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람마다 심성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개념에 대한 인식도 곧 다를 것이다. 개인적인 이해인데 이지적으로 안전문제를 인식하는 것 역시 자비의 일종 체현으로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수용하는 것으로서, 법에 서서 문제를 보는 명석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눈앞에 발생하는 박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이 형세에 마음을 움직였고 즉시 발정념을 하고 있다. 맞다. 발정념을 하는 자체는 사악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어떤 기점에 서서 발하는 것인가? 아, 나를 붙잡지 말라 식의 이런 위사위아(爲私爲我)의 기점에 서서 발하는 것이라면 맞겠는가? 그러므로 작용도 크게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 사악은 우리들 사이에서 하나의 부정적인 에너지 장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것을 수긍하고 우리들이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련자로서 타인을 위해, 법을 위해,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 결국 우리 스스로가 사악을 초래한 것이다. 즉 사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람 마음과 사람의 관념이 우리로 하여금 뚜렷하지 못하게 하고, 무엇을 해도 효과가 정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수련생 그쪽은 자료점인데 파괴되어서는 안 되고 혹은 누구누구는 이 며칠 상태가 좋지 않는데 즉시 그를 도와 공간마당을 청리해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이는 입장을 바꾸어 남을 위해 생각하는 것으로서 대법의 요구에 부합되므로 오히려 아무 일이 없다.
갖가지 표현이 아주 많은데 관건은 법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지적으로 안전문제를 대하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2년 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1/2520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