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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깊은 곳에 ‘자심생마’의 근원을 제거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진작부터 나는 이 체득을 쓰려 했지만 매번 모두 표면적인 일에 지체 당했다. 저녁에 나는 오늘의 밍후이 문장을 다 보고나서 단숨에 초고를 썼다. 하지만 컴퓨터에 타자할 때 교란이 엄청 커서 나타나지 말아야 할 착오가 줄곧 나타났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무작정 써내려 했다. 이 확고한 일념으로 서서히 컴퓨터에 막힘이 사라졌다.

이전에 나는 사부님의 ‘전법륜’ 제6강에서 ‘자심생마’ 그 한 단락을 학습할 때 다른 사람을 얘기한 것이고 나와는 무관하다고 늘 여겨왔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자심생마’와 같은 그런 표현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자심생마가 나타나면 너무 엄중해 훼멸될 것이므로 자신에게 자심생마가 나타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울러 사부님께서 법에서 든 예는 천목이 열린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수련을 잘 했다고 여기고 자신이 일반사람이 아니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나의 천목은 닫혀 있어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주 확고하게 자신에게는 자심생마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수시로 자신에게 법을 스승으로 모시며 자신을 대단하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법을 배우면서 수련한지도 십 몇 년이 됐는데도 매번 모두 이 방면의 문제를 안으로 심각하게 찾아보지 않았다. 사실 사부님 설법은 모두 우리의 모든 마음을 겨냥해 말씀하신 것이고 모든 제자는 예외가 아니다. 내가 ‘자심생마’ 이 방면에서 바르게 닦아야 할 곳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나는 몹시 놀랐고 그래서 ‘자심생마’를 빚어내는 근원을 꼭 파내겠다고 결심했다. 그것들이 얼마나 깊이 파묻혀 있던지 나는 모두 그것들을 파내 해체해 버릴 것이다. 아래에 몇 가지 방면으로 나의 체득을 말해 여러분과 함께 교류하려 한다.

1. 문장을 쓰는데서 나타나는 ‘자심생마’의 경향

수련하는 중에 나는 여러 번 자신의 체험을 써서 밍후이왕에 발송했는데 여러 번 발표됐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문장을 전 세계 대법제자들이 볼 수 있게 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고 여기면서 속으로 우쭐해서 뽐내기 시작했으며 자랑스러운 감각이 말이나 표정 속에 드러났다. 2007년 5월에 내 체득 문장 한 편이 밍후이왕에 발표되자 나는 무척 기뻤다. 뿐만 아니라 그 때의 ‘밍후이주간’에 실렸는데 나는 더구나 자신이 아주 영광스럽다고 여겼다! 더 이후에는 아마 내 문장이 밍후이 방송에 수록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리하여 나는 그 달 밍후이 방송 중의 한 회 한 회에서 자신의 문장을 찾아보았는데 그 결과 정말로 찾아냈다.(지금은 어느 회 방송이었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문장이 어느 회 밍후이에 방송됐는지 급급히 열어 보았을 때 목록에 내 문장이 있는 것은 분명했는데 모든 문장은 다 방송됐지만 내 문장만 방송되지 않았으며 삭제된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자신의 문장이 밍후이 방송에 방송되기를 너무나 집착했음을 의식했다. 하지만 그 과시심이 나를 우쭐하고 뽐내는 데로 이끌고 자신을 아주 대단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의식하지 못했다. 그건 이미 ‘자심생마’의 조짐으로써 사부님께서 법에서 든 그 “나는 아마 일반사람이 아닐 것이다?”(전법륜)의 예와 무슨 다름이 있는가? 단지 집착하는 방면이 다를 뿐이다. 밍후이왕에 자신의 문장을 발표하는 것은 자신의 집착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란 말인가? 자신이 밍후이왕에 투고하는 것도 과시나 기쁨을 위해서란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시심, 게다가 환희심은 마(魔)에게 이용당하기가 가장 쉽다.”(정진요지-정론) 나는 자신의 문장이 발표되는데 집착하고 정말로 발표되면 과시하는 게 대단하고, 내심은 기뻐서 야단인데 정말로 두려울 정도다. 그러므로 수련에서는 추호의 요행심도 가져서는 안 되며 반드시 착실하게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한다. 앞으로 나는 더는 자신의 문장이 발표됐는지의 여부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발표됐다면 다운받아 갖고 자신의 마음에 대조하면서 원고를 검사해 보고 자신에게 아직도 무슨 마음이 안에 있는가, 원고 가운데 어느 방면이 부족해 밍후이 수련생에게 수정됐는지 검사했고 발표된 문장을 자신의 수련 중의 하나의 기록으로 삼았을 뿐 이전처럼 그렇게 자랑할 밑천으로 삼지 않았다.

2. 기타 수련 일에서의 ‘자심생마’의 체현

1)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임으로 인해 내내 무척 자랑스럽다고 여겼고, 자신은 매우 영광스러우며 법을 얻지 못한 그런 생명보다 많이 고귀하다고 여겼다. 사업 가운데서 매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고통스레 다투는 그런 사람들의 표현을 보게 될 때마다 극도로 미워했으며, 모두 나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것을(금전, 명리)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 필사적으로 갈취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그들은 매우 가련하다고 여겼다. 자신은 대법제자이며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매번 명리 속에 빠진 이런 사람들을 대면하면 눈빛은 언제나 그들을 무시한다. 이런 선하지 못한 심리를 의식했을 때 나는 대량의 법공부로 자신을 귀정한 동시에 ‘자신이 남보다 고귀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조성한 배후의 원인이 바로 명을 구하는 마음, 허영심, 그리고 변이된 자존심임을 파냈다. 이런 마음이 자신의 내심을 휘저어 우쭐거리게 했던 것이다. 사실, 대법과 대법 사부님 앞에서는 어떠한 생명이던지 모두 평등한 것이며 모두 구도될 기회가 있는데 단지 조만간의 일일 뿐이다. 나의 행운도 단지 법을 얻지 못한 그런 사람보다 일찍 법을 얻었을 뿐이므로 우쭐거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수련할 때는 모든 사람마음을 겨냥하고 아울러 그것들을 모두 버려야 하는데 오직 에누리 없이 사부님 요구대로 해야만 비로소 표준에 도달할 수 있고, 오직 자신을 진정으로 잘 수련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수포가 된다.

2) 중생을 구도할 때 어떤 때 자신은 대법제자이고 이 고장 중생이 구원될 희망이라 여기면서 내심으로 역시 은근하게 자랑스러운 감각을 느낀다. 내가 최근 사부님의 신경문 ‘자심생마에 주의하라’를 읽었을 때 그 중의 한 마디 말씀은 바로 나를 말씀하신 것 같았다. “뭘 좀 했다고 사람 마음이 그리 엄청나게 부풀어서는 안 된다.”(자심생마에 주의하라) 나는 자신이 예전의 많은 생각들에 이런 방면의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는데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자신을 잘 수련하지 않으면 자신마저도 구하기 어려운데 중생구도를 어찌 언급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자심생마가 아닌가?

3) 수련생에게 대법서적, 신경문, ‘밍후이주간’, ‘밍후이주보’. 진상자료. 밍후이 달력과 션윈공연 CD를 복사해 줄 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체는 모두 우주 천체 중에 녹화되어 남을 것인데 중생, 뭇 신들이 모두 부러워한다고 여기니 내심은 비할 바 없이 만족스러웠고 그런 감수는 내심에 가득 차 어떤 때는 법공부로도 다 배제할 수 없었는데 모두 자아를 집착하는데서 조성된 것이다. 더는 그것들이 나의 수련을 교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총괄하면 이 십 몇 년 간의 자신의 수련의 길을 회상해 보면 만약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와 점화가 없었다면 오늘까지 걸어오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새로운 한 해에 나는 자신을 잘 수련해 자신의 공간장을 순정하게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 정법 진행을 바짝 따라 진정으로 조사정법 세간행(世間行)을 할 것이다.

이상은 나의 현 단계의 조그마한 체득으로써 법에 있지 않은 인식이 있다면 여러 수련생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를 삼가 바라는 바이다.

문장발표: 2012년 2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8/2528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