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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시시각각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명심하자

글 / 대륙대법제자 샌즈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1996년 6월 나는 늘 내가 일하는 밭을 지나 산기슭의 집으로 가는 노부인을 봤다. 어느 하루,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하기에 매일 그곳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법을 듣기 위해 간다고 대답했다. 나는 무슨 법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 법을 듣고 난 후 계속해서 연공 동작을 배웠다. 어느 날 불현듯 내 몸의 여러 가지 병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특히 두통이 없어졌다. 전에는 두통이 재발하면 8, 9일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나았을 뿐만 아니라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수련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정의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의 길로 나아갔다. – 본문작가 –

나는 농촌의 평범한 가정주부다. 1996년 6월, 나는 늘 내가 일하는 밭을 지나 산기슭의 집으로 가는 노부인을 봤다. 어느 하루,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하기에 매일 그곳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법을 듣기 위해 간다고 대답했다. 나는 무슨 법이냐고 물었고 그녀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바로 “당신들의 것이 내게도 필요한 것인가?” 하고 물으니 그녀는 필요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절반 진도가 나갔기 때문에 다음번을 기다리라고 말했다. 1996년 7월 1일 그녀가 내게 알려주었다. 오늘이 법을 들으러 가는 날이라고.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사부님의 설법은 금방 들어도 아주 좋다고 느꼈고 들으면 들을수록 듣기 좋았다. 들을수록 귀에 들어왔고 마음에 들어왔다. 잠시 옆 사람을 힐끗 보니 잠을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의아해 했다. ‘사부님 말씀이 이렇게 좋은데 어떻게 잘 수가 있지?’ 법을 듣고 난 후 계속해서 연공 동작을 배웠다. 어느 날 불현듯 내 몸의 여러 가지 병이 감쪽같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특히 두통이 없어졌다. 전에는 두통이 재발하면 8, 9일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이제는 완전히 나았을 뿐만 아니라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수련에 대한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정의를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파룬따파 수련의 길로 나아갔다.

1999년 7월 20일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법을 위해 바른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사부님의 결백을 돌려 드려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을의 몇 명의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떠났다. 우리가 탄 차는 몇백 리도 달리지 못해 흉악한 경찰에 제지당했다. 경찰은 우리 몇 명을 진(鎭)파출소로 납치한 후 수갑을 창살에 채워 매달아 놓고 우리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대법을 수련한 후 얻은 심신의 이득에 대한 심득체험(心得体会)을 적었다. 화가 난 소장은 책상을 치며 큰 소리로 욕을 해댔다. 그리고 우리 몇 명을 거리로 끌고 나갔다. 7번째로 우리 마을을 돌 때였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학교가 파하자 내 아들은 엄마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를 찾아와 잡아 당겼다. 흉악한 경찰이 아들을 야만적으로 밀쳐 땅에 내팽개쳤고, 이를 목격한 현장의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다. 흉악한 경찰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고는 허둥지둥 우리의 가족들에게 각자 귀가하라고 종용했다. 그들은 우리를 놓아주기 전에 또 한 번 ‘보증서’에 서명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아들이 대성통곡하며 “어머니, 저를 생각해서 연마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나는 단호히”아들아, 나는 이 길을 꼭 가야만 한다. 누가 말해도 소용없다. 내 생명을 잃는다 해도 나는 이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하고 말했다.

2001년 겨울이 되어 나는 법을 수호하기 위해 또다시 북경으로 떠났다. 사실 나는 이미 1999년 ‘4.25’ 당시에 북경에 갔었다. 몇 명의 수련생들과 중난하이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의 수련생들이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고 말했다. 이번 법 실증을 위해 한 달 정도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나와 수련생들은 매일 대량의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에 자료를 배포하던 중 나는 경찰에 납치되어 베이징 노동교양소에 불법으로 1년간 수감됐다.

2002년 새해 첫 날을 보낸 후 며칠 안 되어 나는 집에 돌아왔다. 시어머니는 이미 2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시아버지 홀로 살고 있었다. 남편은 삼형제 중 막내였다. 둘째는 몸에 이상이 있어 결혼을 못했다. 삼형제는 오래 전부터 따로 살았다. 수련 전 나는 시댁 식구들과 다툰 적이 없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도 나는 언제나 수련생임을 명심하고 수련생은 더욱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늘 시아버지께 먼저 갖다 드렸다. 얼마 후 우리 집에서 식사를 마치신 시아버지께서 다시는 밥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셨다. 나는 “싫지 않으시면 우리 집에서 드셔도 돼요.”라고 시원스레 대답해 드렸다. 오래지 않아 둘째 시아주버니도 세끼 식사를 우리 집에서 먹게 됐다. 이렇게 십 년을 함께 지냈다. 우리는 한 번도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왔다. 몇 번은 첫째 시아주버니와 시누이가 효도를 하겠다며 시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며칠 더 오래 모시고 싶어 했지만 병에 걸려 열이 높아진 시아버지께서 집에 돌아가시겠다고 고함을 치셨다고 한다. 어느 해 정월, 친정에 가서 며칠 늦게 시아버지를 모셔왔다. 뜻밖에 돌아오시자마자 병에 걸리셨고 며칠간 간호를 한 후에야 나아지셨다. 그 후부터 시아버지께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시고 내가 연공하는 것을 지지하셨다. 수련생이 시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우리 며느리는 세상에서 찾기 힘든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시아주버니와 시누이는 늘 자신들이 무슨 복이 많아서 좋은 제수를 만나 시아버지를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는 두 가지 사연이 있다. 올림픽 기간에 나는 흉악한 경찰에 붙잡혀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그 사이에 나는 집에 전화를 한 번 할 수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시아버지께서 그 전화를 받으셨다. 시아버님께서는 “샌지냐? 정말로 샌지야? 샌지야, 정말 네가 보고 싶구나.” 옆에서 전화통화를 감시하던 흉악한 경찰과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이 비꼬듯이 크게 웃으며 시아버지의 나이를 물었다. “제 시아버지께서는 올해 84세입니다.”라고 말하자그들은태도를 바꾸며 진심어린 말투로 “대법제자라 역시 마음이 착하구만. 집에서 아주 잘한 모양이야. 잘하지 못했다면 며느리를 보고 싶어 하는 시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라고 했다. 또 한 번은 중공사당의 어느 향 간부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왔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게 시 전체에서 나처럼 좋은 사람은 둘도 없다고, 나에 대해 한결같이 말했다. 향 간부는 듣고 나서 그녀가 만약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나의 이야기를 보고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리석은 일반인이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대법이 나를 다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내게 이렇듯 큰 용량은 없었을 것이다. 대법이 나를 철저히 변하게 만들었다. 나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대법에 감사드린다!

2006년 7월, 동서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나 혼자 도맡아 했다. 사실 시아주버니의 자식이 해야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았다. 한마디 원망도 없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동서가 세상을 뜬 후 시아주버니는 설날과 명절은 우리 집에서 지냈고 농번기에는 항상 우리 집에서 식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라고. 나는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야 하며 어디서든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명심하고 모두 잘 해내어 대법을 한층 더 발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마을 사람들은 나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심 감탄했다. 또 다른 수련생들도 모두 잘 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파룬궁수련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대법을 지지했다. 박해 초기 촌의 사당서기는 오직 사당만 쳐다보며 대법제자가 진상을 말해주어도 듣지 않고 흉악한 경찰을 지휘해 대법제자를 납치하고 박해했다. 그는 몇 년 후 죽었다. 다른 한 촌 간부가 있었다. 편의상 그를 A 라 부르겠다. 그는 대법제자가 말하는 진상을 듣고 수차례 대법제자를 보호해 주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흉악한 경찰이 나를 납치하자 이 소식을 들은 A 가 마을 밖까지 차를 몰고 와 경찰을 막아서며, 그녀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그녀를 데려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흉악한 경찰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A 는 후에 세뇌반까지 찾아가 그녀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마을의 세 사람이 세뇌반에 갇혀 있었는데 그가 세뇌반을 찾았을 때 마침 마을의 노인 수련생이 수갑에 묶인 채 창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됐다. A 는 흉악한 경찰에게 “당신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어찌 이렇게 대할 수 있는가. 당신들 집에는 노인이 없는가. 당신 가족을 이렇게 대했다면 심정이 어떠했겠는가?”라며 따져 물었다. 흉악한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노인을 내려놓았다. A 는 세 차례 세뇌반을 찾아와 우리의 석방을 요구했다. 결국 우리는 풀려나 마을로 돌아왔다. 현재 더 많은 진상을 알게 된 A는 승진했고 여러 차례 흉악한 경찰의 소란을 막아 더 많은 대법제자를 보호했다. 이젠 마을 환경도 여유로워졌고 수련생들은 연공장에 모여 정정당당하게 법 공부하고 연공한다.

농한기에는 2인 1개조로 몇 개의 팀을 구성해 저녁이 되면 먼 곳까지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표어를 붙였다. 나는 50세지만 젊은 축에 속한다. 다른 수련생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10리 떨어진 다른 마을을 돌며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자료를 모두 배포하면 어느덧 30리나 멀리 나와 있었다. 10리 안쪽의 마을은 나이 많은 수련생이 배포했다. 출발 전 모두가 발정념을 하며 길에서도 계속 발정념을 하거나,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생각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우리는 매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일을 끝마쳤다. 자전거를 타고 왕복 60리 길을 오갔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농번기에는 낮에 일하고 저녁에 가까운 촌에서 진상을 알렸다. 진상자료 배포뿐만 아니라 직접 대면 진상을 하기도 했다. 매 수련생마다 마을의 한 구역을 책임졌는데 내가 책임졌던 곳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삼퇴했다.

사부님께서는 정체제고 정체승화를 요구하셨다. 우리는 항상 인근 마을의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토론했다. 교류를 통해 우리는 함께 인식하게 됐다. 평상시에는 각자가 세 가지 일을 했고 이른바 중공사당의 ‘민감한 날’에는 인근 마을부터 먼 곳까지 모든 수련생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출동했다. 먼저 계획을 세우고 각자 마을을 출발해 인근 마을까지 진상자료를 배포하거나 표어를 붙이고 플래카드를 걸며 10여 리까지 갔다 온다. 모두들 한뜻으로 나와서 하기 좋아했다.

남편도 나의 수련을 지지했다. 박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수련생은 베이징에 가기로 약속했다. 남편은 이 사실을 안 후 “‘홍음’도 외우지 못하는 주제에 베이징에 가서 어떻게 법을 실증하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나는 밤낮으로 ‘홍음’을 외웠다. 잠도 마다하고 이틀 만에 ‘홍음’을 다 외웠다. 남편은 검사까지 했다. 내가 모두 외웠다는 것을 확인한 남편은 나와 수련생에게 붙잡히지 않고 안전하게 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베이징에서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하고 돌아온 후 어느 밤에 연공을 하자 그는 내가 다시 박해 받을까 걱정했다. 나는 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건강상태를 비교해 말해주었다. 그 후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를 도와 진상자료를 배포하곤 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를 도와 대법 서적과 진상자료를 보호했다. 그는 대법서적이 나의 생명과 같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그는 나를 도와 표어를 붙였다. 그가 붙인 표어를 보니 상당히 괜찮았다. 구김 없이 아주 똑바르게 잘 붙였다. 그는 또 평상시 우리 집을 찾는 수련생들이 비교적 많았지만 한 번도 싫어한 기색이 없었다. 이런 남편을 본 수련생들은 상태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나도 수련의 누락으로 두 번이나 사악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적이 있다. 한 번은 베이징에서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했을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올림픽 기간 납치됐을 때이다. 당시 사악은 여러 번 집에서 소란을 피웠다. 내가 아직 누락이 있기 때문에 사악이 빈틈을 탔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정념이 강할 때 그들은 감히 내 집에 얼씬도 못했다. 한번은 사악이 또 우리 집에서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즉시 발정념을 하여 사악한 마와 난잡한 귀신(邪魔亂鬼)을 제거했다. 또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정념으로 그들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그 후 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 기술한 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안으로 찾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시시각각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명심해야만 어떤 난관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듭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밍후이왕 제8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

문장발표 : 2011년 12월 11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11/2494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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