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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정념으로 직장 환경을 대하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고 위대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1년간 바쁜 직장 근무환경에서 어떻게 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았는지 간단히 교류하려 한다. 인식이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시정해 주시기 바란다.

몇 년간 내 근무환경은 줄곧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갑자기 우리 사무실의 모든 직원이 이전과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하게 됐는데 비교적 어려워졌다. 그리고 자주 아침, 점심, 저녁 야간 근무를 해야 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소질이 낮고 매우 관리하기 어려웠다. 갑자기 다가온 변화에 나는 일찍이 있어본 적 없는 압력을 느꼈다. 이로 인해 한동안 곤경에 빠져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비록 이것은 구세력의 일종 박해형식이라는 것을 알고 표면상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전에 발정념을 하여 이런 교란을 제거해 본적도 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발한 것은 전혀 정념이 아니며 속인의 원망이라는 물질을 품고 했기에 심지어 부정적 작용을 했다) 하지만 내심으로 이런 상태가 된 원인을 속인 탓으로 되돌리고 이것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생각했다. 나는 속인의 원망심에 따라 상사를 원망했는데 사실 이런 표현은 사람 마음으로 박해를 대하고 밖으로 찾은 것이며 다시 말하면 자신을 수련하지 않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장기간 대법(大法) 중의 중생, 특히 제자는 법에 대해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일종 부동한 층차의 오해가 줄곧 존재했다. 매번 마난(魔難)이 닥쳐올 때, 본성(本性)의 일면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람의 일면으로 이해한다. 그럼 사악한 마(邪魔)는 이 점을 이용하여 끝없이 교란하고 파괴함으로써, 수련생으로 하여금 장기간 마난 속에 빠지게 한다.”(정진요지-도법) 나는 아마 장기간 자신이 줄곧 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해, 다시 말하면 장기간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아 관과 난이 쌓여 점점 넘어가기 힘들게 됐다고 인식했다.

이후 법공부를 통해 안으로 찾고 수련생들과 교류를 통해 점차 알게 됐다. 비록 지금도 수련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법리에서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사람 마음으로 수련을 대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새로운 근무환경에서 점차 자신을 바로 잡았다.

1. 새로운 근무환경에서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로 잡다

법리에서 전면적으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마난에서 반드시 안으로 찾아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막 접촉하면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힘들었다. 업무 상 상대방이 능력이 떨어지니 때로 더욱 피곤했다. 매번 이런 상황이 나타나면 자신이 꼭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업무를 하기 싫어하거나 심지어 자신이 매우 큰 억울함을 당했다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업무 중에 피동적이고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었으며 이전 근무환경을 그리워했다. 사실 고생을 두려워하고 안일심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었다. 매번 자신의 사람 마음을 찾고 법으로 가늠하며 법에 부합되지 않은 것은 제거한다. 어떤 사람 마음은 글로 적어야만 똑똑히 찾을 수 있고 비교적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당연히 사람 마음은 완고해 때때로 나타나지만 자신의 공간장은 점차 투명해졌다.

다른 새로운 주임이 나에게 특히 아침, 저녁에 대량의 업무를 배치할 때 이전에 나는 이것은 교란이라고 생각했다.(당연히 교란 요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 마음으로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적게 주는지 많고 많은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옳은 것 같았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리하여 그 사람에게 편견이 생겼다. 요즘 나는 많은 수련생이 쓴 실속 있게 수련하는 문장을 보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의 일거일동은 상대가 나의 3가지 일을 교란한다고만 생각해 안으로 찾는 것을 저애했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해 만약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으면 3가지 일을 많이 해도 속인이 하는 것이고 게다가 잘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문제를 생각할 때 자신을 속인으로 생각하는데 속인은 속인의 이치에 부합되고 속인의 이치에 지배되므로 그 주임은 정말로 내가 생각한대로 되고 나에게 작업량을 많이 준다. 만약 수련인의 정념으로 대하고 심성이 승화되면 속인의 이치는 나를 제약할 수 없고 그 주임도 정말로 나에게 작업량을 많이 주려 해도 줄 수 없다. 그 주임은 나를 제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번거로움은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못해 초래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관념을 개변해야만 사람 이치에서 벗어나고 환경을 개변시킬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상사는 업무에 매우 성실하고 아랫사람에게 엄격히 요구했다. 속인은 자주 그 상사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원망하는데 때로 나도 따라서 그를 원망했다. 사람 층차에서 보면 상사가 이렇게 아랫사람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고 ‘괴롭히는’ 것은 일에 대한 욕심이 강한 것이다. 그 상사는 맡은 일을 언제나 에누리하지 않고 심지어 초과 달성하는데 그 목적은 자신의 상사 앞에서 인정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요즘 생각하면 상사의 이런 근무상태는 자신의 수련 상태와 매우 비슷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장기간 명을 구하는 마음이 중하고 어쨌든 회사에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 했고 특히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중히 여겼다. 수련에서도 마찬가지로 표면상 떠벌리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런 마음을 품고 누가 자신을 잘 대하지 않거나 중시하지 않으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 불평한다. 바로 자신을 중히 여기는데 이것은 이기심이다. 다른 방면에서 보면 자신을 너무 중히 여기면 다른 사람의 감수를 소홀히 하게 된다. 그러면 수련 중에서 자신과 중생의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없고 자신과 정법의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없으며 자신과 사부님의 관계를 바로 잡을 수 없다.

만약 상사가 속인의 시간을 지체하면 그건 흔한 일이다. 속인은 근무시간 외에 소일하고 오락을 한다. 하지만 만약 그 행동이 간접적으로 대법제자의 시간을 교란하면 무의식 중에 대법제자의 법 실증에 교란의 착오를 범한 것이다. 이 각도에서 보면 대법제자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고 똑바로 걷지 못하면 중생을 구하는데 손해를 가져다준다. 만약 대법제자가 똑바로 하면 본인이 모든 것을 제약할 수 있고 심지어 주변의 일체 바르지 않는 요소를 해체할 수 있으며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절대로 자신 수련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2. 기점을 바로 잡고 극단적으로 가지 않으며 이성적으로 새 업무를 대하다

새로운 근무환경에서 이전에 배운 지식, 경험은 모두 가치가 없어졌고 일체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만약 이전 성격대로 하면 나는 자신의 정력을 그곳에 완전히 투입한다. 자신이 매우 완벽한 것을 추구하기에 무엇을 해도 다른 사람보다 훌륭해야 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정력을 소모해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수련하면 마땅히 정법의 기점에서 문제를 고려하고 마땅히 이런 관념을 개변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이고 중생을 구도하는 신성한 사명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력과 시간은 이미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 당연히 관념을 개변시키면 업무를 대충대충하는 것이 아니고 더더욱 잘해야 한다. 개변시키는 것은 심태이고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 마음이 적을수록 작업효율은 더욱 높아지고 더욱 좋다는 것을 체험했다. 이런 심태에서 일을 잘 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을 잘 해도 사실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체험했는데 매번 직장에서 자신의 속인 관념에 따라 억지로 지불해 명예를 얻으려하면 주변 사람은 나에게 소리 없이 화를 낸다. 당시 나는 다른 사람이 질투한다고 인식했고 혹은 내가 질투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내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아마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억지로 노력한 결과 정말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고 그는 계속 나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직장은 비록 수련이 아니지만 수련인에게 수련 환경을 제공해 주는데 이 환경에서 정말로 법으로 가늠하고 절대로 극단적으로 가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직장과 수련에 불필요한 교란을 가져다준다.

3. 전면적으로 구세력의 배치를 완전히 부정함에 대한 약간의 생각

구세력의 교란에 대해 법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하고 발정념으로 청리하는 외 또 하나는 바로 행동에서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고 인식했다. 구세력이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아 법공부할 시간이 없게 한다면, 나는 출근하는 시간을 이용하고 직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황에서 매일 시간을 내서 정신을 집중해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고 시간의 길고 짧은 것이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매일 견지하고 열심히 하고 대강해서는 안 된다. 구세력이 시간을 없게 해서 3가지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밤 시간을 이용해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혹은 저녁에 출근할 때 글을 쓰는 형식으로 안으로 찾고 수련체험을 쓴다. 이전에 이렇게 했는데 효과가 비교적 좋았다.

다른 방면은 수련 시간에서 마땅히 사람의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법리에서 마땅히 대법제자의 수련시간이 속인 시간에 제약되면 안 되는데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관여하신다. 나는 많을 때 수련자들이 시간에서 제약받는 것은 표면적인 사람의 행위 부분 때문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사악의 수단이 대법제자를 겨냥한 것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느낀다. 이 일에 대해 우리는 사악을 마땅히 꿰뚫어 보아야 하는데 사상에서 그것에게 순응하면 안 된다. 행동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을 때 우리 내심의 개변이 중요하며 때로 우리가 인식하면 사악은 스스로 소멸된다.

여기서 작은 에피소드로 설명해보려 한다. 언젠가 주말에 휴식해야 하는데 회사에서는 휴식하지 못하게 하고 14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점심 때 나는 수련생과 교류해 깨달았는데 이것은 밍후이법회에 대한 교란이었다. 이전 관례에 따르면 매번 법회원고를 마감하는 날이 다가오면 많은 문장을 우리가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발정념을 해서 사악의 음모를 해체해야 한다. 그 결과 오후에 출근하자 우리가 발정념을 하기 전에 회사에서 앞당겨 며칠 휴가를 주었다. 이 일에서 수련생과 나는 전혀 위사위아하는 요소가 없었고 법회원고를 지체할까봐 생각했으며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났다.

4. 관념을 개변시키고 신의 생각으로 문제를 보자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2강에서 ‘천목을 열다’, ‘요시공능’, ‘숙명통공능’을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누가 수련의 길에 들어서면 마땅히 천백년 형성한 사람의 이치, 사람의 관념을 개변시켜 진정으로 사람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혜안으로 문제를 보고 신의 생각으로 마난을 대처하라는 것이다.

며칠 전 연속 10여일 출근하니 좀 견디기 힘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가슴이 답답했다. 남편은 나에게 관념을 개변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남편만 원망했다. 점심 때 갑자기 깨달았는데 어떻게 관념을 개변시키지 않았는가? 내가 정말로 힘든 것인가? 대법제자가 힘든 것인가? 나는 사부님의 새로운 설법 “그러나 이렇게 저급적인 인체는 아무런 능력도 없으며, 당신의 사상 경지가 어떤 것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당신을 지배한다. 그럼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상의 생명은 당신이 무엇을 갖고자 하거나 무엇에 집착하는 것을 발견할 때면, 마침 그것에 부합되기에, 그것이 바로 작용을 일으키며, 심지어 당신을 주도한다. 사람이 이지적이지 못하고 화를 분출할 때면, 부면적인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다. 무엇이든 모두 생명이며,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바로 욕망이며, 그것이 바로 원망이고, 그것이 바로 부동한 것으로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용을 일으킨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를 보고 깨달았다. 나는 늘 힘든 것을 승인하고 매일 입에 ‘힘들다’를 지니고 다녔는데 이런 힘들다는 생명은 나를 지배하고 작용을 일으킨다. 이렇게 생각한 후 ‘힘들다’는 생명체가 힘들지 나는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를 멸해버렸더니 한순간 정말로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근무환경에서 속인은 모두 어쩔 수 없다는 심태로 일하지만 대법제자로서 절대로 그렇게 문제를 생각하면 안 되고 정념으로 문제를 생각하고 지금 환경에 구속받지 말아야 한다. 대법제자의 사유는 강대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힘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우리가 마땅히 담당하지 않은 힘듬과 고생을 가지면 안 되고 구해도 안 된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자신을 수련하고 중생을 구도하고 조사정법을 하는 것이다. 일체는 마땅히 대법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하는 조건을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일체는 생명이 있는데 근무환경 자체도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하는데 따라 그 환경도 미래에 남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환경이 교란을 받으면 법정인간 때 도태될 수 있다.

어쨌든 힘든 것은 대법제자를 무너뜨릴 수 없고 한가함도 대법제자를 안일함에 미혹시킬 수 없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 때문이다! 대법이 구성한 생명이다!

(밍후이 제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1년 12월 5일

문장분류: 제8회 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5/2495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