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20몇 년 동안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 속에서(나중에는 혐오로 발전했다) 힘겹게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말, 행위, 심지어 심리활동까지 나는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글을 잘 쓰는 것 빼고는 더 이상 그의 장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견디지 못해 여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그는 한마디 말조차 없었다. 이렇게 악순환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었다.
1998년에 나는 다행히 대법수련에 들어왔으며 대법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참으면서 이혼하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일깨웠다. ‘모두 당신 자신이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서’, ‘그러면 당신은 왜 이전에 남을 그렇게 대했는가?’(전법륜) 2001년 법을 학습하는 환경이 없어지자 나는 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위대함’에서 가르치신 ‘안정적인 매 한 걸음은 모두 빛나는 역사의 증거요,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위덕이다’를 보고 나는 울면서 다시 붕괴의 변두리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는 안 되고 온건하게 매 일보를 걷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법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모두 당신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로써, 반드시 대면해야 하고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한 가지도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다. 최후에는 걸어 왔는데, 사부가 당신들에게 배치해 준 이런 한 갈래 길을 당신들은 어떻게 걸어온 것인가? 이 일체는 최후에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련 과정 중에서도 이런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 일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2006년 캐나다 설법)와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고, 많은 일에서 심지어 당신은 논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서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인데, 아마 서로 이야기하는 중에 당신을 건드리고 아마 당신과 모순이 발생해 이해관계가 있는 이 요소는 바로 사부가 마련해준 것일 것이다. 아마 그가 말한 그 한 마디가 당신을 몹시 자극하고 당신의 아픈 곳을 건드렸기 때문에, 당신은 비로소 자극을 받았다고 느낀다. 아마 당신은 정말로 억울하겠지만, 그러나 그 한 마디 말은 꼭 그가 말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아마 내가 말한 것일 수도 있다. (뭇사람 웃음) 그때 나는 당신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려고 하는데, 그때 당신이 그를 들이받는다면 사실 당신은 나를 들이받고 있는 것과 같다’(맨해튼 설법) 이 두 단락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적어서 침대머리에 붙였다. 늘 눈물을 머금고 가련하고 무기력하게 한 글자 한 글자씩 읽었다. 단지 속인식의 참음이었으며 그 좋지 않은 물질은 4분의 1밖에 제거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 몇 년 동안 일하느라 바빴기에 진정으로 안으로 찾아 이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다. 몇 년간 법 학습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각 지역 설법도 한번 대강 훑어보았을 뿐 법리가 똑똑하지 못했고 더욱이 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지도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얼마만큼 해냈는가? 나의 말과 행동에서 ‘수련자의 참음’이 표현되는 것이 아주 적었다. 해내지 못하면 곧 ‘착실한 수련(實修)’이 아니며, ‘착실한 수련’이 아니면 곧 수련자가 아니고 더욱이 ‘대법제자’가 아니다. 이렇게 여러 해 수련했는데 ‘대법제자’가 아니라니. 이렇게 찾고 나서 충격을 받아 더 이상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평소에 남편이 나보고 ‘대법제자’가 아니라고 하면 그 어떤 욕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체계적으로 법학습을 하여 남편에 대한 원한의 마음을 제거해 자신의 일체 더럽고 썩은 것(일사일념을 포함하여)을 깨끗이 씻어내려고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자격이 있겠는가?
보름 전에 우리는 조금 편벽한 마을에 가서 법회를 열었다. 회의에서 노년 수련생 갑은 가정에서 수련을 잘한 사람을 예로 들었는데, 듣고 나니 바로 나를 말한 것이었다. 나는 온몸이 화끈거리고 아주 부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갑 수련생에게 “나는 당신에게 잘한다고 칭찬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자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곤 합니다”라고 했더니, 갑은 “나는 당신의 남편도 수련에 들어온 것을 보고 당신이 확실히 잘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 온몸의 세포는 모두 진동했고 한 가닥의 에너지가 온 몸을 관통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채찍이고 거대한 책임이다. 내가 더 이상 잘하지 못하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겠는가? 장래 자신의 중생을 대면했을 때 무엇이라고 자신의 이 단락의 수련 이야기를 해주겠는가? 나는 꼭 잘해야 한다.
‘당신이 정념을 확고히 할 때, 당신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을 때, 나는 조금씩 당신에게서 떼어 내 준다. 당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그만큼 떼어 내고 당신에게 그만큼 제거해 준다.’(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이런 확고한 마음을 보시고는 겨울 그날에 나를 ‘원한’의 고통에서 끌어내 주셨다.
일의 경과는 이러하다.
겨울 그날 오후, 우리는 소모품을 사고 돌아오는데 마침 기술 수련생 을(乙)을 만났다. 이웃 현의 수련생이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해 우리는 을 수련생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길에서 나는 자신이 원한을 제거하지 못해 고민한다고 얘기했고, 남편의 수많은 부족함을 늘어놓기도 했다. 말하면서 표정도 풍부했는데 남편의 표정을 비슷하게 따라 하기도 했다. 을은 말이 적었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는 “당신은 관용이 없어요” 또 “당신에게는 질투하는 마음이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별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속으로 ‘설마 내가 그를 질투한다고?’라고 생각했다. 을은 또 “나는 당신이 나쁜 것을 원수와 같이 증오하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일깨워 주었는데 나는 사부님께서 ‘정진요지-경지(境界)’에서 하신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라는 말씀의 다른 한 층의 함의를 깨닫게 됐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 잘되어서만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을 원수처럼 증오하는 것도 여기와 미묘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뿌리를 찾았고 갑자기 자신의 신체에서 원한의 찌꺼기들이 아주 많이 제거된 것을 느꼈다. 정말로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이십 몇 년의 원한이 이젠 나에게 근본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깨끗이 제거되지 못한 것을 느꼈고 뿌리는 아직도 있는데 4분의 1정도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밥을 먹은 후 을은 “내가 가기 전에 당신에게 한 마디 더 할게요. 당신은 그에게 자비가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불쑥 한 가지 생각이 일었는데 ‘나에게 너무 높게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천천히 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즉시 부정했다. 수련생이 보고 지적해 주는 것은 이 방면에서 반드시 제고해야 하는 것으로서 ‘우주중의 제일 칭호’인 ‘대법제자’는 반드시 ‘용맹정진’해야 한다.
나는 하루 동안 열심히 어떻게 하면 ‘자비’할 수 있겠는지 고심했다. 그의 잘못을 100번 교정해 주면 그는 100번을 덮어 감추고 또 다시 101번째를 범하는데 말이다. 사부님의 가르침인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대법(大法)만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나의 작풍(作風) 역시 당신들에게 남겨놓은 것이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정진요지-청성(淸醒)]도 잘 알고 있는데 관건은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가운데서 해내는 것이다. 나는 ‘자비’, ‘관용’을 작은 카드로 만들어 등줄에 달아맸는데 그가 늘 흔들거리는 것이 마치 나에게 “해냈습니까? 해냈습니까?”라고 묻는 것 같았다.
저녁 7시 반이 되어서야 을은 돌아왔고 우리는 함께 동공을 연마했다. 두정포륜(頭頂抱輪)을 할 때 당시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일념 ‘결과에 집착하고 남편의 개변을 보고야 만다’가 생각났다. 순간 바로 확 트였는데 이것이야말로 나의 20몇 년 동안 원한의 뿌리였다. 그가 변하지 않자 나는 그를 변하게 하기 위해 급급해 하면서 악담을 했는데 악순환이 형성됐다. 그것을 찾아내고 제거했다. 나는 그릇만한 한 덩어리 뿌리가 전자파가 가열된 것처럼 중간에서 부서진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할 것은 사부님께서 ‘맨해튼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그러한 것들을 내가 당신들을 위해 모조리 떼어버릴 수 있으나, 양성된 습관은 당신들이 반드시 제거해야 하며, 반드시 제거해야 하고,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이튿날 아침을 먹을 때 나는 을하고 나의 감수와 제고를 나누었으며, 나에게 도움을 준 것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얘기했다. 코가 시큰거렸는데 이는 제고된 후의 격동인 것이다. 이것은 이십 몇 년 이래 처음으로 마음이 철저하게 가벼워진 것이었고, 나의 수련의 길에서의 한차례 큰 건너뛰기였다.
지금 사부님께 향을 올리면 더는 두근두근해 하면서 “사부님 저는 꼭 해낼 것입니다”가 아니라 확실하게 “사부님, 제자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에 감사를 표현할 말이 없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편파적인 부분은 인색하지 말고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4/2518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