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내가 수련에 들어왔을 때 갓 20세 남짓이었는데도 이미 늙고 병든 환자였다. 그러나 대법을 수련하기 전 이미 수련에 대해 대체적인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수련에 들어 온 후 인체와 병업, 심성제고 사이의 관계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인식이 있었다. 한 수련인이 수련과정 중에서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병업 상태가 나타나는 것은 모두 부동한 시기에 심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용한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수련 전 온몸이 병이었지만 수련 후 아주 빨리 전신이 가뿐했다. 설령 정법 수련시기, 구세력이 아주 적어도 이 방면에서 나를 교란할 수 있다.
아래 이 방면에서 내가 어떻게 구세력을 부정했는가를 몇 가지 예를 들겠으니 지금까지 아직도 신체 방면에서 구세력의 교란을 당한 수련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부님의 법에서 나는 병업과 수련의 관계를 알았다. 사부님은 말씀하셨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 [파룬따파의해 – 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신 수련생을 제외하고 사부는 99년 7·20 이후에 당신들에게 개인 수련을 위한 어떠한 관(關)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개인수련은 전면적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진정한 수련은 병이 없다는 것을 나는 법에서 알았다. 그러면 이 정법시기에 나타난 소위 모든 병은 사실 모두 다른 공간의 교란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교란을 타파하겠는가? 이것은 우리 대법제자가 실제적으로 자신을 수련해야하며 뿌리로부터 구세력의 교란을 타파해야한다.
어느 한번 내가 수련 전에 걸렸던 치질이 또 자라 근 1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는데 쟁투심, 질투심, 안일함을 구하는 마음 등, 한 무더기를 찾았다. 발정념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오히려 갈수록 심해졌는데 후에는 그 치질이 달걀의 노른자만큼 커져 나는 심지어 몸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의 힘줄이 함께 아팠다. 화장실에 가서도 앉기만 하면 피가 흐르고 심지어 재채기를 해도 속옷에 피 흔적이 있었다. 나와 모친은 함께 자는데 모친은 1999년에 수련을 했으나 박해가 시작된 후 포기했다.(지금 다시 수련함) 나는 감히 모친이 알지 못하게 해 어떤 때 조여서 아프면 이를 악문다. 이 기간에 치질이 없는 것을 구하는 마음이 갈수록 많아졌다. 내가 수련생에게 알렸을 때 수련생은 말했다. 기왕 넘기지 못할 바엔 아예 병원에 가서 잘라 버려라. 그것은 사람의 병이 아니므로 나는 틀린 것을 알았다. 개인 수련기간에도 그것은 병이 아니라 업력이 나온 것이며 그 업력이 아직도 거기에 있어 또 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 정법수련시기 구세력이 내 공간을 뚫고 육체상에서부터 나를 박해한다. 그것은 사람이 소위 잘라 버려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가? 분명 안 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움직여서 그래, 집에 치질약이 있으니 내가 먼저 좀 써보고 호전되면 다시 심성에서 문제를 찾자. 마음에는 틀린 것을 번연히 알았으나 그래도 했다. 그 결과 바르니 도리어 더욱 아팠다. 지금껏 이렇게 아파 본 것 같지 않아 나는 한편으로 입을 막고 자신이 소리를 내지 않게 하고 한편으로 마음속으로 울면서 말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그때부터 다시는 그 무슨 속인의 방법을 써서 호전시키겠다는 염두가 없게 되었다.
하루는 내가 길을 걸으면서 ‘홍음2’ ‘집착을 버리자’를 생각했는데,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놀라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렇다,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그러나 나는 그 치질을 자신의 신체상의 아픔으로 여기지 않았는가? 그 아픔을 자신으로 여겼는가? 그 원본은 내가 아니지 않는가, 그 아픔도 근본 내가 아니다. 나는 또 앞을 향해 걸으면서 마치 아프지 않은 듯 느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본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는 아프지 않았고, 그 달걀노란자위 만큼 큰 치질도 점차 소멸되었다.
한번은 내가 점심때 밖에서 걷고 있을 때 머리가 좀 무거운 감을 느꼈다. 이런 현상이 한번 나타나면 이어서 열이 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나는 당시 생각을 움직였다. – ‘오! 또 열이 나는구나.’ 이 염두가 나올 때 이미 틀린 것을 알았는데 ‘내가 어찌 열이 날 수 있는가? 이것은 바른 염두가 아니니 마땅히 그를 제거하자.’ 비록 이렇게 생각했으나 즉시 아주 견정하게 이 일념을 제거하지 못했고 구세력의 배치를 제거하지 못했다.
점심밥을 먹은 후 나는 머리가 갈수록 무거운 감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아픔도 함께 나타났다. 나는 맥이 없어 침대에 누웠는데, 곧 일어나 발정념을 하려고 생각했으나 힘이 없어 앉지 못했다. 이때 전 한 시간에 ‘밍후이주간’에서 마음속으로 자신은 대법제자라고 묵념하여 병업 박해를 타파한 체험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하여 나도 마음속으로 묵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고 누구도 나를 박해할 자격이 없다.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첫 번째 읽을 때 그 묵념 소리는 모두 무기력했다. 나는 계속 묵념하였고 2번째부터는 힘이 있기 시작하였다. 제3번째부터는 진정한 나의 그 견정함을 나는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견정함은 나로 하여금 ‘훅’ 단번에 침대에 앉기 시작해 입장하고 발 정념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앉기 시작한 일순간 신체상의 부정확한 상태는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이 증상의 출현은 ‘수족구병’ 이 단어가 출현한 몇 년 전에 나타났다. 당시의 표현은 손등과 발등 부분에(혀를 포함하여) 모두 붉은색 물집이 나 가렵고도 아팠다. 가족이 발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고의로 지체하여, 그들이 모두 다 식사하면 그제야 가서 먹었다. 입이 아파서 매우 늦게 먹었고 겨우 일부 국 따위를 조금 먹었기에 며칠 동안 배가 고팠다. 후에 그것의 표현은 갈수록 중했으나 나는 또 그 근원을 찾지 못해 발정념도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나가서 수련생을 찾았다. 수련생 아주머니와 나는 장소를 약속하고 만나, 나에게서 발생한 일을 알려주었다. 나는 교류하기 시작했으나 마치 실질적인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말했다. – 너는 돌아가서 법을 많이 공부하고 발정념 해라!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가서 마음대로 먹고 오라고 했다. 나는 쌀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쌀국수를 먹으면 나의 입이 견딜 수 있겠는가 물었다. 나는 상관없다면서 먹는 것이 좀 늦을 뿐이며 쌀국수는 빨리 먹기 편리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쌀국수 매점 앞에 와서 2인분의 쌀국수를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나의 온 입이 상처투성이인 것을 고려하여 특별히 매점 주인에게 알려 고추가 없는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져온 것은 모두 고추가 있어 주인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바꾸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당시 생각했다. 됐어, 이미 만들어 놓았는데 다시 한다면 주인에게 번거로움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추 먹는 것이 두려우면 자신의 입이 아픈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매점 주인은 내가 고추를 넣은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먹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도 모르게 입은 아프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또 그 아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자연히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손에 있는 여드름도 서서히 소실됐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입에 있던 상처는 없어졌고 손과 발에 있던 물집도 이튿날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사부님의 한 단락(2010년 뉴욕법회설법) “일부 사람은 병이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하자 나았고, 정말 나았다. 그러나 구세력은 당신의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당신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고험하기 위해, 그것은 여전히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원래 병이 있던 부위에 병이 있는 아픈 감각이 있게 하거나, 혹은 병이 있는 반응에 이어 증상까지도 똑같게 해서, 당신이 대법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본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과 신의 일념(一念)이라. 당신이 움직인 것이 정념이라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가상(假相)이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하며, 내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는데, 이 정황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내심에서 우러나온 일념이라면, 즉시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이건 사람이 말로만 해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견정한 정념은 당신의 내재(內在)가 우러나온 것이며, 형식이 아니고, 또한 입이 말한 것이 아니다.”를 되새기자.
사람과 신은 일념지차이니 우리는 자기의 정념을 더욱 견정히 하자.
문장발표: 2011년 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2517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