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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은 사교’라는 공감대 마당을 형성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나는 현재 사악의 ‘약속카드’ 사건은 구(舊)세력이 구(舊)우주의 성주괴멸의 규율에 따라 대량으로 중생을 훼멸하기 위해 세간에 배치한 표현으로서, 인간 세상에 반영됨은 곧 중공 정법위원회와 610 등 사악 조직이 배후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전국적인 사건이라고 인식한다. 12년간 중공 사교(邪敎)가 줄곧 자신의 사교 특성을 덮어 감추면서 채용한 방식은, 바로 고의적으로 파룬궁을 모함하고 모독하면서 완전히 당(黨)문화를 주입하는 수단으로 민중에게 한 가지 견고한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교를 제기하기만 하면 민중은 즉시 중공이 주입한 것을 연상해 진정으로 중생과 파룬궁의 진상 사이에 간극을 만들고 사령(邪靈)이 존재하는데 적합한 ‘마당’을 형성한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가지 하에 멈추지 않고 발정념을 하고 진상을 알려 이런 간극 요소와 이런 흑색 마당을 대량으로 제거했다.

아래 나는 현지에서 일찍 사악의 교란을 타파한 실천을 말하려는데 전체 대륙 수련생들과의 교류가 있기를 희망한다.

몇 년 전 현지의 한 지역사회에서 610의 사악한 호소에 따라 흑판 글씨, 벽보신문,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방식으로 파룬궁을 모독하는 선전 활동을 진행했다. 그날 저녁 몇몇 수련생들이 이 지역에 가서 ‘중공은 사교’라는 표어를 대량으로 썼다. 이 지역에 중공이란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우리는 거기에 사교라는 두 글자를 추가했고, ‘당(黨)’자가 붙어 있는 표어에는 ‘당’자 앞에 ‘사(邪)’자를 추가했다. 한 시기 우리는 연속해 A4의 6분의 1정도 크기의 스티커 전단지를 붙였는데 내용은 백성들에게 중공은 사교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지역과 파출소에서 매일 사람을 파견해 스티커 전단지를 찢어버리고 표어를 칠해 버리곤 했으며 밤에 치안 인원들의 순찰 횟수도 늘려 한 시간에 한 번씩 순찰했다. 우리는 이 지역 업무 직원, 청소부, 치안 인원들에게 선(善)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중공은 사교’라는 표어를 붙이면서 A4 4분의 1정도 크기의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연속 3,4일 동안 파출소 경찰들은 안면이 있는 수련생들을 찾아와서 말했다. “더는 붙이지 마세요! 우리는 지금 아침 7시에 출근해 우선 먼저 지역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스티커를 뜯어버리고 전단지를 찢어버려야 합니다. 추운 겨울이어서 얼어붙은 전단지를 뜯기가 너무나 힘들어 뜨거운 물로 녹인 후 뜯어야 하는데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야간 치안인원도 “본래 두 번 순찰하면 되는데 지금은 온 밤을 편히 잘 수 없었고 매우 힘들게 일해도 오히려 상부에게 돈을 차압당합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역과 파출소에서 더는 선전을 하지 않았다. 610에서 서명이나 보증서를 받아오라고 하면 지역 업무직원들은 전혀 파룬궁 수련생들을 찾지 않고 그들 스스로 전부 일을 처리해 610의 쓸모없는 일에 대응했다. ‘여하튼 610도 우리를 속이니 우리도 610을 속이자. 편안하게 월급을 타니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다. 기타 지역 직원들도 몰래 이들의 경험을 흡수해 매우 빨리 보급했다.

한 이웃이 일찍이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런 표어(중공은 사교)를 보니 매우 무서워 지나갈 때 돌아가곤 했어요.” 나는 “지금은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이제는 보는 것이 습관 되어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흑색 마당을 청리한 후 우리는 또 ‘중공은 사교’라는 이 바른 인식의 마당을 펼쳐 사악으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감히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므로 나 개인의 체험으로 볼 때 중공 악당의 이번 교란 활동은 우리들에게 그것들을 청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우리가 바로 중국 대륙에 ‘중공은 사교’라는 마당을 형성해 악당이 의식적으로 세인들에게 주입한 착오적인 관념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다. 부족하고 편파적인 것에 대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시정이 있기를 희망한다.

문장완성: 2011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12/19/250737.html