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아래는 우리가 법을 배우고 법을 사용한 약간의 체험이다. 글로 적어 수련생과 교류하고자 하며 부당한 점은 수련생이 보충 원용해 주기 바란다.
하루는 수련생 갑이 “우리가 매일 ‘전법륜’을 받들고 보면서 아직 사용할 줄 모른다. 우리가 사악이 올 때 파룬(法輪)을 돌리자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련생 을은 듣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대꾸는 하지 않았다. 병이 듣고 “사부님만이 파룬을 돌릴 수 있어, 우리가 파룬을 돌릴 수 있을까?” 라고 말했다. 을도 못마땅해 하고 동의하지 않은 사상물질이 자신이 아닌지 알고 있다. 사람의 이 일면은 이해할 수 없고 한 눈에 환히 볼 수 없다. 간격이 본성의 일면을 저애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본성의 일면은 다 알고 있다.
사부님은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당신들, 그 본질적인 생명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명확히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파룬을 돌리다.’에서 말씀하셨으며 또 사부님은 ‘대원만법’의 ‘3. 동작설명’에서 우리에게 “제4장 공법을 法輪周天法(파룬쩌우톈파)라고 부른다. 우리가 불가와 도가의 두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주로 여러분이 알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이전에 우리는 큰 法輪(파룬)을 돌린다고 했다.” 라고 알려 주셨다. 수련생 을도 자주 우주를 연마하고 파룬을 연마한다고 말한다. 갑 수련생이 말했는데 왜 을과 병은 오직 사부님만이 파룬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도 파룬을 돌린다고 말하면 동의는 하지 않고 못마땅해 하는가? 우리가 제3장 공법을 할 때 우리도 파룬을 4번 돌리지 않는가?
하루는 수련생이 사부님의 ‘대법은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다.’에서 “대법제자로서 당신의 일체는 곧 대법(大法)이 구성해 준 것이며 가장 바른 것으로써, 오로지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시정할 수 있을 뿐이다”라는 이런 한 단락 말씀을 이야기 하였다. 갑 수련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을은 “수련해 내면 가장 바른 것이고 수련해 내지 못하면 아직 수련해야 한다.”고 하였다. 병은 “그들이 왜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알았다. 그들이 아직 좋지 않은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장 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수련생은 “우리가 오직 사부님이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를 똑똑히 이해하고 법에 따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는가?” 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아직 사부님의 법에서 답안을 찾으면 그 한마디 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가서 응용하면 법의 위력은 체현되어 나온다. 수련생은 마땅히 사부님의 법을 똑똑히 이해하는데 힘써야 한다. 법을 읽은 수련생에 한하여 논의하지 않으면 좋다.
사부님은 ‘캐나다 법회설법’에서 우리에게 “그러나 그 본질적인 당신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한 당신이다. 당신의 염두, 당신의 사상, 당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동기의 발원지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당신이다. 속인 중에서 표현된 이 언어·사유형식은 층층이 여기까지 전도되어 온 것에 불과하며 그것은 부동한 층차의 것을 경과하고 부동한 층차 경지의 관념이 그 속에 뒤섞여 최후에 사람 여기에서 표현해낸 언어·사유·행위이다.” “그 가장 미시적인 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인데 나는 가장 미시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당신을 개변시키고 있다.”(캐나다 법회설법)라고 알려 주셨다.
사부님은 “사람과 신의 일념이다.”(2010년 뉴욕법회설법), “오늘날 대법제자에게 부여한 것은 신의 상태이므로 당신은 신의 상태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각 지역설법3- 대뉴욕 지역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이런 법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본원은 사부님이 이미 개변시켜 주셨고 가장 바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 사상(일부는 후천적으로 형성되고 일부는 구세력이 배치했고, 일부는 법을 실증하지 않는 부의 생명이 우리에게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다.)이 모두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사실 수련생은 다 알고 있다. 오직 우리의 진정한 것만이 가장 바른 것이고, 사람의 이 일면은 아직도 명확하지 못하며 투철하지 못한 것이다. 왜 사람 이 일면은 명확하지 않는가? 사실 수련생이 ‘안으로 찾아 진정한 자신을 찾는 것이 근본이다.’
아래 수련생이 법을 실증하는 체험을 한번 보자. 한 수련생이 표면상 부모가 확실히 틀리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머릿속에서 혼란스럽게 그들을 질책한다. 그녀는 틀리다고 생각하고 발정념하고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개의치 않고 화내지 않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3일간 해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관념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4일 째 그녀는 정념이 족하여, 파룬이 단번에 그 끊임없이 몰려오는 나쁜 사상을 끊어버리자 단번에 다 소멸되었다. 이후 반년이 지나도 부모의 나쁜 점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런 나쁜 물질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생각’할까?
하루는 수련생이 발정념을 할 때 하나의 벽을 보았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조성한 것 같고, 벽이 ‘대법제자는 가장 바른 것이 아니다’라는 의념을 발한다. 수련생은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 “구 우주의 생명으로서 일체 생명의 요소를 포함하여 정법 이 일에서, 나의 선택 중에서, 모든 생명들이 모두 내가 선택한 대로 그것을 원용(圓容)하고, 당신들의 가장 좋은 방법을 내놓으며, 내가 갖고자 하는 것을 고치려하지 말고 내가 한 말에 따라 그것을 원용하는, 이것이 바로 우주 중 생명의 가장 큰 선념(善念)이다.”(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을 외웠다. 연이어 그는 사부님이 말씀하신 대법제자의 일체는 바로 대법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장 바른 것이라는 것을 말했다. 모든 신우주의 생명도 반드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소멸되고 사라졌다.
사람과 신의 일념이라는 것에 관하여 또 하나의 체험이 있다. 법에서 알게 되었는데 대각자는 “공간이 없고 시간 개념이 없는 그런 단원세계(單元世界)를 가리킨 것으로서 바로 대각자가 머무는 세계다.”(전법륜)에 머물러 있다. 전에 이 법을 알고 있었지만 다만 한동안 지나서 다시 읽을 때 사부님의 그런 법이 생각났다. 시간에 집착하지 않으니 머릿속에 마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정말로 사라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 마음이 잇따라 사라졌다. 하지 못할 때는 사람의 마음이 저애하고 있다. 나쁜 물질을 해체시키고 끝까지 법에 동화한다. 법리를 명확히 하면 미혹되지 않는다. 무엇이 깨달음인가, 바로 믿음이다. 성심성의껏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는 것이다.
수련생의 사람의 일면이 말한다. 나는 깨닫지 못하고 사용할 수 없고, 법을 적게 배우고 교육수준이 낮고, 시간이 없고 그는 나쁘고 그는 안 되며, 나도 되지 않는다. 이런 사상은 모두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고 관념과 업력이 당신을 통제하여 말하게 한다. 구태여 할 필요가 있는가? 나는 바로 대법이 구성한 가장 바른 것이다 라고 말하면 좋지 않는가. “우주의 특성이 직접 당신의 신체에서 반영되어 나오며, 직접 당신 신체와 통한다.”(전법륜) 그러면 안으로 찾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당연히 찾아야 한다. “표면 각층 법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물건은 제거해야 한다. 자신의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까지 모두 완전히 대법에 동화되어야 한다.
다만 이 한 마디 법에 대한 체험이 있기에 이만큼 말한다. 그 밖에 2006년에 ‘밍후이주간’에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자’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수련생이 법공부를 할 때, 사상 교란이 있으면 발정념을 하여 해체시켰다. 교란이 있으면 해체시키고, 또 교란하여 해체할 수 없을 때 사부님께 가지해 주시길 바랐다. 이때 하나의 소리가 그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이 과시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시심이 또 온 것이다. 아, 나는 깨달았다. 진선인(眞善忍)으로 구성된 생명으로 발정념을 하면 순식간에 해체된다.
문장발표: 2012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2516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