 사실은 주로는 나태한 마음과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장애하고 있었으며 수련생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마침내 용기를 내어 펜을 들어 개인 수련에서의 일부 경험교훈 및 체득 등을 써내어 진심으로 나와 상황이 비슷한 그런 청년소년 수련생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1998년 9살 때에 법을 얻었으며 오늘날 노제자가 됐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정진하는 좋은 제자라 할 수 없음을 매우 똑똑히 알고 있다. 법을 얻은 초기에 나이가 어려 단지 어머니가 연공을 하여 신체가 좋아진 것을 보고 이 공은 좋은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따라 함께 수련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수련’에 대해 아무런 개념과 인식이 없었으며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나이가 들면서 특히 사당의 탄압을 경험한 뒤에야 점차 자신이 수련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게 됐다. 점차 어떻게 수련하는지 익혀나갔고 복잡한 세상 일에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나갔다. 이렇게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하에 대법은 나의 생활과 학습의 여러 단계를 동행해왔다. 초등학생부터 현재 석사연구까지 그렇게 걸어왔다.

이 몇 년간 오성과 심성상 부족으로 게다가 현실생활의 학습과 시험 등에 바쁘다보니 나는 수련을 잘하지 못했다. 정진할 때가 적었고 느슨할 때가 많았으며 또 적잖게 곤두박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비로운 사부님은 줄곧 이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개인적으로 수련하면서 여러 연령층 수련생은 다양한 수련환경과 수련상태가 있으며 더욱이 각자가 처한 연령대에서 직면하게 되는 주요문제와 장애가 있음을 보게 됐다. 예를 들면 중 노년 수련생은 비교적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라면 육친정(특히 자녀에 대한 정)에 대한 집착과 병업관이다. 이에 비해 청소년 수련생에게는 주로 어떻게 이런 각종 유혹과 극단적으로 복잡한 홍진세상에서 늘 자신의 마음을 법에 놓을 수 있게 보증하며, 대법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보증하며, 그리고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신분을 확고히 할 수 있는가 하는 일이다. 내가 알기로 현재 중국대륙에서 처음에 가족을 따라 대법에 들어선 연분이 매우 큰 일부 어린이 제자는 이후 성장과정에서 특히 사당이 대법을 탄압한 사악한 형세 하에서 점차 대법 수련을 포기했다. 그 원인을 파보면 바로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며 게다가 나이가 어려 매우 쉽게 각 방면에서 오는 정보의 영향, 교란, 침해를 받아 이렇게 큰 속인의 염색독에서 세파에 따라 내려갔고 심지어는 최종적으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자신의 몇 년간의 수련과정을 간단히 회고해 청소년 수련생에게 비교적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몇 개 큰 집착과 장애를 총결해냈다. 아울러 자신의 깨달음과 결합해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1)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놀이를 탐하는 마음

속인들은 놀이를 탐하는 것은 아이의 천성이라 한다. 확실히 연령이 적은 어린이 제자에게 있어서는 동심이 가셔지지 않아 놀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성년에 접근했거나 이미 성장해 청소년으로 된 수련생을 놓고 말하면 놀려는 이 마음은 오히려 우리의 정진을 가로막는 하나의 큰 장애가 됐다. 나의 주변의 어떤 소년 수련생(남학생)은 늘 인터넷 게임에 깊이 빠져있으며 심지어는 수련하는 듯 마는듯한 상태에 처해 있다. 수련생인 가족의 간절한 권고도 효과가 없었다. 실제로 이는 여전히 법공부가 적은 탓이며 깊이 있게 대법과 오늘날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제능력이 결핍되고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하게 되며 오래되면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나 자신도 놀이를 탐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몇 번이나 곤두박질했다. 2005년 막 전문대학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의 긴장된 학습생활에서 해탈되어 단번에 대학이란 느슨한 환경 속에 들어섰다. 또 가족의 ‘관리’가 없어 ‘감시하는 눈’이 없어졌다는 마음에 수련이 느슨해져 꽤 오랫동안 자신을 속인과 같이 대했으며 친구들과 노는 것에 탐해 한주에 한강의도 법공부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전화로 독촉하고 물어보면 거짓말로 법공부를 매우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심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표현형식은 마치 속인의 치질과 같았다. 거의 한달 동안 앉거나 서는 게 불편했고 심할 때면 잠도 잘 수 없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오와 어머니의 적절한 도움으로 나는 마침내 자신의 게으름으로 정진하지 않아 사악한 요소에게 틈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음을 인식했다. 그리하여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동시에 깊이 자신의 부족함과 집착심을 파냈으며 마침내 이 고비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2) 인터넷에 집착해 교란이 심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컴퓨터 등 전자제품에 의존하는 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젊은이에게는 그야말로 하루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청소년 수련생 역시 그러하다. 며칠 전 나는 생사고비를 넘겼다. 주요 원인은 바로 인터넷에 집착해 조성된 것이다. 석사공부를 하면서 나는 속인 동창생과 마찬가지로 매일 생활은 기본적으로 노트북을 안고 살았다. 숙소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면 곧 하루가 지나갔다. 비록 매일 일정량의 법공부를 보증할 수 있으나 인터넷 쇼핑, 영화보기, 게임, 채팅 등으로 대량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렸다. 아울러 가장 심한 것은 인터넷상 난잡한 각종 정보, 사진 등에는 매우 좋지 않은 요소가 들어 있다. 장기적으로 머릿속에 주입되면 사람의 정신과 사상에 대해 심지어는 신체에 극히 악독한 교란과 영향을 조성하게 된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일로 인터넷에 접속하지 말아야 함을 명백히 알고 있으나 의지력이 박약해 교란과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같은 숙소의 친구들이 저마다 즐겁게 인터넷에 접속해 노는 것을 보면 자신도 따라서 방종한다. 스스로 괜찮다고 판단되는 비교적 ‘바른’ 해외영화를 관람했다. 때로는 매우 좋지 않은 영화도 보게 되며 유행되는 게임을 하거나 하면서 하루하루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번 겨울 방학 어머니는 나에게 이 문제를 지적하셨다. 그때 나는 억지로 ‘친구들이 다 놀고 있어요. 이것도 속인상태에 부합하는 것입니다’라고 대꾸했다. 자신의 집착이 심함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각종 구실을 찾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바로 며칠 전 어느 날 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연공했다. 어머니는 바닥에서 나는 침대 위에서 연공했다. 제2장 공법 ‘량처빠오룬(兩側抱輪)’ 할 때 갑자기 한가닥의 매우 무서운 힘이 나를 향해 직격해왔다. 나는 삽시간에 심장이 급속히 뛰는 것을 느꼈고 가슴이 답답해졌으며 머리는 ‘윙’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전신은 있어 본적 없는 극심한 괴로움에 휩싸였다. 나의 사상 중에 이는 목숨을 앗으러 온 것임을 의식했고 머릿속에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사부님(師父)’하고 두 글자를 외쳤다. 그런 후 바로 서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나는 잠시 귀가 먹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거대한 기계의 굉음 같은 폭발소리가 들렸다. 이때 나의 의식은 점차 회복됐고 즉시 겨우 앉아 가부좌를 하지 못하고 입장했다.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부정하고 깨끗이 제거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단지 한마디만 울렸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다. 나의 일체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를 것이며 기타의 누구의 배치도 승인하지 않는다. 구세력의 나에 대한 일체 형식의 교란과 박해를 철저히 부정한다.”

나는 일념을 품었다. 자신의 전부를 철저히 사부님에게 바치며 일체는 사부님의 배치에 따를 것이라고. 이렇게 아마 20여분이 지나자 일체는 점차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어서 어머니와의 교류에서 자신의 인터넷에 대해 심하게 집착하는 마음을 찾아냈다. 이는 이번에 사악에게 틈을 준 가장 큰 누락이었다. 그 외 나는 또 자신의 매우 좋지 않은 마음을 찾아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또 일부 수련생들에게는 일종 착오적인 인식이 있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면 마치 보험에 든 것처럼 육신이 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진요지-명시(明示)) ‘밍후이주간’에서 교류된 많은 노년 수련생의 병업 고비나 생사고비 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있었다. ‘보라, 노년 수련생은 나이가 많아 생사고비를 넘겨야 하지만 나는 젊어서 이런 문제로 두려워할 것이 없지.’ 이 바르지 못한 일념으로 이렇게 큰 번거로움을 불러오게 됐다.

수련은 정말로 너무나 엄숙하고 너무나 엄숙하다. 젊은 수련생들이여, 절대 더는 인터넷에 집착하여 빠져 들지 말아야 한다. 이 집착은 반드시 빨리 내려놓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극히 위험하게 된다.

3)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 중생 구도를 가로막는 것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 진상 알리기는 줄곧 나의 수련 중의 가장 박약한 부분이었다. 가정 이 방면으로부터 말한다면 집에서는 나와 어머니가 수련을 하고 아버지는 속인이다. 이 여러 해 동안 대법에 대한 사당의 박해로 우리집도 아주 큰 마난과 타격을 받았다. 어머니는 두 번이나 불법 수감 당해 집에서도 일정한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 그해서 아버지는 초기에 대법을 지지하던 데로부터 지금은 우리 수련을 반대하고 심지어 몇 년은 늘 손찌검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대법을 언급하지 못하게 한다. 언급하기만 하면 악담을 퍼붓는다. 나와 어머니는 혈육에 대한 이 방면의 진상을 아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므로 잘하려고 줄곧 노력하고 있다. 자신이 바르게 했으므로 어머니의 수련 환경은 대대적으로 개선되어 지금은 집에서의 수련은 공개적이다. 하지만 나는 줄곧 반 공개 상태다. 아버지는 내가 줄곧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나는 두려운 마음을 줄곧 돌파하지 못해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그에게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나는 지금은 이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빨리 두려운 마음의 장애를 돌파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여 집의 환경을 꼭 바로 잡겠다.

사회 환경 방면으로부터 말한다면, ‘3퇴’ 권고가 막 시작됐을 때 나는 아직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 후 이 여러 해 동안은 줄곧 학교라는 이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대면 진상 범위도 줄곧 관계가 좋은 학우 지간에 국한돼 있었으며, 주로는 여전히 진상지폐 쓰는 것으로 법을 실증했다. 이 몇 해 동안 나도 작은 범위에서 진상을 알리는 곤경을 돌파해 보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두려운 마음의 제한을 받았는데 늘 학우들이 내가 수련한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다른 눈으로 볼까 두려워했으므로 진상 알리기란 단지 제 3자의 각도에서 말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특수한 학교 환경에서는 다방면의 요소가 연관됐으므로 늘 잘 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실제로는 여전히 사심이 너무 중했던 것이다.

대륙의 적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나와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점차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는 동시에 또한 각종 형식을 채용해 이를테면, 우편으로 부치든가 메일을 보내든가 전화번호를 수집하는 등등 방식으로 진상을 알릴 수 있다. 더욱이 청소년 수련생으로 말하면 신기술을 빨리 배우고 잘 쓸 수 있다. 그렇게 많은 노인 수련생들이 모두 할 수 있는데 우리 왜 시험해 볼 수 없는가?

4) 남녀 정을 반드시 다 내려놓을 때까지 담담히 보아야 한다

오늘의 복잡한 형세 하에서의 수련 중에서 청소년 수련생에 대해 말한다면 마치 부득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남녀 정 및 혼인 등을 어떻게 합리적이고도 타당하게 처리하겠는가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는 현실 측면에서도 연령 상태가 조성한 일종 필연적인 상황이다. 이 문제에서 나도 한 단락 시간 굽은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이 몇 해 동안 나를 아주 좋게 대해 주었다. 이런 방면에서 어떠한 경험이 없었으므로 나는 한 때 남녀지심이 움직여 그와 아주 가까이 지냈는데 이미 속인 중의 이른바 ‘연애’ 상태에 접근했다. 그 때는 마침 어머니가 외지로 나가셨는데 사부님께서 어머니 꿈에 내가 바다에 빠져 아주 위험하다고 점화해 주셨다. 어머니는 문제가 나타났음을 즉각 의식하고 즉시 집으로 달려오셨다. 교류 토론을 거쳐 내가 이미 정을 움직였고 집착이 형성됐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나를 도와 주셨다. 이후에 이른바 ‘고통스러운’ 마음 수련을 거친 후에야 나는 겨우 서서히 이 남여지심을 버리게 됐고 자신의 수련 방향을 수정했다.

혹시 어떤 수련생은 말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또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수련 형식은 바로 속인 사회에서 하는 것인데 모두 결혼하지 않으면 그게 어찌 될 일인가? 그럼 어떻게 후세 사람에게 길을 남겨 주겠는가?” 나는 이렇게 인식한다. 정법의 정체적인 각도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다. 지금 정법은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다는 것을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사악이 광적으로 박해하는 형세 하에서, 가장 복잡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사부님 가호 하에 줄곧 오늘까지 걸어왔는데 참으로 너무도 쉽지 않았고 방방면면에서 모두 거대한 대가를 지불했다. 지금, 우리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또한 가장 관건적인 사명이 바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개인 수련 층차 면에서 말하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수련자로서 ‘정(情)’은 우리가 반드시 내려놓아야 할 큰 주요 집착이며, 남녀지정의 버림은 바로 그 중 가장 엄혹한 고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우리 무엇 때문에 각종 집착심이 연관돼 나오고 게다가 이 때문에 구세력에게 꼬리를 잡혀 재차 박해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가서 주동적으로 ‘정’자를 불러다 몸에 오르게 한단 말인가? 속인이든 수련생과 ‘사랑을 속삭이든’ 모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속인과 결합해서 설령 지금은 대법을 찬성한다 하더라도 만약 앞으로 정의 연루로 우리에게 각종 집착심이 생겨 구세력이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된다면 아마 속인은 사악에게 이용당해 교란 작용을 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우리의 법 실증의 일이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더한 것은 원래 멀쩡하던 중생을 지옥으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수련생과 결합하면 어떤가? 두 사람 다 대법제자라 각자 자신의 심성을 잘 파악할 수 있어 공동촉진, 공동정진, 공동제고할 수 있다면 그건 당연히 가장 좋은 일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결혼 후 각종 집착심이 생겨나 이로부터 각자 수련이 장애를 받고 심지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일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 또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그건 그야말로 너무도 마땅하지 못한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지금껏 우리에게 강제로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다만 우리 스스로 어떻게 깨닫는가에 의거하게 하셨다. 나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청년 수련생에 대해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혼인 등 방면 문제에 접촉하지 말며, 아울러 반드시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잘 파악해야 하고 이 방면을 엄숙히 대해야 한다고 본다. 결혼 연령이 된 수련생은 될수록 속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하며 만약 정말로 적합한 수련생을 만났다면 사부님 안배대로 따를 것이고 연분이 닿으면 자연히 성사될 것이다. 절대로 집착을 형성하지 말아야 하는바, 어떠한 집착이든 모두 호시탐탐 노려보는 구세력에게 잡히면 교란과 박해를 당할 것인즉 더욱이 ‘정’이라는 이 큰 문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상이 바로 나의 개인 수련 중에서의 일부 깨달음과 인식인데 써내 수련생들에게 교류로 제공할 뿐이다. 청소년 수련생들, 우리 어린 나이에 능히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서 정법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큰 연분이다. 만약 잘하지 못하고 세속에 빠져 있다면 정말로 자신에게 미안하고 중생에 미안하며, 더욱이는 사부님께 미안한 것이다. 반드시 사부님을 바짝 따라 정법진행을 바짝 따라 우리 함께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가자!

층차의 제한으로 부당한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허스.

문장발표: 2012년 2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22/2533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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