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 ‘무엇이 대법제자인가’를 보고 나는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사람의 일면에는 눈물이 없었는데 본성의 일면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사부님께서 비할 바 없는 자비로 대법제자의 수련상태를 돌려세우시고 제고시켜 주시며 뭇 제자에 대해 비할 바 없이 아끼고 격려해 주시며 그렇게 자비롭게 고도(苦度)해 주신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정법과 중생을 구도하시는 중에서 만난을 해결하시려는 금강의지와 그러한 흉금, 기품, 신의 풍채를 느꼈고 내심에서 더없이 우리 위대하신 사부님을 공경하게 되었다.
정법시기에 한 명의 대법제자가 되어 사부님을 따라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비록 대륙의 이런 간고한 환경에서 몇 년래 고생도 조금은 하였지만 오히려 이것이 생명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느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부님 따라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린다. 아래는 내가 수련하던 중의 일부 심득인데 여기에서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 드리며 전 세계 정법시기 대법제자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소굴에 뛰어 들어가 정념으로 수련생을 만나다
어느 외지 수련생이 소굴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가족(역시 수련생이다)들이 그를 만나러 갈 때 나는 그들을 데리고 갔다. 그날따라 얼음과 눈이 겹치는 추운 날씨였는데 경비원은 방이 좁다고 하면서 나를 면회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나는 문밖에서 한 시간 넘게 발정념을 하였다. 시간이 꽤 지났어도 가족이 나오지 않자 나는 경비원에게 말했다. “먼 외지 사람이 여기까지 와서 친척을 한 번 만나본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까지 어렵게 와서 친척의 얼굴도 못보고 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냐?”고 했다. 그러자 경비원이 주동적으로 나를 도와 주선을 해 주며 “당신도 들어가 당신 친척을 만나보세요.” 하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수련생을 만났으며 그에게 법에서 견정하라는 격려를 해 줄 수 있었다.
이번의 경험이 있은 한 달 후, 나는 또 다른 수련생을 만나러 갔다. 가기 전에 맘속으로 ‘나는 대법제자로 대법에서 수련해 낸 가장 순정하고 자비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간다.’는 생각을 했다. 도착하여 발정념을 하여 소굴에 있는 사악을 해체하고 동시에 정(情)의 교란을 제거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소굴에 있는 수련생과 불가피하게 정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가 만날 때 정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수련생을 나는 두 번 면회를 했는데 두 번째는 가족의 신분으로 혼자 만나러 갔다. 면회실에서 그 수련생을 접견하게 되었는데 그 순간 사악한 교도관이 당황한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우리들의 면회를 중지시켰다. 나는 교도관에게 “왜 내가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가?” 하고 물었다. 사악한 교도관은 내가 대법제자 같은 의심이 들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나는 면회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의 책임자를 만나 정념의 마음을 갖고 면회 중단 조치에 대한 부당성과 이치를 따졌다. 그런 후 조금 지나서 다시 수련생을 면회해도 좋다는 통지가 떨어졌다. 이번 두 번째 면회는 수련생에게 비교적 중요한 것이었다. 소굴에서 줄을 설 때 법을 실증하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하고 소리쳐 사악에게 단독 감금 박해를 당하였는데 그 박해를 조금은 감당하기 어려워했고 사악이 시키는 일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면회를 하는 중에 일상적으로 생활에 관한 얘기를 하는 가운데서 수련자가 깨달을 수 있는 일상적인 내용의 말로 수련생의 정념을 격려했고, 어린 제자 꿈에 당신이 깨끗한 흰 옷을 입고 소굴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수련생은 정념이 나왔다. 그 후 함께 감옥에 감금 되어있는 정념이 강한 여러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모두 교도관의 요구대로 고역살이를 받아들이지 않게 하였다. 발정념 시간이 되면 강대한 정념을 내보내 소굴을 파괴했다. 이렇게 수련생은 일 년 넘게 견지했고 나올 때 이 소굴의 사악한 기염은 안과 밖에 있는 전체 대법제자에 의해 아주 많이 없어졌다. 표현상에서는 곧 대법제자를 더 이상 강제적으로 전화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전후 이 몇 번 접견 시 모두 같은 교도관이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2. 사람을 구함에 마음을 써야 한다
옆에 있는 한 수련생은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의 딸이 13, 14세여서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고 자라지 못한데다가 방임상태에서 나쁜 버릇에 물들어 일하지 않고 놀고, 먹고, 게임에 몰두하거나 무절제하게 남자친구를 사귀며 거짓말로 사기를 치는 등 무위도식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실정인데, 이를 나무라는 부모에게 대들며 싸움을 걸기도 한다. 어머니인 수련생은 이 딸 때문에 정말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그 수련생이 가족과 한자리에 모인 후 얼마 되지 않아 곧 납치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부인이 납치된 후 외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행실이 좋지 않은 딸에 대해 별로 나무라거나 간섭하지도 않았다. 나는 수련생을 구원하면서 한편으로 수련생의 딸에 대해 관심을 갖기로 했다. 그는 무슨 일에나 잠시도 지속하지 못했다. 이 도시에서 몇 달 있다가 저 도시로 가고 또 몇 달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곤했다. 나는 그에게 자주 우리 집에 와서 지내라고 하여 얼마 동안 있게 하였다. 그가 거짓말 하는 것을 따지지 않았으며 가끔은 그에게 용돈도 주면서 남자친구를 사귀는 일을 물어보기도 하며 관심을 보여주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감옥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함께 가는 길에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사회에서 많은 것을 보았는데 사람들은 모두 아주 이기적이다. 심지어 아버지조차도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오직 대법제자만이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마음속으로 ‘대법이 좋고 대법제자가 좋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해 그의 고향에 큰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는 소문이 일면서 주민들이 모두 불안하여 아주 당황해했다. 그때 그녀는 친구들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면 평안을 보장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고 말했다. 지금 그는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으며 자기가 일해서 번 돈을 조금 절약해 감옥에 있는 어머니에게 송금해 주기도 한다.
사부님은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에서 “중생 구도는 신의 눈으로 볼 때, 인류 사회의 한 사람이 착오를 범하면 사람의 방식으로 사람에게 개과(改過)하게 하는 그런 방법이 절대 아니다. 신은 자비한 것으로, 최대의 관용이 있으며, 정말로 생명을 위하여 책임질 뿐, 사람의 일시일행(一時一行)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은 본질상에서 한 생명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며, 본질상에서 한 생명의 불성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아직도 강도를 더 높여야 하고 또한 더욱 심도 있게 해야 하고, 더욱 좋게 더욱 착실하게 해야 하며, 형식적으로 대강대강 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진지하게 잘해야만 비로소 그렇게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3. 수련생을 아끼고 이해 해주며 부족점을 보충해 주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수련생은 납치되어 세뇌반에 간 후 사악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여 타협하였다. 돌아온 후 그는 아주 고통스러워했고 넘어진 후 감정이 아주 민감하고 마음이 나약해졌다. 당시 그녀 주위의 수련생들은 그녀의 심태에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수련생을 구원하는 항목에서 침식을 잊을 정도로 전심전력하여야 하는데, 수련생들이 자신이 납치되었을 때 전력을 다해 구원하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어떤 수련생은 진정 내심으로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과 그런 말투로 수련생들을 질책하기가 일쑤여서 수련생 모두가 그녀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고 싫어하고 피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가짐은 갑자기 아주 더욱 나쁘게 되었고 심지어 몇 명 수련생애 대해서는 강한 원한의 맘까지 갖게 되었다.
그 수련생은 나에게 모든 생각을 털어 놓았다. 나도 ‘사오(邪悟)’ 했다가 다시 되돌아 온 적이 있기 때문에 넘어진 후의 그러한 상처들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즉시 그녀와 함께 법을 학습하고 발정념을 하였으며 그의 생각과 정서를 교란하는 사악을 청리했다. 법리는 그도 모두 알기 때문에 너무 많은 교류는 필요 없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대량으로 법을 학습하고 발정념을 하며 진정으로 관심을 보이고 격려해 주는 것이었다. 사악의 그에 대한 교란을 해체하면서 나는 또 그녀와 연관된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서 교류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 주위의 수련생에게도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학습소조에서는 수련생 모두가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이내 한 수련생으로부터 아주 강한 질책을 받게 되었다. 그는 그 수련생에게 한두 명 수련생만 가서 교류하면 되니 다른 많은 수련생이 거기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고 또 나의 협조업무에 대해서도 부족한 점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나는 그 수련생의 질책이 틀리지 않은데다, 혼자이지만 이 ‘항목’의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여겨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의 남편도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는 사람인데 우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수련생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분담하였다. 가끔은 남편이 밥과 반찬을 해 놓으면 여럿이 먹고 나서 장시간 법학습하고 발정념을 하였다. 한 단락 시간이 지난 후 수련생의 상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을 써냈는데 모두들 수고했다고 칭찬하였다.
이 시간을 바쁘게 보낸 후 나의 마음은 오히려 억울하게 느껴졌다. 속으로 내가 이렇게 모순을 풀게끔 도와주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다른 수련생의 몰 이해와 질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간 나의 머릿속에는 늘 나를 지적했던 그 수련생의 여러 가지 부족한 점들이 생각났다. 나는 이 생각들이 내가 아니고 구세력이 내보낸 것으로 사악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견주간에 한 편의 문장이 있었는데, 한 수의 노래 안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라는 것이었는데, 사부님께서 이 노래의 가사로 그 수련생에 관한 좋지 않은 생각을 점화로 깨우쳐 해주셨다고 여겼다. 나는 본 후 묵묵히 한 번 또 한 한 번 “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해주세요. 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해주세요.” 하고 읽었고 맘속으로 그 수련생에 대한 불만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까지 그랬다. 다른 사람이 나를 잘못 대할 수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을 잘못 대하면 안 된다. 수련자는 자기한테 엄격하고 남한테는 관용해야 한다.
나는 수련생에게 당시의 상태를 해명할 것인가 하지 말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수련생간의 간격이 커질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표명할 필요가 없고 수련생도 아주 성숙한 것으로 나는 수련생이 나중에 명백하고 똑똑히 깨달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단락 시간 집의 어린 제자는 나뭇잎에 달린 ‘우담바라(優曇華)’를 많이 땄는데 처음 2년 나는 채집한 우담바라를 수련생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었다. 한 노년 수련생은 가족이 모두 수련하며 평소에 묵묵히 사람을 구도하고 돕는 일들을 많이 하였다. 5, 6년 협조하고 도와주는 과정에서 그가 한 일은 많았다. 그러나 교류 때 말은 적게 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다른 수련생을 질책하거나 또는 자신의 무슨 견해를 발표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부동한 의견도 모두 평화로움과 선의로 교류하였다. 수련생은 우담바라를 사부님 법상 앞에 공양해 올리고 “사부님의 법정인간이 오는 그 날까지 공양하겠습니다.” 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 후 4년이 지나 나뭇가지는 모두 시들고 나뭇잎도 모두 말랐지만 유독 나뭇잎의 그 스물 몇 송이의 우담바라는 늘 싱싱하여 처음처럼 순결하고 신성한 광망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는 사부님의 더없이 자비로우신 격려로서 제자들이 서로 정념으로 지지하고 묵묵히 원용하고 보충하며 대법을 함께 수련하는 성스러운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공동으로 정진하라고 격려하시는 것이다. 특히 수련생 사이에 묵묵히 원용하고 보충하는 것은 일종의 평온속의 거룩함이다.
문장발표 : 2012년 1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6/2523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