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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심생(自心生)’을 이야기해 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호연(浩然)

[밍후이왕] 사부님께서는 ‘따지웬(大紀元) 회의 설법’에서 “반신(半神)문화는 내포가 있는 것이며, 상유심생(相由心生) 역시 이 한층 뜻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회 환경 중에서 자신의 한 범위가 있으며, 자신의 정서는 자신의 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제자는 더욱 이러한데, 왜냐하면 중생구도의 사명을 담당했으며, 범위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사실 세인 역시 자신의 범위가 있는데, 단지 아주 작은 하나의 마당일 뿐, 다른 사람을 포함하지 않는데, 사람 자신의 정서도 일부 일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속인은 ‘상유심생’이란 이 한 층의 뜻을 모르는데, 실은 바로 자신의 요소가 자신의 환경을 개변한 것이다.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라는, 이러한 말을 나는 이미 특별히 명백하고 특별히 똑똑하게 말했는데, (웃음) 그러나 이 일을 중시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대법제자가 한 일을 포함해서 모두 이런 정황이다.” 며칠 전 이 한 단락 설법을 보고 갑자기 내가 이전에 갖고 있었던 공간장(혹은 자신이 책임지는 범위)에 대한 인식에 큰 오류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 관념 중에서는 줄곧 나의 공간장이 덮는 범위는 다만 나의 근무환경과 가정환경 등 다만 자신이 접촉하는 사람 정도라고 인식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념이 있을 때만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오늘에서야 알게 됐는데 사부님께서 주신 것은 우리와 우리의 모든 인연이 있는 사람의 요소를 포괄하고 심지어 그들이 대표하는 요소 등등을 포함한다. 그들이 세간에서 어떤 지역에 있든지 혹은 우리와 먼 곳과 가까운 곳에 있든지 모두 다 포함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상이 바르거나 바르지 않거나 모두 작용을 일으키는데 정념은 바른 작용을 하고 나쁜 염두도 중생에 영향을 준다. 이전에 제한된 인식 하에서 나는 늘 힘에 미치지 못하고 환경을 개변시키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사실상 바르지 못한 관념으로 ‘자신이 확정’한 공간장 범위 내에 구속됐던 것이다.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의 법을 몇 번이나 배웠지만 지금에야말로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하는 범위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을 알고 앉아서 다시 자신을 청리할 때 “의념(意念) 중에서 자신의 사상 중의 좋지 못한 사상염두(思想念頭)와 업력, 좋지 못한 관념 혹은 외래(外來)의 교란을 깨끗이 제거한다”(도항-2001년 캐나다 법회 설법)고 할 때 한 개의 붉은 물건이(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몰라 이렇게 말한다. 만약 바른 신이면 양해주세요) 반짝이더니 사라졌다. 동시에 그는 한마디 말을 남겼는데 “그러면 당신에게 주겠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부님이 점화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게 했다.

사부님의 이상 설법을 보고 이와 같은 ‘자심생마’를 찾았으며 그러기에 더욱더 안으로 깊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다. 사실 사부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나는 오늘에야 알게 됐다. 도대체 어떤 원인이 조성된 것인가? 정말로 깊이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전에 나는 자신의 인식과 발견에 득의양양해 하며 그것에 제한됐다. 표면상 인식에 제한된 문제인데 사실상 그 배후의 원인을 깊이 생각해보야 한다. 자신이 법공부하는 것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법공부 할 때 마음을 깊이 파고들게 하지 못하고 새로운 것, 신기한 것, 높은 것에 집착하고 눈앞의 성공과 이익만 추구했다. 사부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법을 이미 안다고 생각하고 설법을 읽을 때 마음에 파고들게 배우지 못했으며 자신과 대조해 실속 있게 수련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부족한 것이고 더욱 중시해야 할 점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원인이다. 이렇게 인식하고 나는 반드시 꼭 더욱 깊이 찾아서 법공부를 마음에 파고들게 할 수 없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심 자신을 개변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이고, 현재의 국면과 이익을 유지하려 하며, 두려운 마음과 안일심이 작용하는 것이고, 더욱 많은 고생을 하기 싫어하는 것이며, 현재 상황 중에 정체되어 나아가려 하지 않고, 사람 뼛속 물건을 개변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법공부를 할 때 마음에 파고들게 할 수 없었는데 이것은 변형된 도피하려는 마음이었다. 이것은 공간장 범위에 대한 사람 인식의 제한일뿐만 아니라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했는데 사실상 이것은 표면적인 인식일 뿐이다. 진정한 원인은 양파 껍질 벗기듯이 층층이 숨겨져 있어 진지하게 안으로 찾아 수련하지 않으면 진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까지 쓰니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왜 ‘상유심생’을 이용해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에 따라 찾을 때 줄곧 ‘자심생마’에 따라 ‘자심생’을 찾았는지 말이다. 진정으로 문제를 조성한 원인은 범위에 대한 자신의 제한이 아니라 문제를 조성한 배후에 집착심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자신의 사람 마음으로 자신을 제한해 장애가 되고, 사람 마음을 해결하지 않고 다만 표면적으로 개변하는데 약간의 개변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는 안일심 등 집착심이 있는데 사실 줄곧 자신이 개변하려 하고 제거하려 해도 제거할 수 없었다. 심지어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회피한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정말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오늘 이 수련체험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을 더욱 똑똑히 인식했다. 모순의 표면에 집착하지 않고 법공부를 잘하고 자신을 바로 잡고 시시각각 자신의 공간장을 정념으로 덮어야만 더욱 우리의 역할을 잘할 수 있다. “자신을 수련하고 안으로 찾으라”(따지웬(大紀元) 회의 설법)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법보(法寶)이고 동시에 사부님께서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자)에 대해 더욱 많은 깨달음이 있게 됐다.

이상은 약간의 개인적인 체험이다. 글로 적어 교류해 보려 한다. 부족한 점은 비평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2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2/1/2525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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