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 중에서 성숙
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생 집에서 나와 큰 거리에 있는 여관을 향해 걸었다. 숙식비용이 택시비에 비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택시 타기를 싫어했고 때로는 적당한 여관을 찾으려고 밤길을 몇 리나 걸었는데 먼 때는 10리 길을 걸어야 했다. 혹시 시간이 늦어 여관문이 닫힐까봐 뛰어 갈 때도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렇게 오고 가고 했지만 나의 행적을 아는 수련생은 거의 없었다. 수없이 많은 밤을 이렇게 현성(縣城) 거리를 다녔다. 금생금세에 자신이 대법제자가 될 수 있고 사부님의 정법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모든 하는 일은 가장 신성한 것인데 어떻게 고생이라고 느낄 수 있겠는가? 만약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사부님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속세에 빠져 세간의 명리정(名利情)에 의해 생명은 부식될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정말 두려운 것이다.
——본문작자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인터넷 법회을 통하여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중에서 자신이 수련한 일부 체험을 사부님께 회보하고 동수들과 함께 교류하고자 한다.
1. 법공부를 잘하고 심성을 수련하여 대법에 동화되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대법제자(大法弟子)의 위대함은 당신들이 사부가 정법하는 시기와 함께 있으며 대법을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정진요지2 –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반드시 시시각각 대법을 수호하고 실증해야만 자신이 세간에서 존재하는 근본적인 의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몇 년 간 나는 줄곧 자료점과 협조인 일을 하였다. 나중에 자료점이 많아짐에 따라 우리 자료점의 일이 상당히 줄었고 몇 년 전처럼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법은 수련에 대한 요구가 더욱더 엄격했다.
몇 년래 나는 항상 참답게 법공부하는 것을 견지했다. 오직 법공부를 잘해야만 자신의 수련을 보장할 수 있고, 대법의 일을 잘할 수 있다. 비록 자료점의 일이 가장 바쁜 시기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시간을 역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하는 것을 보장했다. 매일 자신의 법공부가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했을 때에는 정말로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았는데 강대한 에너지가 법으로부터 들어와 온 몸을 포용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설령 추운 겨울이라 해도 역시 몸과 마음이 훈훈하고 따뜻하여 아주 편안하였으며 법 공부할수록 더 하고 싶은 그러한 절실함을 체험했다. 법공부 중에서 진정으로 마음에 와 닿을 때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하면 법이 곧바로 자신에게 점화해 준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내가 법공부하고 있을 때 법 중에서 나에게 모 지역에 갈 것이 수요 된다고 명확하게 점화해 주었다. 나는 다급히 그 모 지역의 수련생 집으로 갔다. 그는 나를 만나자 기뻐하면서 마침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면서 여기 박해를 폭로한 문장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문장을 손에 쥐고 그것을 정리한 후 즉시 밍후이왕에 보냈다. 이런 방면의 예가 적지 않지만 더 말하지 않겠다. 오직 사부님을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법 공부한다면 곧바로 이러한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매번 법공부할 때마다 모두 이런 좋은 상태인 것은 아니다. 일이 많아 사람의 마음이 올라올 때면 역시 법공부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항상 되도록 이 좋지 못한 상태를 돌파했다. 왜냐하면 나는 법공부는 형식에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만약 임무 완성으로 생각한다면 아무런 결과도 얻는 것이 없으며 바로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나는 주로 전법륜(轉法輪)을 많이 공부하고 또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여러 번 참답게 공부했다. 더욱이 박해가 시작된 후 사부님의 매 차례 설법은 모두 우리에게 곤란 속에서 어떻게 잘 걷고, 바르게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셨는데 모두 겨냥성이 있었다. 나는 되도록 법공부를 투철하게 하였으므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 단계에서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해야 하며 현재의 일을 잘하도록 하신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매번 한 시기 나는 또 사부님의 경문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부, 설법 모두를 공부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수련 중에서 편차가 적어지고 굽은 길을 적게 걷게 했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면 자신이 끊임없이 법에 동화되어 많은 집착심이 제거되는 동시에 틀림없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정법 형세에 바싹 따를 수 있다.
2. 진실하게 신용을 지키며 수련생과의 연분을 소중이 여기다
‘동수(同修)’라는 두 글자는 절대로 하나의 표면 층차에서의 간단한 칭호가 아니다. 특히 대법 수련 중에서 그 내포는 아주 깊다. 우리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서로 잘 배합하여 사부님께서 부여한 중생구도의 중대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무량무제한 중생의 생사존망과 관계되는 대사이다.
나는 줄곧 수련생 간의 연분을 아주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수련생을 진실하게 대하며 일에 봉착하게 되면 먼저 법의 각도에서 수련생을 생각했다. 이렇게 하자 나와 적지 않은 동수들 간에는 서로 믿음이 형성되었고 사부님을 돕는 정법 중에서 정체가 아주 잘 이루어졌다. 몇 년간 나는 모두 진실한 마음에서 믿음으로 수련생들과 협력하여 법을 실증했다.
한 번은 우리 지역에 정체적으로 협조해야 할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현성에 없다보니 한 수련생과 현성에서 만날 시간과 지점을 약속한 후 그로 하여금 기타 수련생들에게 알리게 하려고 생각했다. 약속한 그날 오후 나는 마땅히 그 수련생을 만나야 했는데 그날따라 큰 비가 억수로 퍼붓기 시작했다. 역전에 도착하여 보니 그 현성까지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비옷을 걸치고 자전거를 타고 현성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60여리 길을 차로가면 바로 반시간 정도 걸리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자면 3시간이나 더 걸리고 게다가 또 큰 비까지 퍼붓다보니 얼마나 더 걸릴지 몰라 지체할 수 없었다. 사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만 자전거를 쾌속으로 몰아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하여 모든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대략 2리쯤 갔을 때 뒤에 한대의 모 지역에서 현성으로 가는 장거리 운행 버스를 보았다. 나는 별로 희망을 걸지 않고 기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는데 상상외로 차가 나를 향해 질주해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큰 비가 퍼붓고 장거리 버스인데다 또 나에게는 자전거가 있으니 어떻게 차에 오를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버스가 나와 반리쯤 되는 거리에 멈춰서더니 기사는 내가 도착할 때까지 차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근처까지 갔을 때 그는 친절하게 “내가 보니 당신이었어요. 이렇게 큰 비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당신을 태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차를 세우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기사는 바삐 나의 자전거를 버스 뒤편의 고리에 걸어 놓았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곧바로 차에 올랐다. 차에 앉은 후 나의 온 몸에서 뜨거운 에너지가 흘렀는데 남몰래 사부님의 교묘한 안배와 무량한 자비에 감탄하였다.
나는 시간 전에 약속한 지점에 도착했다. 속으로 수련생의 집도 여기서 3,4리 거리가 되므로 반드시 제 시간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인내하며 기다리다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약속한 시간은 이미 많이 지났다. 나는 수련생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그가 이런 큰 비에 내가 올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가 하려는 일을 하지 못했지만 마음은 아주 담담했다. 그러나 개인 수련에 대해서는 도리어 아주 성실하다고 느꼈다. 아주 많은 경험에서 나는 수련생 간의 성실함과 믿음이 아주 귀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수련생 간에 서로 성실하고 완벽한 믿음이 있어야만 견고하여 깰 수 없는 정체가 형성될 수 있으며 사부님을 돕는 정법노정에서 중생구도를 잘할 수 있다.
3.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다
2001년부터 나는 현지의 자료점을 담당했는데 오늘까지 10년이 되었다. 이 10년 동안의 풍랑 속에서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위덕을 체험한 것이 얼마인지 일일이 다 셀 수 없다.
자료점을 담당한 후 두 가지 제일 중요한 문제가 줄곧 마음속에서 나를 고험하였는데 하나는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체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 생사를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부님과 법을 믿는 문제에서 나는 종래로 사부님의 법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설령 일부 설법에서 자신이 잠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다 해도 나는 자신에게 아직 높은 층차에 도달하지 못해 잠시 이해할 수 없지만 향후 수련 제고되면 자연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의 박해 중에서 압력이 얼마나 크든지를 막론하고 나는 내심에서 모두 대법에 대한 믿음을 움직인 적이 없었다. 바로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정념에 의거했다. 10년의 고난 속에서 미세한 것까지 사부님의 보호 하에서 나와 수련생들은 자료점에서 하나하나 위험을 뚫고 줄곧 오늘까지 걸어왔다.
자신의 일체와 생사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는지? 처음 시작할 때 나의 마음은 그다지 안정되지 못했다. 오직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필사적으로 뛰쳐나와 강경하게 맞설 생각뿐이었는데 이것은 완전히 법에서 문제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을 통해 점차적으로 법 중에서 승화되면서 정념이 갈수록 강해졌으며 여러 가지 집착과 두려운 마음이 갈수록 약해졌다. 한 번은 사악과 직면했는데 자신에게 근본 두려운 마음이 없었으므로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 하에 모두 담담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만약 한 수련하는 사람이 능히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생사(生死)는 영원히 당신을 멀리 떠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부러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당신이 법속에서 이 일보로 수련되어야만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생명이 되도록 할 것이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매번 중대한 곤란과 위험한 환경에 봉착할 때면 나는 자신에게 ‘당신은 생사를 내려놓았는가?’ 라고 물었다. 그러면 ‘내려놓았다!’라고 대답한다. 많은 투쟁과 단련을 거쳐 대법을 성취했다. 나는 사상 중에서 근본적으로 구세력과 사악을 부정하고 나니 점차적으로 생사의 개념이 없어졌고 또 박해 당한다는 개념도 없어졌다. 나도 많은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대법에 동화되었으며 대법 역시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성취시켰다. 나는 자신을 완전히 대법 중에 용해시켜 정말로 담담하게 일체를, 생사마저도 내려놓을 수 있었으므로 거기에 또 그 무슨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마(魔)가 한 자(尺) 높으면 도(道)는 만장(丈) 높다. 내가 사악의 이치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악이 도리어 나를 무서워했다!
한 시기 당 지역의 사악들이 호구 조사를 빙자하여 대법제자에게 나쁜 일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루는 경찰이 나의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동요하지 않고 그들의 가상을 지켜보면서 장시간 발정념으로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다. 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사악이 나에게 더는 발정념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다. 나는 사악에게 당하지 않고 계속하여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철저히 제거했다. 그 후 경찰은 다시 오지 않았다. 법을 위하고 자료점을 책임진 각도에서 나는 자신의 책임을 감히 느슨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일에 봉착하면 바로 발정념했다. 평시에는 특히 발정념을 더 중시했다. 발정념은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 중의 한 가지로서 우리는 절대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람의 사상이 우위를 점한다면, 그럼 그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신의 사상과 사람의 정념이 우위를 점한다면, 그는 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고 말씀하셨다. 나는 ‘만약 우리가 사람의 관념을 섞어 대법을 대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바로 우리가 자신의 관념을 대법 위에 놓은 것이며 사람의 논리로 자기를 실증하려고 생각했으므로 대법을 위에 놓은 것이 아니다.’고 깨달았다. 그렇게 하면 법이 우리에게 신기를 나타내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수련인의 정념으로 신의 각도에서 속인의 관념을 철저히 개변하고 100%로 사부님과 법을 믿는다면 대법의 신기는 수시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이러면 우리의 수련은 갈수록 더욱 견정해질 수밖에 없다.
때로 나는 어떤 수련생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나 혹은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어떤 일을 하려면 곧 순정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실 것을 청하는데 아주 많은 때 모두 꼭 알맞게 잘 마무리 될 수 있었다. 한 번은 한 수련생을 만나려고 생각했는데 무턱대고 다른 한 수련생 집으로 가면서 내가 만나려는 수련생이 그의 집에 있는지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집으로 갔는데 내가 만나려는 그 수련생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어제 막 왔으며 내일 당신한테 가려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오늘 때마침 잘 왔다고 기뻐했다.
한 번은 수련생이 “우리 지역에서 납치되었던 수련생 몇 명이 나왔어요.”하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 중의 한 수련생을 만나야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그 수련생의 가족이 그에게 아주 엄밀하므로 우리가 가서 만나기 힘들 거라고 말했다. 나는 바로 사부님께 안배해 줄 것을 요청하자고 말했다. 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로 그 수련생 집으로 갔다. 나는 반드시 가서 그 수련생을 만나야 했다. 하나는 그들이 박해 당한 원인을 찾아야 했고, 두 번째는 사악을 폭로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어떠한 고려도 없이 그녀의 집 대문을 두드렸는데 나와서 문을 연 사람이 바로 그 수련생 본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 한 동안 가족이 그녀에 대하여 아주 엄밀했는데 남편이 출근하지 않고 전문적으로 집에서 자기만 지키고 있다고 했다. 지금 마침 자고 있으니 내가 이렇게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바로 대문 밖에서 반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일부 기본적인 상황을 이해했는데 우리가 떠날 때까지 그녀의 남편은 자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가운데 조그마한 틈이 있거나 혹은 순수하지 못한 목적을 갖고 심태가 바르지 않다면 이러한 신기가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4. 고생을 낙으로 삼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오늘 또 큰문을 열고 대법을 전수하여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당신들은 또 무슨 내려놓지 못할 것이 있는가? 당신은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천국으로 갖고 갈 수 있단 말인가?’(정진요지-진수)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98년에 법을 얻었으며 기회가 없어 사부님을 뵙지 못했다. 하지만 사부님의 웅장한 모습은 항상 나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사부님께서 천신만고의 고생을 다 겪으시며 우리를 구하러 세간으로 내려와 우리들에게 최고의 영광을 돌려 주셨는데 우리가 수련 중에서 겪는 고생이란 너무나 하찮은 일이 아닌가? 10년간 사부님을 돕는 정법 중에서 나는 모진 시련을 겪었다. 가끔씩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즉시 다른 분위기로 변한다. 금생금세에 자신이 능히 대법제자가 되어 사부님과 함께 정법을 하는 이 일체가 모두 얼마나 신성한 일인데 감히 고생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만약 고생을 두려워한다면 사부님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며 인간 세상에 파묻혀 세간의 명리정에 생명이 부식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2008년 어느 날 나는 모 지역에서 자료점에 쓰는 물건을 가지고 우리 지역으로 돌아왔다. 거기는 우리와는 60,70리의 먼 거리이다.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차를 타지 않고 자전거에 싣고 오려고 생각했다. 3개의 큰 상자를 자전거 뒤에 묶어놓고 양옆에도 각각 하나씩 얹은 다음 또 하나를 더 얹었다. 처음에는 60,70리 길은 그렇게 멀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몇 리 못가서 넘어질 뻔 했는데 좀 힘들었다. 당시 나는 바퀴에 바람이 없는가 생각하고 내려서 보니 바퀴의 바람은 탱탱한 대로였다. 중량이 많아서 이렇게 힘든가 보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전거는 갈수록 무거웠는데 마치 어떤 물건에 걸려 당기는 느낌이었다. 너무 힘든 나머지 나의 두 다리는 시큰하고 아팠다. 나는 이렇게 계속 있는 힘껏 자전거를 밀고 앞으로 전진했다. 대략 20여리 간 후 완전히 지쳐 버렸다. 이때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갈 길은 아직 30여리나 남아 있었다.
오늘 얼마나 힘들든지 막론하고 힘내어 숙박할 곳까지는 가야 했다. 나는 수련인이지 속인이 아니므로 요만한 고생이 다 무엇이냐? 하면서 속으로 자신을 격려했다. 하지만 몇 미터 못가서 두 다리는 힘이 빠졌다. 하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가면서 다리를 좀 쉰 후 또 자전거에 올랐다. 이렇게 가다가 또 조금씩 멈춰서고 하니 속도가 너무 느렸다. 그래서 아예 목숨 내걸고 앞으로 밀고 가보자고 생각하면서 사부님께 가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 – 정념정행)를 외웠다. 나는 속으로 ‘다리는 내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이다. 아파도 앞으로 가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억지로 밀고 나갔다. 두 다리 아픔은 말로 어떻게 형용할 수조차 없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법을 외우면서 간 거리가 1리는 족히 되었다. 진짜로 타고 갈 힘이 없어 자전거에서 내려 밀고 얼마간 갔다. 나중에 나는 다리가 아픈 것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 것으로써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사악의 교란이라면 나는 당신들을 절대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다리가 바로 별로 아프지 않았다. 4,5리의 거리가 남아 있을 때 차가 단번에 가벼워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으로 집까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왔으며 다리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또 한 번 실천 중에서 사부님께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전법륜)고 하신 법리를 체험했다.
차위의 물건을 내리고 자전거를 작은 칸에 옮겨 놓았다. 며칠 후 다시 자전거를 타려고 보았는데 자전거 뒷바퀴의 바람 넣는 곳의 부속이 달아나 버리고 다만 거기에 통풍구 테만 멀쩡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바퀴는 탱탱한 대로 있었다. 이때 나는 그날 사악이 나를 교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몇 십 근이나 되는 물건을 자전거에 실은 데다 또 한 사람이 앉으면 자전거 바퀴의 바람 막는 나사가 없는 상황에서 그 무거운 중량으로 인해 자전거 바퀴의 통풍구가 밀려 나오게 되면서 바퀴의 바람이 즉각 샐 수 있다. 이렇다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주었겠는가? 축하할만한 것은 비록 내가 고생을 하였지만 사부님께서는 나를 위해 더욱 많은 난을 풀어 주셨다는 것이다.
5. 자신의 마음과 용량을 확대
나는 자신의 마음이 아직 일정한 정도로 홍대한 용량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씩 사람의 사상 속에 빠져 다른 사람을 가늠하면서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몰랐다. 전 한 시기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번 점화해 주셨다. 나도 이 방면에서의 부족점을 가슴깊이 느끼고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제고하려고 노력했기에 평시에 자신이 다소 진보했고 상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건적인 시각에는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을 넣었다가 즉각 바람을 빼버린 것처럼 또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나는 자신이 진심으로 노력하지 않은 데 대해 원망하면서 아주 괴로웠다. 나는 가슴깊이 수련인은 반드시 더욱 높은 경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중에서 능히 일체의 사람과 일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자신의 사명을 더욱 잘 완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발정념 시 자신의 배가 끊임없이 확대되었는데 잠깐 사이에 능히 한개 성시(城市)를 담을 수 있을 만큼 커진 것을 뚜렷하게 보았다. 나는 사부님과 대법이 자신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엄격하고 갈수록 더욱 높아 나로 하여금 응당 도달해야 할 표준에 도달해야 된다는 것을 점화해 주셨다고 깨달았다. 이것은 하나의 용량을 확대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표준에 도달해야만 사부님과 대법이 부여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협조인과 함께 한 노년 수련생의 집으로 가서 다른 동수들을 도와 자료점을 건립할 문제를 상의하였다. 상의가 끝나고 보니 이미 한 밤중이 되었다. 나는 여관에 갈 준비를 하는데 노년 동수는 자기 집에서 하룻밤 머물라고 만류했다. 보아하니 시간이 너무 깊어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수련생 집에서 숙박을 했다.
전 한 시기 내가 현성에 가서 동수들과 일부 일들을 협조할 때 일반적으로는 일을 다 끝마치고 나면 한 밤중이 돼 성시에서 좀 떨어진 가격이 싼(5원) 여관을 찾아 투숙했으며 이처럼 수련생 집에서 자는 경우는 아주 적었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올 때에도 종적을 감추었고 갈 때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울러 또 한 단락 시기 사악이 늘 나를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었다. 동수들도 모두 내가 박해(당연히 나는 승인하지 않음)의 중점 대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무릇 어느 수련생의 집으로 가든지 모두 아주 침착해야 하며 수련생의 수련 환경을 고려하여 그들에게 그 어떠한 번거로움과 압력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 방면에서는 대부분 모두 여 수련생이므로 숙박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그 여 수련생의 집에 숙박한 것은 그녀의 연령이 거의 나의 모친과 비슷했기에 마음이 좀 느슨했던 것이다. 생각 밖으로 이 노년 동수가 일이 일어난 후 다른 한 수련생에게 “당신은 왜 그를 나의 집에서 떠나게 하지 않았는가?”고 말했다는 책망의 말을 들었다. 나는 당시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어쩌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하게 그녀가 자고 가라고 만류했는데….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수련생을 원망해서는 안 되었다. 모두 내가 주도면밀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녀의 집에 숙박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는 곳마다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왜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았는지? 나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항상 사부님의 말씀대로 잘하지 못한 것을 원망했다. 나는 이 일로 인해 더는 그 노년 수련생에 대한 원망이 없었다. 나중에 그 노년 수련생을 만났을 때 마음속에는 마치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의 용량이 확대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부터 매번 현성에 가면 더는 수련생들 집에 숙박하지 않았다. 매번 일이 끝나면 바로 제일 합당한 여관에 가서 투숙했다. 거의 매번 여관에 투숙할 때는 한 밤중이었다. 때론 야밤일 때도 있었는데 수련생의 집에서 나온 후 큰 거리에서 여관을 향해 갈 때면 택시를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택시비가 여관비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가끔씩 여관으로 가는 거리가 몇 리 될 때도 있었는데 제일 멀 때에는 10리 길을 걸어야 했다. 시간이 늦어질 때면 뛰어서라도 갔다. 몇 년간 나는 이렇게 많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해도 현성에서 거의 한 사람도 나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없다. 한 방면으로는 안전을 위하고 다른 방면으로는 동수들에게 부담을 더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얼마나 많은 현성의 큰 거리를 야밤에 도보로 걸었는지 모르지만 사부님을 돕는 정법 노정에서 도리어 아주 부족하여 괴롭다.
어느 날 저녁은 밤이 너무 깊었다. 내가 그 여관에 투숙하러 찾아갔을 때 이미 문이 잠겨 있었다. 내가 한참 문을 두드렸어도 사장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나에게 합당한 여관이 두세 곳밖에 없었다. 나는 더는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나무를 찾아 그 밑에서 하루 밤을 지내려고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성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걷고 걷다가 한 집의 여관문 밖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물었더니 여관의 사장이라고 했는데 마치 나를 기다리기나 한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항상 나의 신변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호하면서 대법으로 나를 지도하고 나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바르게 걷게끔 지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얼마나 많은 야밤을 홀로 다녔는지, 그 때마다 끝없는 우주 그윽한 천공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많은 감상을 하였는지 모른다. 하나의 뜻을 품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대법제자로서 오늘날 천지간에 존재하는 나야말로 아주 행운이었다. 대법제자로서 중생구도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중첩한 곤란을 뚫고 일체 사악을 해체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이것은 사부님을 돕는 정법 노정에서 불필요한 번거로움과 저애력을 감소하기 위해서이다.
이번의 박해 중에서 안전을 위하여 아주 많은 일을 비밀로 하는 것이 필요했고 수구도 잘해야 했다. 어떤 이는 이해를 잘 하지만 어떤 이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늘 자신에게 훈계했다. 어떠한 시기에도 모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자신이 일심으로 법을 위하여 책임지고 바르게 줄곧 끝까지 잘 걸어가야만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바가 없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누구든 당신을 실증할 필요가 없으며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다. 당신이 당신의 양심에 떳떳할 때면 사부가 보아낼 것이다.’(2003년 대보름날 설법)고 말씀하셨다.
이 몇 년래 각종 곤란에 직면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만약 자신이 잘하지 못한다면 사부님께 미안하다. 우리가 얼마만한 지출을 했고 얼마만한 곤란을 겪었던 지를 막론하고 사부님께서는 종래로 우리에게 손해를 보게 하지 않으신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6.사부님의 격려
한 동안 나는 갑 수련생의 집과 협력하여 일부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환경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또 그에게 이렇게 좋은 환경을 이용하여 대법의 일을 하면서 자신의 길을 걷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갑 수련생은 약간 주저했다. 안전을 위하여 나는 되도록 저녁 어두워 들어가고 아침 일찍 돌아왔다. 나는 동수를 위하여 책임지고 동수의 가정환경도 잘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동수에게 번거로움을 가져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아주 많은 일들은 내가 가서 해야 할 것이었다. 두 명의 동수가 자료점을 꾸리려고 준비하고 있어 그들을 도와 설비를 구매해야 했고 또 기술상에서 일부 문제들도 해결해줘야 했다. 기술 있는 수련생이 납치되어 그가 책임졌던 범위 내의 것은 모두 내가 가서 도와줘야 했고 또 그 지역의 사악들을 폭로한 자료들을 정리해야 했다. 어떤 지역에는 내가 늘 물건을 보내줘야 했다……수련생의 일, 당연히 모두 자신의 일이다. 오직 수련생이 하고 있는 일이 법에 부합되기만 하면 나는 무조건 협력했다. 내가 보았을 때 비록 이 일이 아주 힘들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 한 곤란 앞에서 두려울 것이라고는 없으니 멈춰 서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문제가 앞에 놓여 있을 때 순간 일부 일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고 생각했다. 유달리 이때에 갑 수련생이 가상의 교란을 받아 심태가 불안정하여 나에게 아침에는 더 일찍 떠나라고 하는데 나는 난처했다. 왜냐하면 때로 그의 집에서 나와 먼 곳으로 일보러 가자면 그의 집 근처에서 차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일찍 나가면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 불리한 것이다. 그에게 압력을 더 주지 않아야 했고 또 그에게 이 상황을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순간 온통 딱하여 마음도 괴로웠다. 하지만 즉각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선의로 상대방을 이해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 동수의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그를 위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른 방면에서 볼 때 동수에 대하여 마땅히 되도록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였다. 갑 수련생의 여기 일은 곧 마무리 짓게 될 것인데 마지막 단계에 그에게 압력을 조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는 아침에 이 집에서 일찍 나간 후 차를 타지 않고 직접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 꿈을 꾸었다. 내가 위층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생각했는데 층집 밖 주변이 돌면서 층계를 찾을 수 없었다. 한참 후에 아파트 안쪽에 층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로 올라갔다. 깨어난 후 안에서 찾아야만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튿날 아침 4시 좀 지났을 때 밖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바로 수련생의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모 지역에 가서 다른 수련생을 만나야 했다. 때는 이미 늦가을이라 홑옷 바람인데다 또 이렇게 일찍 나오고 보니 좀 추웠다. 이때 추운 것이 대수냐 내가 왜 추운 것을 두려워하지? 나는 마땅히 여러 가지 환경에서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더는 매번마다 사부님께서 자신을 위해 근심하시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순간 몸이 그렇게 춥지 않았고 속으로는 도리어 일종 쾌감이 뿜어져 나왔다. 속으로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고 무조건 법에 동화시킨다면 법은 나의 생명 중에 새로운 혈액을 수송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동틀 무렵 직전의 제일 어두운 시각이었지만 자신의 수련 노정에서의 전망은 도리어 아주 광명하였다. 나는 사부님의 드넓은 은혜 속에서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대략 20리를 갔을 때에야 날이 밝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짙은 안개가 덮이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안개 속에서 대략 20여리 갔을 때에야 내가 가려는 곳 근처까지 접근했다. 머리를 들고 앞을 바라보면서 가노라니 다만 짙은 아침 안개 속에서 거리 옆에 있는 하나의 경고 글귀 몇 자만이 보였을 뿐이다. ‘천만갈래 길에서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라는 파란색 바탕에 흰색 글이 눈에 확 띠었다. 두 줄의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한 줄은 안개에 덮이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별로 개의치 않았는데 아무튼 마음이 아주 좋은 느낌이었다.
나중에 재차 그 거리를 지나면서 보았는데 그 경고 표시판에 있는 두 줄의 글은 ‘도로는 당신과 나를 이어 놓았고, 안전은 천 만호에 관계된다!’라고 써져 있었다. 내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망망한 아침 안개 속에서 ‘천만갈래 길에서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하는 글자가 더욱 명확하게 보였던 것은 사부님께서 자비로 점화하고 격려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잘 수련하고 걸어가게끔 이끌었기에 바로 막힘없이 잘 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7. 심혈을 기울여 중생을 구도하니 가는 곳마다 신기가 나타나다
아직 그렇게 많은 중생이 구도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또 일부 편벽한 마을에는 대법제자들이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러한 중생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시간이 있으면 나는 늘 그 지역으로 가서 진상자료 ‘9평공산당’과 션윈 CD를 배포했다. 우리는 아주 순정한 심태를 유지하면서 오직 중생을 구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때로는 일부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을 마주치는데 여기서 구도될 중생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금년 7월 해외 매체에 장모모가 죽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후 밍후이왕에서 제 때에 관련 진상자료를 편집 보도하여 대법제자들이 중생을 구도하는 데 제공해 주었다. 나는 이 기회에 더 많은 자료를 배포하느라 더 많은 마을을 돌아다녔다.
8. 편벽한 지역에서 자료 배포 시 나타난 신기
어느 날 오후 나는 한 지역으로 자료를 배포하러 가는 중 본래 맑던 하늘이 갑자기 큰 바람이 일면서 비바람이 서남 방향에서 오는데 그 기세가 한 바탕 폭우가 내릴 것 같았다. 나는 중생을 구도하러 가는데 어찌 이런 일에 봉착할 수 있을까? 나는 대법제자가 하는 일은 사부님께서 모두 지켜보고 계시므로 오직 마음만 바르면 사부님께서 도와 줄 것이니 누구도 교란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사람들은 모두 당황하여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는데 나는 도리어 자전거를 타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좀 지나 바람은 멎었는데 큰 비는 내리지 않고 도리어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가랑비에 흠뻑 젖었다. 나는 비의 신에게 “당신은 가히 나의 옷을 적실 수는 있지만 진상자료를 적시면 안 된다.”고 말했다.
내가 가는 곳은 모두 모래땅인데 여기 사람들은 “사구(沙窝)”라고 불렀다. 가문 날씨에는 길거리 모두 모래 천지이다. 어떤 곳에 길이 끊어진 데는 모래가 아주 깊게 패여 자전거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만 밀고 가야 하는데 일단 넘어지면 몸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이곳은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 거기에 또 중복이라 아주 가물었으므로 거리는 모래 천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비가 끊겼다. 앞길을 보니 너무나 교묘했다. 금방 여기는 큰 비가 내렸던 것 같았다. 거리의 모래가 푹 젖었고 땅은 땅땅하게 다져져 걸어가기가 너무 편리하여 모래가 몸에 날릴까 근심할 필요가 없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이미 정신(正神)이 가는 길을 안배한 놓으신 것이었다.
며칠 후 나는 다른 한 지역으로 자료를 배포하러 가야했다. 아침 5시쯤 공중에서 ‘우르릉 꽝’ 하는 우뢰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렸다. 나는 ‘중생구도하는 일을 지체하면 안 되겠기에 비가 내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좀 지나자 우뢰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가 5시에 출발할 때에는 소량의 비가 내렸고 날씨는 엄청 흐렸는데 너무나 침울하였으며 마치 큰 비가 내릴 징조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만 누구도 중생구도하는 것을 교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전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의 검은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나왔다. 나는 시름을 놓고 몇 개의 마을에 자료를 배포했다.
나중에 나는 또 한 지역에 자료를 배포하러 갔었다. 밤에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중생구도의 일은 비가 온다고 해서 개변할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아침 내가 출발할 때까지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나는 사부님께 더는 비가 내리지 말게 해 달라고 청하였는데 즉각 비가 멎었다. 나는 10여개의 마을에 순조롭게 자료를 모두 배포했다. 이날 오전 5시부터 10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10시 넘어서 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줄곧 밤중까지 내렸다. 낮에 이렇게 진귀한 5시간을 순조롭게 자료 배포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또 중생들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료를 주어서 볼 수 있었다. 여기에는 사부님과 대법제자의 무량한 자비가 체현되었던 것이고 동시에 또 대법제자에 대한 무한한 격려가 되기도 했다. 마지막 관건적인 시각에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다그쳐 많은 중생을 구도하기를 얼마나 희망하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었다. 비록 때로는 저애력이 아주 큰 것처럼 보이지만 오직 우리가 마음을 바로잡고 사부님과 법을 견정하게 믿는다면 일체가 우리를 위하여 길을 열어 놓아 사람을 구하는 일에서 신기가 나타나면서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 박대’ 중에서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內涵)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한 진수(眞修) 층차 중에서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이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고 하셨다.
100%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사부님의 요구와 대법제자의 표준에 따라 한다면 법은 바로 끊임없이 우리에게 신기를 나타내 보여준다. 우리가 정념이 강하고 신심이 견정하면 사부님을 돕는 정법과 중생구도의 사명을 더욱 잘 완성하게끔 촉진한다. 나는 향후 반드시 더욱 정진하면서 대법과의 기연을 소중이 여기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이미 지나온 노정을 소중히 여기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이 위대한 호칭을 소중히 여기련다!
사부님 감사합니다!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밍후이왕제8기중국대륙대법제자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11년 11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1/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